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400)
필드의 외계인-400화(400/404)
외전 11화
“아스날의 감독직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1군 수석코치도 아닌 1군 감독이라니.
그것도 아스날 그 자체라고 불리는 폴 사르의 후임으로.
“구단은 그 자리에 어울리는 건 오로지 당신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스날에서 무수한 영광을 만들어낸 주인공.
아스날 팬들에게 아직도 히어로로 불리는 그라면, 능히 선수단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 1군 코치에 데릭도 있지 않나요? 데릭이 하면….”
데릭 레드먼드는 1군 코치직만 5년째 수행 중이었다.
경력이라면 유지우보다 데릭 레드먼드가 먼저 감독직을 수행해도 될 일이지만.
“그가 강력하게 유를 추천했습니다.”
데릭 레드먼드는 가장 먼저 유지우를 감독직으로 추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제안하는 겁니다. 아스날의 모두가 원하는 당신이 감독직을 맡아준다면 아스날은 보다 높은 곳을 꿈꿀 수 있으니까요.”
최근 아스날은 여전히 빅4로 불리고 있었지만, 리그 우승권에서 멀어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4위.
2위.
3위.
4위.
3위.
이것이 최근 5시즌의 아스날 성적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UEFA 챔피언스리그도 4강의 문턱에 막혀 결승 진출을 못 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유. 다시 아스날에서 최고를 꿈꿔보지 않겠습니까.”
전화 너머에서 단장이 전하는 말.
유지우는 그 목소리에서 그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원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아스날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지금 내가 아스날로 돌아가도 되는 수준인가? 괜히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아스날로 가게 된다면,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의 능력을 갖추고 가고 싶었다.
과연 지금 자신이 그 능력을 갖췄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확답이 나오지 않아서 망설여졌다.
“…고민 좀 하고 내일 전화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그러면 전화를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유지우는 소파에 털썩 앉아 천장을 올려다봤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신의 모든 영광의 중심이었던 아스날로 돌아갈 기회가 눈앞에 왔으니까.
꽉.
‘가도 되는 걸까.’
만약 다른 클럽에서 감독직을 제안했다면 바로 답을 해줬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스날은 달랐다.
아스날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클럽이었으니까.
그렇게 유지우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다.
* * *
그날 저녁, 유지우는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대화를 나누는 게 좋을 거 같아 제라르 레오를 찾았다.
“무슨 일로 찾은 거야?”
두 사람이 만난 곳은 평소에도 자주 오는 바였다.
자리마다 칸이 나누어져 있어 사람들이 몰리는 일도 피할 수 있었기에, 선수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곳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물을 한 잔 마신 유지우는 아스날에서 제의가 온 것을 이야기했다.
“호오, 좋은 기회가 왔는데 고민이 왜 이렇게 깊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제라르 레오는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제라르는 제가 코치로 더 있어 주길 원하죠?”
“속마음은 그렇지, 너랑 같이 있으면 선수단 장악하는 거나 전술 세우는 게 편하니까.”
유지우의 전술 설계는 제라르 레오보다도 뛰어난 수준이었다.
선수 시절에도 뛰어난 전술 이해도로 필드를 지배하던 선수가 바로 유지우였으니까.
“그래도 너는 여기서 멈출 녀석이 아니잖아? 너라면 아스날 감독으로 부임해도 잘할 거라고 믿어.”
평소 유지우를 지켜본 그는, 유지우의 능력을 누구보다 인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제 능력이 거기까지 될까요?”
씩.
제라르 레오는 웃음을 지었다.
“넌 네 능력에 확신이 없는 거야?”
“…아직은요, 감독직을 맡아본 것도 아니니까.”
“멍청한 놈.”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농담이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해. 지난 3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너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는 것뿐이야.”
바이에른 뮌헨 U-20 코치부터 시작해 이곳까지 온 7년의 세월.
누군가에게는 짧다고 느껴질 법했지만, 유지우는 그 시간을 단 하루도 낭비하지 않았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로 이곳까지 오게 된 거였다.
“넌 선수 시절 때처럼 너 자신을 믿을 필요가 있어.”
유지우의 현역 시절.
그는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였다.
그 덕분에 놀라운 성장세와 업적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코치 생활을 하는 지금은, 그때와는 달랐다.
7년이나 코치 생활을 했지만, 아직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니까.
“…….”
“확신이 안 생기면 잠깐 한국이라도 다녀와, 가족들이랑 얘기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어?”
“그럴까요?”
“그리고… 난 네가 왜 이런 고민을 하는지 알 것만 같아.”
“정말요?”
“나도 너랑 비슷한 경험을 했었거든.”
제라르 레오의 말이 끝나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어서 들려오는 그의 말.
정확히 유지우가 하는 고민을 콕 집어서 한 말이었다.
“머리 좀 식혀, 너무 달리기만 하지 말고.”
유지우는 아스날 단장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더 달라고 한 뒤, 휴가를 받아 한국으로 향했다.
* * *
한국에 도착한 유지우는 하루가 지난 뒤, 아내인 최다빈에게 모든 걸 털어놨다.
이야기를 다 들은 최다빈은 유지우에게 밥을 차려주면서 말했다.
“거기에 대한 답은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걸?”
“내가?”
“그동안 코치직을 하면서 느꼈을 거 아니야. 본인이 아스날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아닌지.”
그 말이 맞았다.
자신이 한 경험은 타인이 평가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당신이 흔들리는 건 하나야.”
최다빈은 웃으며 갈비찜을 유지우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선수 때 높인 팬들의 기대감을 자기 지도력으로 채워줄 수 있을지, 그리고 만약 못 채우면 어떻게 될지…. 그게 두려운 거잖아. 지금.”
최다빈은 유지우의 고민을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본인도 선수에서 지도자의 길을 선택할 때, 비슷한 고민을 했던 적이 있으니까.
그리고 한국으로 오기 전, 제라르 레오와 나눴던 대화 내용과도 일치했다.
그러니 유지우가 하는 고민은 선수들이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을 때 일반적으로 겪는 고민이었다.
“하던 것처럼 해,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듣자 뭔가 마음이 편해졌다.
선수 시절 때도 그랬다.
어떤 고민이 있어도 최다빈과 얘기하면 자주 풀리곤 했었다.
“이상하게 누나랑 얘기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니까.”
“그러니까 부부 아니겠어?”
최다빈은 활짝 웃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 고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직접 부딪쳐보면 답이 나오지 않겠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유지우는 고민을 조금씩 덜어냈다.
.
.
.
며칠을 집에서 쉬면서 마음을 정리했다.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유지우는 커피를 마시며 마당에서 볼을 가지고 트래핑을 하는 아들을 봤다.
“기본기는 훌륭하게 잡혔구나.”
아들 유현수의 나이는 17세.
현재 축구 명문으로 알려진 서울 장명고등학교 축구부 에이스를 맡고 있었다.
뛰어난 재능 때문에 벌써 프로 구단 몇 군데에서 관심을 두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잘 알려주셨잖아요.”
유현수는 유지우의 아들이라는 꼬리표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피지컬이 급격히 좋아지며 주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힘든 건 없지?”
“없어요.”
없을 리가 없었다.
축구계에서 아들을 보는 시선이 많아진 만큼 부담감도 커졌을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도 돼.”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들은 그렇게 말하고 기본기 훈련을 이어갔다.
다시 말을 걸려고 했지만.
짝.
등에서 전해지는 충격에 뒤를 돌아봤다.
“당신이랑 판박이구만 뭐.”
최다빈은 흐뭇하게 웃으며 아들을 보고 있었다.
“내가 언제 저랬다고!”
“어? 아르헨티나에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힘들다는 소리 한 번도 안 해서 어머니 마음 아프게 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인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아르헨티나 보카 주니어스 소속으로 뛸 당시.
유지우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본 최다빈은, 아들이 아버지랑 똑 닮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는 유지우의 모습에, 그녀는 웃고 말았다.
“그, 그건!”
“자자! 아들 방해는 그쯤 하시고 들어가서 쉬시죠?”
그렇게 가족들과 쉬던 어느 날.
“유.”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한국에 가족들이랑 여행하러 왔는데 잠깐 만나지.”
“…네, 감독님.”
폴 사르.
아스날의 살아있는 전설적인 감독이 한국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 * *
“갑자기 한국에 오셔서 놀랐습니다.”
“시즌이 끝났으니까 가족들이랑 여행 좀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지.”
두 사람은 유민하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룸에서 자리를 가졌다.
“제가 현역일 때는 매일 전술 연구하느라 비시즌 기간에도 못 쉬셨잖아요.”
과거 유지우가 훈련 변태였다면, 폴 사르는 전술 변태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그때고… 나도 나이가 있으니까 이제는 그렇게 못하지.”
폴 사르의 나이는 어느새 60이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서서히 몸이 힘든 것을 느낀 만큼, 이제 큰 짐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야기는 들었지?”
폴 사르는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를 꺼냈다.
“네.”
아스날의 감독직.
자신의 후임으로 유지우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폴 사르 또한 알고 있었다.
“난 한 시즌만 더 하고서 내려올 생각이야. 구단이랑도 의견을 다 조율했고…. 너 생각은 어때? 내 뒤를 이어서 아스날 감독직을 맡아볼래?”
“감독님이 계속하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아주 늙어 죽을 때까지 부려 먹으려고?”
“하하하하, 제가 어떻게 감독님을 부려 먹겠습니까.”
폴 사르는 감독을 더 맡아도 되는 나이긴 했다.
그런데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좀 쉬어야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달려오기만 했잖아.”
두 사람은 웃으며 밥을 먹었다.
폴 사르는 유지우 누나의 음식 솜씨에 매우 놀라며 음식들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역시 현지에서 먹는 한식이 최고군.”
“그렇죠, 음식 재료의 맛부터 다르니까요.”
폴 사르는 영국에 있을 때도 유지우 때문에 한식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한식을 즐기는 한식 매니아로 익히 알려져 한국 팬들로부터 한국 과자나 식재료를 선물로 받고 있었다.
“유.”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가 나올 때쯤이었다.
“예, 감독님.”
“감독직을 맡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억지로 맡을 필요는 없다.”
폴 사르는 유지우가 고민하는 것을 이해했다.
“너에게 아스날이 특별하니, 그만큼 무겁게 다가온 거겠지.”
“…….”
“그래도 말이야, 감독이라는 길을 선택했다면 한 번 발을 내디뎌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세상이니까.”
제라르 레오를 보필하면서 감독직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코치가 자신이 맡은 역할만 수행한다면.
감독은 선수단 전체를 통솔해야 하는 자리였다.
그 정도로 책임감이 막중한 자리라는 걸, 유지우는 지난 세월 동안 깨달았다.
“한마디 해주자면.”
씩.
폴 사르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스날을 이끌 새로운 선장에 너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는 거뿐이다.”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폴 사르의 말까지 들으니, 유지우의 고민은 완전히 사라졌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가 짓는 미소를 본 폴 사르의 입가가 올라갔다.
‘결정한 얼굴이군.’
선수 시절부터 유지우는 무언가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리면 온화한 미소를 짓곤 했었으니까.
.
.
.
1년 후.
예상대로 폴 사르는 아스날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아스날의 아버지 폴 사르, “영광의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스날에 있다는 것이 그들의 변화를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후대를 위해 자리를 내려놓겠다.” 】
사람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폴 사르가 어떤 존재인가.
암흑기였던 아스날의 황금기를 이끌고 유럽 최고의 클럽에 올려놓은 존재였다.
[도대체 누가 폴 사르의 뒤를 이을 수 있다는 거야?]그렇기에 팬들은 후임으로 어떤 감독이 올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온갖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올 시즌도 트레블을 이뤄낸 제라르 레오가 유지우를 만나고 있었다.
“결국에 가는구나.”
“가야죠, 제라르 레오가 마드리드를 맡은 것처럼. 제게 아스날은… 꿈이니까요.”
고민이 말끔하게 사라진 그를 보며 제라르 레오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
“이거 다시 엄청난 적을 상대하게 됐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봐요.”
“하하, 기대하면서 있으마! 네가 어떤 축구를 보여줄지!”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은 그렇게 이별을 했다.
그 뒤.
유지우가 아스날과 개인 협상을 마무리하고서.
기사 하나가 보도됐다.
【 아스날, 새로운 감독으로 유지우 선임! 】
아스날의 히어로가 다시 아스날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이거 실화야?”
축구계가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