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55)
필드의 외계인-55화(55/404)
제55화
차명훈의 차를 타고 도착한 파주에 있는 국가대표 캠프.
조수석에서 내려 고개를 들자 제일 높은 곳에서 흔들리는 태극기가 보였다.
“드디어 국가대표네요.”
“좀 빠르죠?”
“전혀요. 지우 선수가 리그에서 보여준 것만 놓고 보면 적당한 시기라고 봅니다.”
“감사해요. 저 때문에 고생도 많이 하시고.”
나를 케어하려고 대한민국을 떠나 가족과 떨어져 아르헨티나에서 생활하는 것이 늘 미안했다.
“지우 선수는 항상 그런 소리만 하시네요. 그러면 저도 항상 똑같은 말밖에 못 하는 거 아시면서.”
“…고마워서 그래요.”
차명훈과 같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A매치 기간 동안 지낼 숙소로 안내해줬다.
“이 방에 짐을 푸시면 됩니다.”
“룸메이트는 없나요?”
“감독님께서 처음 소집된 선수들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잘할 수 있도록 모두 1인실로 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국가대표 숙소는 2인 1실을 쓰는 게 일반적이라고 들었는데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누구랑 같이 쓰는 것보다는 혼자 쓰는 게 편하니까.
“짐을 푸시고 10분 뒤에 로비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감독님 면담이 있으셔서 감독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직원이 가고 방을 둘러봤다.
1인실이라 2인실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혼자 쓰기에는 적당했다.
TV.
냉장고.
컴퓨터.
없는 것 빼곤 다 있었다.
한쪽에 캐리어를 내려두고서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감독실로 갔다.
똑똑.
노크하고 들어간 감독실 안은 정리 정돈이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완벽주의자라는 성향답게 물건들이 각까지 완벽했다.
그리고 비품실 문이 열리며 서류를 가지고 나오던 주앙 달루트 감독님이 웃으며 맞이해줬다.
“어서 와라. 난 주앙 달루트다.”
내민 손을 잡았다.
“지우 유입니다.”
악수를 나눈 뒤에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시차 적응은 다 됐고?”
“네.”
감독님도 에스파냐어를 사용할 줄 알아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출전은 2월 14일 레바논전 교체 출전을 시키려는데, 어때?”
“상관없습니다.”
“좋아. 레바논전은 교체 출전, 그다음에 콜롬비아전은 선발 출전이다.”
“네.”
“대답이 시원시원해서 좋군.”
감독님은 그 뒤에 내게 여러 가지를 알려줬다.
현 국가대표의 방침이나 전술 구조 등 다양한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개인 라커함을 열더니, 그 안에 포장된 유니폼을 꺼내줬다.
“받아라.”
내 유니폼.
등번호는 10번이었다.
“10번이네요.”
“난 7번보다 10번을 좋아하거든.”
“저도요.”
현재 인기가 제일 많은 7번보다는 10번이 더 애정이 갔다.
나에게 에이스 넘버는 영원히 10번이니까.
“하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다. 그러면 슬슬 선수들을 만나러 가볼까?”
* * *
“새로운 얼굴이 국가대표에 합류했으니, 선배인 너희들이 지도 편달을 잘해주길 바란다.”
많은 선수 가운데 현재 대표팀을 이끄는 두 맏형, 김기하랑 최민연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탈리아 세리에A 피오렌티나에서 뛰는 김기하.
잉글랜드 챔피언십 버밍엄 FC에서 뛰는 최민연.
소속팀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는 못했으나 박찬우가 은퇴하고 암흑기인 대표팀을 힘겹게 지탱하는 두 기둥이었다.
“반갑다!”
감독님의 말이 끝나고 제일 먼저 다가온 사람은 주장인 김기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딱딱하게 무슨 선배님~. 선배님보다는 형님이라고 불러.”
평소에 많은 선행을 하고 지독한 반칙을 당해도 허허 웃어넘기는 모습에 사람들 사이에서 ‘착한 바보 형’으로 통했다. 그래서 그런지 인상이 정말 좋았다.
“네, 알겠습니다.”
“본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나랑 같이 몸이나 풀까?”
“네.”
“대표팀 생활에서 궁금한 건 없고?”
“아직은 없습니다. 따로 궁금한 게 생기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경계심이 생겨나는 탓에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살갑지 않았다.
다만 그 후에.
툭.
가볍게 패스를 주고받으면서.
“하비에르는 어때?”
“좋은 사람입니다.”
“앙헬의 패스를 받으면 어떤 기분이야? 진짜 볼이 자석처럼 와?”
“착 달라붙긴 합니다.”
“와…. 아르헨티나에서 축구를 배워서 그런지 너 몸 진짜 탄탄하구나.”
여러 말을 하며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지우?”
그리고 최민연 선배도 합류했다.
“최민연 선배님.”
“기하가 괴롭히지는 않고?”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폐를 끼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너 열일곱 맞지?”
“한국 나이로는 열여덟입니다.”
“군대라도 다녀왔나? 말투가 꼭 군대 갔다 온 사람처럼 각이 잡혀 있네.”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몸을 풀었고 포지션별로 훈련을 시작했다.
압박 상황에서 볼을 빠르게 처리하는 훈련을 한 뒤에 본격적인 전술 훈련을 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술은 4-4-2였다.
다소 옛날 전술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공격 자원이 주목받는 현대 축구에선 서서히 사라지는 포메이션 중의 하나였다.
“윙의 수비 가담은 필수적이다!”
삐익!
“중앙에서 볼을 빼앗기지 마!”
삐익!
“백패스보다는 전진 패스! 뒤로 볼을 돌린다는 건 그만큼 상대가 우리 골대에 가까워지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주앙 달루트는 양 윙어와 중앙 미드필더 두 명이 고정된 4-4-2가 아닌 변형된 4-4-2를 추구했다.
어떨 때는 공격형 미드필더를.
어떨 때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상대 전술에 맞게 변화를 주는 걸 선호했고, 그렇게 변형된 전술 속에서도 일정한 균형이라는 게 존재했다.
그건 수비 가담이었다.
특히 수비 가담을 비롯해 공격 상황에서는 라인을 끝까지 올려 공격수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윙어들이 가지는 부담이 컸다.
“내가 너를 왜 불렀는지 알겠지?”
잠시 쉬는 시간에 수분 보충을 하는 나에게 주앙 달루트 감독님이 다가왔다.
“윙어들이 바쁘겠네요.”
씩.
“역시 전술 이해도가 좋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너라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다. 보카 주니어스에서 하는 플레이랑 크게 다른 점은 없으니까.”
“네.”
“그리고 반대 사이드에서 뛰는 미스터 강에게도 많이 알려주고.”
내가 오른쪽 윙어를 맡았다면 왼쪽 윙어는 강예수였다.
나랑 마찬가지로 이번에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그는 스페인 라리가 그라나다 소속의 미드필더였다.
22세.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미래 중 한 명으로 촉망받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 뒤에 하루 훈련이 끝나자 김기하 선배가 선수들을 소집했다.
“집중!”
나는 맨 뒤에서 가만히 들었다.
“새로운 얼굴들도 있고 새로운 대표팀이 전원이 모인 건 오늘이 처음이라 많이 어색할 거다.”
중심을 잡아주는 주장답게 차분하게 선수들을 다독였다.
“그렇다고 가슴에 달린 태극기의 무게가 달라지진 않는다. 어색한 것도 오늘까지만! 그리고 내일부터는 익숙해져라.”
– “네!”
“가슴에 국기를 달았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 “네!”
“이만 해산! 식당 가서 밥이나 먹자!”
– “수고하셨습니다!”
“식당으로 가자!”
“민연이 형, 저도 지우랑 얘기 좀 나누면 안 돼요?”
“맞아요! 형들만 차지하고 있는 건 반칙이죠!”
“지우야! 저런 꼰대들보단 우리랑 놀자!”
“꼰대? 진짜 꼰대가 뭔지 보여줄까 이놈들아!!!”
암흑기인 대표팀이라고 들어서 선수단 분위기가 다소 좋지 않을 거 같았지만, 선수단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점은.
“메뉴는 각자 취향에 맞게 고르면 돼.”
“캠프의 꽃이라고 불리는 곳이지.”
“내가 여기만 오면 식욕이 돈다니까?”
한식부터 일식, 중식, 양식 등 선수들의 취향에 맞게 조리된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
우물우물.
맛도 훌륭했다.
대표팀이라 그런지 식단을 많이 신경 써주는구나.
* * *
대한민국 vs 레바논의 경기가 열릴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유지우가 선발로 나올까?”
그 이유는 유지우였다.
유지우가 아르헨티나에서 활약하는 영상이 너튜브에 퍼지며 그 플레이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제 달루트 감독이 말한 거 까먹었냐? 선발이 아니라 교체라고 했잖아.”
“아, 맞다.”
“오늘 교체면 다음 콜롬비아전에는 선발로 나오겠지.”
관중들이 몰려드는 시각.
선수들의 워밍업 시간이 됐다.
“오오오오오오!”
사람들의 환호성이 향하는 곳.
거기선 유지우가 김기하랑 호흡을 맞추며 몸을 풀고 있었다.
“이야, 인기 많은데?”
“저 보려고 온 사람들은 아닐걸요?”
“다 너 보려고 온 사람들이야. 평소에는 이 숫자 절반 정도밖에 안 돼.”
축구에 암흑기가 도래하며 인기가 서서히 떨어져 평균 관중 수도 나날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유지우라는 떠오르는 스타가 합류하며 관중들이 평소보다 많아졌다.
“덕분에 선수들도 의욕이 붙었어.”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꼭 이기자.”
“물론이죠.”
잠시 후.
삐—익!
경기가 시작됐다.
10분.
경기 초반은 답답했다.
슈팅 숫자는 앞섰지만, 유효 슈팅으로 기록된 건 없었다.
[주앙 달루트 감독이 부임하면서 많은 게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공격력이 아쉽습니다.] [황우식을 뽑으며 골 결정력을 높인 시도가 통할까요?]대한민국 축구의 문제점은 전문가들이 크게 세 가지로 뽑았다.
첫 번째, 공격 빌드업의 부재.
두 번째, 확실한 골잡이의 부재.
마지막 세 번째, 중심을 잡아줄 에이스의 부재.
그래서 이대로 월드컵에 참가하면 참상을 겪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 상황에서 유지우는 경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가는 패스가 매끄럽지는 않네.’
스윽.
‘최전방에서는….’
그리고 황우식을 봤다.
열심히 오프사이드 라인을 휘저으며 침투 타이밍을 잡지만, 패스 타이밍이 늦었다.
[아아아아! 또 오프사이드에 걸립니다!] [침투 타이밍이랑 패스가 맞질 않아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오프사이드에 걸리는 겁니다. 패스를 조금 더 빠르게 주든가, 침투하는 타이밍을 늦춰야 합니다.]기회를 놓친 황우식은 아쉬워했고 패스를 찌른 김기하는 손을 들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30분 후.
계속 놓치던 상황에 기회가 찾아왔다.
[최남일이 왼쪽으로 길게! 쇄도하는 강예수!]주력이 좋은 선수라 빠르게 왼쪽 측면을 뚫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시도한 크로스.
[한 템포 빠르게 시도한 크로스으으으으으!]궤도가 살짝 낮아 상대 수비수의 머리에 맞고 궤적이 틀어졌다.
하지만 수비수가 제대로 걷어내지 못해 볼이 튄 곳은 문전 앞이었다.
그리고 그때.
볼이 오는 곳으로 한 선수가 쇄도했다.
190cm의 높은 제공권.
큰 키에도 빠른 순발력.
볼에서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는 집중력.
황우식이 완벽한 타깃형 스트라이커의 면모를 보여주며.
철렁.
레바논 골대 안으로 볼을 꽂아버렸다.
[황우식 선수의 선제고오오오오오올! 멋진 헤더로 레바논의 골망을 흔듭니다!] [4년이 지나 주앙 달루트 감독하에 다시 소집된 국가대표 경기에서 멋진 골로 복귀 인사를 하는 황우식! 올림피크 리옹의 스트라이커답습니다!]대한민국이 1 – 0으로 앞서갔다.
* * *
공방전이 오가며 더는 득점이 나오지 않았다.
60분.
그리고 대한민국 벤치에서 교체 사인이 나왔다.
삐—익!
[볼이 라인 밖으로 나가자 대한민국에서 교체 카드를 꺼냅니다!] [오오오오! 드디어 유지우 선수가 나올 준비를 합니다!]라인 위에 서서 주앙 달루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유지우가 중계 화면에 잡히자 스타디움 안은 환호성으로 가득해졌다.
– 오오오오오오오!
가슴에 있는 태극마크.
두근.
두근.
심장 소리가 점차 커졌다.
후우.
심호흡하며 애써 진정을 시켰고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권민창과 터치 후, 필드로 들어갔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대형 화면에 유지우가 들어오는 장면이 나오자 함성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