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63)
필드의 외계인-63화(63/404)
제63화
[ 원클럽맨(One-club man) ]커리어 내내 한 클럽에서만 뛰고 은퇴한 선수를 일컫는 말로, 돈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현시대에서는 사라진 단어였다.
< 돈이 모든 걸 지배하는 세상, 축구계의 로망은 사라졌다. >
이런 현실 속에서 무려 27년을 한 클럽에 바친 선수의 은퇴 소식은 기자들을 흥분케 하기에 충분했다.
“질문은 순서대로 받겠습니다.”
엔리케 보토는 관계자를 바라봤고 관계자는 미리 나눠준 순서를 따라 지목했다.
“리카르도의 은퇴는 언제부터 정해진 겁니까?”
“급작스럽게 진행된 것이 아닌 오래전부터 얘기를 나눠서 결정한 일입니다.”
“누가 먼저 얘기를 꺼낸 거죠? 구단이 먼저 제안한 겁니까?”
“아니요. 리카르도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구단 측에서는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리카르도의 의지가 워낙 강경해 따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질문이 나왔고 엔리케 보토는 다소 수위가 높은 질문에도 차분하게 답변했다.
“리카르도는 현재 뛰어난 득점력으로 리그 득점 5위에 이름을 올려놨습니다. 어째서 은퇴를 결심하게 된 거죠?”
기자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가 39세라는 건 은퇴를 감안할 나이긴 해도 현재 보여주는 폼만 보면 은퇴할 선수의 폼은 아니었다.
“그 부분은 시즌 종료 후, 리카르도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30분가량 진행된 기자회견.
기자들의 질문이 모두 끝나자 엔리케 보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구단의 결정을 말했다.
“리카르도는 은퇴 후, 코치로 고용될 예정입니다.”
매정하게, 은퇴한다고 끝나지 않고 미래까지 보장해줬다.
“이상입니다.”
기자회견이 끝나며 기자들은 각자 회사에 연락했다.
그렇게 잠시 후.
리카르도 메사의 은퇴 소식은 보카 주니어스를 넘어 아르헨티나 전역을 강타했다.
【 ‘아르헨티나 원조 골잡이’ 리카르도 메사, 29-30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하다. 】
* * *
저녁 9시.
식당을 마감하는 시간이었다.
직원들이 퇴근하고 비어 있는 레스토랑.
유한우는 한 사람과 마주 앉았다.
“어디서 오신 분이라고 하셨죠?”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레알 마드리드 남미 스카우트 담당 다니 솔레르입니다.”
명함을 건네준 사람은 레알 마드리드 스카우터였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아들에 관련된 일에는 일절 관련하지 않습니다. 이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실 거라면 에이전트와 대화를 나누는 게 맞는 거 같네요.”
유한우는 아들의 축구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계약에 관련해서는 어떤 것도 관여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단지 유에 관해 구단에서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가족분께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이렇게 말하지만 결국에는 가족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말이었다.
어떤 의도로 찾아왔는지 장사 밥만 20년 넘게 먹고 있는 유한우에게는 뻔히 보였다.
씩.
그래도 티를 내지 않았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듣는 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한번 들어보죠.”
유한우의 긍정적인 대답을 듣자 다니 솔레르의 입가에는 긴 호선이 그려졌다.
“먼저 저희 구단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나요?”
그러곤 서류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축구를 아는 사람 중에 레알 마드리드를 모르는 사람이 있나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골수팬인 유한우에게 달갑지 않은 자리였지만, 아들을 위해서 꾹 참고 이야기를 들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스페인 최고의 축구 클럽입니다. 시설도 최고 수준이고 생활하는 환경도 아주 좋은 곳으로….”
세계적인 명문 구단답게 레알 마드리드의 장점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아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제시했다.
“여기 자료를 보시면.”
가져온 서류에는 유지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여러 가지 가운데 스카우터가 제일 강조하는 건 하나였다.
“레알 마드리드 측에선 여러 상의 끝에 유가 마드리드로 온다면 제라르 레오와 듀오를 이뤄 새로운 공격 라인을 만들 예정입니다.”
현시점 세계 최고의 선수 제라르 레오(Gerard Leo).
레알 마드리드에서 수많은 우승을 경험하고 스페인 국가대표로 2026 월드컵 우승을 한 주역이자 발롱도르 4회 수상에 빛나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와 듀오라니.
가슴이 떨리는 건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었다.
“제라르 레오요? 제가 아는 그?”
“네.”
“흐음.”
스카우터는 여기서 쐐기를 박았다.
“저희는 제라르 레오 다음 세대의 스타로 유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뒤를 이을 새로운 세계 최고가 될 인재.
레알 마드리드가 유지우를 탐내는 이유였다.
* * *
“…어째서 그런 결정을 하신 거예요?”
본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내부 트레이닝장에서 몸을 풀다가 리카르도 메사와 둘이 남자 슬쩍 물어봤다.
“몸이 쑤셔서.”
“몸이 쑤시는 사람이 17골 10도움을 해요?”
“오, 내 기록도 찾아봤어?”
“아직 잘 뛰잖아요. 그런데 왜 은퇴하려고 해요?”
“내 나이 내년이면 40이다, 40. 이 정도면 할 만큼 했잖아. 쉬면서 가족들이랑 여행도 다니고 시간 좀 보내야지.”
한 클럽에서 27년을 뛰고 은퇴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그 얘기는 그만하고 네가 좋아하는 훈련 하러 가자!”
“제가 훈련 좋아한다고 누가 그래요?”
“응? 아니야?”
“안 좋아하거든요.”
내가 훈련을 좋아한다고? 그건 절대 아니다.
힘든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넌 안 좋아하는 걸 매일 늦게까지 하냐?”
“살아남으려면 해야죠.”
“응?”
“전 어디까지나 이방인 신분이잖아요. 그런 녀석이 못 해봐요.”
“…….”
“아마 죽어라 욕 퍼부을걸요?”
난 아르헨티나인이 아닌 외국인이었다.
골을 넣어주면 기뻐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몰랐다.
그래서 훈련하는 거였다.
매 경기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동안 그런 생각 하고 있었냐?”
“타국에서 축구 하는데 안 하는 게 이상하죠.”
척.
리카르도 메사는 어깨동무를 하며 활짝 웃었다.
“네가 보카에 와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갑자기요?”
“전부터 그랬는데?”
“거짓말.”
“진심이야.”
“그렇다고 믿을게요.”
“어쭈! 나 은퇴한다고 이제 무시하냐?”
리카르도 메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외부 훈련장으로 나갔다.
“아, 오늘 팬들 오는 건 알고 있지?”
“예.”
오늘은 공개 트레이닝 데이로 한 달에 한 번 팬들이 훈련장까지 들어와서 견학하는 이벤트였다.
“너 좀 시달리겠다?”
“저만요? 리카르도도 만만치 않게 시달릴걸요?”
“크크큭, 오늘 하루 우리 둘이 피곤하겠어.”
외부 훈련장 외곽에는 선수들의 훈련을 보기 위해 찾아온 팬들이 선수들을 향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어어어어! 나온다!”
“리카르도! 진짜 은퇴하는 거야?”
“당신이 은퇴라니!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
어린아이부터 노인.
팬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다.
그들은 리카르도 메사의 은퇴가 믿기지 않는지 연신 소리쳤고 리카르도 메사는 손을 흔들어줬다.
“저도 쉬어야죠!”
리카르도 메사의 시원한 말에 팬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관계자가 중간에 개입했다.
“선수들과의 만남은 훈련 뒤에 진행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관계자들이 찾아온 팬들을 통제했고 뒤이어 훈련이 시작됐다.
처음은 가벼운 몸풀기로 패스 훈련, 그다음은 슈팅 훈련.
그렇게 단계적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삐—익!
쉴 새 없이 울리는 휘슬.
“느리잖아! 반응할 때는 더 빠르게!”
훈련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세바스티안 란첼라의 고함.
“이 부분은 이렇게.”
“훌리안의 스텝이 반 박자 정도 느리네요.”
“수치가 얼마나 되죠?”
분석관들의 세부적인 관찰.
팬들은 그것을 지켜보면서 입을 떡 벌렸다.
“…보카가 1위 하는 이유가 있었네.”
“공개 트레이닝 때마다 왔었는데 작년이랑은 분위기가 완전 다르긴 하다.”
“이러니까 1위 하지.”
시즌 개막 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은 클럽다운 집중력을 보였다.
“리카르도도 열심히네.”
“그러게.”
“39세라는 게 안 믿겨.”
“신체 나이로는 20대 후반으로 나왔다고 하더라.”
“진짜?”
“리카르도 SNS에 올라왔던데?”
리카르도 메사는 나이가 많은 꼰대가 아니었다.
팀 내 최고 베테랑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했고 훈련할 때도 조금도 대충 하지 않은 솔선수범의 모습으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파우스토, 집중해. 밸런스 이동하는 게 늦잖아.”
“세미노! 굿! 좋아, 크로스 정확도 많이 올라갔다?”
“오오오오오! 굿 패스! 역시 디에고다워!”
젊은 선수들을 위해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저한테는 칭찬 안 해줘요?”
“저는요!”
하비에르와 앙헬이 찡얼거리며 다가가면.
“이것들이 언제 미치나 했는데 드디어 미쳤구나.”
보카 주니어스의 정신적 지주답게 분위기도 잘 이끌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 일정이 다 끝나자 선수단은 팬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리카르도! 은퇴하지 마세요. 네?”
리카르도 메사의 은퇴 기사가 나오고 이틀 뒤라 사람들은 리카르도 메사에게 많이 몰렸다.
“제가 없어야 보카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젊은 인재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양보해 줘야죠.”
“그, 그래도….”
“관절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는데 살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몇몇 팬들은 눈물마저 흘렸다.
그만큼 리카르도 메사는 보카 주니어스 팬들에게 자부심과도 같은 존재였다.
클럽이 힘들 때마다 군말 없이 클럽을 지켜준 선수.
‘보카는 제 애인입니다. 애인을 두고 어딜 떠나겠습니까?’
해외 클럽들의 제안에도 충성심 하나로 남은 선수.
클럽과 팬을 진심으로 사랑한 레전드의 은퇴는 팬들이 슬퍼하는 게 당연했다.
“유!”
그리고 리카르도 메사만큼이나 유지우에게도 이목이 쏠렸다.
[ 빅클럽 이적설 ]현재 보카 주니어스 팬들이 리카르도 메사의 은퇴와 더불어 가장 걱정하는 일이었다.
유지우는 몰려드는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해준 뒤에 들어가려는데 한 팬이 물었다.
“유! 정말 보카를 떠날 거예요?”
현재 유지우를 둘러싼 이적 문제가 중하위권 클럽들이 아닌 자금력이 뛰어난 유럽 빅클럽의 관심이라 불안한 거였다.
말을 한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도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
아마 언젠가 떠나게 될 거다.
하지만.
아직 이룬 게 아무것도 없는데 떠나고 싶지 않았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이 사람들에게 선물은 하나쯤 주고 가야 하지 않겠나.
“떠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이적보단 보카 주니어스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