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3)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113화(113/300)
◈ 제113화
57. 전쟁의 여신 – 1
-우우우웅!!
검이 울린다.
아다만티움으로 제작된 검이 한계라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힘을 모았고 검이 부서지기 직전.
-콰직!!
검에 집중된 힘을 이용해 그대로 기둥을 부숴 버렸다.
-쩌저정!!
하늘 높이 솟은 기둥에 금이 가며 빠르게 기둥 전체로 퍼져 버렸다.
-파사사삭…….
결국 버티지 못한 기둥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하늘에 새겨진 균열 역시 사라지며 원래의 회색 하늘로 바뀐다.
그 기적과 같은 힘.
슬라브드의 가장 강한 거인조차 상대할 수 없는 막대한 힘을 본 마르잔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알고 있었다.
방금 전 저 공격을 쓸 수 있는 자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그녀가 아무런 말도 못 하며 바라보자 이안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가서 하던거나 마저 하자.”
굳어 있던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거센 풍파에 맞서 싸우느라 거칠어진 손.
여왕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손이 이안의 몸을 소중히 감쌌다.
“그대는…… 무엇인가.”
“말했을 텐데.”
그랬다.
그는 이안 브랜든이라고 자신을 지칭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했었다.
“……너는…… 아니. 다, 당신은…….”
목소리가 떨린다.
물어야 할까?
묻지 말아야 할까?
회색의 눈동자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마주하던 이안은 그녀의 손 위에서 뛰어내렸다.
“가자.”
이안이 내려가자 먀네가 그의 어깨 위로 돌아갔다.
눈길을 걸어 얼음의 배 위로 올라간 그가 자리에 앉자 마르잔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배로 돌아갔다.
얼음 배가 움직인다.
얼음 성채로 돌아가는 내내, 마르잔나는 계속해서 이안을 힐끔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정말……인가? 아니. 정말……인가요?”
자연스럽게 존댓말이 나왔다.
만약 저 인간 소년이 그라면?
정말 자신이 아는 그라면?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쩔 줄 몰라 하던 마르잔나는 살짝 침을 삼켰다.
배가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결국 묻지 못했다.
이안 역시도 딱히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말하지 않았다.
꽤나 긴 침묵이 이어지는 사이 배는 다시 얼음 성채에 도착했다.
“길이나 다시 열도록 해.”
“……열 수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
열고 싶지 않다.
마르잔나는 자신의 옥좌에 돌아가지도 않은 채 잔뜩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한 가지만 알려 주십시오.”
“내가 네가 아는 보가트리냐는 질문이겠지?”
무뚝뚝함이 섞인 말투에 마르잔나는 눈을 감았다.
벌써 수천 년이나 지난 예전의 일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 * *
전쟁의 시대였다.
세상에 태어난 수많은 거인들과 용이 싸우던 시대.
그곳에서 거인족의 수도, 페일도트가 용들의 포화에 괴멸되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것은 한 소녀뿐.
파괴된 건물 잔해에 깔린 채 고통을 호소하며 울먹이는 소녀뿐이었다.
“아…… 아아…….”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이대로 용들에 의해서 우리 거인들은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거인들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면 저 용들은 세상을 지배하며 모든 것을 잡아먹으려 하겠지.
그것이 이 세계의 끝일까.
불타오르는 도시를 바라보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싫다.
이런 결말은 싫다.
싸우고 싶다.
이 도시를 무너트린 용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죽음은 그녀의 눈앞까지 와 있었다.
도시의 마지막을 알리는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회색 눈동자는 저항의 의지를 지우지 않았다.
그때 불길이 갈라졌다.
그 불길 속에서 걸어오는 것은 한 명의 인간.
거인보다 훨씬 작은 자들.
거인들에게는 소인이라 불리는, 경멸의 대상에 불과했던 인간이었다.
그 인간이 용이 만들어 낸 끝없는 불길을 잠재우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을 앞에 둔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포기하지 않았나?”
용들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거인의 거대 도시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저항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거인족 소녀는 인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닦지도 못한 채.
회색 눈의 소녀는 손을 내밀었다.
“난…… 포기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좋다.”
그 커다란 손을 인간은 웃으며 잡아 주었다.
그 후로 반격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용들이 쓰러졌다.
용이 만들어 낸 괴물들도 쓰러졌다.
거인뿐만 아니라 인간, 요정, 정령, 야수들까지.
평소라면 서로를 적대했을 모두가 그 인간을 중심으로 뭉쳤다.
그리고 싸웠다.
세계를 불살라 멸망시키고자 하는 강대한 용들에게 맞서 싸웠고.
결국은 승리를 쟁취했다.
그 승리를 얻었을 때 소녀는 겨울의 여왕이라는 위치에 올라가 있었다.
“스승님!”
이제는 소녀티를 벗어 던진 거인은 기묘한 자세로 앉아 있는 인간에게 달려갔다.
전쟁이 끝난 이후 그는 항상 저곳에서 저러고만 있었다.
많은 거인들이 그를 모시길 원했다.
많은 인간들이 그를 영웅으로 삼았다.
많은 정령과 요정들이 그를 반려로 원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스승이자 아버지인 남자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높은 탑 위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아버님!”
“무슨 일이냐.”
그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를 향해 여왕은 웃었다.
“아버님을 위한 퍼레이드가 준비되었어요. 이제 가셔야 해요.”
여왕은 그를 소중히 안아 들었다.
자신의 어깨 위에 그를 올리려 했지만 그는 가볍게 거절했다.
“그럴 생각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준비했는걸요. 아버님께 보답과 선물을 주고 싶어 하는 자들이 많은데…….”
“필요 없다.”
“예? 그게 무슨…….”
가슴이 덜컥 흔들렸다.
그는 항상 저랬다.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떠난다고 말했었다.
왠지 모를 불안함에 그녀는 애써 웃으며 그를 잡았지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곳에서 이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어.”
“얻을 것은 많은걸요. 용들도 아직 남았고…….”
그리고 거인들을 이끌어 주기도 해야 한다.
아직 어린 거인들을 자신을 가르쳤던 것처럼 지도해 줬으면 한다.
그녀가 웃으며 말리려 했지만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온 그는 탑 위에서 세상을 무심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언제나 말했지만 나에게 얻지 못한다는 것은 죽음과 같다.”
“늘 그러셨죠.”
“그리고 난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그래도. 저희는 아버님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마르잔나의 말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남은 용들 역시 세계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거인과 정령, 요정들, 인간들, 야수들. 그 모든 것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희는 아버님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만약 이야기가 끝나 버린다면 끝이 나 버릴 것 같았다.
“모두에게 전해라. 그동안 수고했다고.”
“아버님!”
그리고 눈을 감는다.
그것을 본 여왕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버……님?”
그것이 끝이었다.
눈을 감고 한마디 한 것만으로.
그의 스승이며 아버지이고 슬라브드를 구한 영웅.
자신을 보가트리라 밝혔던 위대한 인간은 죽음의 곁으로 가 버렸다.
* * *
과거의 추억에서 벗어난다.
천천히 눈을 뜬 마르잔나는 이방인 인간 소년을 응시했다.
그는 분명히 죽었다.
어떤 강대한 거인도, 어떤 무시무시한 용도.
죽음에서 되돌아오는 일만큼은 할 수 없었다.
하물며 꽤나 오래전이고 심지어 다른 세계의 일이다.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기대는 너무나도 많이 품었었으니까.
환생이라는 단어에 너무나 많은 기대를 품었고 속았었으니까.
그렇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르잔나는 긴장하며 손을 꽉 쥐었다.
그런 그녀를 마주하던 이안은 입을 벌렸다.
“무너진 페일도트의 박살 난 건물의 잔해에서 저항을 포기하지 않은 어린 거인과 만난 자가 맞냐고 묻는다면. 맞다.”
그 불안한 기대를.
이안은 너무나도 가볍게 충족시켜주었다.
그 말에 마르잔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일이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아는 것은 단둘.
그 사건의 당사자인 자신과 스승이자 아버지인 보가트리뿐.
그것을 이안이 언급하자 마르잔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어째서……?”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어째서 그렇게 떠난 것인가.
어째서 여기 있는 것인가.
어째서 그 몸인 것인가.
그녀의 질문에 이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마르잔나뿐만 아니라 거인들과 인간들에게도 말했었다.
슬라브드의 세계관 수집이 끝나면 자신이 있을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고.
그때까지 용들과 싸우는 데 힘을 보태 주겠다고.
이후 그들과 싸워 가며 세계관을 수집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세계관 수집이 완료되어 떠난 것뿐이다.
다른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안이 무덤덤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자 마르잔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많은 이들이 아버님의 죽음에 슬퍼했습니다. 모두가 아버님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럼 나도 묻자. 거인들이 끝까지 나를 기억하고, 내 의지를 따랐나?”
“그건…….”
아니다.
보가트리의 죽음 이후 세상은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인간의 영웅인 보가트리가 죽고 백 년도 되지 않아 다시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거인들은 인간을 경멸했고 그들에게 공물을 받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즈메이들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그들을 따르는 괴물들은 남아 있었으니까.
소수의 영웅을 제외한 인간들은 약했고, 보호를 바랐다.
그리고 거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힘을 중시 여기며 정령과 요정들을 잡아 두길 원했다.
정령과 요정들 역시 자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길 바랐다.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싸워 나갔다.
마르잔나는 고개를 숙이고 변명하듯 말했다.
“거인들은 싸웠습니다.”
“자기들끼리겠지.”
그의 말대로였다.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자 거인들은 서로에게 창과 칼을 들이댔었다.
그리고 이득을 위해 싸워 나갔다.
그가 죽고 고작 몇백 년 만에 세상은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것이 싫었다.
압제에 저항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싸우는 거인들의 모습이 싫었다.
그렇기에 패배한 인간들을 데리고 얼음의 나라를 만든 것 아니었나.
“하지만 저는 싸웠습니다.”
인간을 경멸하고 가축화시키려는 거인들에게 저항했다.
인간을 짓밟으려는 괴물들과 싸웠다.
인간을 없애길 원하는 정령과 요정들에게 대항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스승과 같은 종족인 그들을 위해서 항상 세계와 싸워 나갔다.
그녀의 외침에 이안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가볍게 뛰어 마르잔나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사박.
이안의 손이 회색의 거친 머리칼에 닿았다.
그것이 쓰다듬는 손길에 마르잔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스승님의 손길이다.
아버님의 손길이다.
너무나 오래전에 느꼈고, 이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손길에 그녀는 크게 흔들렸다.
“고생했다.”
그 말 한마디에 마르잔나는 오랜 시간 꾹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