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96)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296화(296/300)
◈ 제296화
148. 외전 – 같은 삶, 다른 시선 – 2
시간이 흘렀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던 키르케는 켈투드를 보았다.
멍멍이라 이름 지은 강력한 괴물.
사람의 말까지 할 수 있는 세트와 켈투드는 무언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이 다가가면 이빨만 들이대는 세트는 켈투드에게는 언제나 순한 양 같았다.
그 모습이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리에 접속해 보면 이해할 수 있을까……?’
예전.
신을 떨어트린 날 이후로 진리에 접속한 적이 없었다.
그가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물론 그는 자신의 명령에 저항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좋아했었지만 진리에 접속하는 것만큼은 달랐다.
하지 말라고.
계속 접속하다간 진리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고.
하지만 요즘 들어 진리와의 접속이 무척이나 끌렸다.
진리의 힘이라면 켈투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켈투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 왔다.”
“오늘 손님이 올 일은 없을 텐데요?”
키르케가 의아해했지만 켈투드는 고개를 저었다.
“마을 쪽이야.”
“예? 그걸 어떻게 아세요?”
“천리안을 썼지. 너도 쓸 수 있는 기술이니까 공부해 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떤 손님입니까?”
궁금해하는 그녀에게 켈투드는 담담하게 말했다.
“올라프 왕국의 왕세자가 너에게 구혼하러 왔다.”
켈투드의 말대로 몇 시간이 지나자 대산림에 있는 그의 집에 한 무리가 다가왔다.
금을 녹인 듯한 아름다운 금발 머리에 청색 눈동자를 지닌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와 함께 수많은 수행원들이 집으로 찾아오자 켈투드는 웃으며 반겼다.
“어서 와라. 오웬.”
“오래간만입니다. 현자님.”
금발의 미청년.
올라프의 왕세자 오웬은 정중하게 켈투드에게 인사했다.
켈투드의 뒤에 서 있던 키르케는 의아해했다.
“주인님. 원래 알고 계시던 분이셨어요?”
“예전에 한번 도와줬었지.”
“주인님이요?”
“쟤. 암살자들에게 죽을 뻔했었거든. 내가 옛날에 잠깐 나간 적이 있었잖아. 그거 해결하러 나간 거였어.”
키르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피아스와의 싸움이 끝난 후 켈투드는 꾸준히 외출을 했었다.
하루 만에 들어올 때도 있었고 몇 달씩 집을 비울 때도 있었다.
“그때 쟤를 도와줬었지.”
키르케는 오웬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그는 빙긋 웃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대마녀님도 현자님께 구원받으신 것이지요? 그럼 제 선배님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반갑습니다.”
“그래요. 반갑습니다.”
둘이 예의상 서로 인사하자 켈투드는 문을 열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자고.”
“아. 현자님. 제가 온 이유는 청혼 때문만이 아니라…….”
“알아. 그러니까 들어가서 말해.”
그가 몸을 돌리고 들어가자 오웬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뒤에 있는 수행원들에게 대기하라 말한 후 키르케에게 빙긋 웃어 보였다.
“현자님께선 항상 저러시죠.”
“그렇죠.”
“그런데 어째 대마녀님께서는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는 것 같군요.”
“기분 탓이네요.”
활짝, 꽃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가 들어가자 오웬은 쓴웃음을 지었다.
작은 집에 들어온 오웬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다.
현자와 대마녀가 살고 있는 집치고는 너무나도 작다.
하지만 무척이나 아늑해 보인다.
“그래서? 온 이유가 뭔지 알고 있지만 물어보지. 왜 왔냐?”
그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오웬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씩 웃었다.
“대마녀님께 구혼하려고 왔습니다.”
“그럼 해 봐.”
“예. 키르케 님.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참으로 멋없는 청혼이다.
청혼 따위가 여기 온 진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렇기에 키르케는 담담하게 답했다.
“왕자님과 이어지는 것은 공주님이죠. 마녀는 공주를 괴롭히는 입장이고.”
“그렇긴 하지만 저는 마녀가 더 좋더군요.”
“권해 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저는 사양입니다. 오웬 왕자님께는 더 좋은 분이 계실 거예요.”
거기에 오늘 처음 만났는데 이런 구혼을 받아들이겠나.
그녀가 거절하자 오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긋 웃었다.
“대마녀님을 모시고, 또 마녀님의 후견인이신 현자님도 제 성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음.”
“어떻습니까? 이곳에서 대마녀님께서 모시는 것보다는. 더 넓고, 더 좋은 성에서 많은 하인들이 현자님을 모시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역시나 싶었다.
청혼하러 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켈투드를 모시기 위함으로 보인다.
키르케는 켈투드를 보았다.
그가 이런 것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왜 가만히 있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진 그녀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전 역시 거절입니다. 주인님은 제가 모셔야겠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키르케는 단호하게 말했다.
“주인님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들이 주인님을 모실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군요. 저도 차이겠습니다.”
어쩐지 홀가분해 보이는 오웬은 뒤에서 지켜보던 켈투드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집을 나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키르케에게 꽂혔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키르케 님 역시 현자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한마디에 그녀는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오웬이 떠나고 다음 날.
켈투드는 일이 있다며 대산림을 나갔다.
홀로 집에 남은 채 집안일을 하던 키르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오웬의 말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이 마음에 걸렸다.
켈투드를 모시면서도 그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그를 혼자 두고 있다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그것이 싫었다.
“하. 하. 하. 멍청한 마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신경 쓰지 마세요.”
“네가 하는 생각이래 봐야 위대한 현자님에 대한 생각일 뿐이겠지.”
명백한 조롱에 키르케는 빗자루를 들었다.
그걸 본 멍멍이는 차갑게 웃었다.
“그분은 너 같은 인간보다는. 나 같은 괴물이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이해자가 되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웃기지 마요.”
될 수 없다고?
난 할 수 없다고?
키르케는 그를 노려보다가 이를 드러냈다.
“저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가 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하기 위해서.
진리에 접속하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아…….”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파고들었다.
그러며 봐서는 안 되는 것들과 들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 아아…… 아…….”
그 고통에 키르케가 머리를 감싸 쥔 순간.
“너 내가 이거 하지 말라고 했지.”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천천히 눈을 뜨고 웃었다.
“다녀오셨어요…… 주인님……?”
그런 그녀를 향해 켈투드는 짧게 혀를 찼다.
“아무튼 말은 더럽게 안 들어.”
“후후…… 주인님은 그걸 바라시잖아요?”
그녀의 말에 켈투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긴 하지.”
* * *
진리에 접속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진리에 접속하면 접속할수록 이질적이 된다는 것이니까.
그 부작용은 당연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키르케는 그것을 참았다.
켈투드의 이해자가 되기 위해서.
-챙그랑!
설거지를 하던 키르케는 접시를 떨어트렸다.
파괴된 접시에서 검은색의 알 수 없는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다.
“괜찮냐?”
식탁에 앉아 차를 홀짝거리던 켈투드가 묻자 키르케는 애써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래? 내가 보기엔 안 괜찮아 보이는데.”
대답하지 않은 그녀는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거렸다.
진리에 접속했기 때문일까?
염력을 쓰는 데도 마력이 거의 들지 않았다.
접시의 파편을 염력으로 완전히 소멸시킨 키르케는 다시 설거지를 끝낸 후 켈투드의 앞에 앉았다.
“차 맛은 괜찮으세요?”
“괜찮네. 한 잔 더 줘.”
“네.”
그가 차 맛에 만족하자 키르케는 웃으며 다시 차를 준비했다.
그러다가 순간 손을 멈췄다.
찻주전자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윽.”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물의 색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환각이다.
그녀가 한숨을 토해 내자 켈투드는 씩 웃었다.
“역시 힘들어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한 글자씩 딱딱 잘라 말한 그녀는 능숙하게 차를 탔다.
그저 환각이고 환청일 뿐이다.
그녀가 찻잔을 내밀자 켈투드는 차를 홀짝거리며 말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할 거야.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힘들지 않아요.”
그의 앞에 앉은 키르케는 빙긋 웃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주인님보다 힘들지 않겠죠.”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를 마주하며 켈투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진리에 접속한 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르케는 진리와의 접속을 끊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수많은 정보와 지식과 연결된 순간부터 켈투드의 행동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으니까.
예를 들면 저것.
키르케는 정원의 중앙에 특이하게 앉아 있는 켈투드를 보았다.
언제나 앉아서 눈만 감고 자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은 원래 누워서 자야 하는 것 아닌가.
저렇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릴까?
그런 의문은 이제 없었다.
진리에 접속해 본 결과 고대에 있었던 수행법 중 하나에 좌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는 좌선만으로도 모든 피로를 회복할 수 있었고, 그것을 켈투드가 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 외에도.
지금까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던 켈투드의 힘들.
이를테면 천리안이라든가 괴물인 멍멍이의 제압법이라든가.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기뻤다.
“……크르르…….”
정원 쪽으로 멍멍이가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그것을 본 키르케는 빙긋 웃었다.
“멍멍아. 왜 그러고 있어?”
“……크르르. 괴물이 둘이나 되어 버렸군.”
켈투드를 보던 키르케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괴물이라니.”
그때 눈을 감고 있던 켈투드가 입을 열었다.
“힘들면 언제든지 포기해.”
그의 말에 키르케는 빙긋 웃었다.
괜찮다.
귓가에서 죽음을 속삭이는 괴물 따위는 관심 없다.
눈앞에서 스스로 목을 조르는 노파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니까.
그렇게 또다시 시간은 흐른다.
켈투드를 모신 지도 벌써 30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쓴 일기를 한 장 한 장 넘겨 가고 있었다.
그때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그걸 들은 키르케는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멍멍이의 등에서 켈투드가 내리고 있었다.
“오셨어요? 일은 잘되셨나요?”
“그래. 멍멍아. 가서 사냥 좀 하고 와라. 너 없는 동안 안쪽에서 괴물들이 날뛰고 있는 것 같으니까.”
“크르르. 예.”
하늘로 날아간 멍멍이가 대산림 안쪽으로 향한다.
그걸 보던 켈투드는 키르케를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왜 그러세요?”
“너 늙어 가는 것 같다?”
“주안술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혼이 늙고 있다고. 주안술은 혼까지는 감당 못해. 제대로 된 불로불사 정도라면 내가 해 줄 수 있어.”
하지만 키르케는 고개를 저었다.
“뭔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해라.”
“싫어요.”
“그래? 그럼 그러든가.”
켈투드는 퉁명스럽게 답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