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97)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297화(297/300)
◈ 제297화
149. 외전 – 예전의 이야기 – 1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청년이 되었고, 청년이 중년이 되었으며 중년은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켈투드의 집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외적인 변화가 없었다.
“주인님. 식사하세요.”
“음.”
책을 보는 켈투드는 변화가 없었다.
과거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젊었고, 또 혼의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키르케는 달랐다.
외견은 여전히 이십 대의 외견이다.
하지만 혼은 급속도로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진리에 접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슬슬 포기하는 게 어때? 요새 밖에 나가면 널 보고 내 엄마 같다고 하더라.”
“하하. 외면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데요?”
“예전에도 말했지만 주안술은 외견을 젊게 하는 거지 혼을 젊게 하는 게 아니야. 거기에 틀린 말도 아니지.”
켈투드는 식탁에 차려진 요리를 가리켰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요새는 옷도 만들어 주고. 어디 나갈 때마다 챙겨 주려고 하고.”
“음…… 그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슬슬 포기하고 네 삶을 살지 그러냐?”
“괜찮아요.”
사실 힘들다.
요새는 잠도 잘 수 없었다.
점점 마녀라는 종의 틀에서 벗어날 것 같았다.
“어제는 유체 이탈도 한 것 같고.”
“……아셨어요?”
그의 말대로였다.
잠이 오지 않아 명상을 하는 와중에 혼이 육체를 빠져나갔었다.
하마터면 그대로 진리에 흡수될 뻔했던 그녀는 머쓱해했다.
“그대로 있으면 진리의 노예가 되어 이 세계를 지키는 것밖에 못할 거다.”
“그래도…….”
“차라리 주안술이라도 멈추든가. 나이를 먹었는데도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이질감을 늘리는 것밖에 안 돼.”
“……그게 나을까요.”
키르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에게 켈투드는 단호하게 말했다.
“진리와의 접속을 해제하는 게 제일이지만.”
“그건 싫네요.”
입술을 삐죽거린 그녀에게 켈투드는 피식 웃었다.
그의 말대로 주안술을 해제했다.
그 탓에 육체의 노화가 점점 찾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만큼 진리에 접속해 있는 부작용이 완화되었으니까.
“이제 몇 년만 더 있으면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가 되겠네.”
창밖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마 저 눈이 그치면 본격적으로 노화가 진행되리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네요.”
“그러게.”
눈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켈투드가 말하자 키르케는 주섬주섬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뭐냐?”
“틈틈이 짠 거랍니다.”
잘 만든 목도리였다.
그걸 보던 켈투드는 씩 웃었다.
“고마워.”
“제가 더 고맙죠. 주인님.”
그녀는 목도리를 두른 켈투드를 따뜻하고, 무척이나 안타까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메리크리스마스…… 이건 다른 차원의 행사라죠?”
“그렇지.”
“……주인님께 제가 이 말을 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주인님께서 이 세계를 손에 넣으시는 것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주인님께서…… 떠나시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그런 그녀에게 켈투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진리에 계속 접속하기 위해 주안술을 해제한 이후에도 키르케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켈투드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그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주안술을 해제한 이상 그와 자신의 시간은 같지 않았다.
“저거 사자.”
“예.”
야채 가게 앞에 멈춘 켈투드가 커다란 무 하나를 들었을 때 안쪽에서 한 노인이 나왔다.
“아이고…… 현자님…….”
그를 본 키르케의 표정이 순간 흐려졌다.
“오래간만이네요. 요하네. 잘 지내고 있나요?”
“대마녀님과 현자님 덕분에 이 나이 먹고도 팔팔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요. 허허.”
아주 예전.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청년이 이렇게 늙었다.
그를 향해 키르케가 어색하게 웃었을 때 켈투드는 담담하게 말했다.
“요하네. 너 반년 남았는데?”
“……아. 그렇습니까?”
“수명 좀 늘려 주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켈투드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고작 80년 살고 죽는 건 좀 아쉽잖냐.”
켈투드의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 주름진 손으로 그를 살짝 잡았다.
“현자님…… 사람은 언젠가 죽습니다. 그 죽음을 미룰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난 죽는 건 싫은데.”
“그렇다 한들 저는 저에게 당연한 죽음을 맞이하겠습니다.”
“네가 그렇게 살겠다면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 그래도…….”
켈투드는 요하네의 무릎에 손을 올려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시큰거리던 무릎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현자님.”
“됐어. 우리 사이에 그러기냐?”
“하하하…….”
요하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씩 마을에 찾아오는 그와 술 상대를 했었다.
그 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이렇게 도움을 받는 것이다.
물론 이런 도움을 받는 것은 요하네뿐만이 아니었다.
이 마을의 모두가, 켈투드에게 도움을 받고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켈투드 님은 참 변하지 않는군요……. 참으로 부럽고,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누가 누굴 안타까워한다는 거야? 참 나. 키르케. 가자고.”
그에게 핀잔을 준 켈투드가 몸을 돌렸다.
키르케가 인사하고 그를 따라가자 요하네는 지팡이를 꼭 쥐었다.
켈투드처럼 나이를 먹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키르케도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옛날에는 누이처럼 보였던 그들은 이제 모자처럼 보일 뿐이다.
아니, 조금 심하게 본다면 젊은 할머니와 손자로 보일 정도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현자님은 영원을 사시는 분이다. 그 현자님의 곁에…… 아무도 없을까 정말 걱정이구나.”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멀어지는 둘을 계속해서 힐끔거렸다.
“주인님. 바로 돌아가실 거죠?”
“아니. 할 일 있어.”
“예? 오늘 마을에 일이 있으셨나요?”
“없었는데 생길 거야.”
그때였다.
“혀, 현자님!! 대마녀님!! 도,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새파랗게 질린 채 엉엉 울며 한 꼬마가 달려왔다.
그를 본 키르케는 의아해했다.
“위나. 무슨 일이니?”
“엄마가! 엄마가!”
“가 보자.”
위나의 집으로 가 보니 집 안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숨이 멈췄고 맥이 뛰지 않는다.
상태를 살펴보니 이미 죽은 것 같았다.
“우리 엄마 좀 살려 주세요!! 엉엉. 현자님! 대마녀님! 제발요! 제발…… 우리 엄마 좀…….”
펑펑 우는 위나를 보던 키르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미 죽은 자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그때 켈투드가 위나의 어머니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직 죽은 게 아니야. 혼이 남아 있어.”
“그럼…….”
“커헉! 쿨럭! 쿨럭!”
켈투드가 손을 떼자 쓰러져 있던 중년 여인이 기침을 토해 내며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무슨 일인가 나왔다가 보고 걱정하던 이들은 경악했다.
“세, 세상에…….”
“죽은 자마저 살리시다니…….”
“현자님은 신이란 말인가…….”
“신 아니거든?”
그들에게 퉁명스럽게 말한 켈투드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고통스러워하던 여인이 평온해진다.
“현자님…….”
위나가 엉엉 울며 켈투드에게 매달렸다.
“너의 어머니를 살려 준 대가는 너의 삶으로 받겠어. 내가 무슨 말 할지 알지?”
“네! 항상 저항하며 살아가는 거요!”
“좋아.”
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켈투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키르케에게 말했다.
“가서 밥이나 먹자. 오늘 저녁 뭐지?”
“……아. 예. 보르체 만들어 드릴게요.”
“맛있겠네.”
그렇게 켈투드가 멀어지자 구경하던 이들은 감탄했다.
“세상에…… 역시 현자님.”
저 기적에 경외감을 품는 이들은 켈투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키르케는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이런 것은 그저 가볍게 숨 한 번 쉬는 것이나 다름없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당연함은 타인에게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누구도 주인님의 당연함을 이해할 수 없겠지.’
개미는 사자를 이해할 수 없다.
즉.
어떤 곳에서도 그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싫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하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물론 그가 거절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결심했다.
“주인님! 같이 가요!”
키르케는 얼른 그를 쫓았다.
그녀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훈훈하게 웃었다.
“참…… 잘 어울린단 말이지.”
“사이좋은 모자 같단 말이야. 언제까지 저런 모습이시면 좋을 텐데.”
또다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완전히 노파가 되었지만 키르케는 켈투드를 모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노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육체는 과거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염력으로 그를 돌보고 있기는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이제 그만해라. 이대로 죽으면 넌 진리의 수호자가 될 거다.”
기침을 토해 내며 환각과 싸우는 키르케에게 켈투드는 언제나처럼 포기를 종용했다.
그런 그를 향해 그녀는 손을 뻗었다.
늙어 쪼글쪼글하고 거칠어진 손을 내민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
“아아…… 주인님…… 주인님을 어찌해야 할까요…….”
“일단 진리와의 접속을 해제해.”
“이 세계의 세계관 수집이 끝나면 주인님은 떠나시겠죠…….”
“그래.”
“그럼 주인님은 또 혼자…… 혼자예요……. 아아…… 주인님…… 아무도 주인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인님과 공감할 수 없고…….”
주름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켈투드는 한숨을 쉬었다.
“너는 나의 딸이었고, 동생이었고, 누나였으며, 어머니였고, 마지막으로는 할머니였다.”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손을 켈투드는 상냥하게 잡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 준.
이제는 꽤나 낡은 목도리를 살짝 잡았다.
“그러니 이걸로 만족하는 게 어떠냐.”
켈투드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키르케는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을…… 어떻게 혼자……. 아아…… 주인님…… 주인님…….”
진리와 접속한 고통에 짓눌리면서도 키르케는 포기하지 않았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녀는 두려워하는 대신 켈투드를 걱정할 뿐이었다.
무한한 시간 혼자 있어야 할 그를 걱정할 뿐이었다.
“주인님…… 한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압니다. 저는…….”
“안 돼.”
“혼만이 남은 채…… 주인님의 곁에서 주인님을 돕는…… 그러며 주인님의 이해자가 되는……. 아아. 주인님…….”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마주하던 켈투드는 한숨을 쉬었다.
키르케의 이런 모습이 좋았다.
끝까지 저항하고, 끝까지 싸우려는 모습.
그 모습이 좋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려는 것이니까.
자신이야 무한한 삶을 원했으니 상관없지만 키르케는 달랐다.
“한순간의 감정이 내린 선택일 뿐이다.”
“그렇지 않아요…….”
키르케는 웃었다.
“저는 딸이 아니고, 여동생이 아니고 누나가 아니고, 어머니가 아니고, 할머니가 아니에요…….”
그저.
그저 켈투드의 제자이며 현자를 모시는 대마녀일 뿐이다.
키르케가 환하게 웃자 켈투드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좋아. 후회하지 마라. 이건 되돌릴 수도 없으니까.”
“바라던 바예요…….”
그녀를 향해 켈투드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이 자신의 눈을 감게 만들자 키르케는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것으로 된 거다.
이제 그의 스킬이 되어 무간을 함께하리라.
그의 이해자가 되어 결코 홀로 고독을 씹게 놔두지 않으리라.
키르케가 마음을 다잡은 순간.
켈투드는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너는 이제 나의 스킬이 되어 영원한 시간을 함께하리라. 동의하는가?”
“예…….”
그 순간 키르케의 몸에서 빛이 뿜어졌다.
그 빛이 사라졌을 때.
<주인님.>
켈투드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쓰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송구스럽습니다.>
“네 의지에 대한 답을 주마. 나는 절대. 너와 같은 경우를 만들지 않을 거다. 가끔씩 함께할지언정 너처럼 영원히 나와 함께 살아가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키르케는 기뻐했다.
육체 없이 혼만 남아 버렸지만.
이제부터 영원한 시간을 그를 위해 봉사해야 했지만 그녀는 기뻐했다.
<영원히. 충심을 다해 주인님을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