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5)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45화(45/300)
◈ 제45화
23. 조용해질 것이다 – 1
“뭔 소리야. 고작 한번?”
하륜이 어이없어하며 묻자 그래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일이 좀 복잡하더라고.”
그들은 모험가 길드와 아카데미의 허가를 내세우며 물건을 판다.
그러다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따지면?
“저번에 한 것처럼 아니라고 우기는 거지.”
항의하는 사람 중 절반 정도는 모험가 길드를 내세우면 이를 갈며 물러난다.
그리고 절반 정도는 아카데미를 내세우면 씁쓸해하며 물러난다.
그래도 끝까지 물러나지 않는 소수에게는 약간의 보상금을 추가로 주는 정도로 끝낸다고 한다.
“신기하네. 사기를 당하는 이들 중에는 귀족들도 있을 텐데. 그들이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
“원래라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지.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모험가 길드와 아카데미를 등에 업었다는 거야.”
귀족들은 영웅제 기간에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꺼려 한다.
괜히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아카데미와 척져서 임무 의뢰를 못하게 될까 두려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영웅제가 끝나고 사기당한 것을 알게 된 자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어.”
“모험가 길드에는?”
하륜이 묻자 그래진은 고개를 저었다.
“거긴 더해. 모험가 길드가 생긴 이유는 의뢰자들로부터 모험가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니까.”
“아. 그건 들었어. 귀족들 중에 의뢰를 하고 나서 의뢰를 달성하면 이런저런 핑계나 압박으로 의뢰비를 지급 안 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래. 대부분 물건이 잘못되었다거나, 혹은 몬스터가 남아 있다거나. 그런 트집을 잡아 의뢰비를 깎는 거지.”
“맞아. 그래서 모험가 길드가 생겼고. 설립 이념에 따라 모험가 길드는 이런 일이 생기면 모험가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해.”
그러다 보니 모험가 길드에도 말 못 하는 것이다.
해 봤자 그들과 싸움만 나니까.
그 싸움으로 생길 소요를 생각해 사기당한 이들은 몇푼 안되는 돈이라면 그냥 똥 밟은 셈 치고 넘어가는 것이다.
모험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오히려 모험가들의 방종을 부른 것이다.
“머리 좋네. 그 자리에서 걸리면 입막음을 위해 돈 좀 내어 주고. 안 걸리면 그냥 먹고.”
“우리처럼 나오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더군. 그놈들. 운이 나빴어.”
만약 일반 경비대에게 걸렸다면 아카데미와 모험가 길드의 언급으로 그냥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하필이면 B반이 순찰을 돌 때.
그것도 이안에게 걸려 버려 일이 커진 것이다.
“신고가 들어왔다고 했지? 언젠데?”
“재작년. 어떤 생도들이 이걸 발견하고 신고했는데…… 우리처럼 때려 부수며 일을 키우지 않았지. 그러다가 조용히 무마되며 신고가 취소되었다고 해.”
“그게 누군데?”
“기록에 없었어.”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아니면 숨겨진 거야?”
하륜이 묻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숨겨진 거겠지. 자. 아카데미 생도들 중에 피해자는? 아리안 같은 애들 없어?”
“은근히 있긴 한데 눈치 살피느라 그냥 넘어갔나 봐. 상급 교관과 관련된 얘기까지 가니까.”
중급 이상의 생도들이나 자작 이상의 귀족들은 이런 좌판에서 물건 안 산다.
이런 곳에서 물건 사는 것은 하급생도나 구경 온 하급 귀족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크게 따지지도 못한 것이다.
그렇게 몇년째 영웅제에서 이런 일이 이어져왔단다.
“그 외 피해자는?”
“글쎄? 그건 아직 파악 못 했어. 좌판에서 파는 거니까 장부도 세세하지 않고.”
전부 들은 이안은 탁자를 톡톡 치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럼 로멘틀 상급 교관을 조사해야 한다는 얘기겠군.”
하륜이 중얼거리자 다물고 있던 이안이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아카데미에서 이 일과 관련된 자가 로멘틀 상급 교관 혼자뿐인가? 귀족들도 상대하는 일이니 혼자 하진 않았을 거야.”
<로멘틀 상급 교관은 상급의 소대 전투학 담당 교관입니다. 상급 C반을 담당하며…….>
“소문이지만. 그가 헤이스팅스의 수족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군.”
<그래진 우르쿨의 말대로 헤이스팅스와 늘 함께 다니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자는 안 끼는 곳이 없군. 좋아. 키르케. 신고자가 누구지?’
키르케는 진리에 접속한 후 바로 답했다.
<헬리드 베리단입니다.>
키르케의 보고를 들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
“좀 더 자세하게 알지도 모르는 녀석을 만나 보려고.”
“그게 누군데?”
“있어. 되게 좋은 녀석이.”
순찰을 마친 뒤 이안은 둘과 함께 C반 기숙사로 향했다.
C반 기숙사 입구의 로비에는 세이렌이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라? 이안 아냐? 오~ B반의 인재들이 다 모였네?”
하륜과 그래진에게도 인사한 그녀는 보던 책을 옆에 놓았다.
싱글거리는 그녀에게 이안은 담담하게 물었다.
“혹시 헬리드 베리단이라고 아냐?”
“헬리드? 걔는 왜? 어…… 혹시 그 녀석과 뭔가 문제라도 있어? 그럼 내가 사과할게. 걔가 원래 좀 그렇거든.”
“뭐가 그런데?”
“애가 이상한 데 관심이 많아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괜히 문제 일으키고 그래. 그 뭐냐.”
그녀는 하얀 볼을 긁적거리며 난감해했다.
“자기가 탐정이라나 뭐라나. 뇌색 회 어쩌고…….”
“회색 뇌겠지. 콜롬브의 사거리의 수색자라는 책에서 콜롬브 탐정이 말한 얘긴데.”
그래진과 세이렌이 바라보자 하륜은 순간 움찔했다.
“너도 그런 소설 읽니?”
“취향이다! 존중해라!”
그가 울컥하자 이안은 하륜을 당겼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걔 어디 있어?”
“309호가 걔 방이야. 안내해 줄까?”
세이렌이 생글거리며 묻자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고. 아무튼 고맙다.”
그녀와 헤어지고 기숙사 3층에 올라간 이안은 9호실의 문 앞에 섰다.
가볍게 문을 두들기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와라.”
“먀아아…….”
거만함이 담긴 목소리가 싫었나 보다.
먀네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하륜은 벌컥 문을 열었다.
커튼을 쳐 놓은 탓에 방 안은 무척이나 어두컴컴했다.
살짝 열린 틈으로 나오는 빛에 은발 미소년의 진지한 얼굴이 비쳤다.
“뭔가 문제가 생겼군.”
“쟨 또 뭐지?”
그래진과 하륜이 나서자 헬리드는 쓱 고개를 들었다.
안경을 살짝 고쳐 쓴 그는 그래진을 보며 말했다.
“너. 오늘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었군. 뭔가 급한 일이 있었나 보지? 또한 어딘가에 다녀왔어. 어딜까? 음…… 그래. 교실. 교실에 다녀온 것이 분명해.”
“허…….”
“그곳에서 급하게 무언가를 꺼냈을 거야. 그리고 그것을 가져가다 잉크를 엎었고. 뭘 가져가려 했지? 시험지인가? 아니면 책? 어쩌면 연서일 수도 있겠군.”
“헬리드 베리단이지?”
잘생긴 은발 소년.
헬리드는 빠르게 하륜을 훑어보고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체형을 보아하니 마법사로군. 원래라면 풀어 놓고 다닐 머리를 묶은 것을 보니 오늘은 외출을 했어. 신발을 보아하니 마을에 갔는데…… 뭔가 급한 일이 있었나? 그리고…….”
계속해서 떠드는 그를 향해 그래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헛소리 그만해. 오늘 점심 샌드위치가 아니라 핫도그 먹었다. 그리고 여기 잉크 자국은 예전에 적신 거고. 그리고 교실 안갔다.”
“……그, 그런가? 그럼 거기 금발 친구는 맞지 않았나?”
“이 하륜 솔트가 마법사인 거 아카데미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리고 여기 순찰대 완장보면 마을 나간 건 다들 알겠지.”
“……아하.”
헬리드가 할 말을 찾으며 우물쭈물하는 사이 뒤에 있던 이안이 나섰다.
“그럼 이걸 맞혀 봐.”
반색한 그는 이안을 보자마자 식은땀을 흘렸다.
“너…… 너…….”
“내가 너랑 또 면담을 해야 할까?”
헬리드는 더더욱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말했다.
“구,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 하하하.”
말을 마친 그는 잽싸게 커튼을 묶고 방을 밝게 하며 물었다.
“헬리드 탐정 사무소에는 무슨 일이지?”
“내가 보기엔 넌 다른 일 찾는 게 낫겠다.”
그래진은 한심하다는 듯 말하고 밝아진 방을 훑어보았다.
방을 혼자 쓰는지 다른 침대도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전부 추리소설들이다.
“취향 참…….”
“추리소설이 어때서?!”
하륜이 그래진에게 으르렁거리자 이안은 손을 들어 막았다.
지금 취향 갖고 입씨름할 생각 따위는 없다.
“헬리드.”
“으, 으응?”
방금 전까지 그래진에게 거만하게 대하던 헬리드는 이안의 부름에 움찔했다.
“너 혹시 영웅제 기간 동안 사기 치는 놈들에 대한 조사한 적 있냐?”
순간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건 왜?”
“전에 네가 흔쾌히 넘겨줬던 수첩에 보니까 이런 종류의 사건들에 대한 조사가 꽤 있던데.”
이안은 전에 얻었던 그의 수첩을 들었다.
그 안에는 아카데미 안팎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한 조사가 상당히 되어 있었다.
“뭔가 아는게 있지?”
“일단 두 가지 문제가 있어.”
그는 꽤나 떨떠름해했다.
“첫 번째. 흔쾌히 넘겨준 적 없어.”
“그 정도면 흔쾌히 아니냐? 그리고 내가 이거 받는 대신 나중에 너한테 문제 생기면 한번 도와주기로 약속했잖아.”
그 말을 들은 그래진과 하륜은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저 이안이 저리 말했다니.
자기들에게도 말해 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헬리드는 그 가치를 모르는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내 문제가 넌데……. 아무튼 그 부분은 넘어가고. 영웅제의 사기꾼들에 대해서는 그냥 관심 가지지 마.”
“헤이스팅스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인가?”
이안의 질문에 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나도 조사를 했었고 그만뒀지.”
“왜?”
“나랑 같이 그 일 조사했던 친구가 크게 다치고 아카데미를 떠났으니까.”
헬리드는 2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갑옷 제작으로 유명한 베리단 자작가의 차남으로 태어나 항상 자신감이 없던 그에게 다가와 줬던 소녀.
겨울에 내리는 눈처럼 새하얀 머리를 가진 똑똑했던 소녀.
자신의 친구이며, 동경하는 대상인 레일라 바라디스를 떠올렸다.
“바라디스라. 스칼렛 왕국 백작가 중 하나일 텐데.”
“그래. 내가 그녀를 만났던 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로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해 봐.”
이안의 냉정한 말에 헬리드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어떻게 말할까 골똘하게 생각하는 사이 하륜은 침대에 있는 책을 들었다.
“콜롬브의 검은 살인이라.”
“아는 책이야?”
“한번 봤었어.”
두꺼운 책을 펼쳤다.
저잣거리에서 나돌며 평민들이나 빌려 읽는 소설책인 만큼 종이의 질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이거 시리즈물이거든. 콜롬브라는 귀족가의 방탕아가 천재적인 머리로 사건들을 해결하는 거야.”
하륜은 책을 가볍게 흔들었다.
침대 위에 있는 책들은 전부 콜롬브라는 귀족 탐정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물이었다.
“콜롬브의 곁에는 에리디라는 뛰어난 무사 겸 정보원이 있어.”
싸움을 못하는 콜롬브는 가문에서 나와 작은 사무소를 운영한다.
그의 곁에는 항상 에리디라는 마스터가 함께하는데 그녀는 정보 조사와 증거를 수집, 범인을 발견했을 때 그를 제압하는 일까지 맡는다.
“레일라는 그 시리즈를 무척이나 좋아했어. 그리고…… 콜롬브처럼 현명했지.”
그가 중얼거리자 하륜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너희는 소설에 나오는 일을 경험해 보고 싶었겠군.”
그가 라키드의 일 때 끼고 싶었던 것처럼.
그 말을 들은 헬리드는 힘겹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소설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기에 소설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