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39)
필드의 외계인-39화(39/404)
제39화
매년 9월부터 12월까지 열리는 남미 챔피언 결정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하위 격인 ‘코파 수다메리카나’ 16강에 승리하며 보카 주니어스는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 12전 12승! 보카 주니어스의 상승세를 막을 클럽은 어디? 】
【 5년째 브라질 리그가 독식해온 남미 클럽 챔피언! 아르헨티나가 가져올 가능성은? 】
작년 4위를 했던 보카 주니어스의 거침없는 초반 상승세.
아르헨티나 TV 프로그램 ‘풋볼 아르헨티나’에서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아르헨티나 축구 레전드들과 셀럽들이 나와서 토론하는 ‘풋볼 아르헨티나’는 시청률 17%가 나올 만큼 인기 프로였다.
“다음은 12전 전승으로 리그 1위에 올라 있는 보카 주니어스입니다.”
화면에 보카 주니어스 엠블럼이 떴다.
“저번 시즌 4위였던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 달라진 점은 확실하게 보입니다.”
“어떤 점이죠?”
“공격진의 변화죠.”
“역시 많은 분이 뽑은 레알 마드리드 레전드 앙헬 몰리야의 영입인가요?”
앙헬 몰리야의 창의적인 공격 전개와 패스 능력.
리그 굴지의 미드필더 하비에르 카세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보카 주니어스의 파괴력을 담당했다.
“그것도 있지만, 침체했던 보카의 분위기를 바꿔버린 어린 왕자가 있지 않습니까.”
앙헬 몰리야는 워낙 뛰어난 선수라 오기 전부터 성과를 낼 거라는 말이 많았지만, 보카 주니어스 최대의 변화는 유스 출신 유지우의 합류였다.
“지우 유요?”
“네.”
“하지만 유는 열여섯의 어린 선수입니다. 그 선수 한 명이 합류했다고 달라진 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물론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유지우는 어디까지나 아시아인.
아시아인의 활약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뼛속까지 꽉 막힌 사람은 어딜 가나 존재했다.
“그렇다면 베리 씨는 저번 시즌 보카 주니어스의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주전 공격진의 노쇠화죠. 그래서 후반기만 되면 체력 소모가 커서 그걸 보완하려고 앙헬을 영입한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가장 큰 문제인 공격진의 노쇠화로 파생된 문제점이 바로.”
화면이 바뀌더니 유지우가 볼을 잡고 달리는 영상이 나왔다.
“기동력입니다.”
폭발적인 가속력.
리그에서도 빠르기로 유명한 브루노 페레이라가 쫓아가지 못하는 모습에 패널들은 감탄했다.
“앙헬과 하비에르의 기동력도 좋지만, 전 보카의 상승세의 요인으로 이 선수를 뽑고 싶군요.”
그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확실히 빠르네요. 베스트 11에 뽑힌 브루노가 쫓지도 못하는 스피드라니…. 허허.”
“예, 보카 주니어스 선수단에서 제일 빠른 스피드를 가진 선수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관계자를 통해 알아본 내용으로는 최고 속도가 34km가 나왔다고 합니다.”
오오오오오.
“그리고 속도 말고도 마지막 하나.”
삑.
“테크닉.”
대형 화면에 틀어진 또 다른 영상.
거기엔 유지우가 경기에서 드리블로 상대를 농락하는 게 나왔다.
무려 네 명을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
거기선 다들 소리를 내지도 않고 집중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넌지시 말했다.
“플레이하는 모습이 마치 마라도나 같지 않습니까?”
* * *
“어? 리카르도?”
“우리 왕자께서 왔군!”
저녁 먹으려고 들른 아버지 식당에서 리카르도 메사와 부인을 만났다.
“…그 별명으로 계속 부르지 마요.”
“뭐 어때! 길거리 꼬마들도 다들 널 그렇게 부르잖아. 보카의 어린 왕자!”
“하아….”
“여긴 어쩐 일이야?”
“그야 저희 아버지 식당이니까요.”
“아, 그렇지.”
리카르도 부부가 먹고 있는 옆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아버지가 주방에서 나왔다.
“왔어?”
“예.”
“리카르도 선수랑은 아까 인사했다!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안 했죠?”
“별말 없었어. 네가 구단 식당 아주머니 음식을 먹다가 남겨서 앙헬이 다 먹어 치웠다는 거 정도?”
“…그건 진짜 맛없었어요.”
“그럼! 내 손에 길든 입맛인데.”
웃고 떠드는 사이, 아버지는 내 저녁을 만들어서 가지고 나왔다.
양식 레스토랑에는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김치찌개였다.
“오! 그건 뭐야?”
그걸 본 리카르도 메사는 음식을 먹다 말고 궁금해했다.
“한식이요.”
“나도 먹어봐도 돼?”
“매울걸요.”
“내가 매운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괜히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라니! 조금만 줘봐!”
앞접시에 조금 덜어서 건네주자 리카르도 메사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 번에 먹었다.
난 몰라.
분명히 말렸어.
“으아아아악! 뭐, 뭐야! 콜록! 콜록!”
“거봐요. 맵다고 했죠?”
“쓰으으읍, 하아! 그냥 매운 정도가 아니잖아! 스파이시 소스를 들이부은 거 같아!”
청양 고춧가루를 넣어서 만든 거니까 매울 수밖에.
“그, 그런 걸 왜 먹어?”
“한국 사람들은 좋아해요.”
“그걸? 무기 아니야?”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여러 찌개를 먹어봤는데도 아버지가 만든 김치찌개가 최고다.
적절한 간으로 된 고기와 묵은지를 하얀 밥 위에 얹어 한 입 먹으면 행복감이 몰려온다.
리카르도는 크게 당해서 더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카를로스가 자체 징계 끝나고 다음 주부터 복귀한다던데?”
카를로스는 술 먹고 다치는 바람에 감독님께 출전 징계를 받은 선수였다.
원래 주전이었으니까 내가 밀려나려나.
“알고 있어요.”
“걱정 안 돼?”
“상관없어요.”
“진짜?”
“밀리지 않을 자신은 있으니까요.”
가만히 밀려날 생각은 없었다.
지금 내 성적은 8골 4도움.
현 리그 득점과 도움 부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데 감독님이 미치지 않고서야 날 제할 리가 없었다.
“하긴 리그 득점왕 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너무 많이 갔어요.”
리카르도는 얼마 남지 않은 고기를 잘라 먹더니 넌지시 물었다.
“그럴 정도면 유럽에서도 눈독 들이긴 하겠다.”
“…….”
“갈 거냐?”
진지한 질문을 받자 뭐라 대답할지 망설여졌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답을 그대로 말했다.
“모르겠어요.”
“…….”
“그래도 리카르도한테 우승컵을 안기기 전에는 안 떠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내 답을 들은 리카르도는 놀라더니, 피식 웃었다.
“우승하면 안 되겠네. 너를 보카에 계속 붙들고 있으려면.”
이야기를 나누면서 밥을 다 먹었다.
“유!”
“네?”
“다음에 우리 집으로 와! 우리 마누라가 요리 하나는 끝내주게 하거든.”
리카르도의 아내인 마르티나 메사 여사님이었다.
온화한 미소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게 인상적인 분이네.
“다음 주에 한 번 와요. 안 그래도 저녁 만들어 드리고 싶었거든요.”
“우리 집에 오면 너보다 두 살 어린 내 아들이랑 너랑 동갑인 딸도 있으니까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사건이 있고 난 뒤로 누구의 집도 가지 않았다.
“갈게요.”
그래도 이제는 조금씩 달라져야지.
언제까지 옛날의 안 좋은 기억들로 다가오는 미래의 인연을 매정하게 끊어낼 수는 없으니까.
* * *
리그 13라운드.
보카 주니어스 vs CA 알도시비.
알도시비의 홈구장 ‘에스타디오 호세 마리아 미네야’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3만 명의 관중들이 모인 곳.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 ‘라봄보네라’보다 작은 사이즈의 구장이긴 하지만 홈팬들이 내뿜는 열기는 피부를 찌를 만큼 뜨거웠다.
– 와아아아아아아아!
현재 리그 7위를 하는 그들은 리그 중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승리가 필요했다.
– 알도시비여! 신이 그대들에게 용기를 주노니! 앞을 막아선 적들을 몰아내라!
홈팬들의 열띤 응원에 알도시비 선수들은 보카 주니어스를 상대로 끈질긴 수비를 보여줬다.
보카 주니어스의 강력한 공격력.
그것에 맞서는 그들은 넘어지더라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투혼을 발휘했다.
절대 질 수 없다는 표정으로 끈질기게 막았다.
“가브리에우!”
가브리에우는 왼쪽 풀백으로 출전하며 끈덕진 수비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유지우가 볼을 잡고 가까워지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알도시비! 알도시비! 알도시비!
홈팬들의 응원이 등을 밀어줬지만, 이상하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 이러지?’
유지우가 드리블하는 압력에 압도된 거였다.
어느 곳으로 올지.
어느 발로 승부를 걸지.
아무것도 예측이 안 됐다.
그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됐다.
‘…아, 안 돼!’
망설이면서도 발을 뻗었다.
망설인 탓에 그의 다리는 허무하게 허공을 휘저었다.
유지우는 벌어진 다리 사이로 볼을 보내며 가브리에우를 따돌렸다.
‘이런!’
[넛맥으로 가브리에우를 따돌린 유! 더 안으로 들어가는데요! 아아아아아!]퍼—-억!
“다 밀어붙여! 빌어먹을 보카 녀석들한테 틈도 주지 마!”
[마르틴 베키오가 지우 유를 차단합니다! 34세의 노련한 수비수! 사냥꾼이라는 별명처럼 날카롭고 매서운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죠!]유지우가 올 것을 알고 길목을 차단해 몸싸움으로 눌러버렸다.
수비에 성공한 마르틴 베키오는 멍하니 있는 가브리에우에게 화를 냈다.
“방심하지 마, 저 녀석은 열여섯의 꼬맹이가 아니라 한 명의 프로 선수야!”
알도시비가 매년 하위권을 하면서도 강등당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마르틴 베키오라는 기둥이 있기 때문이었다.
* * *
알도시비는 마르틴 베키오를 중심으로 단단한 수비를 펼쳤다.
[저번 시즌과 아예 다른 수비력을 보이는 알도시비! 공격적 투자로 선수 보강을 한 보람이 있어 보입니다.]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마르틴 베키오.
리그에서 뛰어난 수비력을 가진 걸로 알려진 에스테반 부루차가와 디에고 몬드라곤.
마지막으로 브라질 리그에서 데려온 가브리에우.
이 네 명은 알도시비 수비의 희망과도 같았다.
“또 온다! 집중!”
그런 그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건 보카 주니어스의 창이 맡았다.
[앙헤에에에에엘!]두 명의 압박을 화려한 턴으로 벗겨내고 왼쪽으로 길게 내준 패스.
[세르히오 보치니가 받습니다!]장점인 빠른 주력으로 측면을 열고 수비수가 붙자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뻐—엉!
골대 앞에는 리카르도 메사가 있었고 흐른 볼을 잡기 위해 유지우가 측면에서 올라왔다.
[리카르도 메사를 지나고 비어 있는 오른쪽으로! 아~ 크로스가 깁니다!]크로스가 꽤 길어 오른쪽 측면으로 갔다.
[지우 유가 바로 달려가서 볼이 라인 밖으로 나가기 전에 살려냅니다!]라인을 넘기 전에 슬라이딩으로 잡아냈고 뒤에선 가브리에우가 거칠게 압박을 해왔다.
볼과 함께 유지우를 라인 밖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가브리에우의 강한 압박! 유가 나오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하비에르가 바로 지원합니다!]“유! 이쪽!”
수비수들이 하비에르를 마크하러 갔고 가브리에우는 유지우가 하비에르에게 패스하지 못하게 약간 오른쪽으로 균형을 옮겼다.
그때였다.
휘릭.
오른쪽으로 한 번 페인트를 준 뒤에 왼쪽으로 치고 나가는 유지우는 마치 바람처럼 사라졌다.
“젠자아아아아앙!”
다리를 쭉 뻗어보지만, 거기서 한 번의 페인트를 더 줬다.
오른발이 아닌 왼발.
즉, 다리를 꼬아 킥하는 ‘라보나킥’을 구사한 거였다.
[가브리에우를 따돌린 유의 크로스으으으으으! 리카르도 메사! 메사아아아아아!]철렁.
라보나킥으로 올린 크로스는 적절하게 감기면서 리카르도 메사의 머리에 정확하게 맞고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고오오오올! 리카르도 메사의 멋진 헤더! 보카 주니어스가 전반 30분에 선제골을 넣습니다!]다들 골을 넣은 리카르도 메사를 연호했지만, 한 사람은 달랐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의 눈에는 화려한 돌파 후에 아름다운 어시스트를 한 유지우가 들어왔다.
생김새도 다른 이방인.
하지만.
플레이할 때만큼은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리운 향수가 느껴졌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눈물을 흘렸다.
“그가 돌아온 것만 같군.”
“할아버지, 누구요?”
젊은 시절, 가슴을 뜨겁게 만든 한 선수.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플레이로 세계 축구계의 정점에 선 남자.
‘디에고 마라도나.’
그 선수의 모습이 유지우에게 겹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