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4)
필드의 외계인-4화(4/404)
제4화
집으로 돌아온 유지우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다.
“학교에선 다시 축구부로 들어오라는 말은 없고?”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자리는 늘 축구 얘기가 함께였다.
“있을 리가 없죠. 저 받아주면 협회에 찍히는 거 한순간인데 받아주겠어요?”
“그놈들은 세월이 지나도 왜 그렇게 꽉 막혔을까. 징계 끝났으면 좀 받아주지.”
아버지 유한우는 청주에서 ‘Joy of taste’라는 양식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셰프고.
“우리 아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어머니 서설희는 약사.
“아빠, 레스토랑 입구에 붙여놓은 건 언제 떼실 거예요?”
일곱 살 터울의 누나 유민하는 전문대를 졸업한 후에 유한우의 밑에서 요리를 배우고 있었다.
“뭘?”
“축구협회, 해운중 사람들은 출입 금지요.”
“크, 크흠! 절대 안 돼! 그놈들이 억만금을 낸다고 해도 그놈들한테 밥 한 톨도 못 줘!”
“그건 당신이 잘하고 있는 거야. 오면 아예 설사약이라도 팍팍 넣어버려. 내가 가져다줄게.”
도리도리.
“진짜 두 분은 지우 없으면 어떻게 사시려고요?”
“그러는 넌?”
“네?”
“지우가 징계받고 방에서 혼자 울고 있는 거 보고 씩씩거리면서 협회에 전화해서 쌍욕을 한 건 누굴까?”
“그, 그건!”
“우리 딸 입이 그렇게 험한 줄 그때 처음 알았네.”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건 숨겨놓고 지우한테만 잘못을 물으니까 그런 거죠!”
가족들은 유지우를 끔찍이도 아꼈다. 그래서 유지우도 가족들과 있을 때는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웃었다.
어느덧 밥을 거의 다 먹고 나자 유지우는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아버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저, 해외로 가도 될까요?”
해외라는 말에 가족들은 일제히 밥을 먹던 손을 멈췄다.
“갑자기?”
“오늘 학교 앞에서 해외 스카우터를 만났어요. Future Cup 보고 찾아온 거래요.”
“해외? 어디?”
“보카 주니어스요.”
“보카 주니어스면….”
유한우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르헨티나?”
“네.”
평소에 축구에 관심이 많아 보카 주니어스가 어디에 있는 클럽인지 단번에 떠올랐다.
“아르헨티나면 치안이 안 좋잖아. 이왕이면 유럽이 더 낫지 않니?”
아르헨티나라는 말을 듣자마자 서설희는 걱정이 앞섰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남미 국가가 치안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니까 그곳에 아들이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번화가 쪽은 괜찮다고 들었어요.”
“흐음.”
그 말에도 여전히 심란한 표정을 짓자 유한우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 말했다.
“너한테 제안한 사람들은 믿을 만하고? 1년 전처럼 공수표만 남발하는 녀석들일 수 있잖아.”
1년 전까지 여러 스카우터가 접촉했지만, 실질적으로 이어진 곳은 없었다.
“명함도 그렇고 하는 말을 들어보니 거짓말은 아닌 거 같아요.”
“네가 1년 전에 무슨 사건에 휘말렸는지도 알고?”
“예.”
달그락.
유한우는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걱정이 많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협회에 밉보여 살아남는 건 힘드니까.”
“…….”
“가장 나은 방법은 해외 진출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너를 맡길 순 없어.”
1년 전부터 여러 곳에서 상처를 입은 아들을 해외로 보내기엔 망설여졌다.
한국과는 아예 다른 낯선 환경에서 더 큰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스윽.
“이거 명함이에요.”
“윤무태?”
“걱정되시면 직접 만나 본 뒤에 결정하셔도 되잖아요. 만나 보고도 걱정되신다면 다시 생각해 볼게요.”
유한우는 가만히 명함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적힌 번호로 연락을 했다.
–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유지우 선수의 아버지 유한우입니다.”
상대방은 윤무태였다.
– “아! 안녕하십니까! 전 보카 주니어스 아시아 팀장 로드리고 씨의 통역을 맡고 있는 윤무태라고 합니다.”
“예, 다름이 아니라 그쪽에서 오늘 저희 아들 학교로 찾아가서 아들에게 제안했다고 들어서 연락드렸습니다.”
– “네! 맞습니다! 어떻게, 결정은 하셨나요?”
유한우는 유지우를 보고 말을 이어갔다.
“바로 결정을 하기엔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들이 상처를 많이 입어서요.”
– “아…. 이해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유한우는 즉답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 * *
다음 날, 충청북도 청주시 ‘ROYAL HOTEL’ 앞.
“누구세요?”
오전 10시, 호텔에서 나온 윤무태는 뒤이어 나오는 로드리고를 보고 웃음을 꾹 참았다.
“뭐가?”
평소 로드리고는 정장 대신에 편한 옷차림을 입고 다니는 걸 즐겼다.
‘정장은 답답해!’
중요한 자리에서도 정장 입기를 꺼리는 사람이 오늘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위아래로 정장을 빼입고 머리까지 세팅하며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스카우터가 아니라 배우 아니세요? 어디 시상식이라도 가시나?”
“…놀리는 거지?”
“풉.”
“거봐! 지금 놀리는 거잖아!”
“제가 언제요. 아! 이러다가 늦겠네요. 어서 타세요.”
차를 타고 유지우가 사는 동네로 가는데 윤무태는 로드리고에게 물었다.
“근데 정말로 서울에는 안 가셔도 되겠어요?”
“왜?”
“오늘 축구협회랑 점심 약속 잡아 놓으셨잖아요. 보카 주니어스가 한국에 아카데미 세우는 건으로요.”
아시아 곳곳을 돌아다니던 로드리고가 한국에 들어온 이유는 보카 주니어스 아카데미를 한국에 세우는 것 때문이었다.
“그딴 건 실무자들한테 맡겨. 나한테는 그딴 것보다 보카 주니어스의 미래를 책임질 보물을 캐러 가는 게 더 중요해.”
로드리고는 그런 자리를 싫어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실무자들에게 다 떠넘기고 유지우를 만나러 가는 거였다.
“그나저나 뭘 그렇게 보세요?”
“준비.”
“무슨 준비요?”
“유의 부모를 설득하기 위한 준비지.”
신호에 걸리자 윤무태는 로드리고를 힐끔 봤다.
“유의 뭐가 그렇게 좋길래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내심 궁금했다.
근 2년 동안 로드리고를 따라다니며 통역 업무를 맡는 동안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아, 그래? 그럼 안녕.’
뜸을 들이거나 뭔가를 요구하는 선수들에게는 가차 없이 선을 그었다.
유지우가 확실히 짧은 시간에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고작 교체 출전을 한 경기뿐이라 로드리고와 달리 확신이 들지 않았다.
“확신이 있으니까.”
“유가 잘하긴 하지만 고작 7분에 확신이 드십니까?”
“수십 일, 몇 년이 걸려도 내 마음을 훔치는 녀석이 없는데 단 7분 만에 내 마음을 훔친 건 그 녀석이 유일해.”
두 사람이 탄 차는 청주를 떠나 한 시간가량 달려 유지우가 사는 공주에 도착했다.
“후우.”
차에서 내린 로드리고는 심호흡했다.
“꽤 오래 걸릴 거 같은데 참으실 수 있겠어요?”
“고작 7분에 내 마음을 빼앗은 선수를 데려가려면 참아야지.”
초인종을 누른 뒤에 집 안으로 들어가자 서설희가 두 사람을 거실로 안내했다.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에스파냐어로 인사를 하는 유한우를 보고 로드리고와 윤무태는 깜짝 놀랐다.
“에스파냐어를 할 줄 아십니까?”
“제가 젊었을 때, 스페인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몇 개월 살았었거든요.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합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수준급 어휘에 로드리고는 잔뜩 흥분한 채, 가져온 자료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스르르륵.
상당한 양이었다.
“지금부터 구단에 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네.”
“그 전에 여기.”
로드리고는 자신의 명함을 꺼내 건네줬다.
“보카 주니어스 아시아 팀장 로드리고입니다.”
“아, 그러면 저도.”
유한우도 자신의 명함을 건네줬다.
“셰프님이셨군요?”
“그럭저럭 먹고사는 정도입니다. 허허허.”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잠시 후, 윤무태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곤 무언가를 보고선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눈을 비볐다.
‘…실화야?’
로드리고가 이렇게 정중하게 행동하는 걸 처음 봤다.
그러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부들부들.
테이블 아래.
쥐가 났는지 떨리고 있는 로드리고의 다리가 자신에게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보카 주니어스에 오면 유는 3년 안에 프로로 데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은 채 로드리고는 열변을 토했다.
“3년이요?”
“예.”
“제 아들을 그 정도로 인정한 이유가 있나요?”
로드리고는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그 사진 속에 있는 선수.
그 선수는 유한우도 잘 아는 선수였다.
“하비에르 카세로….”
보카 주니어스에 뼈를 묻을 거라며 떠나지 않는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선수였다.
“그런데 왜 이 선수의 사진을?”
“제가 발굴한 선수입니다.”
“…….”
“유는 하비에르보다 더 성공할 재능이 있습니다.”
하비에르 카세로는 유럽 빅클럽에 갔으면 커리어에 우승 이력을 가득 채웠을 거라며 많은 팬이 아쉬워하는 선수였다.
[ 하비에르 카세로는 유럽 빅클럽으로 가면 발롱도르까지 받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 ]아들이 그런 선수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말에 유한우는 기쁜 것도 잠시 의심이 들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가요?”
“아뇨, 확신을 하고 드리는 말입니다. 하비에르 카세로에게 확신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일이지만, 유는 7분이면 충분했으니까요.”
로드리고는 감을 믿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틀리지 않았으니까.
“제가 고른 선수들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유도 그럴 거고요.”
유한우는 약간의 의심을 풀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르헨티나로 가게 되면 아들의 생활은 어떻게 되는 거죠?”
유한우는 차분하게 대화를 주도했다.
“그 부분은 구단에서 전부 책임을 집니다. 구단에서 운영하는 기숙사도 있고, 그게 싫으시다면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현지 매니저도 둘 생각입니다. 여기 있는 미스터 윤이 유의 통역과 교육!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생활을 돌봐줄 겁니다!”
어제 그냥 농담으로 한 이야기가 나오자 윤무태는 당황했다.
‘미스터 윤이 유를 보살펴주면 좋겠어.’
‘제가요? 전 로드리고의 통역관이잖아요.’
‘유는 아직 에이전트가 없잖아. 그러니까 적응과 소통이 완벽하게 될 때까지만, 물론 에이전트가 생기면 안 해도 되고.’
윤무태는 거절하려고 했다.
통역관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로드리고의 눈빛을 보고 싹 사라졌다.
< 안 한다고 하면 죽일 거다. >
마치 이런 말을 하는 눈빛 같았다.
로드리고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윤무태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빠르게 적응할 수 있게 제가 곁에서 돕겠습니다.”
살고 싶었다.
“다행이군요. 타국에 가면 적응하는 부분이 제일 걱정이 됐거든요.”
“그 부분이 제일 크죠.”
“계약을 진행하게 되면 아르헨티나로 가는 시기는 언제인가요?”
“얘기해 봐야겠지만, 적어도 10월은 돼야 할 겁니다. 계약 문제와 더불어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 하니까요.”
해외로 간다고 해도 바로 가는 게 아니었다.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수두룩했다.
그 후로도 여러 이야기가 나왔고 유한우는 제일 중요한 것을 물었다.
“1년 전, 감독 폭행 사건에 대해 들어 보셨습니까?”
로드리고는 이 질문이 나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네.”
“…아무 상관이 없나요?”
씩.
“축구에는 그보다 더한 악행을 저지르는 선수는 많습니다.”
“감독 폭행인데도요?”
아무리 악행을 저지르는 선수가 많다고 해도 감독 폭행은 차원이 다른 부분이었다.
그래도 로드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뭐 어떻습니까? 결과만 제대로 보여주면 팬들은 야유가 아닌 환호를 보낼 겁니다. 그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축구의 매력이니까요.”
이 말대로였다.
축구도 성의 없게 하면서 인성도 안 좋은 선수들은 팬들에게 질타받지만, 결과를 내는 선수는 면죄부를 받는다.
그 후에도.
“아, 그 부분은 계약 조항에 넣으면 됩니다.”
계속 대화를 나눴다.
“아닙니다. 보카 주니어스의 선수들 가운데 인종차별을 할 선수는 없습니다. 만약 하면 제가 머리끄덩이를 잡고 내쫓을 겁니다. 사고는 쳐도 되지만! 인종차별을 하는 쓰레기들을 클럽에 둘 수 없죠!”
그리고 유한우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얼마든지요.”
“제 아들이 보카 주니어스에서 프로 선수가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아들의 미래였다.
“100% 확신합니다.”
로드리고의 진심이 담긴 눈빛에 유한우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로드리고는 어젯밤, 윤무태에게 들은 회심의 방법을 썼다.
어색한 한국말에 진심을 담아서.
“아뚜님울 져에께 주시시오(아드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프러포즈를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