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7)
필드의 외계인-7화(7/404)
제7화
“으으으으음~.”
2층에서 내려오자 아버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밥을 먹고 계셨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식탁에 앉으면서 묻자 옆에서 밥을 먹던 누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 따라서 아르헨티나 간다고 집 알아보고 계셔.”
“벌써?”
“그것도 궁궐 같은 집으로 알아보시더라. 사진 볼래?”
아직 아르헨티나로 가려면 서너 달 정도 더 있어야 했다. 그래서 집은 다음 달부터 알아볼 줄 알았는데 꽤 빠르네.
드르륵.
아버지는 밥을 다 먹은 뒤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회의가 있으니까 먼저 가본다! 민하는 천천히 오고! 우리 여보는 잘 갔다가 오고! 우리 아들은 훈련 잘 다녀오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별말 안 하시네요?”
“괜히 입만 아파.”
아버지는 요식업 부문에서 프로페셔널했다.
집에서는 서열이 제일 아래라 다소 위엄이 떨어졌지만, 요식업계에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스타 셰프 중 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서운하지는 않아? 엄마가 원래 지우 따라가려고 했잖아.”
“내가 가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
원래 처음에는 잔뜩 흥분한 아버지가 아닌 차분한 어머니가 같이 가려고 했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비교적 쉽게 취업 비자가 나오는 부분이 요식업 쪽이었다.
약사 쪽은 절차가 요식업보다 더 까다로웠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가 가는 걸로 결정이 나자 아버지는 그때부터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괜찮아요. 어머니는 여기서 누나 챙겨 주셔야죠.”
그 말에 누나는 포크로 방울토마토를 찍어 오물오물 씹었다.
“내가 너처럼 어린애인 줄 아냐? 내 친구들은 이미 독립한 애들 많아.”
“두 분 다 나 따라간다고 하면 울 거면서.”
“내, 내가?”
“아니야?”
“…아니거든!”
발끈하며 말하지만, 난 잘 알고 있다.
누나는 외로운 걸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마 어머니랑 아버지가 다 날 따라간다고 하면 펑펑 울 게 분명했다.
“지우야, 누나 그만 놀려~ 얼굴 터지겠다.”
“예…. 크크큭.”
“씨이! 그만 놀려!”
옆에서 씩씩거리는 누나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더 놀렸다간 울 것 같으니 그만해야지.
“아르헨티나는 대한민국보다 위험해서 어머니가 오시면 힘드실 수 있어요. 고생은 아버지랑 저만 하면 되니까 한국에 계세요.”
“우리 지우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키는 제가 누나보다 크긴 하죠.”
“그렇지?”
“으으으으! 나 출근할 거야!”
누나는 일어나서 2층으로 올라갔고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손길이 너무나도 따스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네.”
“하비에르 사인 좀.”
“…알겠어요.”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어머니도 절대 밀리지 않는 축구광이었다.
* * *
며칠 후, 아버지 레스토랑의 룸에서 로드리고와 만난 나는 아버지와 차명훈의 동석하에 최종적으로 합의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이것으로 다 됐습니다.”
로드리고는 유지우의 옆에 있는 차명훈을 슬쩍 봤다.
“예상보다 꽤 오래 걸렸군.”
계약이 오래 걸린 건 차명훈이 여러 조항에 딴지를 걸어서였다.
로드리고의 말을 들은 차명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계약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하니까요.”
차명훈은 에스파냐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했다.
그 외에도 영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5개국에 능통해 모든 소통은 차명훈이 담당했다.
“흠, 하긴 애초에 구단 놈들이 이상한 조항을 끼워 넣긴 했지.”
“그걸 알고서도 유지우 선수께 계약을 제안한 건가요?”
“…그, 그건! 나도 몰랐어! 알고서 나도 얼마나 놀랐는데!”
로드리고는 유지우라는 보석을 아르헨티나로 데려간다는 기쁨에 취해 계약서에 손을 대지 않았다.
구단에서 제안하는 유소년 계약의 내용은 세세한 부분까지 다 알고 있어서 별다른 변동 사항 없이 진행한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거기서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라몬 카세레스 회장이 계약서 조항 몇 개를 만지작거린 거였다.
그걸 알아차린 차명훈이 조항을 변경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구단의 수작질을 알게 된 로드리고는 구단에 전화해 폭탄을 투하했다.
‘이게 무슨 수작질이야!’
– ‘미안해, 로드리고…. 우리도 회장의 지시라 어쩔 수 없었어.’
‘회장한테 똑바로 전해! 선수로 장난질할 생각이면 죽여 버리겠다고!’
구단 측이 아닌 선수 측에 서서 항의하는 로드리고 덕분에 유지우 측에서 내건 제안이 빠르게 합의가 된 건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뭐 어찌 됐든! 서로가 만족할 조건으로 계약을 했으면 된 거지! 보카 주니어스에 온 걸 환영한다! 애송이!”
로드리고가 웃으며 손을 뻗자 유지우는 무표정으로 그 손을 잡았다.
“후회, 없을 겁니다.”
유지우가 한 말에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놀랐다.
“너… 언제 에스파냐어를?”
아직 문장을 표현하기는 힘들긴 해도 에스파냐어였기 때문이었다.
“공부. 하는 중. 열심히.”
보카 주니어스 유소년 가운데 에스파냐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은 에스파냐 언어권에서 살았던 아이들밖에 없었다.
그 외의 아이들은 언어를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리는데, 아르헨티나로 가기 전부터 언어를 공부했다는 이야기에 로드리고의 입은 귀에 걸릴 듯이 찢어졌다.
“하하하하! 마음에 들어! 한국 놈들은 어째서 이런 보석 같은 녀석을 버리려 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군!”
능숙하게 구사를 하지 못해 단어를 끊어서 말하긴 했지만, 정확하게 알아들은 로드리고는 더욱 활짝 웃었다.
* * *
최종 계약서에 사인한 뒤로 한국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충북 풋볼 클럽에서 개인 훈련.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에 한 시간씩 에스파냐어를 공부.
해운중에는 자퇴서를 내고 중등 검정고시와 고등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
.
.
6개월의 시간이 흘러 중등 검정고시와 고등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그 기간에 차명훈과 보카 주니어스의 도움으로 비자부터 시작해 아르헨티나행 준비를 마쳤고 유한우는 유지우가 출국하기 한 달 전에 먼저 출국해서 아르헨티나에서 지낼 준비를 끝냈다.
‘아들! 아르헨티나에서 보자!’
유한우가 아르헨티나로 떠나고 한 달 후.
유지우가 한국을 떠나는 날 아침이 밝아왔다.
* * *
10월 말.
한국을 떠나는 날.
인천 국제공항에는 어머니와 누나가 따라왔다.
“채운 삼촌한테는 인사드렸고?”
“네, 어제 찾아가서 인사드렸어요. 용돈도 주시던데요?”
“용돈도?”
“기념품 사 오래요. 재민이가 아르헨티나 초코파이 아바나인가? 그거 먹어보고 싶다고요.”
탑승 시간이 여유가 있어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출국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자 어머니의 말 수가 확 적어졌다.
누나도 옆에서 말은 안 했지만, 걱정하는 티가 역력했다.
“갈까요?”
출국 수속 준비를 마친 차명훈이 오자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로 가는 내내 어머니는 걱정이 많았다.
“어머님, 제가 유지우 선수 곁에서 보살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명훈 씨만 믿을게요.”
“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차명훈은 어머니를 진정시켜 줬다.
어느덧 게이트 앞에 도착했고 들어가기 전,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다녀올게요.”
“아빠한테 도착 시간 알려 줬으니까 마중 나와 있을 거야. 혹시라도 아빠가 말썽부리면 바로 엄마한테 전화하고! 바로 갈 거니까.”
“…보통 반대 아니에요?”
와락.
“힘들면 바로 말해. 예전처럼 속에 담아두지 말고.”
어머니의 따뜻한 말과.
“엄마 아빠한테 못 말할 거 같으면 나한테라도 말해. 해결은 못 해줘도 들어주는 건 하니까.”
누나의 말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이거.”
누나는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줬다.
그 안에는 아르헨티나 페소가 한가득 있었다.
“가서 너 필요한 데 써. 아빠한테 절대 주지 말고.”
피식.
“고마워, 누나. 나중에 내가 레스토랑 차려줄게.”
“아빠보다 큰 레스토랑으로!”
“알았어.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레스토랑 만들어줄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때 카메라 한 대와 마이크를 든 기자가 말을 걸었다.
“유지우 선수 되십니까?”
“…그런데요?”
기자를 보자마자 거부감이 들었다.
기자가 더 다가오자 차명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서 곧바로 제지했다.
“사전에 얘기가 된 인터뷰가 아니니 거절하겠습니다. 돌아가 주시죠.”
“몇 가지 질문만 드리겠습니다.”
“글쎄, 저희는 사전에 들은 게 없으니 돌아가 달라는 겁니다. 계속 이렇게 나오시면 해당 언론사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습니다.”
차명훈이 단호하게 기자를 막아도 기자가 물러서지 않자 난 한숨을 쉬며 차명훈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습니다.”
“굳이 상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속 피할 순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다만, 저들이 무례하게 나온다면 제가 임의로 끊겠습니다.”
“예. 그때는 부탁드릴게요.”
내 말을 들은 차명훈은 기자를 노려보다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제가 들어가 봐야 해서요. 빨리 끝내주시죠.”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말투.
프로 선수도 아니고 학교 학생도 아닌 내게 이렇게 찾아온 거라면 답은 하나였다.
축구협회 부협회장 차성인.
현 성천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구중태.
이 두 사람 중 한 명이 꾸민 일이 분명했다.
기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질문을 했다.
“아르헨티나 행을 계획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오래 전부터요.”
“한국에서 자리를 못 잡으니 아르헨티나로 떠나는 겁니까?”
도발적인 질문에.
“하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을까, 이 빌어먹을 놈들은.’
기자가 온 걸 보고 어느 정도 공격적인 질문이 올 거라는 걸 눈치챘다.
그런데.
진짜.
전혀 색다르지 않고 예상한 그대로였다.
“저기요.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좀 전해 주시겠어요?”
“예?”
웃음기를 싹 빼고 정색하며 기자를 쳐다봤다.
“두고 보십시오.”
“예?”
“당신들이 찍어 누르려던 제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
기자가 아닌 카메라를 노려보며 마저 말했다.
“그 뻣뻣한 목을 꺾어 드리겠습니다.”
기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휙.
뒤돌아서 게이트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기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래라면 내가 주눅 든 사진을 찍어서 자극적인 기사를 쓰려고 했겠지.
“저, 저기요!”
“자!”
다시 질문하려는 기자의 앞을 차명훈이 손을 뻗으며 막았다.
“질문은 여기까지 하죠? 어차피 기사는 댁들이 내키는 대로 쓸 거 아닙니까?”
“…예?”
“부협회장이랑 구중태 감독이 보낸 사람인 걸 모를 줄 알고요?”
기자는 자신의 정체를 단숨에 파악한 차명훈을 살짝 놀란 눈으로 봤다.
“아예 국민들까지 등을 돌리게 기사를 쓸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세요. 우리 선수님 귀찮게 하지 마시고.”
가뜩이나 경호원처럼 덩치가 큰 사람이 찍어 누르듯이 말하자 기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앞으로 저런 기자들이 많을 겁니다.”
“각오했어요.”
“좋은 표정이네요.”
욕을 먹는 건 나에게 밥을 먹는 것처럼 익숙한 일이었다.
익숙하긴 해도 조금 아프긴 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지금의 내가 아무리 발악해도 진실을 믿어줄 사람은 우리 가족들과 친한 몇몇을 제외하곤 그 어디에도 없는데….
꽉.
우선 가져야 했다.
더러운 술수에도 흔들리지 않을 기반을.
“갈까요?”
“예.”
그렇게 난 한국 땅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