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6)
필드의 외계인-6화(6/404)
제6화
충북 청주 서쪽 외곽에 있는 충북 풋볼 클럽.
몇 개로 나뉜 필드에서 선수들은 나이대별로 나뉘어서 훈련했다.
꿈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선수들의 땀으로 잔디는 비 오듯 젖어갔고 U-17 담당인 이채운 감독은 벤치에 앉아 사복을 입은 유지우와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그렇게 됐구나.”
유지우가 보카 주니어스와 계약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이채운은 놀란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네. 그래서 이번 주까지만 다니고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뭐 하러 그래, 아르헨티나로 가려면 적어도 몇 개월은 걸리잖아.”
“그렇죠.”
“그때까지 훈련은 어떻게 하려고?”
“집 근처에서….”
아르헨티나로 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개인 훈련할 곳 없으면 여기 와서 훈련해.”
“그래도 돼요?”
“네가 여기 자주 오면 저놈들한테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겠어?”
이채운이 손을 들어 가리킨 곳에선 잠시 쉬는 선수들이 있었다.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
유럽 5대 리그는 아니지만, 축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남미의 명가.
프로 구단에 스카우트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기에 유지우는 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가요?”
“가뜩이나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아카데미에서 프로가 나오면 혹시 모를 희망을 품고 더 열심히 하지 않겠어?”
충북 풋볼 클럽은 유명한 클럽은 아니었다.
프로로 배출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는 무명 클럽이었다.
만약 유지우가 보카 주니어스로 가서 프로로 데뷔하면 첫 스타트를 끊는 셈이니 선수들 외에도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해야겠네요.”
“크크크큭, 거기서 뭘 더 열심히 하려고?”
“네?”
“매일 아침에 5km 뛰고 밥 먹고 훈련하고 점심 먹고 훈련하고 저녁 먹고 야간 훈련하고…. 내가 살다 살다 너처럼 독종인 놈은 처음 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요. 그렇게 안 했으면 이런 기회도 없었겠죠.”
경기력을 잃지 않기 위해 독종이 된 유지우의 모습은 주변에서 말릴 정도였다.
그렇게 하면 쓰러진다고.
하지만 유지우는 주변의 만류에도 훈련 패턴을 멈추지 않았다.
잔뜩 독기가 올라 경기력을 잃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이채운은 그 당시에 유지우가 바닥에 누워서 거친 숨을 토해내며 한 말이 아직도 뇌리 깊숙이 박혀 잊히지 않았다.
‘이대로 멈춰버리면 그동안 배운 모든 게 사라져버릴 거 같아서요.’
그 뒤로 이채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유지우의 곁에서 묵묵히 뒷받침을 해줬다. 이 아이가 사라져버리지 않게 하려고.
대화를 나누면서 훈련하는 것을 보던 유지우는 이채운에게 속에 담아뒀던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이 반대를 무릅쓰고 절 받아주셨는데… 1년도 안 돼서 나가게 됐네요.”
유지우가 믿는 몇 안 되는 어른 중 한 명이 이채운이었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받아주려고 하지 않을 때, 아카데미의 이사들과 의견 대립을 하면서까지 품어준 사람이었으니까.
“뭐가 죄송해? 오히려 기쁘지. 우리 클럽에서도 프로 선수가 나오면 회원들이 더 늘어날 거 아니냐?”
“아~ 홍보 수단으로 쓰겠다?”
“당연한 거 아니겠어? 국내 구단도 아니고 남미 명문 구단으로 스카우트된 선수! 홈페이지에 이렇게 내걸면 회원 수도 급증하겠지.”
“그렇겠네요.”
한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눴다.
1년 동안 유지우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옆에서 봐온 이채운이었기에 유지우를 누구보다 많이 아꼈다.
“지우야.”
“네, 감독님.”
이채운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넌 반드시 성공할 거다. 내가 장담하마.”
어딜 가서도 성공할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두 사람 사이에 깊게 자리했다.
“항상 감사해요.”
“그래도 네가 가버리면 조금 심심하긴 하겠다.”
“연락 자주 드릴게요.”
“퍽이나.”
“진짜예요.”
“연락할 시간에 볼이나 한 번 더 차. 그래야 남미 놈들 틈에서 살아남지.”
웃던 중에 유지우는 뭔가 하나가 떠올랐다.
“감독님께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혹시 에이전트 중에 아시는 분이 계시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을 듣자 이채운은 방긋 웃었다.
“안 그래도 너 보고 싶다고 연락해온 녀석이 있는데 만나 볼래?”
* * *
다음 날, 오후 공주 인근의 한 카페.
“절 싫어하시진 않겠죠?”
“괜찮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경계심이 많을 뿐이지 심성이 나쁜 애는 아니니까.”
이채운이 누군가와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카페 안으로 들어온 유지우를 보곤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여기다!”
두 사람을 발견한 유지우가 다가오자 이채운 옆에 있는 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명함을 꺼내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글로벌 에이전시의 차명훈입니다.”
나이는 35세.
일찍부터 이 바닥에서 10년은 구른 베테랑이었다.
“반갑습니다.”
처음에는 경계심이 먼저였다.
명함을 받고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저와 계약을 맺는 건 위에서 허락을 해줬나요?”
1년 전, 폭행 사건을 저질렀기에 거부감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입니다.”
“…….”
대답에서 느껴진 약간의 망설임.
유지우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자 차명훈은 황급히 대답했다.
“처음에는 반발이 심했지만, 설득했죠. 유지우 선수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거라고요.”
차명훈이 있는 글로벌 에이전시(Global Agency)는 한국 스포츠 선수들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영향력이 있는 선수들이 대거 계약한 곳이었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킨 선수와 계약하고 싶지 않다는 수뇌부들의 의견이 많았지만, 차명훈의 끈질긴 설득에.
‘만약 문제를 일으킨다면 네가 모든 책임을 져.’
라는 조건을 걸며 허락해줬다.
“만약 제가 유지우 선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계약 해지를 해도 된다는 조항을 넣으셔도 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조항이라도 신뢰를 위해서라면 스스럼없이 넣는 것이 차명훈의 일 처리였다.
“…….”
유지우가 말을 하지 않고 있자 차명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이전시와 선수 사이는 신뢰가 있어야만 하는 관계잖아요?”
사람 좋은 미소를 하며 말하는 차명훈에게 유지우는 섣부르게 다가가지 못했다.
‘어차피.’
이렇게 사람 좋게 다가오다가 나중에 불리해지면 언제든 버림받을 거라는 걸 알듯이.
“알겠습니다.”
하지만 내치진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믿는 몇 안 되는 어른 중 하나인 이채운이 소개해준 사람이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아직 사람을 믿는 게 어려워서요. 말씀하신 조항을 넣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계약은 유지우 가족의 입회하에 진행했다.
가족들은 글로벌 에이전시라는 이름을 신뢰했다.
글로벌 에이전시는 작은 기업도 아니고 아시아 스포츠 시장을 꽉 잡은 곳이니까 불합리한 조건을 내걸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좋은 조건의 계약입니다.”
중간에 유한우가 아는 법인의 변호사를 대동해 계약 내용을 검토한 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을 검토해 볼까요?”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은 후, 차명훈은 본격적으로 보카 주니어스와의 계약을 검토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으니 되도록 빼는 편이 좋겠군요.”
글로벌 에이전시는 모든 스포츠 분야에 발을 뻗은 대기업이라 그런지 그 수준이 남달랐다.
짧은 조항이라도 넘어가지 않고 선수에게 불리할 수 있는 조항이라면 그것을 충분히 설명하며 의견을 구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린 선수라고 자기들이 막무가내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이 부분은 설명해 드린 대로 진행하려고 하는데, 유지우 선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존중을 해줬다.
갑과 을의 관계.
차명훈은 그 선을 넘지 않고 유지우를 철저한 갑으로 대우해줬다.
모든 일을 에이전시에 맡긴 유지우는 보고를 받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됐기에 훈련에만 몰두했다.
뻐-엉!
아르헨티나로 가기 전에 조금 더 나은 플레이를 펼치고 싶은 욕심에 자기 자신을 더 엄격하게 관리했다.
“유지우 선수! 훈련 중이시군요!”
차명훈은 그 후에도 매일 유지우를 찾아왔다.
“이거 드실래요?”
밥을 사주거나.
“몸에 좋은 건데 유지우 선수 부모님께 여쭤봐서 맞췄습니다.”
보양식 같은 걸 각별히 챙겨줬지만, 상처받은 마음의 문이라는 건 쉽게 열리는 게 아니었다.
“유지우 선수~.”
“유 선수님!”
“지우 선수!”
“오늘은 이거요!”
“훈련 끝나셨어요? 제 차로 집까지 모시겠습니다!”
그럴수록 차명훈은 더 노력했다.
유지우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며칠 후.
보카 주니어스와 여러 이야기를 나눈 끝에 최종 계약서가 나왔다.
“저번에 계약서에 없던 조항을 하나 넣었습니다.”
“어떤 거죠?”
“여기 보시면 1군으로 올라갈 시, 선발 출장 보장을 받는 겁니다.”
차명훈은 어린 유망주들이 프로 세상에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걸 수두룩하게 봐온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이런 조항은 더욱 철저하게 요구했고 보카 주니어스 측에서도 처음에는 내키지 않지만, 내부회의를 거친 끝에 흔쾌히 수락했다.
“1군으로 올라갈 시 최소 15경기는 선발 보장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선발 보장 조항.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유망주 신세인 유지우가 넣기 까다로운 조항인데 이걸 조항에 넣었다는 것은 차명훈의 능력을 보여주는 거였다.
“…좋네요.”
“이대로 진행할까요?”
“네.”
차명훈이 계약서를 서류 가방에 넣자 유지우는 앞에 놓인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넌지시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씩.
“그런 말도 할 줄 아시는 분이셨군요.”
만난 지 2주 가까이 지나면서도 처음 듣는 말이라 차명훈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뭐, 뭐가요.”
“유지우 선수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잖아요. 웃어준 적도 없고요.”
“그거야….”
“알아요. 해운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른들 때문에 절벽까지 밀려 떨어지기 직전까지 내몰렸던 것도요.”
유지우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에서 스포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지 않을 사건이었다.
그만큼 선수가 감독을 폭행한 일은 대한민국 내에서 금기시되는 일이었으니까.
스윽.
차명훈은 손을 내밀었다.
“유지우 선수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실 때까지 서포트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가끔은 웃어주세요.”
내심 안타까웠다.
한창 웃으면서 클 나이인 16세.
웃음을 잃고 살아간다는 것이.
“…예. 노력해 보겠습니다.”
유지우는 악수한 뒤에 짧게 대답해주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리고 무뚝뚝함 속에 따뜻함을 본 차명훈은 피식 실소를 터트리더니 뒤를 따라갔다.
“같이 가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두 사람의 동행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