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54)
필드의 외계인-54화(54/404)
제54화
인천 국제공항.
“와, 뭔데 기자가 저렇게 많아? 연예인이라도 오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취재 구역에 기자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웅성거렸다.
“탑승 수속 하려면 시간 조금 남았는데 누구인지 구경이나 하고 갈래?”
“그러자.”
혹시 연예인이라도 오는 걸까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게이트 문이 열리며 경호팀의 보호를 받는 유지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한두 명씩 유지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
“저 사람 그 사람이잖아.”
“나 TV에서 봤어.”
“오늘이 유지우가 입국하는 날이었어?”
프로 데뷔 1년 차지만, 유지우의 인지도는 높았다.
매일같이 감독 폭행 관련해서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고 암흑기인 대한민국 축구 희망의 아이콘이기 때문이었다.
파파파파팟.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다.
떠날 때는 기자가 딱 한 명이더니, 지금은 셀 수 없이 기자들이 많았다.
“유지우 선수!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짧게 몇 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쪽을 봐주세요! 유지우 선수! 유지우 선수!”
기자들이 몰려드는 그때, 차명훈이 나서서 제지했다.
“인터뷰는 시민분들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약속된 장소에서 진행하겠습니다.”
경호팀의 안내를 받으며 약속된 인터뷰 장소에 가자 기자들은 수많은 마이크를 들이대며 질문을 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되셨는데! 어떤 각오로 임하실 건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릴 적부터 꿈꾸던 국가대표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기쁩니다.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겠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질문이 나왔다.
예정된 일정도 있고 사람들이 계속 몰리는 탓에 오랫동안 인터뷰를 할 수 없어 차명훈이 질문을 추렸고 마지막 질문이 나왔다.
“감독 폭행 사건이 있던 당시, 거짓 진술을 했던 고 선수의 어머니가 며칠 전, 모든 진실을 토로하며 진실이 밝혀졌는데요. 그에 관련해서 한 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숨겨진 진실이 밝혀진 지금, 기자들은 유지우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예민한 질문이라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차명훈의 귓속말이 있었지만, 유지우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해줬다.
“이제라도 진실이 밝혀져서 기쁩니다. 가족들이 그때 이후로 많이 고생했거든요. 주변에서 보는 시선도 안 좋아지고…. 그래서 지금은 그저 가족들과 끌어안고 웃고 싶습니다.”
“당사자가 사과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사과를 받아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아뇨.”
0.1초도 안 돼서 나온 대답에.
“…….”
기자들은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유지우는 이어서 대답했다.
“그 사람들이랑은 두 번 다시 얼굴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서로 모르는 척하고 살았으면 좋겠네요.”
굳이 이제 와서 용서?
유지우의 마음속에는 애초에 그딴 걸 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얼굴을 봐봤자 좋은 감정도 없고 이제는 그냥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아드으으으으으으을!”
공항을 나가자마자 어머니 서설희와 누나 유민하가 마중 나와 있었고 서설희는 달려와서 유지우를 꼭 안아줬다.
“못 본 새에 키가 더 커졌네?”
떠날 때의 키는 172cm였는데 지금은 179cm까지 급성장했다.
“성장기잖아요.”
“다음에 볼 때는 못 알아보겠는데?”
“제가 영통 자주 할게요.”
인터뷰가 끝났는데도 기자들이 끝까지 쫓아왔다.
차명훈이 경호팀을 대동해 기자들의 접근을 차단했고 유한우와 유지우는 차에 탔다.
“갈 때는 관심도 없더니 이제 와서 왜 저런다니?”
“지우가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달라졌으니까 당연하지.”
“하긴 우리 아들이 좀 잘났어? 대한민국 축구 선수 중에 제일 잘났지.”
경호팀과 기자를 제지하던 차명훈은 차로 다가와 가족들에게 인사했다.
“유지우 선수! 오늘은 가족분들과 편하게 시간을 보내세요. 제가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정리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게 제 일인 걸요. 하하하하하!”
“명훈 씨, 내일 저녁에 레스토랑에서 식사 괜찮죠?”
“전 아버님 요리를 맛볼 수 있다면 언제든 괜찮습니다!”
긴 시간 비행으로 피곤한 유한우 대신에 유민하가 운전대를 잡았다.
“…근데 누나, 운전 잘해?”
“내가 이래 보여도 은자동 베스트 드라이버야!”
그날 집에 가는 내내 유한우랑 유지우는 뒷좌석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바들바들 떨었다.
* * *
오랜만에 온 집은 1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어머니와 누나가 준비한 저녁을 배불리 먹고 시차 적응도 할 겸 푹 쉬다가 다음 날, 아르헨티나로 가기 전까지 뛰었던 풋볼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왔냐?”
“오랜만이네요. 감독님.”
“난 하도 네 기사만 나오니까 어제도 본 기분이다.”
“그렇게 많이 나와요?”
“TV만 틀면 나오더라.”
“지겹긴 하겠네요. 아, 그리고 이거요. 아르헨티나에서 가져온 기념품.”
종이 가방을 하나 건네줬다.
“이게 뭐냐?”
“알파호르요. 아르헨티나의 초코 과자인데 애들 가져다주세요.”
“고맙다.”
“뭘요.”
이채운 감독님과 나란히 아카데미 안으로 걸으며 외부 훈련장으로 가자 훈련을 받는 선수들이 보였다.
확장 공사로 훈련장이 넓어지고 연령대로 나누어서 훈련받는 걸 보자 전보다 규모가 커졌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회원이 늘어났네요?”
“들어올 때, 플래카드 못 봤어?”
“…아, 봤어요.”
< 충북 풋불 아카데미가 낳은 보카 주니어스의 유지우! 국가대표에 합류! >
그것도 제일 높은 곳에 걸어놨더라.
“덕분에 회원 수가 확 늘어나서 아카데미 재정도 튼튼해졌고 설비부터 시작해 시스템도 더 체계적으로 바꾸고 있다.”
아카데미 설비가 더 좋아지고 있다니까 내심 뿌듯했다.
“어!”
“유지우 선수다!”
“대박!”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나를 알아보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안녕하세요!”
“실례가 아니라면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도 유지우 선수 같은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아르헨티나 유학은 어때요?”
유망주들이 헐레벌떡 다가왔고 자녀들을 보러 온 학부모들도 사인을 요청했다.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해주고 나서 감독님과 센터 안으로 들어가 차를 한 잔 마셨다.
“철호가 K2 리그에서 뛰고 있는 거 알지?”
“진짜요?”
“연락 안 해? 너희, 아카데미 내에서 친했잖아.”
“아르헨티나로 가서는 바빠서 연락 못 했죠. 가끔 문자 주고받는 거 말고는요.”
“그래? 뭐, 어쨌든 철호도 너만큼은 아니지만, 재능은 있으니까, 그걸 알아본 클럽이 데리고 갔지.”
“수비력은 아카데미에 있을 때도 좋았으니까요.”
내가 있던 세대에서는 프로로 진출한 게 나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철호도 프로 무대로 나갔구나.
“국가대표 캠프는 내일모레 합류야?”
“네. 국내에서 뛰는 선수들은 이틀 전에 먼저 모였는데 해외에서 합류하는 선수들은 내일모레까지 합류하라고 연락이 왔어요.”
“열일곱에 국가대표라. 성공했네.”
“아직 멀었죠.”
“네가 이렇게 성공해서 올 줄 누가 알았겠냐? 그 일의 진실도 이렇게 밝혀지고….”
절대 안 밝혀질 것만 같던 일이 밝혀지니, 감독님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슬슬 갈 시간이네요.”
“훈련하러?”
“아뇨. 에이전트랑 미팅이요.”
스윽.
감독님은 주먹을 내밀었다.
“국가대표에 가서 두 경기 전부 해트트릭하고 와.”
웃으며 주먹을 맞댔다.
“그게 쉬운 줄 아세요?”
“너한테는 쉬울 거 같은데?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해트트릭 밥 먹듯이 하잖아. 크크크큭.”
오랜만에 온 충북 풋볼 아카데미.
내가 처음 왔을 때랑 같이 이곳은 여전히 따뜻한 공기를 품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로 가기 전에 또 올게요.”
“오냐.”
* * *
“그렇군요. 역시 당신이 해 주셨습니까?”
늦은 밤.
유한우는 문을 닫은 레스토랑 안에서 로드리고와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미리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도 설득이 될 거라는 확신이 없었거든요.”
“어떻게 설득한 겁니까? 쉽지 않으셨을 텐데.”
고민준 가족을 설득한 게 로드리고였다.
유한우는 그 일이 벌어질 당시, 어떻게든 설득하려다가 강경한 태도 때문에 실패했는데 어떻게 설득한 건지 궁금했다.
로드리고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대답했다.
“아르헨티나 유학을 제안했거든요.”
“…그게 정말입니까?”
거래 내용은 유지우와 같은 아르헨티나 유학이었다.
“예. 그래서 애는 축구부 퇴부를 하고 아르헨티나 유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꽉.
결국에 썩은 동아줄을 버리고 또 다른 유혹에 넘어간 거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어차피 그런 실력으로는 아르헨티나 유스 리그에서도 살아남기 힘듭니다.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국내에 들어오면 축구 선수라는 꿈은 포기하게 되겠죠.”
유학은 국내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확률이 낮았다.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더 많은 유학길을 선택하는 건 혹시 모를 성공이라는 달콤한 꿈 때문이었다.
“선수 선발 부분에서 철학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이 일로 그걸 어긴 셈이 되는데….”
로드리고의 선수 보는 눈은 냉정했다.
구단에서도 누구도 못 건드리는 영역인데 이런 거래로 혹시라도 커리어가 더럽혀졌을까 봐 걱정스러웠다.
씩.
그러나 로드리고의 입꼬리는 올라갔다.
“괜찮습니다. 저랑 잘 아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아르헨티나 3부 리그 클럽의 스카우터로 있거든요. 그 친구 클럽에서 테스트를 보기로 했습니다.”
“아. 그러면 그 아이는.”
“죽어라 하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합격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로드리고가 손을 더럽힐 일은 없었다.
자신이 추천해서 보카 주니어스 테스트를 보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볍게 3부 리그 클럽의 테스트를 볼 기회만 제공해준 거니까.
“로드리고 씨.”
“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약속드렸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약속이요?”
“감독 폭행으로 유가 고통받을 때 약속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유를 지키겠다고…. 그 약속을 지킨 것뿐입니다. 허허허허.”
스테이크를 먹으며 와인을 한 병 정도 해치워갈 때, 로드리고는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유는 보카에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아버님도 아시다시피 유의 재능은 세계 레벨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재능이잖아요.”
로드리고는 유지우를 처음 만났을 때, 보카 주니어스의 레전드로 남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러면 안 되는데.’
‘보카의 미래만 생각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점차 성장하는 유지우의 플레이만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르헨티나 리그를 폭격하는 열일곱의 천재.
‘경험을 쌓고 쌓아 훗날 세계 무대의 중심에서 뛰는 유지우의 플레이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순전히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욕심이었다.
“진흙 속에서 홀로 반짝이던 보석이 어디까지 반짝일지 기대되지 않습니까?”
1년 10개월 전.
우연히 만났던 보석.
그 보석이 마침내 본연의 빛을 찾아 더 넓은 곳을 비추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