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85)
필드의 외계인-85화(85/404)
제85화
‘에이스 죽이기’.
약팀일수록 에이스에게 집중하는 빈도가 높아 팀의 중심인 에이스를 통제하게 되면 경기를 끌어가는 게 쉬워 약팀을 상대로 자주 나오는 전술이었다.
“바짝 붙어서! 유가 아예 볼도 못 잡게 방해해! 조금의 기회도 주지 마!”
콜롬비아 감독 알바로 산체스는 라인에 서서 목청껏 소리쳤다.
목소리를 들은 콜롬비아 선수들은 라다멜 발란타를 중심으로 유지우를 봉쇄하는 것에 집중했다.
타다다닷-!
‘이 지겨운 놈.’
강한 압박에도 유지우는 조금도 발을 쉬지 않았다.
작은 틈새만 보여도 그곳을 돌파하려고 하니, 마크하는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활동량으로는 나도 지지 않아!’
라리가에서도 활동량으로 자신이 있는 라다멜 발란타는 이를 악물고 유지우를 쫓아다녔다.
그렇게 대한민국 공격력의 절반을 깎아내려고 했으나.
타다다닷-!
유지우는 여러 명의 압박 상황에서도 반 박자 빠르게 반응해 공간을 찾아냈다.
‘이러면.’
퍼—억!
‘이 녀석이 아니라 패스를 잘라낸다.’
라다멜 발란타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지는 유지우를 막을 게 아니라 유지우에게 향하는 볼을 잘라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선수의 움직임은 다양하지만, 볼의 진행 경로는 한정적이라 예측하기가 쉬우니까.
“온다!”
최민연의 패스가 유지우에게 향하자 존 로드리게스가 어깨싸움으로 유지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그 틈에 라다멜 발란타가 한발 앞서서 패스를 잘라냈다.
[약속된 플레이로 유지우 선수에게 향하는 볼을 잘라내는 콜롬비아!] [콜롬비아는 지난 A매치 패배로 유지우 선수의 위협성을 어느 나라보다 잘 아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경기 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해설위원의 말이 맞았다.
지난 A매치에서의 패배.
그게 콜롬비아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 패배의 원인을 찾고 찾으며 최선의 대책을 마련해 에이스 죽이기, 또 다른 말로는 유지우 죽이기 전술을 들고나온 거였다.
퍼—억!
패스가 오기도 전에 몸을 부딪치고.
꽈악-!
공간으로 나가려고 해도 유니폼을 잡아 일순간 타이밍을 빼앗으며 포지션을 빼앗았다.
‘익숙한 방법이네.’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이런 집중 견제를 많이 당했었다.
그래서 익숙한 유지우는 콜롬비아가 숨통을 조이는 것을 눈치채고 빠르게 피하려고 했지만.
꽉.
퍼—억!
콜롬비아 선수들은 카드 받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삐—–익!
그리고 더구나.
[아! 이게 카드가 아니라니요! 구두 경고만 하는 주심! 이러면 안 되죠!] [명백하게 다리를 걸었습니다! 저걸 주심이 보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주심의 성향 자체가 카드를 잘 꺼내지 않는 주심이라 콜롬비아의 행동에 힘이 실렸다.
삐—익!
삐–익!
삐–익!
휘슬이 계속 울렸지만, 카드가 나오는 일이 없었다.
“이게 카드가 아니라고?”
오히려 억울해하며 항의하는 김기하에게 옐로카드를 주며 대한민국이 더 불리해졌다.
“후우.”
거친 태클에 걸려 넘어져서 일어난 유지우에게 라다멜 발란타가 슬쩍 다가왔다.
“네가 볼 잡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건 네 희망 사항이고.”
“…뭐?”
“이 짓이 언제까지 통할 거라고 생각해?”
“…….”
“한눈팔지 마. 너희들이 한눈을 파는 순간.”
스윽.
유지우는 손가락으로 콜롬비아 골대를 가리켰다.
“볼은 저 골대 안으로 들어가 있을 거니까.”
에이스 죽이기가 90분 내내 이어질 리는 없었다.
[ 축구는 실수의 스포츠 ]경기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단 한 번의 실수.
유지우는 차분한 마음으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25분.
30분.
35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골문을 위협하는 장면은 많이 나왔지만, 결정적인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콜롬비아가 공격적인 빌드업이 아닌 중원 빌드업을 중점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라다멜 발란타가 수비 라인까지 내려왔으니, 상대 진영에서 만드는 공격 빌드업보단 더 나은 방법이죠.]< 72 vs 28 >
대한민국이 점유율에서 크게 밀리고 있지만, 수비 집중력이 높아 콜롬비아는 번번이 골대 앞에서 기회를 놓쳤다.
“흐음.”
주앙 달루트는 콜롬비아 공격을 보고 턱을 쓸었다.
‘빠르긴 하지만 날카로움이 전혀 없군.’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콜롬비아가 우위에 있어서 경기 자체를 리드했다.
그러나.
뻐—엉!
득점을 노리는 결정적인 공격에 영양가가 없었다.
[라다멜 발란타가 수비적으로 내려앉은 것 때문에 콜롬비아의 공격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격 타이밍을 계속해서 놓치는 것이 콜롬비아에겐 큰 손해입니다. 유지우 선수의 견제 때문에 라다멜 발란타의 장점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군요.]알바로 산체스는 이런 문제점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콜롬비아 국가대표 내에서 라다멜 발란타가 가지는 영향력은 대한민국에서 유지우가 가진 영향력과 비슷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운용하는 것은 유지우 때문이었다.
깔끔한 터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움직임.
경기 전체를 읽는 눈.
언제든 경기 자체를 뒤집을 능력이 있기에 절대 그냥 둘 순 없었다.
비록 공격이 침체한다고 해도 가장 믿음직한 선수를 수비적으로 돌려야 지난 경기처럼 당하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괜찮아. 유를 완벽하게 막아낸 후, 한 골만 넣으면 우리가 이긴다.’
그래서 알바로 산체스는 오늘 경기가 한 골 싸움이 될 거라는 걸 경기 전부터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어떻게 보십니까?”
이 광경을 관중석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시선들. 그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카우트 팀이었다.
“얼핏 보면 콜롬비아가 리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윽.
“흐름 자체는 대한민국의 유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콜롬비아 감독의 수가 먹힐지 아닐지는 유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갈릴 거야.”
일반인들 시야에는 콜롬비아가 압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가들의 시선에서는 달랐다.
그들의 눈에는 경기 전체의 균형이 보였다. 그리고 그 균형이 어디로 쏠려 있는지도.
대한민국 10번.
유지우가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하며 쳐다봤다.
* * *
치열한 공방전 후, 전반전이 0 – 0으로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유지우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더 심해졌다.
[후반전에 들어오면서 유지우 선수에 대한 견제가 더 심해진 것 같죠?] [네, 넘어지는 빈도가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의도적으로 반칙으로 끊어내는 행동도 있고요.]비어 있는 곳으로 가서 볼을 잡자 라다멜 발란타의 거친 태클이 들어왔다.
스르르륵.
드래그 백으로 볼을 발바닥으로 빼려고 했는데.
퍼—억!
사각지대에서 존 로드리게스의 몸싸움이 들어왔다.
그 충격으로 필드 위에 낙엽처럼 구르며 유니폼이 엉망이 됐다.
“헤이!”
주심에게 손을 들며 항의를 했지만, 주심은 고개를 저으며 정당한 플레이라고 판정했고 유지우는 헛웃음을 지으며 일어났다.
[주심이 염전에서 일했나요? 판정이 너무 짭니다!]잠시 후.
다시 넘어지자 존 로드리게스가 비웃으며 소리쳤다.
“아시아 꼬맹이!”
“…….”
“그딴 몸으로 무슨 축구를 하겠다고! 종이 인형이 너보다 더 단단하겠다!”
콜롬비아 선수들은 얼마 전에 부상을 당했던 왼쪽 발목으로 집요하게 발을 뻗어왔고 유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들이.’
화를 내진 않았다.
이 상황에서 화까지 내면 콜롬비아가 원하는 대로 말려드는 거니까.
“오.”
심호흡하는 유지우를 보고선 알바로 산체스는 살짝 놀랐다.
‘어린 나이인데도 대단한 침착성이군.’
부상당했던 부위를 건드리면 예민해져서 분노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유지우는 이상하리만큼 침착했다.
타다다다닷-!
분노에 사로잡히기는커녕 침착하게 마크하는 선수를 주력으로 따돌린 후, 비어 있는 공간으로 진출해 볼을 잡는 모습을 보여줬다.
탁.
볼을 잡기가 무섭게 빠르게 들어오는 압박.
그래서 유지우는 원터치로 처리하는 플레이가 많아졌다.
[콜롬비아가 라인을 올리며 전방 압박을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빌드업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보이죠?] [지난 A매치에서 호되게 당했기에 애초에 패스의 시작점을 막으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험의 싹을 잘라두는 플레이죠.]콜롬비아의 조직력은 상당히 높았다.
올해 초에 평가전에서 보여줬던 ‘방심’은 온데간데없었고 한국을 철저히 연구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공간 넓혀!”
수비 시에는 간격을 좁히고 공격 시에는 공간을 넓히며 다양한 패턴으로 한국 진영에 혼란을 줬다.
촤—-악!
그때 들어오는 태클 하나가 오버래핑하는 존 로드리게스에게 가는 패스를 잘라냈다.
“여긴 나한테 맡기고 다른 곳 신경 써요.”
그 주인공은 유지우였다.
유지우는 측면 수비 가담도 확실하게 해주며 콜롬비아의 날개 하나를 잘라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상대방이 하는 거머리 짓을 똑같이 해줬다.
멈추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콜롬비아의 그림자가 되어 그들이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볼을 잡는 것을 방해했다.
타다다닷-!
‘언제!’
라다멜 발란타가 중심에서 공격 작업을 할 때도 끝까지 쫓아갔다.
활동량을 비롯해 폭발적인 주력.
콜롬비아에서 유지우가 던진 그물을 피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퍼–억!
라다멜 발란타에게 어깨싸움을 걸며 균형을 흔들고.
툭.
이어지는 깔끔한 스탠딩 태클.
흐른 볼은 최민연이 안전하게 클리어링 하면서 위험지역 밖으로 걷어냈다.
[오오오오! 유지우 선수가 라다멜 발란타를 완전히 봉쇄합니다!] [활동량으로 따지자면! 유지우 선수도 밀리지 않습니다!]10분.
20분.
후반전 내내 라다멜 발란타, 존 로드리게스가 유지우의 감시망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허억… 헉….”
숨이 차올라도 유지우의 압박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른 타이밍에 들어오고 집요해졌다.
퍼—억!
그러곤 아예 존 로드리게스를 몸싸움으로 라인 밖으로 밀어버렸다.
“으악!”
존 로드리게스가 넘어진 상태에서 유지우를 노려보는데 유지우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가만히 내려다봤다.
‘…….’
말도 없이 위치로 돌아갔고 존 로드리게스는 뒷모습을 보곤 소름이 돋았다.
‘…뭐냐고, 방금 눈빛은.’
.
.
.
관중석 한 곳에서는 그 장면을 보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콜롬비아 녀석들이 제대로 건드렸군.”
웃음의 주인은 보카 주니어스 스카우트 팀장 로드리고였다.
“어떤걸요?”
그 옆은 스카우트 팀원 프란시스코였다.
“넌 보카에서 유의 경기를 그렇게 많이 봤는데 모르겠어?”
“예?”
“건드릴 사람을 잘못 고른 거라고, 콜롬비아 녀석들은.”
전반전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다쳤던 왼쪽 발목 부위를 노리면서 유지우는 분노했다.
분노가 겉으로 표출되진 않았다.
침착하게 그걸 억누르고 플레이로 터트리는 것이 유지우의 분노 표출 방식이었다.
“진짜 제대로 열 받았나 보군.”
–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그걸 어떻게 아세요?”
“유가 50% 이상 화가 났을 때는 상대방을 도발하는 플레이를 많이 해. 일종의 복수지.”
“아하….”
“그런데 지금처럼 100% 화났을 때는.”
퍼—억!
“도발은커녕 놀라운 집중력으로 상대방의 골문만 노리는 맹수가 되어버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
이 상태의 유지우를 막을 선수는 필드 위에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