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8)
필드의 외계인-8화(8/404)
제8화
아르헨티나로 직항하는 항공편이 없어서 미국을 경유해 부에노스아이레스 남쪽에 있는 미니스트로 피스타리니 국제공항(Ministro Pistarini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여기가 아르헨티나구나.’
캐리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주변을 살폈다.
해외는 처음이라 모든 게 신기했다.
이국적인 향기.
이국적인 사람들.
새로움에서 오는 설렘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버님이… 저기 계시네요.”
캐리어를 챙겨서 게이트 밖으로 나가자 차명훈이 어딘가를 가리켰고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아버지?”
거기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아버지가 괴상한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홀라(Hola)!”
펑퍼짐한 바지에 이상한 문양으로 가득한 짙은 갈색의 티, 화룡점정으로 중절모까지 쓴 모습은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완벽한 아르헨티나 현지 사람처럼 보였다.
< 우리 아들 어서 와라! >
한국어로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자 나를 발견했는지 선글라스를 벗고 손을 흔들었다.
“우리 아들! 오는 데 무섭지는 않았어?”
“…아버지.”
“왜?”
“옷들은 어디서 났어요?”
“친구가 구해줬지! 여기 와서 처음 사귄 과일 가게 마르코라는 친구가 추천해준 건데. 왜, 마음에 들어? 사줄까?”
“아니요. 절대 싫어요.”
“왜? 예쁘지 않아?”
식당에서는 요리복만 입고 평소에는 어머니가 사주신 옷만 입고 다니셔서 몰랐는데 아버지 패션 감각은 최악이구나.
“…아버지가 좋으면 됐죠.”
할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참고 밖으로 나가자 아버지가 가져온 차가 있었다.
“명훈 씨도 같이 가시죠. 호텔까지 모셔다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아버님! 옷이 정말 멋지십니다!”
“그렇죠?! 선물로 옷 좀 드릴까요?”
“영광입니다! 아버님, 평생 입고 다닐게요!”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두 사람이 서로 죽고 못사는 죽마고우가 될 줄은.
* * *
차명훈은 내가 보카 주니어스에 적응할 때까지 옆에서 보좌해 준다고 호텔에 장기 투숙으로 묵기로 했다.
“그러면 전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아버님, 조심히 가시고요! 지우 선수! 제가 내일 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예, 오늘 감사했습니다.”
“감사는요~ 다 제가 할 일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호텔에 차명훈을 내려준 뒤에 집으로 향했다.
창밖에 보이는 색다른 풍경.
가만히 구경하고 있자 아버지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좋은 사람이지?”
“네.”
“마음이 쉽게 열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쁘게 생각하지 마. 지켜보니 좋은 사람이더라.”
나도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쉽게 손이 나가지 않았다.
그동안 당한 게 많아서 그런지 나중에는 결국 사라질 사람처럼 느껴졌다.
‘내가 예민한 거지. 그 사람이 잘못한 건 없어.’
미안한 감정이 있긴 했다.
늘 살갑게 다가와 챙겨 주는데 난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적이 없으니까.
호텔에서 차로 10분 거리.
도착한 곳은 라 보카(La Boca) 지역의 주택가였다.
허름한 집들 사이에 깔끔한 외관을 가진 집 차고에 차를 주차한 뒤에 차고를 통한 문으로 나가자 집 마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2층.
마당도 있고 전체적으로 모던한 느낌의 집이었다.
“사진으로 보긴 했는데 여기 비싸지 않아요?”
“우리 아들, 운동에만 집중하라고 샀지!”
“…….”
“안에 헬스장도 만들어 놨는데 볼래?”
아버지 뒤를 따라 걷자 작은 수영장도 보였다.
“해외에서 살면 한 번쯤은 수영장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었거든!”
아버지는 꿈을 이룬 어린아이같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고 집 안에서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나왔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블랙 앤 화이트로 된 깔끔한 복장, 그리고 인자한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은 아버지를 보고 정중히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두 사람을 본 아버지는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날 소개했다.
“알리샤, 마르시오, 이쪽은 전부터 얘기했던 제 아들 지우입니다!”
“아, 사장님께서 그토록 칭찬하셨던 아드님을 이제야 뵙는군요. 저는 알리샤라고 해요.”
“듣던 대로 미남이십니다.”
누구인지 소개해 달라는 눈빛을 보내자 아버지는 두 사람을 소개해줬다.
“이쪽은 우리가 아르헨티나에서 살 동안 보살펴주실 분들이야. 두 분이 부부시니까 잘 지내야 한다?”
“안녕하세요. 유지우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에스파냐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자 두 사람은 적잖이 놀랐다.
“에스파냐어를 상당히 잘하시는군요.”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언어를 배우는 게 부족해서 단어를 끊어서 말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매일 밤낮으로 축구를 제외하고 에스파냐어에 몰두하니 현지인과 소통하는 부분에서 큰 불편함이 없을 만큼 언어가 늘었다.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 없게 모시겠습니다.”
“두 분이랑 같이 사는 거예요?”
처음 본 어른에게 경계심이 들기에 조심스럽게 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은 앞집에서 다른 가족들과 같이 사신다.”
“그렇군요.”
“자, 그럼 들어가자. 집 구경시켜 줄게.”
두 사람의 인사를 받은 뒤에 아버지와 같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와.”
내부는 외관보다 더 세련됐다.
대리석 바닥에 깔끔한 인테리어.
아버지의 깔끔한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집이었다.
“어서 와라! 네 방 알려줄게!”
2층에 있는 내 방은 이 집에서 제일 컸다.
1층에 있는 안방보다도 더.
“아버지가 큰 방 쓰시죠? 저는 작은 방 써도 충분해요.”
“그건 안 되지! 무조건 우리 아들이 제일 큰 거! 이건 절대 양보 못 한다!”
내 인생이 달라질 아르헨티나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 *
이틀 후, 충분히 휴식한 뒤에 보카 주니어스 구단으로 가는 길.
차명훈이 장기 렌트한 차에 타서 같이 갔다.
“텃세를 부리는 선수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찰은 되도록 피하세요.”
“예.”
“앞으로 훈련 일정은 제가 차로 모셔다드릴 겁니다. 혹시라도 불편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 주시고요.”
“그런데 저에게만 이렇게 신경 쓰셔도 돼요?”
보통 에이전트들은 담당하는 선수들이 여럿 있어서 한 선수를 껌딱지처럼 붙어서 케어를 해주는 건 드물었다.
꽉.
그러자 차명훈이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떤 새끼가 제 고객들을 다 낚아채 갔거든요. 그래서 한국에 있어봤자 할 일도 없습니다.”
차명훈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거 후회 안 되게 해드릴게요.”
“네?”
“…두 번은 말 안 해요.”
“하하하하하! 말 안 해주셔도 됩니다! 사실 다 들었거든요! 아, 이거 녹음을 해야 했는데!”
농담을 주고받은 뒤,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얘기해줬고 우리는 보카 주니어스 구단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한 사람이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저는 안내를 맡은 마케팅팀 다니엘 모라라고 합니다.”
“바로 U-20 클래스로 가는 겁니까?”
“먼저 구단을 둘러보실래요?”
“예, 그러죠.”
보카 주니어스 구단 안은 일반 회사와 비슷했다.
다른 거라곤 축구에 관한 인테리어가 많다는 것뿐이라 큰 흥미는 없었고 구경을 다 한 뒤에 구단을 나왔다.
“여기서 U-20 훈련장까지는 도보로 15분 정도 걸립니다.”
다니엘 모라는 훈련장으로 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
U-20 코치진부터 주요 선수들의 설명을 들으면 걷기를 15분.
훈련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유가 속한 U-20 클래스입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광활한 필드의 훈련장이었다.
다니엘이 손을 흔들자 한 사람이 벤치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190cm가 넘는 커다란 근육질 체구.
연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그는 U-20 감독 로돌포 핀티였다.
“이 아이입니까?”
“예. 앞으로 이 클래스에서 뛸 아이입니다. 로드리고 씨가 직접 데려온 선수죠.”
“흐음.”
로돌포 핀티는 내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살폈다.
‘레슬링 선수인가?’
첫인상은 험악한 레슬링 선수처럼 보였다.
“우리 말은 할 줄 아나?”
“조금은요.”
“대화가 가능할 정도면 됐다. 따라와.”
“예.”
“다니엘, 지금부터는 제가 맡을 테니 가보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의 에이전트분?”
“미스터 차라고 불러 주십시오.”
“예, 미스터 차는 저와 같이 가시죠.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차명훈은 잠시 후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다니엘과 구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난 감독님의 뒤를 따라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벤치 근처에 도착하자 감독님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소리쳤다.
“다들 모여!”
웅성웅성.
선수들이 모이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감독님은 선수들이 다 모인 걸 확인하자 날 소개해줬다.
“오늘부로 새롭게 합류한 선수다. 아시아에서 온 선수니, 적응할 수 있게 주변에서 잘 도와주기를 바란다.”
감독님의 소개가 끝나고 선수들이 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동양인인가?”
“로드리고 씨가 데려왔다던데?”
한 선수가 손을 들었다.
“감독님.”
“말해라, 니자레노.”
소리가 들린 곳을 보자 딱 봐도 동네 건달처럼 생긴 한 녀석이 보였다.
까만 피부에 아프로 머리, 총만 안 들었지, 어두운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실력이 있습니까?”
“조용.”
“앞으로 같이 호흡을 맞춰야 하는 동료의 실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감독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니자레노라고 불린 선수는 나를 보며 웃었다.
“실력을 보고 싶습니다.”
니자레노가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서로 등을 맞대며 싸울 동료의 기량을 알아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건 훈련하면서 알아보면 될 일이다.”
감독님의 말에 니자레노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보는 시선에서 적대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저 눈을 확 찔러버릴 수도 없고.
짝짝짝짝짝!
이내 환영하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훈련은 10분 뒤,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있어.”
감독님은 코치들과 이야기하러 잠깐 자리를 피했고 난 스트레칭을 하며 훈련받을 준비를 했다.
“야.”
그런 나에게 다가온 사람은 니자레노였다.
“왜.”
“몸 푸는 데 스트레칭이면 되겠냐?”
“어쩌자고.”
“가볍게 나랑 1 vs 1 하자.”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
“겁먹었냐?”
니자레노는 도발했다.
몇몇 선수들은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큰 키를 앞세워 깔보듯이 내려봤고 난 태연하게 대답했다.
“전혀.”
“건방진 놈.”
“너도.”
기 싸움에서 밀리면 다 끝나는 거였다.
내가 말로 밀리지 않자 니자레노는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내기 하나 할까?”
“내기?”
“네가 나를 상대로 돌파하면 내가 네 다리 사이로 기면서 발바닥 핥는다.”
오오오오오오!
주변에서는 환호성이 들렸다.
“세게 나가는데, 니자레노!”
니자레노는 동료들의 환호에 어깨가 더 올라갔고 날 보며 비웃었다.
“…….”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자 니자레노는 내가 겁먹은 줄 알았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크하하하하! 이봐! 이 애송이 조 봐, 겁먹어서 굳었는데? 누가 닥터 좀 불러와 봐!”
그러곤 난 귀를 후비적거렸다.
“어디서 벌레가 윙윙거리나. 되게 거슬리네.”
빠직.
“야.”
녀석을 무시하고 감독님을 보자 감독님도 굉장히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감독님, 해도 되나요?”
끄덕.
감독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난 바닥에 있던 볼을 툭, 찍어 차 뒤로 돌아 웃고 있는 니자레노의 머리를 맞췄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감독님도 입을 크게 벌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흘러가는 걸 눈치챈 니자레노의 얼굴은 곧 폭발할 것처럼 새빨개졌다.
“야!”
“머리가 커.”
“뭐?”
“그냥 찼는데 그게 맞네.”
적어도 나보다 10cm는 큰 키.
내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위치였지만, 밀리지 않고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다리 사이로 기는 건 재미없잖아? 식상하고.”
“…….”
“내가 지면 팬티만 입고 동네 한 바퀴 뛴다. 어때? 할래?”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자 주변에서 웃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침묵에 휩싸였다.
니자레노는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한 채 주저했고, 난 거기서 한 걸음 더 다가가 쐐기를 박았다.
“쫄리면 뒤지시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