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5)
필드의 외계인-5화(5/404)
제5화
“아뚜님울 져에께 주시시오(아드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소파에 앉아 있는 유한우와 주방에서 과일을 준비하던 서설희는 깜짝 놀랐다.
‘응?’
윤무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고 로드리고는 자신이 예상했던 반응과 다르자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제가 무슨 실례라도…?”
에스파냐어로 조심스레 물었다.
유한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당신이 한 말은 보통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에게 결혼을 허락받을 때 하는 말입니다…. 하하하.”
놀란 로드리고는 고개를 휙 돌려 윤무태를 째려봤다.
움찔.
윤무태는 그 시선에 놀란 것도 잠시, 웃음이 멎지 않아 필사적으로 허벅지를 꼬집었다.
로드리고의 얼굴이 붉어지며 부들거리자 유한우는 웃는 걸 멈추고 진지한 눈빛을 한 채 로드리고에게 말했다.
“로드리고 씨.”
“네!”
“제 아들은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많은 게 다릅니다.”
“…….”
“감독 폭행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감독이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상습적으로 선수 부모들에게 돈을 받고 돈을 주지 않는 부모에게 성추행할 만큼 나쁜 짓만 저질렀죠.”
이 사실은 처음 들었는지 로드리고의 눈이 커졌다.
“저희는 힘이 없었습니다. 재판까지 갔지만, 결국에 제 아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고로만 처리되면서 징계를 받았죠.”
로드리고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래서 아들이 더는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해합니다.”
“제가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방금까지 윤무태를 죽일 듯이 노려보던 로드리고는 두 눈이 커지며 유한우를 바라봤다.
“예! 유가 상처받을 일 없도록 제가 세세하게 살필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로드리고는 그동안 접촉해온, 잇속만 챙기려는 스카우터들이 아닌 진심으로 축구를 사랑하고 클럽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자 유한우는 마음이 살짝 놓였다.
적어도 이 사람은 자기 아들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 정확한 가능성을 판단해 줬으니까.
.
.
.
로드리고 일행이 돌아간 뒤에 가족회의가 열렸다.
“만나 보니까 믿을 만한 사람들이긴 하더라. 너의 미래를 말하는 부분에서 거짓도 없는 것 같고 진심으로 너를 인정하고 영입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아.”
직종 상 많은 사람을 만나는 유한우는 여러 질문을 하며 로드리고라는 사람을 떠봤다.
그 결과, 로드리고는 자신의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거짓도 없이 진심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가겠다는 마음에 변함은 없어?”
유한우의 물음에 유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타국 생활은 녹록지 않을 거야.”
“각오했습니다.”
“이곳에서 겪은 것보다 더한 일들도 수두룩하게 일어날 거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겠어?”
유한우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해외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타국 생활의 힘듦을 잘 알았다. 그런데 잠깐 있는 것도 아닌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묻는 거였다.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버티고 초심을 굽히지 않을 것인지.
“1년 전에도 포기를 강요받았어요.”
유지우가 하는 말을 가족들은 경청했다.
“구중태 감독이 현직에 있는 한 축구협회는 어떤 명목으로든 계속해서 제 길을 막으려고 하겠죠.”
고작 16세 어린아이라 관심이 없겠지만, 구중태 감독의 집요함이라면 축구협회의 인맥을 동원해 진출을 막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야 했다.
“전 아르헨티나로 가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유지우의 진지한 눈을 본 유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마. 그리고 만 18세가 되지 않은 유소년은 가족들과 동행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니까 나도 같이 갈 거다.”
“아버지가요?”
유민하는 깜짝 놀란 눈으로 바라봤고 서설희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내가 갈까?”
벌떡.
“무슨 소리야! 치안도 위험한 나라잖아! 위험하니까 내가 가야지!”
그런 유한우를 본 서설희는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쳐다봤다.
“하아.”
“왜, 왜 한숨이야?”
“지우는 걱정이 없는데 당신이 걱정이라서 그렇지.”
“내가 어때서!”
“새로운 음식만 보면 눈 돌아가는 양반이 지우 케어를 잘 해줄까, 하는 걱정? 그렇지, 민하야?”
“차라리 엄마나 내가 가는 게 백배는 나을 듯.”
“어머, 민하야! 차라리 우리가 갈까? 타국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럴까요? 사실 남미에 가보고 싶긴 했어요.”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고 언제나처럼 가족의 식탁엔 웃음꽃이 피어났다.
* * *
보카 주니어스 구단 회의실.
단장 엔리케 보토가 상석에 앉아 팔짱을 끼고 있었고 다른 수뇌부들은 대형 화면에 나오는 7분짜리 영상에 집중했다.
“호오.”
짧은 영상이라 처음에는 왜 보여주는지 의아했지만, 보면 볼수록 나오는 건 감탄뿐이었다.
“7분 만에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건 대단한 재능이죠.”
“0 – 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해트트릭으로 경기를 뒤집는 선수라면 멘탈이 단단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잘 다듬는다면 1군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고 판단됩니다.”
수뇌부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고 영상이 꺼지자 어두운 방 안에 불이 켜지며 밝아졌다.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세바스티안 감독.”
엔리케 보토는 7분 내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화면을 보던 한 사람에게 물었다.
“나쁘지 않네요.”
그는 보카 주니어스의 감독 세바스티안 란첼라였다.
“그렇죠?”
“기본기가 탄탄합니다. 볼을 다루는 능력은 2군에서도 손꼽히겠어요.”
중요시 본 건 기본기였다.
7분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볼 터치는 10번도 안 됐다.
거기다 강하고 이상한 패스를 단 한 번도 발아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잡아 놓는 컨트롤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체구가 작은 게 조금 걸리긴 해도 나이를 보면 성장 가능성도 있고 투자해서 키워볼 만하다고 봅니다.”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3부 리그 감독 시절부터 유소년 부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구단의 미래는 곧 유소년이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런 신념이 엔리케 보토와 일치하며 그를 현 보카 주니어스 감독으로 만들었다.
“다행이군요.”
“데려오면 클래스는 어느 곳에 넣을 겁니까?”
“추천하고 싶은 곳이라도 있나요?”
“음, 기본적인 건 또래보다 월등하니 U-17보단 U-20에 넣는 게 좋다고 봅니다.”
U-20이라는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아무리 그래도 열다섯의 선수를 20은 좀….”
“고작 7분으로 판단하기에는 섣부릅니다. 우선 17에 넣고 괜찮으면 그다음 20으로 올리면 되지 않을까요?”
“갑자기 수준 높은 곳에 넣으면 적응에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리케 보토는 생각이 달랐다.
“그것도 못 버티면 프로 세상에서 어떻게 버티려고?”
클래스를 나누는 것은 수준에 맞는 유망주들끼리 성장하기 위함이지만, 엔리케 보토가 내린 결정은 아예 그 상식을 뒤집었다.
탁.
탁.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생각에 잠기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쳤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그렇게 책상에 올려진 유지우의 프로필을 보며 생각하기를 1분.
결정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저 아이를 어떤 선수로 키우려는 겁니까? 1군의 전력? 아니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뒷말을 이었다.
“마케팅용 선수?”
“후자라면 반대할 건가요?”
“아니요. 그러면 더 의문이 생깁니다. 마케팅용인 선수라면 인지도 있는 선수를 데리고 와야지 신인 선수를 키워서 한다는 건 이상하죠.”
마케팅용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필요했다.
유지우는 생판 신인이라 인지도가 0인데 마케팅용으로 데리고 온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현재가 아닌 미래에 생길 불확실한 수익에 투자하는 건 멍청한 짓이니까.
“유는 우리에게 수많은 아시아 머니를 벌어다 줄 황금알이 될 겁니다.”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감.”
그 말을 듣고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엔리케 보토는 수뇌부들에게 최종 결정을 전했다.
“데리고 올 거니까 실무진들은 다음 주까지 계약서 하나 만들어서 로드리고에게 보내주세요.”
* * *
며칠 후, 로드리고와 다시 만났다.
유한우의 레스토랑 룸에서 유지우와 그의 부모는 로드리고, 윤무태와 마주 앉았다.
스윽.
“계약서입니다.”
로드리고가 계약서를 꺼내자 윤무태는 유지우와 그의 부모에게 계약서에 적힌 내용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우선 맺는 계약은 유소년 계약입니다. 보카 주니어스에 입단하면 제일 처음 유지우 선수가 속할 곳은 U-20 클래스입니다.”
“U-20이요? 지우 나이는 열여섯인데요? 해외 나이로는 더 어린 열다섯인데 U-20이라니.”
15세면 U-17에 속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구단에서 그만큼 유지우 선수의 가치를 높게 보고 있는 거죠.”
“제 아들을 힘들게 하는 거라면 이 계약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전혀 힘들게 하는 게 아닙니다! 프로로 데뷔하려면 U-12부터 시작해 여러 클래스를 거쳐야 하지만 유지우 선수는 그 구간을 건너뛰고 마지막 클래스에 배정하라는 게 구단의 지침입니다.”
요약하자면 프로로 가는 최단 코스로 계약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설명을 들은 유한우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계약 기간은 5년입니다.”
그다음으로 제일 중요한 연봉이 적힌 부분을 보여줬다.
주급으로 50,000페소가 적혀 있었다.
“한화로 계산하면 58만 원입니다. 유지우 선수는 보카 주니어스에 입단한 달부터 한 달에 한화로 232만 원가량의 금액을 받을 겁니다.”
가자마자 웬만한 직장인 월급 수준의 금액을 준다는 것에 부부는 적잖이 놀랐다.
“프로가 아닌 유망주에게 큰 금액 아닌가요?”
“다른 선수들보다 약간은 높게 책정했습니다. 이런 금액을 제시하는 거는 그만큼 축구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구단의 배려죠.”
남미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클럽.
엔리케 보토가 부임하고 나서 유소년 시스템을 개선하며 많은 것을 바꿨다.
무엇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유소년들이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2군으로 올라갈 시, 자동으로 이 금액의 다섯 배가 오르며 프로 계약으로 전환될 겁니다.”
“…….”
“1군으로 올라가면 계약서를 다시 쓰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적어도 수십 배는 오를 겁니다.”
긍정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 뒤로도 설명을 들었고 마지막까지 설명한 윤무태는 유지우를 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유지우 선수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습니다.”
“제안이요?”
“에이전트입니다.”
스포츠 선수라면 스포츠 외적인 부분을 처리해주는 에이전트들이 있었다.
“앞으로 프로 선수를 목표로 한다면 에이전트가 있는 것이 좋을 겁니다.”
이 부분은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전트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네, 그러면 계약서 작성은 며칠 뒤에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이건 초안이라 세부적인 부분을 다듬고 진행해야 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좋게 끝나자 로드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한우와 악수를 했고 유지우를 보며 활짝 웃었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보카 주니어스에 어서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