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44)
필드의 외계인-44화(44/404)
제44화
29-30 시즌 첫 엘 수페르클라시코의 결과는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보도됐다.
안정된 수비.
화려한 공격.
많은 게 화제가 된 경기에서 제일 화려한 조명을 받은 건 유지우였다.
1골 1어시스트.
리버 플레이트 팬이 던진 바나나를 먹고 어시스트 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제일 놀란 건 마지막에 보여준 돌파였다.
‘일곱 개의 허수아비’
이런 제목으로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은 하루 만에 5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얘… 뭐냐? 아니 진짜 신이라도 들린 거야?] [마지막에 보여준 돌파는 아무도 못 막을걸? 이거 영상 퍼지면 축구 팬들 난리 날 듯.] [약이라도 먹은 거 아니야? 풀타임 활동량도 미쳤고 마지막 스피드는 대체 뭐냐? 아무도 못 따라오고 원맨쇼로 끝났네.] [우리 할아버지가 전성기 디에고 마라도나를 보는 것 같다고 하셨어. 그리고 내 생각에는 약간 리오넬 메시 느낌도 나는 거 같고.] [너희도 그 생각 했구나? 아시아 꼬맹이한테 전설들의 향기가 날 줄이야. 대체 보카는 무슨 짓을 했길래 저런 보물을 데리고 온 거야?] [로드리고가 데려온 선수 중에서도 유는 독보적이야. 하비에르의 어린 시절은 그냥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라고!]영상은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로 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훈련이 끝나고 파우스토 바르코와 개인 훈련을 하려는데 세바스티안 란첼라 감독이 불렀다.
“회장님이 지금 너를 찾는다.”
“저를 왜요?”
“나도 모르겠다. 다만, 회장이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바로 답을 주지 마.”
세계적인 선수가 될 자격을 보여줬으니 여러 클럽에서 관심이 끊이지 않을 거고 회장이라면 비싼 값에 팔아먹을 기회로 여길 거라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경고했다.
“알겠습니다.”
회장실 안에서는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회장실 안으로 들어온 유지우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 좋은 미소로 인사했다.
“유를 이렇게 보니 굉장히 반갑군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명함에 적힌 건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총괄이사라는 직함이었다.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회장의 말을 듣고 유지우는 축구협회 직원을 쳐다봤다.
“…저를 왜 찾아오신 거죠?”
“돌려서 말하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라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공식적으로 유에게 귀화를 제안합니다.”
제안한 것은 귀화였다.
“아르헨티나 거주 3년 만 하시면 시민권을 딸 수 있으니, 귀화하는데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당황스럽네요.”
“그럴 겁니다.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중한 사과 후에 이어서 말했다.
“협회에서 유에게 제안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차량과 기사 제공.”
“두 번째, 집 제공.”
“마지막 세 번째, 세금 감면입니다.”
아르헨티나의 귀화 제안은 정말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내건 조건도 다 너무 좋았다.
“왜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거죠? 제가 전에 한 인터뷰를 보시지 않으셨나요?”
유지우의 표정을 본 총괄이사라는 사람은 활짝 웃었다.
“봤죠.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고 싶으시다고요.”
“그걸 보시고도 이런 제안을 한 이유가 뭐죠?”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위해서죠.”
“…….”
“아르헨티나 유망주들의 수준은 팬들에게 황금 세대라고 불릴 만큼 상당히 높습니다. 그 황금 세대에 유가 들어와서 성장한다면 아르헨티나는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이렇게 제안하는 겁니다.”
적어도 3년 안에 시작될 아르헨티나의 황금 세대.
축구협회는 많은 회의를 거쳐 토론했고 지난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에 확신을 가지며 황금 세대에 유지우를 넣고 싶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대답은 나중에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시고 언제든 편하실 때 답을 주십시오.”
그렇게 미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에이전트 차명훈에게 해당 내용을 말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차명훈은 화를 냈다.
“그 자식들이 저를 거치지 않고 곧장 지우 선수를 봤다는 게 열 받네요. 그런 건 저한테 사전에 얘기해서 약속을 잡아야 하는 문제라고요.”
차명훈이 화난 것은 절차의 문제 때문이었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선수라도 관계자를 거치지 않고 다이렉트로 만나는 건 순서가 아니었다.
먼저 에이전트를 통해 약속을 잡고 그 뒤에 이야기하는 게 순서였는데 회장이나 축구협회나 그걸 싹 무시한 거였다.
“당황했습니다.”
“그럴 만하시죠! 제가 구단 쪽에 강경하게 말해 놓겠습니다. 이건 지우 선수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집에 거의 가까워졌고 차명훈이 물었다.
“귀화에 대해서는 예전과 생각이 변함없으신 거죠?”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아르헨티나 협회 측에는 제가 지우 선수의 뜻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걸 제가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만지다니 어떻게요?”
“지우 선수가 지핀 불을 더 크게 키울 수 있게요.”
“아…!”
불을 더 키우겠다는 말에 처음에는 뭔가 싶었지만, 곧 유지우는 무슨 말인지 눈치챘다.
“눈치가 빨라지셨네요.”
“그 부분은 저보다 에이전트님이 더 잘하시니까 믿고 맡기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 차명훈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그리고 며칠 뒤, 대한민국 언론에 기사 하나가 올라갔다.
【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유지우에게 귀화 제의! 】
이 기사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 * *
12월 4일.
코파 수다메리카나 준결승 2차전.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 라봄보네라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빈 좌석을 찾아볼 수 없었고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거대한 플래카드를 제작해 메인 서포터즈석 앞에 걸어놨다.
< 인종차별을 한 닭들은 사과해라 >
지난 코파 수다메리카나 준결승 1차전에서 유지우를 향한 원색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였다.
“산티아고! 인종차별 클럽에서 뛰면 좋냐? 행복해?”
“너희도 바나나 좀 먹을래? 빌어먹을 새끼들아!”
“우리 애를 건드려! 길거리 돌아다닐 때, 뒤통수 조심해라.”
가까이만 오면 리버 플레이트 선수들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신경을 건드렸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전반전이 끝나고 시작된 후반전.
[보카 주니어스 2 – 0 리버 플레이트]승기는 보카 주니어스에게 넘어왔고 리버 플레이트는 어떻게든 격차를 좁히고자 필사적으로 필드를 누볐다.
그들은 간절했다.
또 패배할 순 없었다.
그러나 기회가 와도 페르난도 벨몬트의 슈팅은 골대를 벗어나며 좀처럼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전반전에만 2실점을 한 리버 플레이트! 교체 카드로 분위기 전환을 노려보지만, 보카의 성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공격을 막아낸 보카 주니어스는 빠른 전개를 가져갔다.
골키퍼가 짧은 패스로 내준 걸 훌리안 마르티네즈가 받아선 한 곳을 바라봤다.
뻐—엉!
오른쪽 측면.
유지우가 있는 곳이었다.
[다시금 오른쪽 측면 깊숙한 곳에서 볼을 잡는 유! 깔끔하고 아름다운 터치! 저 선수는 유리잔을 던져도 발로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왕성한 활동량과 끊임없이 공격을 주도하는 유지우는 집중 견제 대상이었다.
“더 붙어! 아예 돌아서지도 못하게 잡아!”
리버 플레이트는 강도 높은 압박으로 유지우를 몰아세웠지만, 미세한 틈을 찾아내 미꾸라지처럼 피해 다니는 유지우 때문에 오히려 역습당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빌어먹을.”
지난 결과를 뒤집으려고 공격적인 전술을 가동했지만 통하지 않자, 리버 플레이트 감독 리오넬 베나티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저 자식은 뒤에도 눈이 달렸나?”
투-웅!
뒤에서 붙는 티아고 모랄레스의 머리 위를 넘기는 감각적인 칩샷.
툭.
이어지는 산티아고 메디나의 백업에는 가볍게 다리 사이로 볼을 보내며 단 두 번의 터치로 두 명의 선수를 제쳐냈다.
[오른쪽 측면을 연 유우우우우우! 그러곤 빠르게 이어지는 얼리 크로스으으으으!]뻐–엉!
스르르르르륵.
회전이 걸린 볼은 부메랑처럼 휘며 골대 앞에서 점프를 뛴 리카르도 메사의 머리를 지나갔다.
리카르도 메사 주변에 있던 리버 플레이트 수비진은 당황했고 볼이 가는 쪽을 봤는데.
‘아.’
체념하고 말았다.
쇄도한 앙헬 몰리야의 앞으로 정확하게 향하는 볼.
앙헬 몰리야는 볼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발리슛으로 리버 플레이트의 골망을 흔들었다.
[들어갔습니다아아아아아! 앙헬 몰리야의 환상적인 발리슛! 리버 플레이트가 절망에 빠집니다!] [이번 시즌 보카 주니어스의 공격력은 정말 엄청납니다! 지난 시즌! 전반기에 넣었던 골보다 16개의 골을 더 만들어내며! 리버 플레이트를 침몰시킵니다!]골이 들어가는 것을 본 리오넬 베나티 감독은 벤치에 털썩 앉았다.
이미 기세를 빼앗겨 남은 시간에 3점이라는 차이를 뒤집기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이 상황을 만든 선수에게 향했다.
‘플레이 스타일이 여러 가지야.’
어떨 때는 클래식 윙어처럼 직선적인 움직임을.
어떨 때는 인버티드 윙어처럼 파괴적인 돌파 후에 기회 창출을.
결국에 이 모든 플레이가 도달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측면 플레이 메이커 롤…. 세바스티안 란첼라 감독이 저 아시아 꼬맹이의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는군.’
유스 무대에서 한 차례 증명된 지금은 축구계에서 사라진 롤.
축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통해 증명한 ‘측면 플레이 메이커’.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뛰는 선수가 있다면 감독은 별다른 전술을 구사할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 선수가 즉, 전술이니까.
삐—-익!
[보카 주니어스에서 지우 유를 교체해 줍니다!] [저번 1차전과 마찬가지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유! 라이벌 리버를 상대로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습니다! 오오오오! 저것 좀 보십시오! 관중들이 일어나 차세대 에이스를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고 있습니다!]68분에 교체되는 유지우를 향해 모두의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네가 최고야!”
“평생 보카랑 함께하자!”
“구단 녀석들은 뭐 해! 어서 저 녀석이랑 종신 계약을 체결해! 내 돈이라도 털어서 연봉에 보태줄게!”
그와 동시에 노랫소리가 서서히 스타디움 전체로 퍼졌다.
그건 보카 주니어스 팬들이 지난 경기, 인종차별을 당한 유지우를 위해 준비한 거였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는 두려움을.두 걸음을 내디딜 때는 환호를.
세 걸음을 내디딜 때는 승리를!
길을 비켜라, 그리고 무릎을 꿇어라.
새로운 왕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찬양하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우리의 새로운 왕 유에게 경배를!]
보카의 어린 왕자에서 새로운 왕으로.
새롭게 탄생한 유지우의 응원가는 한동안 끊이지 않고 라봄보네라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