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4)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114화(114/300)
◈ 제114화
57. 전쟁의 여신 – 2
겨우 진정된 마르잔나는 따뜻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이곳에 너희가 계속 남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니 떠날 준비를 해 둬.”
“아버님께서도 함께 가시는 것이겠지요?”
마르잔나는 여왕으로서의 말투를 버렸다.
눈앞에 있는 소년이 스승이며 아버지임을 알았다.
그의 앞에서 여왕일 필요는 없었다.
모든 책무와 부담을 벗어던진 채 딸로서 그녀가 물었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곳에 갈 이유는 없지.”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서 얻을 것은 없으니까.”
이안이 딱 잘라 말하자 그녀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곳에서라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탑의 지배자들은 다른 층을 오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력을 다한다면 탑에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에 이안은 웃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고 창가 쪽으로 향했다.
얼음의 세계.
인간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구축한 나라.
그곳을 둘러본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저들을 포기할 수 있다면.”
그 말에 마르잔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를 따라가고는 싶다.
하지만 자신만 바라보는 저 안타까운 자들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무시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저 스승을 위해 인간을 아끼고 사랑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계속 그들을 보살펴 왔다.
그렇기에 여왕으로서의 자신을 바로 버릴 수 있다고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여전하군요.>
<여전히 상냥합니다.>
키르케가 한마디 하자 이안은 피식 웃었다.
그 말대로다.
그녀의 상냥함은 다른 자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 역시 슬라브드에서 추방당했겠지? 그 세계에 필요 없다는 이유로 말이야.”
“……예.”
“그리고. 그곳에서 필요 없는 것들이 이곳으로 계속 추방당하겠지.”
“……그렇습니다.”
이곳에 자리 잡고 천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슬라브드에서 많은 것이 이곳으로 버려졌다.
“얼음 괴물, 난폭한 정령과 요정. 그리고 용들. 혹은 거인일 수도 있겠지.”
“…….”
“슬라브드의 지배자에게 방해되는 모든 것들이 이곳으로 추방되겠지.”
끄덕.
마르잔나가 동의하자 이안은 씩 웃었다.
<지배자라고 하지만 그들 역시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세계가 연결된다는 것은 세계관이 공유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거인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얼씨구나 하며 다른 세계에 자신들의 폐기물을 버리는 것일 뿐이다.
머지않아 그것이 자신들의 파멸을 불러올지도 모른 채.
“아무튼 머지않아 차원 문은 닫히게 될 거다. 저들이 너의 보호 없이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는 알 거다. 마음대로 해.”
“저들도 아버님의 세계에 간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갈 수가 있나?”
이안이 묻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막대한 힘을 지닌 그녀조차 이 탑을 빠져나가려면 거대한 혼의 부하를 겪어야 했다.
그것을 나약한 이들이 버텨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이안에게 그것을 부탁할 것인가?
자신의 욕심때문에 그 부담을 그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르잔나는 시무룩해진 채 말했다.
“그럼 아버님께서 차원 문을 닫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이안은 창밖을 보았다.
눈보라가 그쳤다.
얼음 성채로 가기 위한 길이 열린 탓일까?
많은 탐험가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럼 길이나 만들도록.”
“아버님께서는…….”
“일단 꼭대기까지는 가 볼 생각이다만. 일이 끝나면 다시 얘기를 할 시간 정도는 생길거다.”
이안의 말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끔씩 4층에서 내려오는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방인들이 4층이라 부르는 발할라의 지배자인 프레이야는 전사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이안 정도의 힘을 가진 자는 반드시 자신의 손에 넣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아버지라면 절대 프레이야를 위한 전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수많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녀의 사자라는 발키리들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전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프레이야는 영악한 자로 아버님을 자신의 전사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걱정 섞인 조언에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이안이 가볍게 말하자 마르잔나는 활짝 웃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스승은 참 변함이 없다.
저 대담함에는 정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 부디 목적하신 바를 이루시길 빌겠습니다.”
마르잔나는 지팡이를 들었다.
얼음으로 계단이 만들어지고 있는 와중에 한 줄기 빛 무리가 내려왔다.
그 빛 무리에서 나온 것은 빛의 날개를 지닌 여인들이었다.
한 자루 창을 들고 있던 은발의 여전사들은 마르잔나를 노려보았다.
“위대한 프레이야 님께서 명하신 날이 지났다.”
“이 세계의 여왕이여. 프레이야 님의 수족이 되어라.”
이안은 그녀들을 보다가 마르잔나에게 물었다.
“뭐냐? 저건.”
마르잔나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발키리입니다.”
“프레이야의 부하들?”
“예. 이 위의 지배자인 프레이야는 탑의 모든 세계를 차지하고 방법을 찾아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렇게 발키리와 이방인 전사들을 보내 협박하고 있었다.
이 세계를 내놓으라고.
모든 것을 프레이야에게 바치라고.
그들의 공격을 마르잔나는 벌써 백여 년 이상 막아 내고 있었다.
“제 보물을 훔쳐 간 자들도 프레이야를 따르는 자들이었지요. 아인헤랴르의 자격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프레이야를 따르는 전사들.
그들의 문신을 보물을 훔쳐간 악적들이 새기고 있었다.
“그들은 악마와 손잡고 있었지. 그럼 프레이야가 악마와도 손을 잡은 것인가?”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마르잔나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거만하기 그지없는 발키리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 공격에 발키리들의 목이 떨어진다.
그녀들의 몸이 빛이 되어 사라진 것을 본 마르잔나는 씁쓸해했다.
“스승님께서 나서시지 않아도 됩니다. 전 이곳을 지키는 여왕. 제가 지킬 수 있습니다.”
“악마와 손을 잡았다면 나에게도 방해되는 자다.”
간단하게 말한 이안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마르잔나는 한숨을 쉬고 걸었다.
보물이 모이는 곳에 도착한 그녀는 중심에 있는 얼음에 다가갔다.
그 안에 있는 상자에 손을 뻗자 얼음이 열린다.
소중한 듯 상자를 쓰다듬고 안을 열어 본 그녀는 내부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슬라브드의 대장장이 거인들조차 이런 귀한 것은 만들어 내지 못한다.
정령도, 요정도, 인간도.
그 누구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거울.
다른 차원의 기술로 만들어졌다는 거울을 보며 그녀는 빙긋 웃었다.
* * *
빛의 문을 지나 도착한 곳은 끝없이 넓은 평원이었다.
그 평원의 여기저기에서 전투의 함성이 들린다.
<발할라입니다.>
“그러게.”
쇠와 피의 향기가 넘쳐 나는 곳에 서 있던 이안은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걸었다.
은은한 무지갯빛을 내뿜는 산의 정상이 프레이야의 신전일 것이다.
그때였다.
-크르르르르……!!
거대한 늑대를 닮은 괴물이 평원에서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자 먀네는 털을 곤두세웠다.
“샤아아악!!”
그것이 거슬렸던 것일까?
거대한 늑대는 커다란 입을 벌리며 위협을 시작했다.
그리고.
“스콜을 잡아 전사의 기상을 드러내라!!”
하늘에 있던 발키리 하나가 외쳤다.
그녀의 옆에 있던 다른 발키리들이 포효했을 때.
이안의 뒤쪽에서 외침이 들렸다.
“성도님!! 피하십시오!!”
“태양이여! 이곳에서 당신의 자손을 지켜 주소서!!”
성력과 함께 태양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이안은 그쪽을 보았다.
허름하기는 하지만 태양교단 성기사의 갑옷을 입은 이들이 보인다.
그들과 함께 있던 사제들이 성력을 이용해 거대 늑대인 스콜을 공격했다.
“어서!! 아인헤랴르들이 오기 전에 잡아야 합니다!!”
사제들을 독려한 성기사들이 철퇴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걸 지켜보던 이안은 검을 뽑았다.
천마신공 태양의 장.
태양풍.
그의 검에 담긴 기운들이 검기의 다발이 되어 스콜의 몸에 꽂혔다.
그 공격에 거대 늑대 스콜이 단번에 갈라지자 하늘에 있던 발키리가 창을 들었다.
-스콜의 처단은 이방인이 하였다!!
그녀의 선언이 끝났을 때쯤 언덕에서 한 무리의 전사들이 보였다.
프레이야의 문신이 새겨진 그들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이안과 성직자들을 노려보았다.
“……두고 보겠다.”
그 한마디를 끝낸 그들이 물러나자 성기사는 안도하며 이안에게 다가왔다.
“정말 굉장하시……. 엇?! 혹시 이안 성도님 아니십니까?”
<태양교단 성기사. 카르텟입니다.>
<킬레디 산에서 태양마를 빌려준 성기사입니다.>
투구를 벗은 금발의 성기사는 활짝 웃었다.
키르케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난다.
“오래간만입니다. 킬레디 산에서 뵈었었지요?”
“하하. 예. 여기서 성도님을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언제 올라오신 겁니까?”
“방금 왔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성도님께선 이곳에 왜 오신 겁니까?”
“탑을 조사해 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전사의 자격부터 얻으셔야겠군요. 처음이시지요? 저희는 이곳에서 머무르며 처음 오시는 탐험가분들과 부상자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일을 하시다니.”
“이 정도는 별것 아닙니다. 자. 일단 함께 가시지요. 저희가 머무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성직자들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이 와 주길 바라는 그들에게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입니까?”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의 말대로 멀지 않은 곳에 태양교단의 신전이 있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탐험가들이 머무르고 있는 것인지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마을은 저희가 만든 마을로 태양의 쉼터라는 곳입니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들이라면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곳이지요.”
“그렇군요. 참 보기 좋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니 탐험가들이 보였다.
식량을 나누는 이들도 있었고, 또 부상을 치료해 주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 돕고 있는 그들 사이를 지나 신전의 중심에 도착하자 그곳에 한 중년의 수녀가 탐험가들과 함께 빵을 빚고 있었다.
“아녜스 수녀님!”
“어머? 카르텟 성기사님! 무사하셨군요!”
발키리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나갔던 이들이 빨리, 그리고 무사히 돌아온 것에 그녀는 기뻐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카르텟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 성도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말에 수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 이안 성도님 말씀이십니까?!”
킬레디 산의 악마를 쓰러트리고 플랫 성기사와 에우리 사제를 구한 자.
태양교단의 본단에서도 이름난 이안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아녜스는 밀가루 범벅인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워하며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안 성도님.”
“별말씀을. 그런데 여긴 뭡니까?”
“아. 여기는요.”
그녀는 밝게 웃었다.
“태양의 쉼터입니다. 전사가 아닌 분들을 돕기 위한 곳이지요.”
“이곳의 지배자인 프레이야가 내세운 시험입니다. 자신의 전사들과 사냥 대결을 펼치고, 이기는 자들만이 전사로 인정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전사가 아닌 자들을 제거하려 합니다.”
“어? 그럼 제가 스콜을 잡은 게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험은 계속 치러지니까요.”
아녜스는 씁쓸한 어조로 말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험에서 실패하거나, 혹은 부상자들은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래도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시험을 통해서 지배자에게 선물을 받는 경우도 많답니다.”
“예. 어쨌든 방금 시험이 있었으니 며칠은 조용하겠죠. 그동안 부상자들을…….”
아녜스가 말하려 했을 때.
하늘에서 발키리들의 외침이 들렸다.
“이방인들이여!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나서라!!”
“나서지 않는다면 그대들에게 주어진 전사가 아닌 자의 쉼터를 공격하리라!!”
그걸 들은 탐험가들과 성직자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벌써?!”
“쉴 틈을 안 주는구만?!”
탐험가들이 투덜거리는 사이 카르텟은 이안을 보며 말했다.
“어쩌면 성도님을 주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이안은 웃었다.
“많이 보라지요.”
그리고 앞으로 걸으며 싸늘하게 덧붙였다.
“이제 볼 날도 며칠 안 남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