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70)
필드의 외계인-70화(70/404)
제70화
필드에서 누웠던 몸을 일으켜 나가려고 하자 누군가가 다가왔다.
“꼬마.”
유니폼을 내미는 선수는 마테우스 올리베이라였다.
“다음에는 안 진다.”
유지우는 유니폼을 벗어 내밀었다.
“다음에도 저희가 이길 거예요.”
“쉽지 않을걸? 우리 꼬마도 열이 잔뜩 받아서 말이야.”
마테우스 올리베이라가 가리킨 곳, 그곳에는 아르투르 코스타가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쟤는 눈 저렇게 뜨면 안 아프대요?”
“지면 종종 저래.”
“다음 경기도 저희가 이길 거라고 전해주세요.”
“기대하고 있을게.”
“예.”
유니폼 교환을 하고 가려는데 디에고 로시도 유니폼을 교환하며 다가왔다.
“짜잔! 나도 유니폼 교환했다!”
아르투르 코스타의 유니폼이었다.
“어? 얘, 아까까지 나 노려보고 있던데.”
“그거 물어보니까 너처럼 플레이하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지 물어봤어.”
“너한테?”
“응.”
“그래서 뭐라고 했어?”
“음…. 밥 먹고 훈련하고 밥 먹고 훈련하고 밥 먹고 훈련하라고 했지.”
“…뭐 틀린 말은 아니네.”
“기예르모도 누구랑 교환한다! 가서 방해해야지~.”
그렇게 선수들과 인사를 한 뒤에 필드를 나가자 입구에는 아틀레티코 미네이루 팬들이 몰려 있었다.
뭐라고 언성을 높이긴 했지만, 유지우의 귀에는.
“XXXXXX!”
다른 언어라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했다.
아르헨티나는 에스파냐어,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썼기에 유지우는 그냥 무시하고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
.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강 1차전이 끝나자 패배한 아틀레티코 미네이루 감독 코코가 인터뷰했다.
“패배의 이유는 선수들이 아닌 저에게 있습니다. 보카 주니어스의 공격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코코는 쏟아지는 팬들의 화살을 자신에게 향하게 하며 선수들을 감쌌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어떤 부분이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어려운 부분은 딱 하나였다.
“보카 주니어스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어린 선수들이 많습니다. 특히 유라는 선수는… 도저히 어떻게 막아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더군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최전방과 최후방을 번갈아 가며 뛰기까지 하는 변화무쌍한 플레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공격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2차전은 어떻게 준비하실 겁니까?”
1차전을 치르면서 보카 주니어스에서 어떤 걸 견제해야 하는지 더 명확해졌다.
“아틀레티코 미네이루의 축구가 어떤 것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다가오는 2차전.
거기서 이겨 반드시 결승에 올라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 * *
【 보카 주니어스! 2 – 1 역전승으로 결승에 가까워지다. 】
【 마테우스 올리베이라, “내 실수로 팀을 패배로 이끌었다. 팬들에게 미안하다.” 】
【 코코 감독, “전반전에는 모든 게 완벽했지만, 후반에서 실수가 있었다. 2차전에서 결과를 뒤집겠다.” 】
【 세바스티안 란첼라, “결승까지 가는 길이 밝혀졌다.” 】
【 ‘King Of the Match’ 유지우, “이 기세로 우승까지 가겠다.” 】
기사가 올라가자마자 댓글들이 달렸다.
[하비에르가 없어서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유가 완벽하게 빈자리를 대체했어.] [이게 보카지! 보카여 영원하라!] [유는 대체 뭐지? 윙포워드도 최고인데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이러다가 골키퍼까지 보는 거 아니야?] [멀티 플레이어는 귀한 자원이야. 빅클럽들은 더 크게 유를 원할 거야.] [월드컵 이후에 유를 향한 이적 문의가 끊이지 않을 거야. 구단에서는 어서 유와 재계약을 해야 해. 최고 연봉이라도 제안해서 잡아야 한다고!]팬들 사이에서는 유지우의 ‘재계약’이 언급됐다.
하지만 어렵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재계약을 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하면 유는 보카를 떠날 가능성이 크거든.] [겨우 한 시즌을 하고 떠난다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 그래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까지 우승하면 보카 주니어스에서 얻을 수 있는 트로피는 다 얻는 거라… 떠날 가능성이 높지.]유지우가 전에 했던 인터뷰.
< 보카 주니어스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다. 그것들을 이룰 때까지는 떠날 생각이 없다. >
이 말은 즉, 모든 걸 이루면 떠나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하면 사실상 보카 주니어스 선수로서 얻을 우승 트로피는 다 얻은 셈이니, 떠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게 맞았다.
[아무리 그래도… 겨우 1년이잖아. 떠날까?] [축구 선수들이 언제 낭만을 따지는 거 봤냐? 결국에는 유도 예전의 앙헬처럼 떠날 거야.]그 시각.
에이전트 차명훈, 매니저 맥스는 유한우의 레스토랑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그렇게 해서 유지우 선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합니다.”
SMC 방송사에서 온 김무호였다.
“전에 오신 분들께 말씀을 드렸지만, 다큐멘터리 제작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정에 영향을 주는 일은 전혀 없을 겁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고 선발팀이 했던 내용과 별반 다른 게 없어 차명훈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유지우 선수에게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런 시기에 무리해서 다큐멘터리를 찍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못을 박았다.
“그러면 시즌이 끝나면 가능하신가요?”
애초에 김무호 PD도 시즌 중에 다큐멘터리를 찍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해서 바로 노선을 틀었다.
그건.
‘월드컵’이었다.
“월드컵을 찍겠다는 거군요.”
차명훈은 바로 눈치챘다.
“예.”
“무리입니다. 지우 선수만 있는 게 아니고 다른 선수들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월드컵 이후에 다음 시즌에 관해서 담는 건 가능할까요?”
“흐음…. 일단 정확한 부분은 유지우 선수와 상의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우 선수와 관련된 일 말고 다른 일이 있으신가요? 지우 선수의 다큐멘터리를 못 찍으면 어떤 걸…?”
내심 걱정이 됐다.
다큐멘터리를 못 찍으면 방송팀이 여기까지 온 걸음이 헛수고가 되니까.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사실 이렇게 될 줄 알고 연예인분들 모시고 여행 프로그램 하나 기획했거든요.”
“……!”
“저희는 답사 좀 다니고 일주일 뒤에 연예인분들 합류하면 6박 7일 아르헨티나 여행 프로그램 촬영을 할 겁니다.”
SMC가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에서 3대 방송사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확실하지 않은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아르헨티나로 보낼 때는 다 그 대안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철저하시네요.”
“하하하, 방송국에는 능구렁이들이 많아서요. 그러면!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 * *
리그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4강 2차전을 준비하는 보카 주니어스는 막바지까지 훈련에 몰두했다.
퍼—억!
“훈련이라고 대충 하지 말고! 실전처럼!”
훈련을 실점처럼.
이건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강조하는 부분이었다.
선수들은 몸싸움하면서 자리 경쟁을 했고 유지우는 작은 틈새로 빠져나가는 화려한 드리블을 선보였다.
‘뱀 드리블.’
현란한 발재간 뒤에 다리 사이로 빼내는 ‘넛맥.’ 그리고 골대 앞으로 쇄도하는 선수를 보고 올리는 컷백 크로스.
툭.
리카르도 메사가 발만 가져다 댄 볼은 골망을 흔들었다.
“굿 패스! 찌우!”
리카르도 메사가 엄지손가락을 올려주자 유지우도 마찬가지로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화답했다.
“자! 집중하고! 다시 간다!”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선수들의 폼을 일일이 점검하며 다음 경기 엔트리를 고민했다.
‘훌리안의 다리가 조금 무겁군, 다음 경기도 마르코스를 내보내야겠어.’
게임이 끝난 뒤.
잠시 휴식이 주어졌고 쉬고 있던 유지우가 마른기침을 했다.
콜록.
목이 건조해서 나온 기침이지만.
“유?”
“어디 아파?”
“다니엘! 닥터!”
코치진들이 죄다 달려오며 유지우의 상태를 점검했다.
“아니… 저는 괜찮은데….”
“열은 안 나.”
“안색도 나쁘지 않고.”
“괜찮다니까요?”
“기침부터 시작해서 병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데!”
“당장 병원으로!”
“다니엘! 유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검사받아!”
“병원에 연락은?”
“지금 하는 중입니다!”
코치진들 사이에 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소식을 듣고 온 매니저 맥스의 차를 타고 병원을 가는 길이었다.
별일이 아니라 다니엘에게 안 가도 된다고 했지만.
“병원 가서 정밀 검사 한번 받아보자.”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10분을 이동한 끝에 보카 주니어스와 연관된 ‘아르헨티노 국립병원’에 도착했다.
“어?”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병원 안으로 들어가자 유지우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유잖아?”
“어디 아프기라도 한가?”
“설마! 유가 아프면 유의 자리는 누가 대신 하라고!”
병원에 유지우가 왔다는 말은 급속도로 퍼졌다.
팬들은 유지우가 혹시라도 몸이 안 좋아 결장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쌓였고 유지우는 많은 이들의 걱정 속에 정밀 검사를 받았다.
“어떻습니까?”
모든 검사를 받고 의사와 면담하는데.
“아무 이상 없습니다.”
“정말이죠?”
“네, 아주 건강한 상태입니다.”
별 이상이 없었다.
“거봐요. 아무렇지 않다니까요.”
“후우… 다행이다. 그러면 돌아가자.”
“네…. 아, 그 전에 잠시만요.”
“응? 왜?”
손으로 가리킨 곳은 몰려든 사람들이 있었다.
“사인 좀 하고 가도 되죠?”
“알았다. 난 잠깐 전화하고 올 테니까 하고 있어.”
“네.”
사람들이 몰려와 사인회가 열렸다.
의사나 간호사분들은 물론 거동이 가능한 환자분들까지 몰렸다.
스스스슥.
유지우는 웃으면서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줬다.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건강해요.”
“다음 2차전은 꼭 보러 갈게요!”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해준 뒤에 마지막으로 어린아이에게 사인해주자 아이가 소매를 잡아끌었다.
“딕 할아버지도 보고 가시면 안 돼요?”
“응?”
“딕 할아버지도 유가 오면 좋아할 텐데….”
“가르델! 그만!”
옆에 있던 아이의 어머니가 말렸다.
유지우는 시무룩해진 아이를 보곤 주변을 둘러봤고 사인을 다 해준 뒤라 아이에게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병실이 어디야?”
방긋.
“이쪽이요!”
신나서 앞장서는 아이의 뒤를 따라가자 아이의 어머니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죄송해요…. 괜히 저희 때문에.”
“괜찮아요. 시간이 되니까요.”
그렇게 도착한 병실 앞.
맥스는 병실 앞에 있고 아이와 아이 어머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여러 선으로 연결된 노인 한 분이 침상에 누워 있었다.
“할아버지!”
딕 로마노.
나이는 72세.
젊을 때, 보카 주니어스의 서포터즈로 활약하고 보카 주니어스 팬들의 명소라 불린 ‘아침의 이슬’ 주점을 운영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대장암 시한부를 받아 1년 넘게 투병 중이었다.
“가르델, 병원에서는 뛰어다니지 말라니까.”
“그게요! 누가 왔는지 보세요! 할아버지!”
창밖을 보던 노인은 손자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더니, 이내 입구 쪽을 바라봤다.
“이 늙은이 병실에 누가…. 어.”
그러곤 두 눈이 커졌다.
때마침 TV에 나오는 지난 경기의 재방송.
보카 주니어스 vs 아틀레티코 미네이루의 경기.
화면에서 승리 후, 선수들과 기뻐하는 에이스가 눈앞에 있자 눈을 비비며 입을 벌렸다.
“유?”
“안녕하세요.”
“정말… 맞습니까?”
“예.”
“하하하하,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니에요. 가던 길에 잠깐 들렀거든요.”
병실 곳곳에는 보카 주니어스 굿즈들이 많았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물건들까지.
평생에 걸친 보카 주니어스를 향한 사랑이 병실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와.”
“많죠? 우리 할아버지가 다 모은 거예요.”
아이는 자기가 모은 것처럼 뿌듯해했다.
“대단하네.”
“그렇죠? 우리 할아버지는 최고예요!”
손자의 말에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섯 살 때부터 하나씩 모은 거요.”
벽에 걸린 포스터 중, 제일 높은 곳에 걸린 포스터에는 여러 선수의 사인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은 은퇴한 선수들부터 리카르도 메사와 하비에르 카세로, 앙헬 몰리야의 사인도 있었다.
“2000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할 때의 포스터요. 거기에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스스스슥.
받은 볼펜으로 한쪽에 사인을 남겼다.
“이제 내 소원은 딱 하나라오.”
창밖의 하늘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죽기 전에 보카가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하는 걸 다시 보는 거뿐이오.”
딕 로마노 할아버지는 아직도 두 눈을 감으면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 방문한 라봄보네라의 광경이 생생히 펼쳐졌다.
관중들의 표정.
그들이 내뿜는 열기.
그리고 승리를 했을 때의 그 희열.
이제 다시는 느껴보지 못하는 거지만, 소원이었다.
죽기 전에 라봄보네라의 열기를 느껴보는 것이.
“그렇군요.”
“근데 꼴이 이래서….”
여러 선이 연결된 몸.
이래서는 도저히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의 부탁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어떤 거죠?”
“죽기 전에 보카 주니어스가 우승하는 것 좀 보고 싶습니다.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유지우는 웃으며 대답했다.
“반드시 우승할 겁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