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en In The Field RAW novel - Chapter (9)
필드의 외계인-9화(9/404)
제9화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축구를 사랑하는 나라는 많았다.
그러나 남미의 나라들은 축구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들과는 조금 달랐다.
축구는 그들에게 삶, 그 자체였다.
일과 축구가 있으면 열에 열은 축구를 선택할 만큼 남미 사람들은 축구에 미쳐서 살아갔다.
“감독님, 해도 되죠?”
로돌포 핀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했다.
“이 건방진 꼬마한테 아르헨티나 축구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그런 곳에서 자란 만큼 니자레노는 유지우의 도발에 물러서지 않고 의욕을 불태웠다.
“괜찮겠어?”
로돌포 핀티는 니자레노의 실력을 잘 알고 있어서 유지우를 걱정했다.
“예.”
유지우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너무나도 태연한 대답에 주변 사람들이 놀랐고 로돌포 핀티는 두 선수의 동의가 나왔으니, 흔쾌히 허락해줬다.
“할 말이 많긴 하지만 그건 뒤로 미루고 새롭게 합류한 동료의 실력을 볼 수 있는 기회니까 허락하마.”
로돌포 핀티가 손짓을 하자 코치진 몇몇이 구석에 있던 작은 골대를 가지고 왔다.
“돌파해서 골을 넣으면 유의 승리, 볼을 빼앗으면 니자레노의 승리, 간단하지?”
“좋네요.”
“좋습니다.”
로돌포 핀티는 니자레노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인성이 조금 부족하지만, 실력 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유가 이기는 건 어렵겠지.’
니자레노의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로 수비력이 월등해 1월에 2군 콜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니자레노가 유지우를 쉽게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 라인 밖까지 나가라.”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거리를 벌렸다.
“니자레노가 이기겠지?”
“당연한 거 아니야? 성질이 더러운 녀석이긴 하지만 실력은 좋잖아.”
“에휴, 또 신인 한 명 기죽겠네.”
다른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니자레노는 유지우를 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빌면 용서해줄게.”
유지우는 귀를 후비며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려다가 참았다.
“입에서 냄새나.”
“…….”
“닥치고.”
“…….”
“팬티 색깔이나 확인해. 갈아입을 시간 안 줄 거니까.”
로돌포 핀티가 유지우에게 볼을 줬다.
“휘슬 불면 시작해.”
“예.”
삐-익!
휘슬소리가 들리자 바로 달려들 줄 알았던 니자레노는 달려들지 않고 자세를 낮췄다.
‘오, 분위기가 달라졌네.’
툭.
툭.
유지우는 니자레노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발등으로 볼을 밀면서 신중하게 접근했다.
‘확실히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아온 녀석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봐온 녀석들이랑은 뭔가 다르긴 해.’
그동안 만났던 선수들과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10m.
5m.
1 vs 1의 승부에서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 유지우는 침착하게 돌파할 타이밍을 노렸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니자레노는 옆으로 게걸음을 하며 유지우가 들어갈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184cm vs 172cm.
10cm 이상 차이가 나는 체격 차이.
그것을 극복하는 건 오로지 하나였다.
개인 기량.
툭, 투툭-!
유지우가 플리플랩으로 기습적인 돌파를 시도했지만.
퍼-억!
니자레노는 몸을 부딪치며 체격 차이로 찍어누르려고 했다.
어깨를 먼저 집어넣고선 균형을 흔들었고 아예 넘어트리려고 힘을 더 줬다.
하지만.
그건 유지우가 판 함정이었다.
일부러 균형이 흔들리는 척하며 니자레노의 방심을 유도했고.
툭.
넘어지는 척하면서 다리를 뻗어 볼을 니자레노의 다리 사이로 통과시켰다.
다리 사이로 볼이 지나가는 것을 확인한 유지우는 오른손으로 땅을 짚곤 그 반동을 이용해 니자레노의 뒤로 돌아나가려고 했다.
‘이게 뭐야?!’
유지우가 보인 짐승 같은 반응에 니자레노는 놀라면서 황급히 뒤로 돌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발이 멈추고 말았다.
이미 유지우가 볼을 골대 안으로 밀어 넣은 후였으니까.
철렁.
휘슬이 울리고 1분 만에 승패가 결정 나자 지켜보던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 vs 1 승부는 50 : 50의 확률이라곤 하지만 수비수가 공격수보다 약간 더 유리했다.
패스 루트도 없고 오로지 오른쪽과 왼쪽, 돌파 루트만 예상하면 막아내는 일이니까.
더구나.
니자레노가 체격에서 우위를 점한 상태라 더 유리했는데 졌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아, 아직! 3점 먼저 내는 사람이 이기는 거잖아?”
이대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듯 갑작스럽게 규칙을 변경했고 유지우는 받아들였다.
“그래.”
이번에는 니자레노가 돌파할 차례였다.
볼을 밀면서 들어오던 니자레노는 유지우의 자세를 보고 흠칫했다.
‘…뭐야, 공격 자원이라며.’
놀란 것도 잠시, 장점인 체격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했다.
퍼—억!
어깨싸움에서 밀린 유지우는 넘어지려고 했고 니자레노는 이 틈에 돌파하려고 했는데.
‘어?’
볼은 이미 발에 없었다.
넘어지면서 유지우가 발을 뻗어 볼을 쳐낸 거였다.
“후우.”
호흡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유지우는 니자레노를 바라봤다.
“이제 내 차례지?”
그 뒤에 벌어지는 일에 보는 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름 유스 리그에서 이름을 날린 니자레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오늘 막 팀에 합류한 선수에게 패배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진짜 니자레노가 졌다고? 그것도 한 번에?’
‘1월에 2군으로 콜업 될 예정인 녀석을 이겨? 쟤 도대체 뭐야?’
니자레노가 성질은 더럽긴 해도 U-20에선 수비 에이스로 평가받는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단숨에 무너트리자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다.
코치진들도 마찬가지였다.
“허어, 로드리고 씨의 눈은 뭐가 다르긴 다르나 보네요.”
“데려오는 선수마다 뭔가 하나씩 있습니다.”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작 1분 만에 경계의 눈빛을 보내던 U-20을 침묵으로 잠재운 유지우는 자신을 쫓아오려다가 넘어진 니자레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해? 안 뛰고.”
“지, 진짜 뛰라고?”
니자레노는 유지우를 올려다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약속한 거 아니었어?”
“…….”
“남미 사람들은 원래 약속한 걸 쉽게 없던 걸로 하나?”
“노, 농담이잖아! 그냥 너를 즐겁게 맞이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농담?”
저벅.
한 걸음 걸어가서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난 말이야. 농담 같은 거 안 해.”
“…두고 보자.”
니자레노가 일어나서 가려고 하자 유지우는 손을 뻗어서 앞을 막았다.
“벗어.”
“…….”
“벗으라고.”
니자레노는 도와달라는 눈빛을 로돌포 핀티에게 보냈다.
하지만.
“넌 말이야. 항상 그 입이 문제야.”
로돌포 핀티는 도와주지 않았다.
이 기회에 니자레노의 거친 성격을 고쳐주기 위해서였다.
“너! 내가 가만 안 둬!”
“치사하게 때리게?”
“누, 누가 때려! 실력으로 무릎 꿇려주겠어!”
그날 보카 주니어스 근방 동네에선 팬티만 입고 동네를 뛰어다니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졌다.
* * *
이곳에서의 생활도 일주일이 지났고 서서히 보카 주니어스 U-20 훈련에 적응해갔다.
“너무 딱딱하잖아! 부드럽게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여러 가지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훈련 시스템이 한국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국은 만들어진 틀 안에서의 조직적인 플레이를 우선한다면 이곳은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계속 얘기하면서 동료하고 소통을 해! 자유롭게 플레이하는 건 좋지만, 약속된 플레이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조직력을 버렸다는 건 아니었다.
U-20 수석코치 제임스 로들리는 영국 출신답게 축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 자유로움과 조직력의 균형을 유지하며 훈련을 주도했다.
5 vs 5 미니게임.
일반 풋살 경기장보다도 작은 곳에서 압박을 벗어나는 훈련은 U-20의 주된 훈련이었다.
빠른 압박 타이밍.
그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제임스의 훈련이었다.
퍼—억!
거친 몸싸움.
촤—악!
사각에서 들어오는 태클.
아직 탈압박 능력이 부족한 선수들은 필드에 넘어지는 게 부지기수였다.
“라미로! 그럴 때는 돌파가 아니라 뒤로 패스를 줬어야지! 우고가 있는 걸 못 봤어?”
부족한 선수에겐 아낌없는 조언도 해줬다.
그리고 유독 눈에 띄는 선수.
‘디에고 로시.’
일주일 전에 만나 계속해서 유지우에게 말을 걸어온 선수였다.
왜소한 체구에 산발이 된 머리.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은 유독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툭.
툭.
단 두 번의 터치로 탈압박을 한 디에고 로시는 작은 골대 안으로 침착하게 골까지 넣었다.
“굿! 디에고!”
까다로운 제임스 코치마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게 만드는 선수.
‘보카의 보물.’
디에고 로시였다.
“어때?”
골을 넣은 뒤에 유지우에게 다가간 뒤, 물을 마시며 물었다.
“뭐가?”
“너도 이 정도쯤은 가뿐하지?”
디에고 로시는 유지우가 밀어내도 밀어내도 계속해서 말을 걸며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을 알아서 유지우는 3일 째부터 디에고 로시와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해봐야 알지.”
그 뒤로도 이어지는 훈련.
여러 개의 조가 지나갔고 이제는 유지우가 속한 조의 차례였다.
삐—익!
제임스 코치가 휘슬을 불고 15분의 미니게임이 시작됐다.
호흡을 맞춘 적이 없는 선수들이라 유지우는 혼자 플레이하는 경향이 심했다.
‘또 저러는군. 몇 번을 얘기해도 고쳐지질 않아.’
몇 번이나 지적했던 문제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줄 곳이 없다면 리턴 해! 항상 주변에서 동료들을 도와주는 걸 생각하고!”
로돌프 감독이 없다면 제임스 코치가 이곳의 리더였다.
“유, 너는 돌파 능력이 뛰어나긴 해도 이타적인 플레이가 부족해. 조금 더 동료를 믿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일주일 내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부족한 부분이 어떤 것인지 데이터를 조합해서 설명해줬고 개선 방안도 알려줬다.
“네.”
“이해했어?”
“했습니다.”
그 덕분에 플레이할 때, 쓸데없는 움직임이 많이 줄어들었다.
선수들이 압박하는데도 당황하지 않았다.
‘왼쪽으로.’
길이 다 보였다.
좁은 공간을 드리블로 돌파해 마침내 골망을 흔들자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결국에는 패스 안 하고 성공하는구나.”
“와아아아아! 너 진짜 잘하잖아!”
동료 선수들이 달려와 축하해주는 게 영 어색했다.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건 아직 좀 어렵긴 하지만.
“…….”
그래도 이런 느낌이 마냥 싫은 건 아니었다.
이렇게 축구에 집중하며 웃고 떠드는 환경에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겐 감사한 일이었으니까.
그들이 내게 거리낌 없이 다가오는 것처럼, 나 역시 조금은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지우 기분 나쁘게 했나 봐! 엄청 표정이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데.”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