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85)
필드의 외계인-385화(385/404)
제385화
CF 촬영부터 재단 일까지.
유지우는 한국에서의 일정을 모두 끝낸 뒤, 영국으로 갈 준비를 마쳤다.
“모레 몇 시 비행기라고 했지?”
“오전 8시요.”
“이른 시간이니까 그 전날에 다 준비해놔야겠구나.”
이틀 뒤에 영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가족들도 짐을 챙기며 준비 중이었다.
이번 여정에는 유한우와 서설희도 같이 가서 챙겨야 할 게 많았다.
한편, 유민하는 거실에서 느긋하게 TV를 보고 있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한국에 남는 그녀는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유민하는 여유롭게 과일을 먹으며 예능 프로그램을 찾았다.
“요새 채널만 돌리면 축구 선수들이네.”
채널을 돌릴 때마다 월드컵 스타들의 얼굴이 보였다.
“월드컵 우승의 주역들이잖아. 그만큼 방송국에서도 혈안이 돼서 섭외하려고 하지.”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의 섭외를 위해 방송국 사람들은 집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특히 해외파 선수들.
이제 곧 소속 클럽으로 돌아갈 그들의 인터뷰를 조금이라도 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찌나 열심히 돌아다녔는지 발에 물집이 잡히는 사람들도 이따금 나올 정도였다.
이럴 거면 축구 선수로 데뷔할 걸 그랬다는 우스갯소리가 방송국에서 나오기도 했다.
“저번에 지우 섭외하려고 집까지 온 거 보고 되게 놀랐어요.”
“입구에서 경비한테 막혀서 못 들어왔지.”
“사전에 거절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얼마나 골치가 아팠는데.”
에이전트 차명훈이 거절 의사를 전해도 칠전팔기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을 상대하는 건 유한우의 일이었다.
“참… 집에서는 저렇게 어린 애가 따로 없는데 말이지.”
유민하는 턱을 괴고선 주방에서 밥을 먹는 유지우를 쳐다봤다.
방금 잠에서 깼는지 머리에 까치집을 만들고 옆구리를 긁적이며 김치찌개를 먹는 모습.
“뭘 봐?”
축구를 하지 않을 때는 영락없는 23세 남동생이었다.
“너 하루 나트륨 권장량 넘기는 거 알아?”
“다 체크하고 먹는데.”
“그러다가 살 확 찐다?”
“누나처럼?”
“…나는 표준 체중이고!”
티격태격하면서 밥을 다 먹은 뒤에 거실로 나오는 유지우를 보고 유민하가 물었다.
“너 다빈이랑 저녁 먹기로 했다며?”
“어, 월드컵 동안 조언을 많이 해줘서.”
유지우는 월드컵 기간에 최다빈이랑 거의 매일 톡을 했다.
국가대표 경험이 많은 최다빈의 조언 덕분에 멘탈을 잡기도 했으니, 고마운 마음에 밥을 사려고 했다.
“괜한 구설에 오를 행동은 하지 마, 이제 넌 어디를 가던 눈에 띄니까.”
* * *
다음 날 오후.
가족들과 저녁을 먹기로 한 탓에, 최다빈과는 점심시간에 만났다.
“여기 어때? 내가 찾았는데?”
최다빈이 찾은 곳은 고깃집이었다.
룸으로 되어 있어서 둘이서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나야 어디든 좋지, 한국에서 식당을 가본 적이 너무 오래돼서.”
유지우는 한국에 오면 늘 가족들이 만들어준 밥만 먹어서 나가서 외식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불편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것이 유지우의 습관이었다.
치이이익-
곧 한우가 나왔다.
직원은 고기를 굽다가, 이따금 유지우를 힐끔거렸다.
“저….”
“네?”
“실례가 아니라면 식사 다하시고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 아들이 워낙 팬이라.”
“물론이죠.”
“가, 감사합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고기가 익자 두 사람은 먹기 시작했다.
워낙 맛집이라고 알려진 음식점답게 밑반찬부터 뭐 하나 부족한 부분이 없었다.
그렇게 일상 얘기를 하면서 고기를 반 정도 먹자, 유지우는 그녀에게 궁금했던 걸 물어보았다.
“누나 은퇴한다며?”
올해 서른이 된 최다빈은 선수 생활을 끝내고 지도자 길을 걷는다고 했다.
“해야지, 아직 더 할 수는 있지만,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어서.”
최다빈의 세계랭킹은 여전히 1위.
펜싱 여제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성적이었다.
“아쉽지 않아?”
“아쉽지. 머리로는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까.”
선수 생활을 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예 운동계를 뜨는 것은 아니었다.
코치 제안이 여러 개 왔고, 그중에는 좋은 조건도 많았다.
그녀는 그중 하나를 골라, 코치로서 활동할 예정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얼굴은 섭섭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시원해 보이기도 했다.
“나도 하나 질문해도 돼?”
“어떤 거?”
“아직 한창인 너한테 묻기에는 좀 그렇지만… 넌 언제 은퇴할 거야?”
아마 모든 사람이 궁금해할 주제였다.
그리고, 아직 머나먼 이야기이기도 했다.
23세의 선수.
큰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10년은 더 뛸 수 있는 나이였으니까.
“35세.”
유지우는 그 질문에 확답했다.
“…뭐야, 이미 생각하고 있었어?”
“응, 나도 누나랑 같은 생각이야. 누구한테 밀려서 내려오는 것보다는 정상에 있을 때, 모두한테 박수받으며 내려오고 싶거든.”
“…….”
“그리고 무엇보다 2046년 월드컵, 그걸 마지막으로 은퇴할 거야.”
유지우는 선수 생활 계획이 다 짜여있었다.
은퇴할 시기.
그리고 은퇴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도.
“은퇴하고서는 뭐할 건데? 지도자 생활?”
가장 일반적인 것이 지도자 생활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라이센스를 취급하면 바로 클럽에서 코치직 수행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은 아무 생각도 없어.”
“하긴 너한테는 머나먼 일이니까 천천히 생각해도 되겠다.”
“그러려고.”
“지금은 앞만 보고 달려가. 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말해줄게.”
“고마워, 누나. 월드컵에서도, 그리고… 평소에도.”
“뭘.”
두 사람은 그렇게 식사를 마무리했다.
직원들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한참 동안 해준 끝에, 두 사람은 식당에서 나갈 수 있었다.
식사 끝에 찾아간 곳은 유민하의 또 다른 친구, 강주현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뭐야 두 사람. 데이트? 나 촉 좋아?”
“그래! 데이트한다.”
“뭐야, 왜 당당함? 솔로는 서러워서 살겠나….”
“흐흐. 난 따뜻한 라떼 줘. 넌 뭐 먹을래?”
“음.”
메뉴판을 보던 유지우는, 한참 고민한 끝에 말했다.
“민트라떼.”
메뉴를 말하자 잠시간의 정적이 있었다.
강주현은 의외라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리 지우가 맛잘알이네.”
“…저 메뉴가 팔리긴 하는구나.”
“민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마니아층들은 없어서 못 먹는 메뉴지.”
“난 그래도 치약은 좀.”
“치약이라니! 성스러운 민트님한테!”
“그런 성스러운 민트로 만든 민트 마카롱이 지금은 어떻게 됐지?”
“…….”
“상장 폐지되지 않았나?”
“치사하게 팩트로 공격하냐!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해야지!”
“됐고 얼른 만들어주시기나 하시죠 사장님.”
“네~ 고객님, 휴무일에 굳이 이렇게 찾아와 매출을 올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주문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휴무일인데도 두 사람을 위해 가게를 열어준 강주현 덕분에, 두 사람은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대충 자리를 잡고 있자 음료가 나왔다.
이미 식당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무슨 할 말이 많은지 두 사람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저는 내일 장사를 위해 잠깐 마트를 갔다 올 거라 두 분은 편하게 드시고 있으세요~”
강주현이 나가자 카페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아! 그리고….”
최다빈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그녀는 즐겁게 말했다.
10분.
20분.
그러다가 이야기가 도중에 한 번 중단되자.
음료를 한 번 먹은 유지우는 최다빈을 쳐다봤다.
“누나.”
“응? 왜?”
그동안 느꼈던 감정.
이 감정이 단순히 운동선수로서의 동질감에서 나오는 감정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함께 있고 싶었고, 뭐를 하더라도 같이 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을 때.
월드컵이 끝나고 마음에 여유가 찾아온 이제야 그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유지우는 그 마음을 담아 나지막이 말했다.
“좋아해.”
그랬다.
유지우는 오래전부터 최다빈을 좋아하고 있었다.
* * *
인천 국제 공항에는 취재진이 몰려 있었다.
유지우가 출국하는 날이라 새벽부터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다.
“유지우 선수 올 시간 됐지?”
“8시 출국이니까 적어도 30분 전에는 도착하겠지.”
“으으으, 여름인데도 아침에 쌀쌀하군.”
“어제 비가 왔잖아.”
그렇게 취재진과 팬들이 기다리고 있던 게이트 앞에 차량이 도착하며 유지우가 내렸다.
찰칵.
플래쉬가 터지며 기자들이 유지우를 찍었다.
유지우는 그들에게 인사하며 걸어갔다.
“이거 선물이에요!”
“다치지 마세요!”
팬들은 준비한 선물과 편지를 그에게 전달했다.
유지우는 출국 전, 사전에 약속했던 대로 인터뷰 장소에 가서 섰다.
“인터뷰 시간은 5분입니다.”
차명훈은 앞으로 나서서 교통을 정리했다.
“사전에 말씀드린 순서대로 질문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잘 통제해준 덕분에 인터뷰는 원활하게 진행됐다.
“한국에서 푹 쉬셨나요?”
“월드컵에서 쌓인 피로를 다 풀었습니다. 지금은 몸이 아주 가볍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질문이 나왔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영국 왕실 쪽에서 아스날 선수들을 초청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영국 왕실의 아스날 클럽 초청이었다.
33-34시즌 트레블과 더불어 무패 우승을 했기에 상징적으로 부르고자 하는 것이었다.
원래 시즌 종료 후에 초청하고 싶어 했지만, 월드컵 기간이라 월드컵이 종료된 후 초청하기로 내부적으로 합의가 되었다고 단장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왕실에 초대되는 것은 한 사람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가서 국왕께 혼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네? 뭐 때문에요?”
“저희가 잉글랜드를 8강에서 만나 탈락시키지 않았습니까.”
월드컵 8강에서 대한민국이 잉글랜드를 격파했을 때.
잉글랜드 여론에서 유지우를 향한 안 좋은 말들이 나왔었다.
[유를 잉글랜드 입국 금지를 해야 해.] [두고 봐, 저 녀석이 들어오는 순간! 내가 그대로 죽여줄 거니까!] [유의 집이 어디지? 가서 다 박살 내버릴 거야!]아스날이 아닌 타 클럽 팬들이자 그 팬들도 싫어한다는 훌리건들이었다.
그들에 맞서 아스날 팬들은.
[감히 우리 히어로를? 너희들이 북런던의 땅을 밟는 날이 너희들의 제삿날이 될 거야.] [난 오늘부터 유의 집 앞에 경비를 설 생각이야.] [나도 같이 서자! 유를 건드는 건 아스날을 건드는 일이라고!]유지우를 강력하게 보호하고자 했다.
이 일은 커지면서 방송에도 보도됐고, 아스날도 유지우에게 경호팀을 고용해주겠다며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기자가 쓴 기사로 모든 게 종결됐다.
【 우리는 축구의 종주국이라며 왜 패배를 포용하지 않는 것인가? 유는 최선을 다해 조국을 위해 싸운 것일 뿐, 잉글랜드를 미워하는 게 아니다. 무분별한 분노는 결국, 우리만 다칠 뿐이다. 】
기사의 조회 수가 올라가자 일부 무례한 팬들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유지우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글들도 올라왔다.
상황이 그렇게 정리되자, 유지우도 이렇게 농담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자 중에는, 자극적인 기사를 쓰고 싶었던 나머지 그것을 소스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
“잉글랜드로 돌아가서 해코지당할까 봐 두렵습니까?”
이슈가 될 것으로 생각해 직구로 꽂아버린 질문.
이 질문이 얼마나 도발적이었냐면, 주변 기자들이 다 그를 쳐다보며 입을 벌릴 정도였다.
‘쟤는 뭐야?’
의아해하는 기자들 속에서 유지우는 단번에 대답했다.
“아니요.”
“…….”
“잉글랜드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나라입니다. 물론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근데 그건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고, 대다수 팬은 저를 응원해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유지우가 현명하게 대처하자 기자는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자, 남은 시간에 질문을 한 개라도 더 하고 싶었던 기자들은 그를 끌어냈다.
“유지우 선수! 다음 질문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5분을 향하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을 받을 차례였다.
“앞으로의 목표는 어떤 것인가요?”
사람들은 모두가 궁금했다.
클럽 커리어로도 누구도 이루지 못할 기록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커리어 하이라는 월드컵 우승까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선수의 다음 목표는 과연 무엇일까.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최고의 선수로 남고 싶습니다.”
그의 다음 목표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남는 것이었다.
메시, 마라도나, 펠레를 넘어.
유지우라는 이름 세 글자를 역사에 새기고 싶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탑승 시간이 되자 유지우는 인사를 한 뒤에 수속을 마친 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퍼스트 클래스 내부, 유지우는 창문 밖을 보며 멀어지는 한국 땅을 봤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월드컵 우승에 취해있을 시간은 없었다.
남은 것은 그것을 경험 삼아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유지우는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