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6)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176화(176/300)
◈ 제176화
88. 바다에서 생긴 일 – 1
영웅제가 끝났다.
예상했던 것처럼 영웅제 상급에서의 우승은 B반이 차지했다.
“개인 우승 하지 못한 건 좀 아쉽네.”
발라가 웃으며 말하자 하륜과 그래진, 블랜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스터에 올랐으면서도 그가 개인 우승을 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환상 마법에 걸려서 오러를 막 쓰다가 지쳐서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러니까 마법 방어술도 익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니 그걸 떠나서 왜 멋대로 나가서 싸우냐? 네가 이안이냐?”
“아오. 내가 더러워서 빨리 마스터 되든가 해야지.”
그들의 구박에 발라는 머쓱해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를 향해 이안은 피식 웃었다.
“우승반 된 것이면 충분하지.”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그나저나 이안. 너는 어땠냐?”
그는 사전에 말한대로 영웅제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저 아카데미 서쪽 구역, 이제는 연구 개발 구역으로 이름 지어진 그곳에서만 영웅제 내내 머물렀을 뿐이었다.
“시약 제조실과 연금술 시험실도 새로 만든다더니. 그건 안 만들려나 보네?”
“일단 방어 시설부터 만드는 게 우선 같아서. 아무튼 기본적인 방어 시설은 만들어 놨어.”
“뭐. 그 티탄인가 뭔가?”
“그래.”
결국 드워프들과 마법사들, 그리고 연금술사들은 영웅제 기간 내내 이안과 함께 티탄 11체를 만들었다.
하나 만드는 데만 해도 한 달이 넘게 걸렸는데 10체를 한 달 만에 만들어야 했다.
물론 한번 해봐서 속도가 붙긴 했지만 그래도 강행군을 해야하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작업자들은 조금도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티탄 제작 과정에서 그들의 실력도 크게 상승했으니 말이다.
“지금 마탑 쪽에서 네가 고안한 마법진 해석한다고 난리던데. 해석법은 안 가르쳐 줬어?”
“가르쳐 줬는데 이해를 못하더라고.”
특히나 핵이라 할 수 있는 마력 심장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 기술이 복합된 것이다.
상세하게 설명을 들어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응용하려면 최소한 몇 년 이상은 익혀야 했다.
그게 아니면 이안에 준하는 천재가 있어야 하든가.
“나도 볼 수 있어?”
“일부긴 하지만. 자.”
이안은 수첩을 꺼내 휙 던져 주었다.
수첩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수식이나 도면, 그 안에 있는 마법진.
동력의 전달 방향 같은 것들까지.
마법, 인체학, 금속학, 연금학, 인챈트학.
그 외에 다양한 학문적 지식이 기반이 되지 않는다면 이해조차 하지 못할 것들이었다.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던 하륜마저도 수첩을 열 장도 채 넘기지 못했다.
“넌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있냐?”
참 보면 볼수록 대단하다 싶었다.
그가 감탄하는 사이 수첩을 쓱 훑어본 발라는 빠르게 덮었다.
“우웩.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 나네.”
“아무튼 가르쳐 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배우겠다는 사람은 없다더라.”
배우기 위해 필요한 기반 지식이 너무 많다.
지금 마법사들로는 감히 감당할 수도 없는 일들이라 마탑에서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오에리나가 들어왔다.
“야. 너희 파티 파트너 어떻게 할 거냐?”
“난 일단 로위나 누나랑 같이 가기로 했지.”
“나도 C반 애랑 같이 가기로 했고.”
다들 이래저래 파트너를 구하긴 했나 보다.
오에리나는 힐끔 이안을 보았다.
“넌?”
“난 파티 참석 안 할 건데? 영웅제 참가도 안 했는데 내가 뭐 하러 거기 끼냐?”
“그럼 이건 어떻게 하냐?”
그녀의 손에는 몇 통의 편지가 들려 있었다.
대부분 이안에게 파트너를 요청하는 신청서였다.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어?”
“오면서 전해 달라고 받았어.”
그녀가 테이블 위에 올려 주자 이안은 하나씩 읽어 보았다.
중급부터 시작해서 상급까지.
개중에는 가문에서 받아왔는지 생도가 아닌 자들의 편지도 있었다.
“허가만 받으면 아카데미에 들어올 수는 있으니까 말이야.”
“흠…….”
“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
“얼굴 한 번 못 본 사람들이랑 파트너는 무슨. 그냥 하던 대로 해야겠다.”
즉, 파티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가 나가 버리자 윌디는 쓰게 웃었고 오에리나는 아쉬워했다.
그리고 잠시 후 로비의 문이 열리며 윌발과 박바레가 꾸러미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야. 이안 어디 갔냐?”
“방금 나갔는데?”
“어? 못 봤는데.”
“그래? 그런데 그건 뭐냐?”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윌발은 들고 있던 꾸러미를 펼쳤다.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은.
“초청장부터 시작해서 아카데미 파티 파트너 신청서에. 각 기관에서 온 초청도 있고……. 어휴 많다.”
영웅제 기간 동안 이안이 딱히 뭔가 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어디 있겠나.
그렇기에 작년 이상으로 더 많은 곳에서 그를 데려오고자 그에게 이런 것을 보낸 것이었다.
“걔는 어디로 갈지 정말 의문이다.”
아카데미 정문으로 향한 이안은 그곳에 서 있는 티탄들을 확인했다.
은색의 갑옷 가슴 부분에는 아카데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지금은 적이 없어서 저렇게 석상처럼 서 있지만 아카데미에 적이 나타나면 본격적으로 활약할 것이다.
“저런 건 왜 만든 거야?”
그의 뒤로 로위나가 다가오며 물었다.
아카데미를 지키기 위한 가디언이 있으면 당연히 좋다.
그런데 이안이 있는데 굳이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다.
“내가 계속 여기 붙어 있을 수는 없잖아. 그리고 라키드 호위용으로 두어 대 보내 줄 생각이고.”
“음. 라키드 폐하의 호위용이라. 저게 그렇게 강한가?”
“잊힌 도시의 가디언보다는 강하지.”
“그 정도나 된다고?”
“뭐야. 상세 스펙 못 들었어? 대마력이라든가 대오러라든가. 출력 부분도 적어서 제출했는데?”
“으. 요새 사업에다가 생도회 일정에다가 영웅제에다가. 그리고 교칙 정리와 문제 생도 처벌까지 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 보고서는 제대로 못 봤지. 학장님께서 허락하셔서 나도 배치에 승인한 거지만.”
이안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문 앞에 있던 티탄이 움직인다.
-위이잉. 철컥, 철컥, 위잉!!
낮은 장치음과 함께 티탄의 은색 갑옷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걸 본 로위나는 깜짝 놀랐다.
“저거 마법 방어에 정령력 감소에……. 저건 또 뭐야?”
“신성 문양. 저게 있으면 악마의 공격은 대부분 통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지.”
-우우웅! 철컥! 부우우웅!!
순간 티탄의 몸체가 떠오른다.
다리와 등 부분에서 열린 구멍에서 치솟은 강력한 불길이 그의 몸을 띄우자 로위나는 입을 벌렸다.
“하늘도 날 수 있다고?”
“거기에 속도도 꽤 빠르지. 물론 하늘을 날면 충전된 에너지가 크게 줄어들지만.”
그래도 아카데미와 아카데미 마을을 수호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 외에도 다른 기능들을 이안이 설명하자 로위나는 감탄했다.
“이거 하나만 있어도 어지간한 영지 하나는 제대로 보호할 수 있겠는데. 종합 전투 능력만 따진다면…….”
“어지간한 마스터 수준은 될걸.”
“굉장하네. 다들 이걸 만들려고 하겠는걸?”
“제작 비용과 노력 생각하면 그냥 용병단 고용하는 게 나을 거다. 요청 들어오면 그렇게 말해.”
“그 정도야?”
“재료도 재료지만 시설도 중요하지. 그리고 조립이 가능한 사람도 아직은 나밖에 없고.”
“이야…… 그럼 이거 만들어서 팔면 부자 되겠네?”
“돈 벌려면 저거 안 팔아도 얼마든지 벌 수 있어.”
이안은 딱 잘라 말한 후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떠 있던 티탄이 내려와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태양과 달의 빛을 받아 에너지 자동 충전도 되니까 친환경적이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이거 물어보러 왔나?”
“아니. 이거 주려고.”
로위나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솔트 후작가에서 보낸 의뢰 요청서였다.
“의뢰?”
“지금 에메랄드 비치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라고.”
“의뢰 요청을 빌미로 날 거기로 보내려는 것 아냐?”
이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로위나는 고개를 저었다.
“널 속였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는데?”
즉, 진짜 의뢰라는 이야기다.
이안은 요청서의 내용을 읽어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레인 발트호라.”
“트레인 발트호는 솔트 후작가의 자랑이기도 한 대형 범선이야. 솔트 후작령에 있는 대표 휴양지인 에메랄드 섬과 에메랄드 비치를 오가는 유람선이기도 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배가 실종되었다.
난파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이 출항일은 날씨도 좋았다.
거기에 에메랄드 비치에서 섬까지는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트레인 발트호가 에메랄드 비치로 돌아왔어.”
“배에는 아무도 없었다……라는 건가.”
전투의 흔적이라도 있었다면 해적 놈들이나, 혹은 해양 몬스터의 짓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흔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냥 배는 바람과 해류를 타고 에메랄드 비치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솔트 후작가에서도 자체 조사를 좀 해 봤는데…… 절반 정도는 악마와 관련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인어와 관련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인어라.”
“인어에 대한 전설은 유명하지.”
바위에 앉아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선원들을 바다에 빠트리게 한 후 자신들의 소굴로 끌고 간다고 한다.”
“끌고 가서 뭘 어쩌지? 식량으로 삼나?”
“글쎄? 전설에 따르면 누군가는 인어와 인간이 결혼을 한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잡아먹는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바다의 신을 위한 제물로 삼는다고 하고.”
전승 자체는 바리에이션이 꽤나 많이 있었다.
“그래서 태양교단 사제님께 확인을 부탁드렸는데…… 배에 악마의 기운이 조금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로위나가 공문으로 요청했던 대로 일단 아카데미에 의뢰를 한 것이란다.
“어때? 가 볼 생각 없어?”
이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는 게 낫겠군.”
“좋아. 그럼 그렇게 처리할게.”
그녀가 가자 이안은 반지를 쓱쓱 만지작거렸다.
잠시 기다리니 붉은 연기와 함께 나타난 크라울리는 티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저, 재수 없는 문양은?!”
“아카데미의 가디언이다. 저건 신경 쓰지 말고. 너 솔트 후작령에서 생긴 일 아냐?”
이안이 간단하게 사건에 대해 설명하자 크라울리는 갸름한 턱을 쓰다듬었다.
“솔트 후작령은 태양교단의 위세가 강해서 악마들이 잘 안 가는데. 하지만 바다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옛날 일이긴 한데. 질투의 루린을 섬기던 악마들이 인어들과 싸웠다고 하더라. 그러며 그들이 영지에서 꽤 떨어진 바다의 작은 섬에 남았다던데.”
“왜?”
“그건 나도 모르지. 어쨌든 질투의 루린은 소멸되었고, 그 악마들을 다른 악마들이 흡수하기 위해 움직인 것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 배에 악의가 깃든 거고.”
“악마들이 배를 공격한 것은 아니다?”
“그건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밑에 있는 애들은 아니야.”
물론 그녀가 모르는 다른 대악마가 힘을 키우기 위해 움직였을 수도 있다.
“한번 알아볼까?”
“어. 알아봐. 그리고 솔트 영지는 태양교단의 위세가 강해서 악마가 못 온다고?”
“응. 특히 에메랄드 비치 쪽은 좀 심해. 거긴 아무래도 고위 귀족들이 많이 오는 휴양지니까 성력에 의한 보안이……. 저기 이안?”
이안이 몸을 돌리고 가 버리려 하자 크라울리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야! 너 거기서 나 부르지 마! 진짜야!! 거기 가면 엄청 아프다고!”
그녀를 향해 이안은 고개를 돌리고 싱긋 웃었다.
“아파 봤자 긴고아만 못하겠지.”
“아니. 야!”
“걱정 마. 일 시키려고 부르는데 내가 그 정도 대응도 안 해 놓겠냐?”
그 말에도 크라울리는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자식. 또 뭘 시켜먹으려고.”88. 바다에서 생긴 일 – 2
여기저기서 초청이 많이 왔지만 이안은 그 초청을 모두 거절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귀족들이 불만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가 어디 그런 것을 신경이나 쓰겠나.
그렇게 파티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자 그는 기숙사로 향했다.
“방학 때는 어디 있으려고?”
아카데미의 방학 중에는 기숙사가 폐쇄된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이안이 머물 곳이 걱정된 위디아가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난 그냥 여기 남을 건데.”
“방은?”
“연구 개발 구역에 방 있어.”
“오. 그나마 다행이네. 그래도 혼자 심심하지 않겠냐?”
박바레가 끼어들며 묻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방학 때 마탑과 연금술사 길드, 그리고 드워프들이 아카데미를 찾기로 했다.
새롭게 지어진 아카데미의 시설들을 견학하고 그곳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만큼 심심할 틈은 없을 것 같았다.
“야. 에메랄드 비치에는 올 거지?”
발라가 묻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륜이 준 초청장과 의뢰 요청서를 들었다.
“가긴 가야지. 그쪽의 의뢰도 있으니까.”
“방학인데도 안 쉬고 의뢰라니…… 늘 고생이 많구만.”
그래진이 씁쓸해하며 말하자 다른 생도들은 어이없어했다.
그 역시 이번 방학에도 안 쉬고 유적을 돌기로 했으면서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들의 시선에 그래진은 안경을 고쳐 쓰며 가방을 들었다.
“아무튼 솔트 후작령에서 보자고.”
그가 먼저 떠나고 다른 생도들도 떠나기 시작한다.
모든 생도들이 가 버리자 이안은 옆에 서 있는 아란세에게 물었다.
“교관님은 언제 가실 예정입니까?”
“너도 갈 것 아니냐? 그때 같이 가지.”
“알겠습니다. 그럼 전 하던 작업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멍멍!”
“먀아~.”
이안의 뒤를 누아브와 먀네가 따랐다.
그들을 데리고 연구 개발 구역에 도착한 그는 바로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앞에는 한 마법사가 보고서를 들고 서 있었다.
“트린미어 학파의 톨레긴이라고 합니다.”
중년의 마법사는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이안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가 내민 보고서를 확인한 이안은 내용을 읽어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이안 생도님.”
톨레긴은 활짝 웃으며 보고서를 안고 달려갔다.
그가 멀어지자 이안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연구실 안에는 각종 부품들과 몬스터 재료, 시약이 있었다.
“뭘 만들려는 거지?”
따라 들어온 누아브가 묻자 이안은 그의 털을 하나 뽑았다.
정령력이 담긴 털을 시약 안에 넣고, 그 안의 정령력을 추출해서 철제 관 안에 넣은 이안이 세공을 시작한다.
빠르게 마법진을 그려 낸 후 마력을 부여한 그는 철제 관을 다른 마법진 위에 올렸다.
-우우웅…….
낮은 진동음과 함께 그 위에 올려진 철판이 둥둥 떠오른다.
“레일로드 개량. 지금 방식으로는 자금이 너무 들어가겠더라고. 원가 절감과 효율만 좀 높여두게.”
“프레디시안 백작가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그거?”
“음. 어쨌든 그게 만들어지면 나도 재료 수급이 편할 테니까.”
마법진의 세공이 끝난 철제 관을 치우고 다시 그가 작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로위나.”
“……어떻게 알았어?”
방학이 되었지만 로위나도 솔트 후작령으로 복귀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일이 워낙 많으니 말이다.
생도회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 이거. 보고서.”
그녀가 준 보고서는 얼마 전 아카데미에서 시행했던 사업 중 하나였다.
몬스터 재료들의 납품 및 가공에 대한 사업인데 미얄 산맥에서 생도들이 얻어 내는 것을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에볼 왕국의 트러핀 자작가와 마찰이 좀 있었어.”
아카데미와 몬스터 재료 가공 계약은 그쪽에서 맺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들과 거래를 끊고 프레돈 아카데미에서 자체적으로 가공을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이권을 빼앗긴 트러핀 자작가에서는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문제는?”
“딱히 없어. 분통을 터트렸다고 해서 아카데미에 뭔가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그래?”
“응. 그리고 판매나 가공 재료 구매를 위한 루트는 솔트 후작가와 프레디시안 백작가를 이용하기로 했어. 또 스칼렛 왕국과 거래하기도 쉬워져서 문제될 것은 더 없지.”
그녀가 준 보고서를 보지도 않은 채 이안은 하던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든 말든 로위나는 계속 보고했다.
“그리고 티탄을 스칼렛 왕국에 보내기 위한 작업은 끝내 놨어. 바로 보내도 될 거야.”
“너 생각보다 일 잘한다?”
“내가 잘한다기보다는 네가 잘해서 그런 거겠지.”
뭔지도 모르는 가디언을 국왕의 옆에 호위로 붙인다는 것.
국왕을 호위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불쾌한 일이다.
하지만 그걸 만든 것이 이안이라는 말 한마디로 쉽게 납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양교단의 징계가 풀릴 때까지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용 비용은 내기로 했으니까 나쁠 것도 없고.”
“성능 보면 그 이상으로 쓰려고 할지도 모르겠네. 아무튼 내가 갖다 주고 올게.”
“그래.”
그 외에 따로 보고할 것은 없었나 보다.
로위나가 일어나자 이안도 하던 작업을 멈췄다.
그녀와 함께 나가 준비된 티탄의 점검을 끝낸 그는 바로 레드 시티로 향했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일까?
성문을 통과하는 동안 그를 막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이안의 옆에 있는 두 체의 티탄을 보며 신기해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을 지나 궁성에 도착하자 선홍 기사단의 기사 하나가 이안을 반겼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궁성 안으로 들어간 이안은 성의 정원에 마련된 제단에서 기도를 드리는 라키드를 발견했다.
이안이 온 것을 눈치챈 라키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와라.”
“바쁘실 텐데 기도는 꼬박꼬박 드리시는군요.”
“어쨌든 난 지금 사제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가디언을 납품하겠다고?”
“예. 정확하게는 대여지만. 지금 싸울 수 없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라키드는 태양교단에 맹세했다.
징계가 풀릴 때까지 싸우지 않겠다고.
그것을 어길 생각이 없기에 호위로 성기사뿐만 아니라 선홍 기사단에서도 나와 있었다.
그런 인력 낭비 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이안은 옆에 있는 티탄을 툭툭 쳤다.
“이거 쓰십쇼.”
그때였다.
그들이 있던 정원으로 키스가 들어왔다.
“음? 이안. 언제 왔나?”
“방금 왔습니다.”
“아. 그럼 저게 그건가? 요새 마탑과 연금술사 길드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새로운 가디언?”
키스는 신기하다는 듯 이안의 옆에 있는 티탄들을 보았다.
그리고 히죽 웃으며 검을 뽑았다.
“네가 만든 것이니 성능은 끝내주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확인해 두고 싶네.”
“그러시죠.”
이안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키스와 함께 왕궁에 있는 대련장에 도착한 그는 티탄 하나에게 명령했다.
“델타.”
-치이이이익!!
망토와 후드가 벗겨지며 몸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눈 부분에서 푸른 빛이 번뜩인 순간 키스는 오러 블레이드를 뽑았다.
“적을 제압하라.”
“마크 델타. 전투 기동을 시작합니다.”
가벼운 목소리와 함께 티탄이 움직인다.
스스로 움직이는 은색의 갑옷을 향해 키스는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것을 빠르게 움직여 피한 델타는 그대로 그녀를 걷어차 버렸다.
-쿠우우웅!!
자신만만하게 달려들었던 키스가 한 대 맞고 나가떨어졌다.
벽에 부딪히며 흙먼지가 피어오르자 라키드는 신기해하며 델타를 바라보았다.
“오…… 이거 굉장한데……!”
흙먼지를 툭툭 털어 낸 키스는 다시 달려들었다.
그렇게 델타와 키스의 대련이 계속해서 진행되었고 결국 승부는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티탄의 위엄은 확실히 보였다.
“굉장합니다!! 굉장해요!!”
태양교단의 성기사는 박수 치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무리 상대의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한 대련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름난 강자인 키스와 박빙의 승부를 벌이지 않았는가.
“이안 성도님! 혹시 저것. 태양교단에도 보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만약 저것이 있다면 태양교단의 본단에 있는 주교들이나 교황을 보호하기도 쉬울 거다.
성기사가 기대감을 품으며 묻자 이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 재료 공수가 좀 힘듭니다.”
“그럼 재료만 갖춰지면 된다는 것이군요! 교단에 요청할 테니 꼭 저희 쪽에도!!”
“알겠습니다.”
이안이 흔쾌히 승낙하자 성기사는 기뻐했다.
그사이 키스는 떨떠름해했다.
“가디언이라고 해서 좀 얕봤는데…… 저거. 오러도 무효화시키는 거냐?”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건 아닙니다.”
“그래? 그럼 타격을 줄 수는 있다는 얘기군. 고장 나면 어떻게 하지?”
“태양이나 달빛을 받아 충전하며 자가 치유가 됩니다.”
“그런 기능까지 있다고?! 굉장한데.”
“물론 큰 고장은 아카데미에서 수리해야 하고 유지 보수도 꾸준히 해 줘야 하지만.”
“그래도 굉장하군. 마스터 수준의 가디언이라니…….”
괜히 티탄 때문에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니다 싶었다.
그녀가 연신 감탄하는 사이 이안은 티탄 둘을 불렀다.
“델타, 시그마. 대상 보호 임무 수행해라. 보호 대상 및 임시 명령권자를 라키드 스칼렛으로 지정.”
“명령을 수행합니다.”
“명령을 수행합니다.”
이안의 명령에 따라 티탄들은 라키드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옆에 선 티탄을 보며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스터 둘이 호위를 해 주는 호사를 다 누리는군.”
“별것 아닌 호사입니다. 아무튼 전 볼일 다 봤으니 가 보도록 하지요.”
“벌써 가나? 식사라도 함께하는 것이 어떤가?”
이제는 스칼렛 왕국이라는 큰 나라의 국왕이 된 라키드의 제안을.
“바쁩니다.”
이안은 딱 잘라 거절한 후 가 버렸다.
그가 멀어지자 라키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끝까지 자유로운 녀석이로군.”
아카데미로 다시 돌아온 이안은 레일로드 개량 연구에 집중했다.
그렇게 남은 시간 동안 작업을 하던 그에게 키르케가 말했다.
<주인님. 출발 준비를 하셔야 할 시간입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렇습니다.>
스칼렛 왕국에서 복귀하자마자 밥도 안 먹고 계속 작업을 했다.
만약 키르케가 부르지 않았다면 계속 작업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얼추 준비는 끝냈네.”
레일로드의 단가를 낮추기 위한 작업은 다 되었다.
그것을 정리한 보고서와 샘플을 옆에 놓은 이안은 씻고 나와 바로 문을 열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바깥의 정원에서는 먀네와 누아브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연구에 혹사당하던 마법사들이 태평하게 노는 둘을 초췌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안은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안 생도님……?”
“레일로드 경량화 및 단가 절가 방안. 그리고 샘플입니다.”
“헉?!”
“이걸 벌써 끝내셨다구요?!”
“예. 그리고 대량생산하려면 새로운 시약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거 만들려면 시약 제조실도 필요하고 세공실도 따로 있는 게 낫겠군요. 준비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트린미어 학파의 마법사들은 이안이 준 보고서를 들고 달려갔다.
그들이 멀어지자 이안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이안. 준비는 됐냐?”
벌써 솔트 영지로 가야 할 시간이다.
이안은 들고 온 가방을 들어 올렸다.
그걸 본 먀네가 뛰어와 가방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누아브는 부럽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바다는 자신이 가기 좀 그렇다.
“잘 갔다 오라고. 간 김에 푹 쉬고.”
누아브가 꼬리를 흔들며 말하자 이안은 피식 웃었다.
“놀러 가는 거 아니다.”
아카데미에서 나와 게이트를 타고 솔트 후작령으로 이동했다.
게이트에서 나온 아란세는 이안을 보고 물었다.
“에메랄드 비치는 처음이지?”
“교관님은 와 보셨나 봅니다?”
“음. 예전에. 꽤나 아름다운 곳이다. 저기 언덕만 넘으면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보……여야 하는데?”
아란세는 언덕 너머에 보이는 바다를 보며 당황했다.
그가 바라보는 바다의 색은 청에메랄드빛이 아닌, 피처럼 붉은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며 이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에메랄드 비치가 아니라 루비 비치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