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9)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159화(159/300)
◈ 제159화
80. 내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1
얼굴 없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걷던 이안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아카데미의 하급 기숙사였다.
“여긴 왜?”
“가장 큰 공포를 느꼈던 곳이 여기니까.”
그는 성큼성큼 하급 기숙사 뒤편의 공터로 향했다.
빙의체인 이안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공포.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끝이라는 공포를 느꼈던 곳이 바로 여기다.
그리고.
그곳에 한 송이의 꽃과 함께 두 명이 있었다.
귀족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
그들을 보던 윌디는 이를 악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저들이 누군지는 알 것 같았다.
“이안 이 멍청한 놈! 쓸모없는 벌레 같은 자식!!”
“차라리 빨리 죽기나 할 것이지! 네 어미처럼 빨리 죽기나 할 것이지!!”
아까 그들이 이안의 형들이었다면 저들이 이안의 부모님이겠지.
그렇다면 저들을 이안이 치게 둬서는 안 됐다.
가족을 두 번이나 죽이는 일이 될 테니까.
“여러분!! 공……!!”
다들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모두가 무기를 뽑은 순간.
이안은 손을 들었다.
<프레데온의 대마법을 사용합니다.>
-콰아아아앙!!
하늘에서 쏟아진 거대한 빛이 둘을 일격에 소멸시켜 버렸다.
그들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에 이안이 신경도 쓰지 않자 생도들은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왜.”
“아니…… 너 괜찮냐?”
괜찮다.
진짜 가족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그는 시큰둥했지만 생도들에겐 아까보다 더욱 따뜻한 시선이 담길 뿐이었다.
“됐고. 이제 다 했으니까. 슬슬 나가자고.”
“어? 어.”
빛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단 한 송이의 꽃만이 남아 있었다.
피처럼 붉은 잎을 지닌 꽃이었다.
아직 개화하지 못한 꽃망울을 보던 오에리나는 감탄했다.
“와. 예쁘다.”
“예쁜 것은 독을 품기 마련이지.”
“가까이 다가가지 마. 위험할지도 몰라.”
하륜과 그래진이 냉정하게 말하자 오에리나는 한쪽 눈을 깜빡였다.
“어머. 그럼 나도 위험하겠네?”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말을 생도들은 무시했다.
오에리나가 뻘쭘해하는 사이 윌디는 멀찌감치서 꽃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이게 악몽의 꽃이에요? 이안. 당신이 말한 것보다는 덜 위험해 보이는데…….”
“아직 꽃이 핀 것이 아니니까.”
느긋하게 말한 그는 꽃을 한 손으로 쥐었다.
“그냥 잡아도 괜찮은 거야?”
“상관없어.”
이안은 거칠게 꽃을 잡고 당겼다.
그 순간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우득!!
거대한 뿌리가 땅을 뚫고 드러난다.
핏빛의 덩굴이 여기저기서 몰려오기 시작한다.
뽑히는 것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은 꿈마저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막기 위해 악몽들이 나타났다.
“꼬끼오오오!!”
“박바레! 이 머저리가!!”
-울컹! 울컹!
“외부인을 감지하였습니다. 외부인을 감지하였습니다.”
-화르르륵!!
-우직! 우지직!!
그와 동시에 생도들에게 공포의 존재들까지 나타났다.
이안에게 들어서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생도들은 긴장하며 무기를 들었다.
어떻게든 싸우기 위해서.
자신들의 내면에 있는 공포에 저항하기 위해서.
그들과 공포의 존재가 부딪치려는 순간.
<악몽의 꽃을 파괴하였습니다.>
이안은 완전히 꽃을 뽑아 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하늘이 깨진다.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져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
당황한 하륜이 외치자 그는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진 꽃을 바닥에 휙 버렸다.
“다 끝났으니까 수업 들어갈 준비나 해라.”
그 말을 끝으로.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 * *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눈을 뜬 이안은 자신의 앞에 있는 백발의 미녀를 뚱하니 바라보았다.
분명 잠들기 전까지는 없던 여자다.
은은한 빛을 내뿜는 그녀를 향해 먀네는 털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바람의 정령왕 실피론입니다.>
정령왕.
수많은 정령들을 이끄는 군주이며 자연의 일축을 담당하는 자.
그 힘은 마음만 먹는다면 세계를 충분히 뒤흔들 정도라고 한다.
그런 정령왕이 강림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재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카데미가 멀쩡한 이유는 실피론이 자신의 힘을 줄인 채 현계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생각은 있으시네.”
“이곳은 너의 영역이라지? 그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일 뿐이야.”
“먀아아……!!”
먀네는 폴짝 뛰어 그의 어깨에 앉았다.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던 실피론은 손을 뻗었다.
은은한 바람이 먀네의 몸을 띄운다.
보통 고양이라면 난리를 쳤겠지만 먀네는 그저 그 바람을 즐길 뿐 이었다.
“너무 오래 현계해 있는 건 정령에게 좋지 않아. 가끔씩은 돌아오렴.”
“먀아! 먀먀!”
실피론은 먀네를 손으로 잡아보았다.
그 손에 매달린 먀네가 꾹꾹이를 시작하자 그녀는 빙긋 웃었다.
“이제 완전히 이 세상의 고양이가 다 되어버렸구나?”
“먀아~.”
“너나 어둠의 정령이나. 누아브나.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취향이라니까.”
“먀아~”
가볍게 먀네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먀네에게 정령력을 불어넣었다.
하얀 털에서 빛이나자 먀네는 기분 좋게 그르렁거렸다.
먀네를 다시 이안에게 돌려 준 실피론은 그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당신. 보통 인간이 아니지?”
“세상에. 그럼 정령을 마음대로 넣었다가 뺐다 할 수 있는데 보통 인간이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으음…… 말투 참. 옛날 하이 엘프의 왕조차 나에게 숙였는데.”
“무릎이라도 꿇을까?”
그런 말을 한다면 세계의 검을 먹여 주겠다.
이안의 싸늘한 어조에 그녀는 미소 지었다.
“그럴 필요는 없어. 솔직히 이 세계의 예의 따위에는 관심 없고.”
“그럼 됐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정령사가 되어서 정령과 계약을 해.”
“난 얘 주인인데.”
이안이 먀네를 들었다.
허리가 쭉 늘어난 먀네가 느긋하게 하품하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빛의 정령 말고. 다른 정령과 계약을 하라는 거지. 이왕이면 바람. 이왕이면 좀 높은 쪽이랑.”
“정령과 계약을 시킨 후 그 정령을 통해서 내 정보를 정령계에서 얻겠다는 건가?”
이안이 단번에 속셈을 눈치채자 실피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그윽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싫다면?”
“그럼 어쩔 수 없고. 하지만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나쁜 제안이지.”
이안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차원의 균열이 만들어지며 붉은색 불길의 새 하나가 잡혀 끌려 나왔다.
“끼이익!!”
불의 중급 정령인 파이어론이다.
이안에게 손이 잡힌 중급 정령은 불길의 날개를 퍼덕였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내가 원한다면 정령은 얼마든지 불러낼 수 있는데.”
“그렇게 끌어내서 시킬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네가 부르는 방식은 정령을 강제로 현계시키는 방식이야. 만약 싸우다가 큰 피해를 입으면 그대로 소멸이라고.”
“알아.”
“그리고 듣자 하니 넌 악마와 싸운다면서?”
“그렇지. 아. 뭐 계약이 없으면 정령들이 제대로 못 싸운다고 하려고?”
이안은 피식 웃었다.
“못 싸우면 어쩔 수 없고. 그런데 정령들도 악마 싫어하지 않나? 판 깔아 주면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 아냐?”
“……하아.”
그녀는 어깨를 으쓱인 후 몸을 돌렸다.
“다시 찾아올게.”
“올 때 이왕이면 악마, 특히 칠대 죄악이나 악마들의 신 루벨린에 대한 정보라도 좀 가지고 오면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얘기하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은 채 정령계로 돌아가 버렸다.
실피론이 사라지자 이안은 먀네를 쓰다듬었다.
“먀아아아~.”
“다른 애들은 어디 갔어?”
“먀!”
그의 손길을 즐기던 먀네가 뛰어올랐다.
그리고 문 쪽으로 다가가 손잡이에 앉았다.
-끼이익…….
문 바깥에 두 소년이 서 있었다.
노른과 아일페틴이었다.
“실피론 님은 가셨나?”
“어. 갔다.”
“그래서…… 너 실피론 님과 계약했어?”
“아니. 안 했는데?”
이안이 대꾸하자 둘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빠르게 말했다.
“솔직히 내가 불의 정령이라서 하는 말이 아닌데. 정령왕과 계약할 거라면 난 불의 정령왕이신 이그니스 님을 추천할게.”
“불의 정령왕보다는 역시 대지의 정령왕이 최고지. 야. 너 공사 같은 거 많이 하잖아? 대지의 정령왕이신 누아브 님이시라면…….”
“그래. 그들과 만나는 정도는 해 주지.”
“……응?”
“아니 뭔가 이상한데? 야. 정령왕이라고. 정령왕.”
“그래. 그래. 수고했다. 가 봐.”
둘이 정령계로 퇴거되고 잠시 후.
벌컥 문이 열리며 아까 같이 악몽 속에 있었던 생도들이 들어왔다.
“휴우…… 정말 별 경험을 다 했네요.”
“그러게 말이야.”
“자 자. 다들 모여 봐. 우리 약속하자고.”
그 악몽에서 있었던 일.
절대 비밀로 하기로.
모두가 동의하는 동안 이안만이 대답하지 않았다.
“……야. 넌 왜 안 하냐?”
“어? 나도 해야 하나?”
“너도 봤잖아!”
박바레가 버럭 외치자 이안은 피식 웃었다.
“걱정 마라. 그런 얘기 꺼낼 일 없으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네.”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자. 그럼 차나 한잔하자.”
“너희 수업 안 들어가냐?”
악몽에서 보낸 시간이 많지만 꿈은 꿈일 뿐이다.
기껏해야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제 막 해가 뜬 시간이니 슬슬 이들도 수업 참가 준비를 해야 할 거다.
이안이 묻자 블랜치는 웃었다.
“하하. 오늘 같은 날은 친구를 위해서 자체 휴강 하려고.”
“암. 당연히 그래야지.”
박바레도 동의했다.
“오늘은 나가서 놀자. 너도 요새 맨날 일만 했잖아.”
“그래. 그래.”
“저희가 살 테니까요. 이안. 당신 기분도 풀어야죠.”
<주인님께서 가족을 두 번 죽였다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지만 저 호의가 나쁘다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이안은 웃으며 말했다.
“가서 수업이나 들어.”
그들이 투덜거리며 나가자 이안은 옷을 갈아입었다.
방에서 나온 그가 기숙사의 로비로 내려가자 소파에는 아란세가 앉아 있었다.
“레드 시티로 갈 준비는 됐니? 할 일 있으면 하고.”
“아뇨. 다 했습니다.”
“엘단 백작님께서 그러던데. 뭔가 문제가 있다면서?”
“해결됐으니 걱정 마시죠. 그런데 라키드는 어디 있습니까?”
“금방 올 거다.”
그의 말대로 잠시 후 기숙사 안으로 라키드가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스칼렛 왕국의 국왕 폐하가 되실 분이 표정이 왜 그러나?”
아란세가 애써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스칼렛 왕가에서 라키드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리 말하는 것이다.
그 농담에 라키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야.”
“레드 시티에 가면 아이스빈 백작가에서 마중을 나와 있을 거다.”
“엘단 백작님도 같이 가시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지.”
그렇게 셋은 아카데미 바깥으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엘단과 합류하고 아카데미의 게이트를 이용해 레드 시티에 도착했을 때.
이안 일행은 레드 시티의 모습에 어이없어했다.
“뭐야?”
레드 시티의 앞은 들어가고자 하는 이들로 가득했고 내부 곳곳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수도 경비대가 귀족원을 점거하였습니다.>
<반란이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그 검은 연기의 이유를 키르케는 빠르게 잡아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