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30)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30화(30/300)
◈ 제30화
15. 저도 그래요 – 2
이안은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회장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 생각하십니까?”
“평화를 수호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항상 노력해라.”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조언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럼 나가 보도록.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말해 준다면 내가 따로 찾아가 말해 보마.”
“회장님 말씀대로 제가 더 노력을 해 보지요.”
고개를 끄덕인 라키드가 다시 서류로 눈을 돌리자 둘은 밖으로 나왔다.
“왜 그런 얘기를 한 거야?”
“난 아직 저 작자를 의심하고 있거든.”
“검사는 다 했잖아?”
“다 안 했어. 중갑 안에는 살의 보호를 위해 내갑을 입기도 해. 또 속옷이나 다른 장비도 있고.”
이안이 딱 잘라 대꾸하자 하륜도 더는 말하지 못했다.
잠시 침묵하며 걷던 도중 그는 작게 입을 열었다.
“아까 했던 말은 그를 움직이게 하려던 것이지? 라키드 회장이 정말 악마와 관계되어 있다면 의심하는 널 공격하게 만들려고?”
“그래. 용케 눈치챘네?”
“나 하륜 솔트야. 이 정도 눈치야 기본이지.”
“아무튼 떡밥은 뿌려 놨으니 나도 준비는 해 둬야겠군.”
“라키드 회장이 악마와 관계되어 있는 그 장면을 모두에게 보이려는 거야?”
“그래야 내가 얻을 것이 더 많을 테니까.”
“하긴. 상대는 아카데미의 회장이니까. 네 말대로 악마와 관련된 물건을 갖고 있는 걸 지금 발견해도 교관들이 철저하게 부정하고 그를 보호하려고 하겠지.”
그리되면 이안에게 주어질 보상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아마 그에겐 필요도 없는 상점, 혹은 쥐꼬리만 한 포상금이 전부일터.
그걸 피하기 위해 이안은 일부러 라키드가 움직일 시간을 준 것이다.
“대단하네. 네 간담이 어느 정도로 큰지 궁금하다. 만약 진짜라면 악마 계약자와 싸워야하는 거잖아?”
“그정도는 일도 아냐.”
“만약 회장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면?”
“그럴리 없지.”
그리고 만에 하나 일이 틀어져 악마를 발견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무려 네명에 장비까지 악마검증을 치루는거다.
그 과정에서 얻을 태양의 기운을 생각하면 이안에게는 손해가 아니었다.
물론 평판이 조금 깎이긴 하겠지만 그는 그런 건 신경 안썼다.
“그럼 안 오면? 아니, 그가 악마와 관련된 물건을 숨기려 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조사하면 되니까 상관없어.”
조사하는 방법 따위야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말이다.
‘키르케. 라키드 주변을 감시해. 그가 움직이면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하륜.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어.”
이안의 말에 하륜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뭐든 해 주지.”
* * *
라키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번 학기 시작하고부터 늘어난 임무 때문에 크게 신경을 못 썼는데 아카데미 내에 생도들에 대한 문제가 더욱 늘었다.
작게는 약자를 폭행하는 것부터 크게는 마을 사람이나 같은 생도들을 수탈하는 것까지.
조사 내용이 적힌 자료들은 라키드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고 있었다.
‘어째서들 그러는 걸까. 왜 자신보다 약하다고 괴롭히는 거지? 그런 일이야말로 평화를 좀먹는 일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지성이 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평화의 유지이며 타인을 돌보고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형과 어머님도…….”
보민다는 뭐든 쉽게 해내는 자신을 꺼려 하며 질투하고, 공격했었다.
왕위는 관심조차 없는데도 항상 지레 겁먹고 자신을 배척했다.
그렇기에 아예 왕가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검을 잡았다.
이후 우연히 패왕 거스트의 눈에 들어 그의 제자가 되었고 마스터에 올랐다.
그 이후 보민다에게 말했다.
자신이 검을 잡은 이유는 그저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그는 그것을 믿지 못했고, 결국 자신을 아카데미로 보내 버렸다.
왕국 내에서 세력을 쌓지 못하게 하려 한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아카데미에 왔을 때 더욱 실망했다.
평화를 위하던 용사를 기념한 아카데미 안에도 라키드가 바라던 이상은 없었다.
타인을 누르고 괴롭히며 자기 이득을 바라고.
그러며 평화를 해치려는 자들만이 넘쳐 났다.
오랜 시간 이어진 아카데미에 용사가 남긴 가치는 껍데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바꾸고자 했다.
아카데미에서 배출하는 이들은 다들 훌륭한 수업을 받은 엘리트들이다.
그런 이들이 평화를 중시하는 사상을 익히고 대륙으로 퍼진다면?
그가 원하는 세상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매일 노력했다.
그런데도.
“……어째서 바뀌지 않는 거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욱 심해지지 않았는가.
그는 중급에서도 또다시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거기에 악마 문제까지…….’
할 일이 점점 늘고 있다.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정리해야 할 안건도 많다.
그 부담감에 지쳐가고 있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얼른 짐을 싸고 간단하게라도 오늘치 훈련을 한 후 못한 일을 끝내자.
다른 생도들도 복귀하는대로 준비해서 신전으로 갈거다.
그때에 맞추려면 여유부릴 시간은 없었다.
크게 고개를 저어 정신을 집중한 라키드는 서랍을 열고 내갑과 단검, 그 외 장비들을 꺼냈다.
그 순간.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야.
그가 쥔 내갑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말한 건가?”
-그래.
“역시 악마가 있었군. 이안의 말이 맞았어.”
라키드가 내갑을 들고 나가려고 하자 윌리스의 말투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가기 전에 내 얘기나 좀 들어 보라고.
“악마와 나눌 이야기는 없다.”
-악마라고 미워만 하지 말라니까? 우리는 그저 보는 방향이 다를 뿐이야. 이봐.
내갑 안에 있는 악마는 아주 달콤한 어조로 속삭였다.
-말뿐인 정의보다, 행동하는 악이 낫다는 이야기를 아나?
“그런 소리는 태양신전에서 떠들도록.”
-하하.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말이야. 한 번 정도는 들어 보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내 말대로 된다면……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네가 원하는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질 테니까.
그 달콤한 목소리에 신전으로 향하려던 라키드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망설인 후 힘겹게 말했다.
“……훈련하는 동안만이다.”
-꼭 너 잘났다는 것을 그렇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냐?
-왜? 아주 네가 후계자 하겠다고 나서지 그러냐?
-너만 없었어도!!
머릿속에서 감도는 외침을 애써 무시하며 라키드는 검을 휘둘렀다.
국왕 코르자 스칼렛과 왕비인 블레딘은 장남인 보민다가 왕위에 오르기를 바랐다.
그런 그들에게 재능 넘치는 라키드는 저주나 다름없었다.
라키드는 그가 원한 자식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정략을 위한 결혼을 통해 태어난 아들에 불과했으니까.
코르자는 권력 안정을 위해 스칼렛 왕국의 거대 귀족가인 아이스빈 백작가를 받아들였다.
그 가문의 윌리가 왕가의 둘째 왕비로 들어갔고, 라키드를 낳고 십년도 되지 못해 죽고 말았다.
공식 병명은 그 당시 유행했던 병이었다.
하지만 라키드의 외가인 아이스빈 백작가의 의견은 달랐다.
독살이라고.
그녀는 암살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며 라키드에게 언제나 말했다.
어머니를 죽인 저들에게 복수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럴수록 코르자와 블레딘, 보민다는 그를 더욱 싫어했다.
아이스빈 백작가에서 라키드를 내세워 스칼렛 왕국을 차지하려 한다 생각했기에.
그 사이에 낀 라키드만이 견제와 견제 속에서 고통받을 뿐 이었다.
‘권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그저 어머니가 바라신 평화만이…….’
-너는 힘이 없는 것이 아니야. 쓰는 법을 모를 뿐이지.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리자 라키드는 훈련장의 통나무를 일격에 박살 내 버렸다.
-너도 알지?
하급생도들 중에서 같은 반 생도를 괴롭히던 이들이 누군가에게 크게 두들겨 맞았단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상급생도 브래드는 마을 바깥의 상점가를 돌며 멋대로 수금을 하더군. 중급생도 올티아스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더라고. 위디모아는 어때? 알크라이츠는? 너도 모두 아는 이야기 아닌가?
그들 모두 요 며칠 사이 큰 부상을 입은 이들이다.
-네가 잠든 사이에 살짝 내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결국은 네 손으로 한 것이다.
아카데미의 생도가 고작 떨어지는 철판에 맞았다고 한 달이나 쉬어야 할 부상을 입겠나?
구덩이에 떨어졌다고 다리가 부러지겠나?
위디모아도.
알크라이츠도.
모두 이상할 정도로 심하게 다쳤다.
-어때? 네 방법으로는 이루지 못한 평화가 내가 널 돕자마자 이루어졌잖나.
옥상에서 떨어진 철판에 맞은 브래드가 쉬는 사이 그에게 돈을 바쳐야 하는 가게들은 평화를 얻겠지.
다리가 부러진 올티아스가 치료받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평안해지겠지.
위디모아가 괴롭히던 하급의 마법사들은 당분간은 평화를 구가할 수 있을 거다.
그 외 다른 이들은 어떤가.
폭력을 동반한 강력한 제재는 잠시지만 평화를 만들어 내었다.
“……악도 도움이 된다는 건가?”
훈련 내내 말이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것에 목소리는 반가워하며 답했다.
-악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악뿐이니까. 평화를 이루고 싶나? 그러기 위해선 행동하는 악이 필요해.
“……하지만 악마에게 영혼을 팔 생각은 없다.”
-영혼? 그딴 건 필요 없어.
“그럼 네 목적은?”
-뭐 그걸 지금 이야기하긴 그렇고 일단 내 힘부터 알아보는 게 어때?
“어떤 것이지?”
-내 그림자는 너의 악을 숨겨 줄 것이다. 또한 내가 숨고자 한다면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볼 수 없지. 태양교단? 달의 교단? 그깟 놈들은 날 눈치채지 못할 거야.
임무가 끝나고 복귀했을 때도.
태양교단의 사제들이 왔을 때도.
이 내갑에 악마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자는 없었다.
아니, 단 한 명.
이안만이 의심을 품었다.
“그것도 오늘까지다. 태양교단에서 작정하고 조사한다면 금방 걸릴 테니까.”
-그러겠지.
순순히 답한 악마가 말을 이었다.
-그럼 너는 지금까지 고통스러워하던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건가? 너희들이 가진 잠시의 평화는 악마가 이루어 준 것이니 다음은 기대 말라고?
“……그건.”
순간 라키드의 어깨가 떨렸고, 내갑 안의 악마는 그것을 눈치챘다.
-라키드. 너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장해 왔지? 하지만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는 것 또한 악이고 폭력이라는 걸 모르나?
“……나는.”
이미 더럽힌 손이다.
거기에 물리적 폭력을 더하는 게 뭐가 나쁜가.
그리하여 원하는 이상을 이뤄낼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달콤한 유혹이 계속되자 라키드는 흔들렸다.
-뭘 망설이지? 같은 악이라면 이상을 이룰 수 있는 악이 낫지 않나?
그 순간 라키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유혹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격무와 실망감으로 지칠대로 지친 그를 흔들기에는 충분한 유혹이었다.
그의 마음에 빈틈이 생기자 악마가 움직였다.
라키드의 몸을 계속해서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가 뒤덮었다.
이윽고 검과 몸.
그를 알아볼 수 있는 모든 것이 그림자에 뒤덮이자 악마가 달콤하게 말했다.
-나는 그림자 악마 볼라디. 어둠은 나의 영역이니. 나를 잡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라키드의 몸이 움직였다.
쏜살같이 튀어 나가는 그에게 볼라디는 제안했다.
-그 누구도 그림자를 벨 수 없으리라. 자. 라키드. 나와 계약해 평화의 화신이 되어 보자고.
‘계약할 생각은 없다.’
-그럼 일단 가계약이라고 치고 내 힘에 어떤 것인지 맛이라도 봐 둬.
훈련장에서 나와 중급 기숙사의 근처에 있는 공터를 지나려 할 때.
라키드의 뒤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거수자. 정지. 손 들어. 움직이면 벤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흠칫 놀랐다.
‘저 녀석은…….’
분명 아까 봤던 B반 대표 이안이었다.
-저놈은 나에 대해서 눈치채고 있는 듯하다. 제거하자.
‘거절한다. 이안은 내 기준에서 적이 아니다.’
볼라디가 말하고 라키드가 거절한 순간.
“그림자 움직였다.”
이안은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 일격에 그림자가 반쯤 사라져 라키드의 얼굴이 드러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