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75)
필드의 외계인-75화(75/404)
제75화
29-30시즌 아르헨티나 리그 ‘리가 프로페셔날 데 푸트볼’ 최종 라운드.
보카 주니어스 vs 리버 플레이트.
이기는 클럽이 우승이라 두 클럽은 시작부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거칠게 부딪쳤다.
“와, 미쳤는데?”
“…저러다가 누구 하나 병원에 실려 가는 거 아니냐?”
엘 수페르클라시코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봤지만, 이미 거친 플레이에 익숙한 사람들은.
“더 몰아붙여! 아예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라고!”
“그래! 그렇게!”
“주심! 저건 왜 안 불어! 반칙이잖아!”
“다리를 부러트리라고! 아예 못 뛰게 해!”
미친 듯이 열광했다.
퍼—억!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싸움.
선수들은 쉽게 넘어지지 않고 필사적으로 볼을 쫓았다.
“사이드!”
중원 3인방인 앙헬 몰리야와 하비에르 카세로, 마르코스 무스가 보카 주니어스의 라인을 치밀하게 조율했다.
“다시 중앙으로!”
그걸 기반으로 빈틈없는 수비를 펼쳤다.
중원 3인방은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리버 플레이트의 공세를 막아냈고 역습 기회를 가져왔다.
“하비에르!”
하비에르 카세로는 볼을 잡고 압박이 들어오기 전에 유지우가 있는 오른쪽으로 롱패스를 보냈다.
높은 궤적.
높은 회전수.
조금이라도 어긋났다간 그대로 라인 아웃이 될 상황에서 유지우는 모든 반동을 흡수하는 아름다운 트래핑으로 볼을 잡아냈다.
– 오오오오오!
관중석에서 나오는 감탄.
그리고 이어지는 돌파.
유지우의 발끝에서 보카 주니어스의 역습이 시작됐다.
[리버 플레이트의 사이드 어택이 막히면서 보카 주니어스의 역습!]역습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보카 주니어스의 역습은 정교함을 자랑했다.
볼을 탈취하자마자 일제히 움직이는 양 윙.
스트라이커는 최종 수비 라인 위에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움직이며 위협을 가했고.
뻐—엉!
수비 백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미세한 틈이 보이자 유지우는 리카르도 메사와 눈으로 사인을 맞춘 뒤, 로빙 패스를 보냈다.
뒷공간으로 흐른 볼.
타다다다닷-!
빠른 속도로 디에고 로시가 침투해 보지만,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삐—-익!
[오프사이드 선언! 디에고 로시가 한 걸음 빠르게 들어갔습니다!] [아쉽습니다! 이게 연결됐다면! 완벽한 득점 찬스였는데요!]디에고 로시는 아쉬움에 하늘을 쳐다봤고 리버 플레이트 수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수비에 성공한 리버 플레이트는 강점인 패스 플레이를 전면으로 내세웠고 초반 점유율은 보카 주니어스가 크게 밀렸다.
73 vs 27.
이 정도면 거의 반코트 싸움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치였다.
툭.
툭.
툭.
가벼운 탈압박.
오늘 보카 주니어스를 잡기 위해 리버 플레이트는 제대로 칼을 갈고 나왔다.
그에 맞서 보카 주니어스는 라인을 올려 최전방부터 강한 압박을 해 리버 플레이트가 전진하지 못하게 방해했다.
[점유율이 점점 벌어집니다. 산티아고 메디나를 중심으로 한 리버 플레이트의 패스 축구! 더 정교해졌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선수들 사이의 간격이 일정한 게 큽니다. 저렇게 간격을 유지하면 패스 미스가 날 확률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보카 주니어스의 침투 패스를 차단하려고 리버 플레이트 선수들은 간격을 평소보다 좁혔다.
그래서 압박 때문에 급하게 처리해도 커버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패스가 갔다.
“…….”
안정적인 볼 배급.
서서히 중원이 리버 플레이트의 색깔로 칠해지자 오른쪽 측면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유지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비에르!”
유지우가 노린 건 리버 플레이트 빌드업의 기점이 되는 산티아고 메디나의 봉쇄였다.
‘어?’
중원에서 산티아고 메디나가 볼을 잡자 하비에르 카세로의 몸싸움이 들어왔고 사각지대에선 유지우의 발이 들어오자 허무하게 볼을 빼앗겼다.
꽉.
그러나 산티아고 메디나는 놓치지 않았다.
유니폼을 잡아끌면서 벗어나려는 유지우를 넘어트렸고 카드를 받으면서까지 역습 기회를 잘라냈다.
“냉정하네.”
만약 유지우에게 그대로 역습을 허용했다면 수비 숫자가 같아져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치열하게 맞붙는 양 클럽! 지난 엘 수페르시코와는 다릅니다!] [과연 선제골을 넣을 팀은 어디가 될까요!]리버 플레이트는 중앙 공격 위주.
보카 주니어스는 측면 공격 위주.
양 클럽의 공격 전술은 확연한 차이를 가졌다.
그리고 유지우를 봉쇄하는 역할을 맡은 리버 플레이트의 왼쪽 풀백 티아고 모랄레스는 계속해서 눈앞에서 사라지는 유지우를 바라보며 결심했다.
‘저 자식만 필드 위에서 쫓아내면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커져.’
데뷔한 지 1년 만에 레전드 반열에 오른 선수.
그만큼 대단한 성적을 쓰고 있고 리버 플레이트만 만나면 꾸준하게 공격 포인트를 생산하는 터라 리버 플레이트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였다.
‘…해보자.’
각오한 표정.
10분 후.
기회가 왔다.
마르코스 무스가 측면으로 공간을 열자 유지우는 볼을 받기 전에 고개를 돌려 주변 상황을 살폈다.
‘아직 접근해오는 녀석들은 없어.’
침투하는 선수들도 전원 마크당하고 있어서 일단 잡아놓은 뒤에 천천히 풀어가려고 했는데.
“으아아악!”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어온 백태클.
발바닥이 들렸고 그건 의도적으로 유지우의 발목을 건드렸다.
삐—-익!
휘슬과 동시에 몰려오는 고통.
유지우의 비명이 라봄보네라에 울려 퍼졌다.
* * *
“…지우야.”
“어떻게…. 많이 다친 건 아니겠지?”
“저놈이 우리 아들을!”
“어, 엄마 진정해요!”
“여보! 잠깐만!”
관중석에선 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걱정스럽게 쳐다봤고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빌어먹을! 당장 저 자식 퇴장시켜!”
“할 태클이 있고 안 할 태클이 있는 거지!”
“감히 우리 왕한테!”
“주심은 뭐 하고 있어! 카드 꺼내라고! 카드!”
“유가 부상이라면 넌 죽을 줄 알아! 티아고!”
– 유! 유! 유! 유! 유!
팬들은 유지우가 괜찮기를 바라며 이름을 연호했다.
유지우가 쓰러진 곳에선 충돌이 발생했다.
흥분한 디에고 로시가 티아고 모랄레스를 죽일 듯이 몰아붙였고 선수들이 말리며 간신히 일단락됐다.
“고작 그런 거 가지고.”
“고작? 고작이라고 했냐?”
경기 시작부터 수도 없이 신경전을 벌여온 탓에 곪았던 게 터졌다.
“어쩌라고!”
“죽고 싶냐!”
삐익-! 삐익-! 삐익-!
주심은 휘슬을 불며 금방이라도 주먹을 내지르려던 선수들을 떼어놨고 티아고 모랄레스를 향해 가슴팍에서 카드를 꺼냈다.
척.
[이게 옐로카드라뇨! 명백하게 뒤에서 발목을 노렸습니다. 이건 퇴장감입니다!]카드 선언이 되고 유지우는 디에고 로시의 부축을 받으며 잠시 라인 밖으로 나갔다.
[라인 밖으로 나오는 유! 유를 향해 관중들의 기립 박수가 이어집니다!] [큰 부상이 아니어야 할 텐데요. 이대로 유가 이탈하게 되면 보카 주니어스는 크게 불리해집니다.]용품이 든 크로스백을 들고 라인에서 기다리던 팀닥터 다니엘이 곧장 유지우의 상태를 살폈다.
만지작.
만지작.
“어디 불편한 곳이 있어?”
“살짝 욱신거리기만 해요.”
붉어진 피부.
만져서 통증이 없는 걸로 봐선 뼈에 이상은 없어 보였다.
‘외관으로는 크게 문제는 없다. 만져도 괜찮다면 단순히 근육이 놀란 통증인데.’
혹시 몰라 이리저리 살폈고 유지우는 가만히 필드 위를 보면서 물로 입 안을 헹구며 말했다.
“괜찮아요. 살짝 놀란 것뿐이에요. 통증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고요.”
“눈으로 봤을 때는 문제 없어, 하지만 무리는 하지 마.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얘기하는 거다?”
“네.”
“좋아.”
파스와 가벼운 아이스 찜질로 응급처치받았고 세바스티안 란첼라가 다가왔다.
“상태는?”
질문에 다니엘이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유.”
“예.”
“너한테 이런 짓 한 놈을 가만히 두고만 볼 건 아니지?”
스윽.
티아고 모랄레스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듯 시선도 주지 않았다.
“네.”
그럴수록 의욕이 타올랐다.
“박살 내겠습니다.”
유지우의 눈빛을 보고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무심하게 어깨에 묻은 잔디를 털어줬다.
“마음껏 휘젓고 와.”
“네.”
들어갈 거라는 사인을 주심에게 주자 볼이 나간 틈에 다시 필드로 들어갔다.
[필드로 돌아오는 유!] [부상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와아아아아아아아!
현 보카 주니어스의 에이스 그가 들어오자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열광했다.
“유! 네가 없으면 리버 이기긴 힘들어!”
“뭐라도 하나 해줘!”
“우리도 제발 우승 좀 해보자!”
들어오면서 티아고 모랄레스를 봤다.
“퉤.”
티아고 모랄레스는 눈이 마주치자 바닥에 침을 뱉으며 노려봤고 유지우는 볼을 잡고 정면으로 바라봤다.
볼을 잡은 폼.
그리고 유지우의 표정을 보자 리카르도 메사는 피식 웃으며 자신을 마크하는 마누엘 갈란에게 말했다.
“너희 풀백 제대로 당하겠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건드릴 사람을 보면서 건드려야지. 하필 제일 독한 놈한테 걸려버리냐.”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곧 이어진 유지우의 행동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허….”
까닥.
–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손을 올려 티아고 모랄레스를 향해 덤벼보라는 제스처를 했고 팬들은 폭발적인 함성을 질렀다.
빠득.
도발을 받은 티아고 모랄레스는 이를 꽉 물며 달려왔고 유지우는 바디 페인팅을 시작으로 화려한 묘기를 부렸다.
남들이 보기에는 불과 몇 초의 시간.
툭.
수많은 페인팅의 마지막 모습은 유지우가 티아고 모랄레스에게 마취총을 쏘아 넘어트린 모습이었다.
스윽.
그리고 시선을 돌려 패스를 줄 곳을 찾지만,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유지우가 선택한 건 더한 도발이었다.
툭.
가볍게 볼을 라인 밖으로 차며 리버 플레이트에게 소유권을 넘겨줬다.
[…어? 뭐 하는 거죠?]모두가 어리둥절했다.
제쳤으면 드리블해서 기회를 만들어내는 게 그동안 유지우가 보여준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유지우는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 넘어진 티아고 모랄레스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웃더니.
“이제 네 턴이야.”
쐐기를 박아 넣었다.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상적인 플레이가 아닌 비상식적인 플레이지만, 왠지 모르게 통쾌한 장면이라 관중석 곳곳에서 함성이 나왔다.
“하하하하하하! 바로 그거야!”
세바스티안 란첼라는 마치 자식들 재롱 잔치라도 온 듯 코치진들과 미친 듯이 환호했다.
볼이 나가자 수비 위치로 돌아가던 리카르도 메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곤 마누엘 갈란에게 말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
“우리 애가 원래 웃음이 잘 없는데 가끔 웃을 때가 있거든? 특히 플레이하면서 저렇게 웃을 때는.”
씩.
“좀 사나워. 그것도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