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41)
필드의 외계인-41화(41/404)
제41화
그렇게 시간이 흘러.
11월 10일.
【 2029 코파 수다메리카나 준결승! 엘 수페르클라시코가 성사되다! 】
【시즌 첫 엘 수페르클라시코! 과연 승자는 어느 클럽이 될 것인가?】
상승세의 보카 주니어스와 24-25시즌부터 리그 5연패라는 역사를 써가는 리버 플레이트의 맞대결이라 전문가들도 섣불리 승자를 예측하지 못했다.
코파 수다메리카나 준결승 1차전이 2주일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세바스티안 란첼라 감독은 선수들을 소집해 모두가 놀랄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파우스토!”
“예!”
“2주일 뒤에 있을 코파 수다메리카나 준결승 1차전은 네가 에르네스토 대신 선발로 나간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훗날 보카 주니어스 수비진을 지탱할 재목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였다.
“그 표정은 뭐야? 자신 없어?”
“아닙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부담을 느끼지 말란 말은 안 한다. 부담감은 늘 네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거야.”
“네.”
“하지만 그거에 짓눌리지 마. 앞으로 네가 살아갈 세상이잖아.”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은 눈빛이군! 경기 전날에 술만 먹지 마!”
* * *
11월 24일.
우리는 구단 버스를 타고 리버 플레이트의 홈구장 엘 모누멘탈로 향했다.
“흐아, 전반기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총 리그 경기가 56경기니까 거의 절반가량 온 셈이죠.”
아르헨티나 리그의 경기 수는 유럽과는 달랐다.
총 리그 경기는 56경기, 28개의 클럽이 홈 어웨이로 경쟁하는 탓에 타이트한 일정을 자랑했다.
원래 2022년까지는 리그 34경기가 전부였지만, 클럽의 수가 늘어나면서 부득이하게 일정이 살인적으로 변했다.
“다들 커튼 쳐.”
잠시 후, 리카르도 메사의 말에 선수들은 익숙한 듯 일사불란하게 커튼을 쳤다.
“왜 커튼을 치는 거예요?”
내가 옆에 앉은 하비에르 카세로에게 묻자.
“곧 리버 플레이트 지역이거든.”
“그게 왜요?”
“궁금하면 커튼 걷지 말아보든가. 크크크큭.”
하지만 곧 알게 됐다.
– 우우우우우우우!
리버 플레이트 구장이 있는 지역으로 들어서자 길거리에 있는 리버 플레이트 팬들의 야유 소리가 버스를 울렸다.
“와.”
“너, 버스 타고 원정 온 건 처음이냐?”
“네.”
“아주 짜릿한 경험이 될 거다.”
툭.
그 말과 동시에 밖에서 들려오는 말소리.
“꺼져!”
사람들은 물건을 버스를 향해 던졌다.
경찰이 개입해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구장과 가까워질수록 그러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야유는 귀를 울렸고 날아오는 물건은 버스를 위협했다.
“걱정하지 마. 이거 샷건에도 견디는 방탄유리야. 회장님이 신경 좀 썼지.”
콰아앙-!
갑작스러운 큰 충격에 선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뭐, 뭐야!”
“저 새끼들 폭탄 던진 거 아니야?”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한다고?”
폭탄이 아니라 커다란 돌이었다.
“보카의 버러지들아! 우리의 성지! 엘 모누멘탈이 너희의 무덤이 될 거다!”
그들은 경찰에 연행됐고 그걸 본 하비에르 카세로는 재미있는 걸 보여준다면서 창문에 대고 가운뎃손가락을 올렸다.
“이거 방탄유리야, 이 새끼야!”
…이 사람, 이제 보니 이런 걸 즐기는 타입인가.
* * *
무수한 테러 위협이 있었지만, 경찰들의 경호 덕분에 무사히 구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입구에 서서 선수들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다들 잘 알 거라고 믿는다. 경호원의 경호를 받고 신속하게 안으로 들어가.”
– “네!”
무슨 작전지에 투입하는 군인들처럼 선수들의 표정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밖은 경찰들이 선수들이 입장하는 통로를 통제했고 리버 플레이트의 훌리건들은 통제 라인 밖에서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들어간다.”
버스에서 나온 선수들은 경호를 받으며 신속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물건들이 날아왔다.
물통이나 음식물.
앙숙지간의 더비 매치에서도 경기전부터 상대 선수에게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엄히 금지했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징계를 먹어도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주 옛날, 20세기에 있던 행동이 전통처럼 이어졌다.
그래서 엘 수페르클라시코 날만 되면 경찰들을 비롯해 정부까지 나서 충돌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
“선수분들은 신속하게 안으로 들어가 주십시오!”
줄지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 대열에 껴서 들어가려는데 리버 플레이트 팬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원숭이 우리에나 들어가!”
“미개한 아시아 놈이 네 무덤이 될 곳을 찾아왔구나!”
“당장 너희 나라로 꺼져!”
“우끼끼——!”
“거리에 나가 DVD나 팔아!”
“개고기나 먹는 버러지 같은 놈들!”
그 뒤로도 차마 말로 담기도 힘든 원색적인 인종차별이 이어졌다.
경찰들도 미간을 찌푸릴 만큼 훌리건들이 내뱉는 말은 더러움 그 자체였다.
그때 내 어깨를 감싸는 손이 있었다.
…응? 리카르도?
“뭐, 아시아인? 오늘 그 아시아 꼬마한테 너희들 목부터 따일 거니까 목이나 씻고 있어!”
“너 입부터 찢어줄까! 리카르도!”
“할 수 있으면 해봐! 내 입을 찢기 전에 네 손부터 잘라줄게! 이리 와!”
“오냐! 오늘 내가 은퇴시켜 주마!”
“드루와! 드루오라고!”
아니 정작 당사자인 내가 가만히 있는데 왜 그러세요.
리카르도는 결국 다른 선수들에게 양팔을 잡히며 끌려 들어갔고 난 여전히 야유하는 그들에게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들어줬다.
“격한 응원 감사해요. 보답으로 이거 드릴게요.”
동방예의지국의 사람답게 감사 인사는 빠트리면 안 되지.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이고, 내 인사가 소리를 지를 정도로 마음에 드셨다니.
그러면 다른 손도.
척.
“저 자식 죽여버린다!”
경기 끝나고 관중을 도발했다고 징계를 먹겠지만, 뭐 상관없다.
내 속만 시원해졌으면 됐지.
* * *
코파 수다메리카나 준결승은 홈과 어웨이로 나뉘어 2차전으로 진행된다.
먼저 리버 플레이트의 홈에서 치러지는 탓에 원정인 보카 주니어스에겐 다소 불리한 면이 있었다.
엘 수페르클라시코.
세계에서 가장 거친 더비전을 보기 위한 발걸음이 엘 모누멘탈(El Monumental)로 모여들었다.
구름처럼 많은 관중이 객석을 채워갔고 원정팀에게 배분된 서포터즈석을 제외한 모든 곳이 리버 플레이트의 하얀색으로 도배됐다.
“적진에서 응원이라니! 묘하게 흥분되네요!”
보카 주니어스 서포터즈석엔 유지우의 유니폼을 입은 유한우와 그 일행들도 함께였다.
알리샤의 가족들은 이미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지 느긋하게 음료수를 한잔하면서 체력을 충전했다.
“싸움만 안 나면 다행이죠.”
“작년은 어땠어요?”
“작년이면…. 아! 전반기 12월 초에 있었던 경기에서 보카 주니어스가 패배했거든요? 그때 리버 플레이트 팬 한 명이 야밤에 와서 보카 주니어스 거리에 페인트로 ‘bichos(버러지들)’이라고 써놨다가 갱단에 걸려서 죽도로 맞고 병원에 실려 갔었죠.”
“아이고….”
“그러니까 경기 끝나면 따로 행동하지 말고 곧바로 서포터즈 버스로 이동해서 가야 합니다. 아셨죠?”
구단에서는 서포터즈를 위한 버스도 별도로 운행했다.
특히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경호원까지 고용해 서포터즈들의 안전을 책임졌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보카 주니어스 서포터즈석 외곽에서 바로 건너편에 있는 리버 플레이트 팬과 시비가 붙어 소란스러워졌다.
중간에 경찰들이 있어서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경기 전부터 으르렁거리는 건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전광판에 선수 소개가 시작됐다.
– “등번호 1번! 골키퍼 클라우디오 알마다!”
– 우우우우우우우!
– “등번호 22번 수비수! 파우스토 바르코!”
– 우우우우우우우!
원정팀인 보카 주니어스 선수들이 소개될 때마다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그리고 가장 큰 야유가 쏟아진 곳은.
– “등번호 30번, 오른쪽 윙포워드! 지우 유!”
–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유지우의 소개 때였다.
현 보카 주니어스의 어린 왕자로 불리며 매 경기 기록을 세우고 있는 유지우는 리버 플레이트 팬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경기 전에 기를 죽이고자 목이 쉴 정도로 야유를 퍼부었다.
선수들은 통로에 서서 경기에 들어갈 준비를 했고 들려오는 야유에 리카르도 메사가 슬쩍 유지우에게 물었다.
“엄청난 야유다. 그렇지?”
“그래도 재미있을 거 같지 않아요?”
“뭐가?”
“야유를 퍼붓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것만큼 짜릿한 건 없잖아요.”
“그런 정신이다. 거친 이곳에서 살아남기 딱 알맞은 멘탈을 가졌어.”
대답을 들은 리카르도 메사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유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길 자신은?”
“있죠.”
망설임 없는 대답에 리카르도 메사가 웃음을 지었고 슬쩍 옆을 봤다.
“오, 저것들 째려보는 거 봐라. 오늘 너, 고생 좀 하겠다? 크크크크크큭.”
옆에서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유지우는 그냥 무시했다.
그렇게 주심이 앞장서자 뒤이어 양 팀 선수들이 나란히 필드 안으로 입장했다.
통로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차원이 다른 열기.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
세계에서 가장 거칠고 뜨거운 더비 매치.
이기면 영웅, 지면 역적이 되는 전장에 들어서자.
– 와아아아아아아아!
지진이 난 것처럼 모든 게 울렸다.
[남미를 넘어 세계 최고의 더비 매치! 엘 수페르클라시코의 막이 올랐습니다! 시작 전부터 대단한 열기를 내뿜는 양 클럽의 서포터즈들!] [4강에서 이겨 코파 수다메리카나 결승에 올라갈 클럽은 어디일까요!]코파 수다메리카나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의 하위 격인 대회라 이겨도 그만, 져도 상관이 없는 대회였다.
하지만 그 상대가 숙명의 라이벌이라면?
이건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겨야 했다.
“보카에게 지지 마!”
“다른 팀한테는 다 져도 돼! 하지만 쟤네들만큼은 안 돼!”
“리그의 진정한 주인이 리버라는 걸 보여줘!”
포지션으로 가 가볍게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주변 상황을 살피자 리버 플레이트 서포터즈들이 내뿜는 열기가 피부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퍼–엉!
관중석 곳곳에서 터지는 홍염.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홍염은 자주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홍염은 기본 옵션이었다.
홍염의 붉은 불꽃은 점점 커지며 엘 모누멘탈이 마치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 보카! 보카! 보카!
– 리버! 리버! 리버!
양 클럽의 응원 소리와 함께.
삐—–익!
[코파 수다메리카나 4강이 시작됩니다! 시즌 첫 엘 수페르클라시코에서 승리를 가져갈 클럽은 과연 어디일까요!]엄청난 관심 속에서 시즌 첫 엘 수페르클라시코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