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53)
필드의 외계인-53화(53/404)
제53화
리그 33라운드.
보카 주니어스 vs CA 타예레스.
보카 주니어스가 타예레스보다 전력이 우위라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후보 선수들을 내보내며 몇 가지 실험을 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
1월 3일부로 1군 엔트리에 포함된 디에고 로시와 기예르모 다린이 출전했다.
“너희들이 보카에 어울리는 선수라는 걸 보여주고 와라.”
담담한 세바스티안 란첼라의 말에 두 선수는 비장한 표정으로 필드 안으로 들어왔다.
[보카의 신입생들이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들어옵니다.]몇 차례 교체 출전으로 경험한 게 있어서 분위기에 주눅이 들지 않고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살폈다.
휙.
거친 몸싸움은 절묘하게 피하며 계속해서 공간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들어오고 불과 3분 만에 기회가 왔다.
뻐—엉!
왼쪽 뒷공간을 노린 마르코스 무스의 정확한 롱패스.
탁.
디에고 로시는 안정적인 터치로 앞에 정확하게 떨어트린 후, 타이밍을 보곤 크로스를 올렸다.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디에고 로시의 크로스으으으으! 기예르모 다린이 쇄도하며 다리를 뻗어보지만! 아쉽게 닿지 못했습니다!] [1월에 1군으로 올라온 두 신인 선수! 후반전에 나오자마자 좋은 움직임을 보여 주는군요!]두 선수는 꾸준히 타예레스의 골문을 노렸고 타예레스의 영혼을 바친 수비 때문에 0 – 0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됐다.
[유는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오늘 경기에 출전할까요?] [자세한 건 모르지만, 위험한 상황이면 나올 거라고 예상합니다. 보카 주니어스는 조기 우승을 목표하고 있으니까요.]유지우는 교체 명단에 올라 후반부터 워밍업 존에서 몸을 풀며 경기를 지켜봤다.
‘잘하네.’
디에고 로시와 기예르모 다린의 실력은 U-20에 있을 때부터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았다.
두 선수가 기회를 만들어낼 거라는 걸 믿고 있었으니까.
66분.
타예레스의 균형이 살짝 어긋난 시간.
“디에고!”
왼쪽 측면으로 가 있던 디에고 로시의 발아래로 볼이 갔다.
툭.
첫 번째로 바디 페인팅으로 바짝 붙어 압박하는 선수의 다리 사이를 벌린 뒤.
두 번째는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는 넛맥을 선보이며 뒷공간으로 볼을 보냈다.
그러곤 열린 뒷공간으로 치타처럼 달려 나갔다.
타다다다닷-!
빠른 주력과 왼발에 볼이 달라붙은 것 같은 절묘한 컨트롤.
디에고 로시의 드리블 실력은 유지우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디에고 로시이이이이! 유가 보카 주니어스에 오기 전! 그보다 먼저 주목을 받았던 유망주가 바로 이 선수! 디에고 로시입니다!]유지우가 프로 데뷔하고 믿기지 않는 활약을 보여준 것 때문에 잠시 잊힌 또 다른 천재.
‘왼발의 마술사.’
오로지 왼발로만 집중하는 플레이가 약점으로 꼽혔지만, 디에고 로시의 왼발은 상상 이상의 정교함을 가졌다.
뻐—엉!
그 정교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크로스였다.
스르르르륵.
볼은 휘면서 쇄도하는 기예르모 다린의 눈앞까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배달됐다.
‘이 자식의 크로스는… 진짜 예술이라니까.’
툭.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점프를 뛰어 가볍게 돌려놓는 헤더.
기예르모 다린의 머리에 맞은 볼은 골키퍼조차 반응하지 못하는 구석으로 들어갔다.
철렁.
보카의 신입생들의 합작품으로 인해 라봄보네라엔 화산이 폭발하듯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디에고 로시와 기예르모 다린! 보카의 신입생들이 일을 저지릅니다!] [1월 초부터 조금씩 기회를 받더니, 드디어 결과를 내주는 두 선수! 유를 이어서 보카의 미래를 이끌어줄 선수들이 라봄보네라에 모인 팬들에게 화려한 인사를 올립니다!]타다다다닷!
[어? 골을 만든 두 선수가 동시에 어디론가 달려갑니다!]두 선수가 달려간 곳은 보카 주니어스 선수들이 몸을 푸는 워밍업 존이었다.
“유우우우우우우우우!”
디에고 로시는 펄쩍 점프를 뛰어 유지우에게 달려가 안겼고 기예르모 다린도 무뚝뚝하게 오더니, 슬쩍 가세했다.
“이것들아, 무거우니까 나와!”
“내가 1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고!”
“난 골이다.”
두 선수가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다른 선수들도 달려와 졸지에 유지우가 제일 밑에 깔리며 샌드위치 세리머니가 되어버렸다.
“뭐가 됐든! 쫌! 난 경기도 안 나가는데 왜 나를 축하해 주는데!”
고통받는 건 언제나 유지우였다.
* * *
나보다 한 살 많은 디에고 로시와 기예르모 다린.
이 두 선수까지 1군에 합류해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열광했고 타 팀 팬들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 보카는 유소년을 어떻게 키우길래 저런 애들이 한 세대에 같이 나오냐?] [리버 플레이트가 돈 많이 주면서 보카 유망주들 데려가지 않았나? 근데 쟤들은 왜 못 데려갔어?] [지금 보카에서 리버로 간 녀석 중에 제대로 하는 애들 없어. 리버에서 그냥 보카 전력 낮추려고 더러운 술수 쓰는 거야.] [왼쪽에 디에고 로시, 중앙에 기예르모 다린, 오른쪽에 지우 유…. 뭐냐, 이거? 2년에서 3년 뒤에 리카르도 메사가 은퇴하고 나면 얘네가 공격 3대장 다 먹겠는데?]그 시각 유지우는 보카 주니어스 훈련장에서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
훈련장 내부에 마련된 트레이닝장에서 웨이트를 마치자 알베르토 수석코치님이 드링크를 건네줬다.
“감사합니다.”
그러곤 오늘 웨이트한 내용을 요약해서 읽어줬다.
“전체적인 수치는 많이 올라왔네. 특히 근육량이 많이 늘었어.”
“몸싸움 견디려면 이것보다 더 늘려야겠어요.”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너의 장점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올바르게 가야 해.”
알베르토 코치님은 트레이닝에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내가 단시간에 몸싸움을 잘 견디는 것도 다 알베르토 코치님 지도 덕분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이틀 뒤에 출국이지?”
“네.”
“가서 무리하지 마.”
“네.”
감독님이 아버지라면 수석코치님은 어머니 포지션이었다.
트레이닝을 마친 뒤에 야외 훈련장으로 나왔다.
오후 훈련을 준비하러 크로스백이 놓인 곳으로 가는데 내 크로스백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웅성웅성.
뭐 하는 거지?
“다 내 짐에서 뭐 해요?”
가까이 가자 뭐 하는지 보였다.
크로스백에는 보카 주니어스 엠블럼은 물론이고 선수들이 매직으로 쓴 응원 문구가 있었다.
“짜잔!”
“어때? 잘 썼지?”
“마르코스는 악필이네요.”
“너도 만만치 않거든! 세미노!”
< 네 돌파를 막을 녀석은 없어! 내가 보증한다! – 에르네스토 게레라 >
< 엉덩이에 힘 빡 주고! 다녀와라! 아, 오는 길에 초코빵도 늙어서 그런가? 요새 단 게 당기네 – 리카르도 메사 >
< 보카의 에이스가 어떤 놈인지 제대로 보여줘 – 앙헬 몰리야 >
< 모두를 놀라게 하고 와 – 하비에르 카세로 >
그 외에도 선수들이 써준 문구가 크로스백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뭘 이런 걸 해요.”
“여긴 다 아르헨티나고 제일 멀리 가는 놈이 너잖아.”
“하비에르가 하자고 했어! 너 외로울까 봐!”
보카 주니어스에서 국가대표에 뽑힌 선수는.
앙헬 몰리야.
하비에르 카세로.
훌리안 마르티네즈.
에르네스토 게레라.
파우스토 바르코.
전부 아르헨티나였고 나만 대한민국이었다.
“그러게, 귀화했으면 같이 손잡고 가잖아.”
“앙헬은 아직도 그 소리예요?”
“아쉬워서 그러지, 아쉬워서! 너희들도 다 그렇잖아.”
“유랑 같이 뛰면 진짜 즐겁긴 할 텐데 아쉽다.”
“혼자 멀리 떨어져서 외롭다고 울지 말아라.”
“리카르도가 우는 거 아니에요?”
“그럴 가능성이 더 크지.”
“…이것들이! 이제는 다 같이 놀리는 거에 맛 들였냐!”
이 사람들이 쓸데없는 곳에서 감동을 주고 난리야.
* * *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밝았다.
아버지도 잠시 가게 문을 닫고 가기로 했고 집 앞에는 알리샤 아주머니 가족들이 와서 배웅해줬다.
와락.
“잘 다녀오고.”
아주머니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맛있는 냄새의 엠파나다를 챙겨주셨다.
“이거 가져가서 비행기 타기 전에 먹어.”
“감사합니다.”
“다치지 말고! 몸 건강히 돌아와.”
“배웅해 주셔서 감사해요.”
배웅받으며 아버지 차를 타고 미니스트로 피스타리니 국제공항으로 갔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탑승장으로 가려는데 아버지 휴대폰이 울렸다.
“어? 이분이 왜?”
아버지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곤 심각하게 통화를 했다.
3분의 통화가 끝나고 아버지는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지우야.”
“누군데요?”
“로드리고 씨다.”
“로드리고 씨가 왜 아버지에게 전화했어요?”
뭔가 믿기지 않는 것을 본 사람처럼 아버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했다.
“민준이네 어머니가 진술했다고 한다.”
“진짜요?”
그때 거짓 진술로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간 사람이 어째서 진실을 밝힌 거지?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는 황급히 휴대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한국 스포츠 메인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 하나를 보여줬다.
【 감독 폭행의 진실이 드러나다! 】
[ 2030년 2월 3일 오후 5시경, 감독 폭행의 당사자인 안 모 씨(43)가 진실을 밝혔다.안 씨가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 감독이 아들의 일로 상담할 것이 있다며 2027년 3월 16일 오후 20시에 해당 학교 축구부 감독실로 나를 불렀다. 그러곤 도착한 나에게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며 더러운 손을 뻗었다. 반항하던 나를 발견한 유지우 선수가 구 감독을 막아줬고 그 틈에 나는 황급히 현장에서 도망쳤다. 후에 나는 진실을 밝히려고 했지만, 구 감독과 협회 직원들이 아들의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말에 속아 유지우 선수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유지우 선수에게 사죄할 길이 있다면 꼭 사죄하고 싶다.”
해당 진술이 나오고 구 감독은 처음에는 아니라고 했지만, 당시 입막음하기 위해 뇌물 수수를 한 정황들이 속속들이 밝혀지자 결국 모든 사실을 시인해 2027년 3월에 일어났던 감독 폭행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이후 안 씨는 경찰에 자진 출석해 수사받고 있고 위증죄와 명예훼손죄로 기소될 것으로 알려졌다. 구 감독은 축구부 감독직을 사임, 해당 선수도 축구부를 퇴부한 것으로 알려져….]
댓글도 많이 달렸다.
– 와….
– 지우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 ㅠㅠㅠㅠㅠ 저 때 욕이란 욕은 다 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 징계까지 받아서 포기도 강요받았음.
– 친구 어머니를 위해서 자기보다 몸집도 큰 감독한테 달려드는 용기 ㄷㄷ 미쳤다 진심.
–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인성이면 인성…. 이보다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 조금이라도 의심했던 제가 죄송합니다.
– 저도 그때 욕 달았던 1인인데… 제 손을 저주합니다.
여론은 내가 한국을 떠날 때와 비교해 완전히 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이냐. 그때는 죽어도 거짓말만 하던 사람이?”
“저야 모르죠.”
“일단 한국으로 가자. 나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다.”
한국을 떠난 지 1년하고도 4개월이 지난 시간.
떠날 때는 미래도 없던 축구 유망주였던 내가.
돌아갈 때는 국가대표가 되어 한국 땅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