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8)
필드의 외계인-38화(38/404)
제38화
“저게 카드가 아니라고? 눈이 어떻게 됐어? 내가 잘 보이게 뚫어줄까! 어!”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평소에 차분한 감독이지만, 본인 선수가 부당한 일을 당할 때는 투사로 바뀌어 버린다.
“아, 아니, 이건 놓고 얘기를….”
“당신 눈이 생선 눈깔이 아니면 보일 거 아니야! 지금 주심이 내리는 판정이 이상하다는 것쯤은!”
경기를 본 사람들은 주심의 판정이 이상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라싱 클루브 선수들이 어떤 플레이를 해도 카드가 안 나오는 데 비해 보카 주니어스는 벌써 옐로카드 세 장을 수집했으니까.
[세바스티안 감독이 쌓였던 게 한 번에 터진 것 같습니다. 저렇게 흥분한 모습은 작년에 하비에르 카세로가 심하게 압박을 받았을 때 이후로 처음이네요.] [경기에서 유독 보카 주니어스에게 불리한 판정이 많아서 저렇게 흥분하는 게 이해되긴 합니다.]주변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유지우는 무릎을 감싸 쥐며 고통스러운 연기를 이어갔다.
메소드 연기.
이 상황에서 노리는 건 주심의 가슴팍에서 카드가 나오는 거였다.
“아니! 일어나! 그렇게 안 부딪쳤잖아.”
몸통 박치기를 한 브루노 페레이라는 유지우가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딪치는 감촉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너 이 새끼야!”
다른 사람이 보는 시선에선 강한 충돌 후에 넘어진 것처럼 보여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저 새끼! 연기하는 거라니까!”
“저렇게 아파하는데 무슨 연기야!”
“아! 진짜 미치겠네! 야, 일어나 봐! 일어나라고!”
양 클럽 선수들이 개입해 흥분한 선수들을 말리며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주심은 유지우의 상태를 살피더니 가슴팍에 있는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척.
[브루노 페레이라에게 옐로카드를 줍니다!] [주심에게 카드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군요!]목표로 했던 카드가 나오자 유지우는 끙끙거리며 일어났다.
“아… 아….”
연기는 빼먹지 않았다.
부들부들.
분노에 치를 떠는 브루노 페레이라에게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메롱을 한 번 해주고 엉덩이에 묻은 잔디를 털어냈다.
그렇게 프리킥이 준비되는 사이, 유지우는 자기 위치로 가려고 했는데.
“네가 찰래?”
하비에르 카세로가 멈춰 세웠다.
“그래도 돼요?”
“네가 얻은 거잖아. 훈련 때 보니까 킥도 나쁘지 않게 하고.”
일반적인 선수들은 이런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양보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데뷔 선물도 안 준 거 같아서 말이야.”
“…이미 여섯 경기나 뛰었는데요?”
“늦었지만, 선물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감사히 받을게요.”
볼을 세워두고 하비에르 카세로와 같이 준비했다.
“어떻게 찰 거야?”
“수비벽 오른쪽으로 스핀 걸어서요.”
“페이크 걸어줄게.”
“네.”
하비에르 카세로의 주발은 왼발이었고 프리킥 위치도 왼발으로 감아 차기 알맞은 위치라 라싱 클루브는 하비에르가 찰 것을 대비해 수비진을 구성했다.
“조금 더 왼쪽!”
보카 주니어스의 전담 키커 하비에르 카세로.
리그 내에서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프리킥 성공률이 높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키커로는 하비에르 카세로와 유가 서 있네요?] [유가 페이크를 줄 것으로 보입니다. 킥은 하비에르가 하겠죠. 하비에르가 가장 좋아하는 위치니까요.]페널티 라인에 걸릴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위치.
키커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삐—익!
휘슬이 불리자 하비에르 카세로와 유지우는 시선을 맞춘 뒤에 동시에 움직였다.
휙.
하비에르 카세로가 찰 것처럼 동작을 취했다가 그냥 지나가며 수비벽을 속였고 그 뒤에 유지우가 나타났다.
그것을 본 마우로 카세레스는 점프를 뛰고선 당황했다.
‘…당했다!’
뻐-엉!
유지우가 찬 슈팅은 수비벽의 오른쪽으로 크게 나가서 자칫 골대를 크게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르르륵.
볼은 회전을 머금고 맞바람을 맞으며 급속도로 궤적이 꺾였다.
마치 UFO처럼.
[어어어어어어어어!]철렁~.
아슬아슬하게 오른쪽 골포스트를 스치며 구석에 꽂히는 완벽한 코스.
골키퍼는 볼을 보고도 움직이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막아.”
미리 알았더라도 못 막았을 만큼 절묘한 코스였다.
[드, 들어갔습니다! 고오오오올! 골! 유의 오른발이 라싱 클루브의 골망을 가릅니다!] [프리킥에서 어떻게 저런 궤적이 나올 수 있죠? 발목 힘이 얼마나 강한 겁니까!]골키퍼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골대 안에 있는 볼을 신경질적으로 찼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라봄보네라는 함성으로 물들었다.
세리머니를 하는 유지우에게 리카르도 메사가 다가와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연기 많이 늘었다?”
“…리카르도가 알려준 거잖아요.”
“그래도 난 적만 속이라고 했지, 아군까지 속이라고는 안 했는데?”
“저도 다 속을 줄은 몰랐어요.”
“축구가 아니라 연기를 해야 했나?”
* * *
전반전이 끝나고 시작된 후반전.
점수가 1 – 0으로 벌어진 터라 라싱 클루브는 집요하게 사이드로 역습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건 쉽게 통하지 않았다.
촤—-악!
후방 미드필더 마르코스 무스의 포백 보호 능력은 리그 내에서도 최고라고 손꼽혔다.
경기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 능력.
거친 몸싸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피지컬.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
후방 미드필더로서의 재능은 리그 내에서 마르코스 무스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아끼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마르코스 무스의 활동량이 대단합니다! 확실히 저번 시즌보다 체력이 좋아진 모습입니다!]앙헬 몰리야 – 하비에르 카세로.
세계에 내놔도 밀리지 않을 화려한 공격진에 가려지긴 했지만, 보카 주니어스 수비력은 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단단함을 자랑했다.
퍼—억!
보카 주니어스 수비 리더인 에르네스토 게레라는 작은 키에도 빠른 스피드와 수비 커버력으로 라싱 클루브의 스트라이커 호세 페르난데스를 막아냈다.
[다시 볼을 놓치는 호세 페르난데스!] [보카 수비의 중심엔 이 선수! 에르네스토 게레라가 있습니다! 선수들이 가장 상대하기 싫은 선수 1위로 꼽힐 정도로 집요한 수비가 장점인 선수입니다!]“나이스 디펜스!”
앙헬 몰리야가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칭찬하자 에르네스토 게레라는 손을 들며 웃었다.
‘대박.’
유지우는 속으로 놀랐다.
여러 경기에서 보여준 수비력도 대단했지만, 유독 오늘이 뛰어났다.
특히 라싱 클루브의 공격진은 빠른 주력을 바탕으로 한 돌파에 특화된 선수들이었다.
그런 선수들에게 틈 하나 내주지 않는 수비는 저절로 감탄이 나게 했다.
“여기는 맡기고 골이나 더 넣어.”
팀을 위해서라면 흙투성이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 든든한 후방.
그리고 세계에서 활약해도 이상하지 않을 화려한 공격진.
보카 주니어스 선수단의 공격과 수비 균형은 제3자의 시선으로 봐도 완벽 그 자체였다.
뻐—–엉!
그리고 그 완벽한 균형의 끝에선.
[유! 아름다운 트래핑으로 볼을 받은 뒤에 라 크로케타! 브루노 페레이라가 손을 쓰지 못합니다!]보카의 어린 왕자가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한 번 속도가 붙은 그를 막을 선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반칙으로 끊으려고 해도 몸을 잡지 못하면 불가능했다.
툭.
한 사람.
툭.
두 사람.
페널티 박스에 들어오고선 리카르도 메사에게 패스를 주는 척 페인트를 준 뒤에 오른쪽으로 찬 슈팅.
철렁.
[고오오오올! 프리킥 득점 후! 불과 7분 만에 두 번째 골을 넣는 유우우우우우우!]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작은 소년이 아르헨티나 리그를 폭격하고 있습니다!]광고판에 올라 포효하는 어린 선수를 본 라싱 클루브의 젊은 에이스 마우로 카세레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대체 저 녀석은 뭐야. 브루노가 스피드 경쟁에서 한 번도 못 이길 줄이야.’
브루노 페레이라가 입이 거칠긴 하지만 실력은 출중한 선수였다.
특히 라싱 클루브에서 주력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한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당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젠장!!!’
브루노 페레이라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유지우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탓에 다리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유가 브루노를 따돌리며 빈 곳으로 앙헬 몰리야가 빠르게 횡패스!]그래서 유지우가 빈 곳으로 가서 볼을 잡는 걸 더는 방해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돼.’
무리해서라도 잡아야 했다.
한 골이 더 들어갔다간 쫓을 의욕이 꺾일 테니까.
한 걸음.
두 걸음.
두 선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앗! 마우로 카세레스가 태클로 패스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발에 맞고 떠버리고 말았습니다.]땅이 아닌 공중으로 오는 볼.
몸싸움으로 밀어붙이면 빼앗을 확률이 늘어났다.
브루노 페레이라는 무리해서 유지우에게 빠르게 다가갔고 거의 다 접근했다.
‘이 거리라면…!’
볼은 아직 공중에 있었다.
찌릿.
허벅지에 경련이 났지만, 꾹 참으며 그대로 밀어붙이려고 했는데 브루노 페레이라는 유지우의 플레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왼쪽 뺨을 스치며 지나가는 볼.
‘어깨로?’
유지우는 공중에 있는 볼이 떨어지는 걸 기다리지 않고 공중에 있는 그 상태에서 어깨로 치고 나갔다.
– 오오오오오오!
[감각적인 어깨 트래핑! 브루노 페레이라가 지우 유를 다시 놓칩니다!]돌파당할 가능성을 생각한 마우로 카세레스의 빠른 백업 플레이.
“유!”
툭.
툭.
빽빽한 수비진이 막자 하비에르와 원투 패스로 빠져나갔다.
[하비에르와 원투로 돌파한 유!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골대로! 유우우우우우우!]골키퍼가 나오는 걸 보고 위쪽으로 툭 찍어 찬 로빙슛.
그 볼은 곡선을 그리며 골키퍼의 키를 넘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철렁-!
골을 넣은 유지우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거친 숨을 내뱉었고 곧 동료 선수들이 그를 덮쳤다.
“와아아아아아!”
“이 미친 자식! 네가 해낼 줄 알았어!”
“해트트릭이라고! 해트트릭!”
[해트트리이이이익! 유가 데뷔하고 첫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아니 대체 이 선수는 어디서 온 누구란 말입니까!] [잠시만요! 이거 최연소 해트트릭 아닙니까?]아르헨티나 리그 최연소 해트트릭.
유지우는 고작 열여섯의 나이에 역사에 이름을 새긴 거였다.
“…….”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 하늘이 내린 천재 –
이 단어 말고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단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 유! 유! 유! 유! 유!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차세대 에이스의 탄생을 함께했다.
* * *
“어떻습니까?”
환호하는 보카 주니어스 서포터즈 사이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박우근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주앙 달루트였다.
2030 월드컵을 위해 2년 전, 축구협회가 야심 차게 데려온 포르투갈 출생 감독으로 네덜란드 국가대표 감독, 호주 감독 등 경력이 화려했다.
그는 지그시 유지우를 바라봤다.
“지금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네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혀줄 선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발탁하지 못하지 않나요? 부협회장인가? 그 사람 때문에 차출 거부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주앙 달루트도 외국인 감독이긴 해도 협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네, 그걸 먼저 해결해야죠.”
“계획은 있나요?”
“끝나갑니다. 그리고 계획만 무사히 마무리된다면 그때 유지우 선수와 접촉할 예정이고요.”
영상이 아닌 실제로 보니까 빛나는 재능이 더 잘 보였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다.
유지우는, 국가대표팀을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만들어줄 인재라는 것을.
“부디 계획이 잘 풀리면 좋겠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모든 걸 바로 잡을 겁니다.”
박우근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한국 축구계는, 이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