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Master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6)
아카데미의 올마스터 플레이어-46화(46/300)
◈ 제46화
23. 조용해질 것이다 – 2
그는 한참 동안 말을 꺼내지 않다가 토해 내듯 내뱉었다.
“내 탓이야.”
말릴 수 있었다.
콜롬브가 되길 바랐고, 그만큼 똑똑했던 레일라와 다르게 자신은 에리디가 아니었으니까.
막았어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인 그녀를 막지 못했고,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2년 전 영웅제 때. 우리는 순찰을 돌다가 사기꾼들을 발견하고 신고 후 조사를 했지.”
“그게 너희였냐…….”
“그래. 전에도 레일라와 나는 몇 차례 사건들을 해결하고 자만해 있었어. 그렇기에 상급 교관이 관련된 것을 알고도 계속해서 파고들었지.”
그것이 실수였다.
몇번의 성공은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탐정이 항상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게 만들었다.
“레일라는 어떤 부상을 입었지?”
“서클이 파괴되었어.”
“아! 설마 그게 그녀였어?!”
하륜이 아는 듯 말하자 이안은 그를 보았다.
“영웅제 생존 시험 때 몬스터들에게 당해 서클이 파괴된 마법사가 있다고 했지.”
“그래. 그게 레일라야.”
목숨이라도 건진 게 다행이라지만 마법사들에게는 목숨과 같은 서클을 잃은 것이다.
결국 그 충격에 레일라는 요양을 위해 아카데미를 떠나고 말았다.
“몬스터에게 당한 그녀를 누가 발견했지?”
“……헤이스팅스.”
“레일라가 생각한 범인은?”
한참 망설이던 그는 결국 토해 내듯 답했다.
“헤이스팅스.”
말을 한 그는 얼굴을 감싸 쥐며 신음했다.
“그가 쏜 것으로 추정되는 마법 화살에 맞은 이후 몬스터들이 몰려왔다고 그녀는 말했었어.”
“연금술로 만들 수 있는 약 중에는 몬스터를 부르는 약도 있지. 그걸 써서 몬스터에게 당한 걸로 위장했군.”
이안은 아란세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그럼 그가 왜 구해 줬을까?”
“글쎄. 의심을 피하고 주변의 인망을 사기 위해서겠지.”
“자신감이 대단하네.”
하륜의 중얼거림을 들은 이안은 피식 웃었다.
그건 자신감이 아니라 자만이다.
칠 거면 확실하게 죽였어야지 그게 뭐 하는 짓인가.
“물론 그 당시 헤이스팅스 교관이 레일라를 공격한 범인일지도 모른다라는 얘기가 있었지. 근데 그게 진짜일 줄이야.”
하륜은 그때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상대가 상급 교관의 대표라 그런지 그저 헛소문으로 취급되고 그 이야기는 금방 사라져 버렸었다.
“증거는?”
그래진의 질문에 헬리드는 입술을 깨물었다.
없다.
몇 가지 있는 정황증거와 레일라가 찾아낸 단서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들은 이미 훼손된 지 오래였다.
“그녀가 치료받는 사이 조사 자료들을 모두 도난당했어. 내가 몰래 몇 개 챙기긴 했지만…….”
이후 어떻게 알았는지 헤이스팅스가 찾아왔다.
그리고 살벌한 어조로 말했단다.
“……레일라가 더 다치는 것을 보고 싶냐고 하더라.”
그렇기에 그는 챙겨 둔 자료들을 줘 버렸다.
그렇게 둘에게 악몽이나 다름없는 영웅제가 끝나고 얼마 후 레일라는 아카데미를 떠났다.
“그녀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어. 그리고…… 그게 벌써 이 년 전 일이네.”
그 사이 헬리드는 노력했다.
레일라가 복귀하기 전에 에리디만큼.
그녀처럼 마스터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증거 수집 능력만큼은 익히고 싶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의 수업보다는 자신의 발을 넓히고 정보 조사를 하는 데 힘썼던 것이다.
“라키드 회장의 일도 그 연습이라고 봐야 하나?”
“……그래. 가끔씩 그녀를 추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기도 했지만 난 콜롬브도, 에리디도 아니니까. 이런 조사가 다였어.”
잘생긴 은발 소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가 푹 고개를 숙이자 그래진은 씁쓸해했다.
“그럼 그를 잡아낼 증거는 없다는 거네.”
“그래. 아버지나 레일라의 아버지신 엘단 바라디스 백작님께도 말씀드려봤지만 그를 공격할 수는 없었지.”
“상급 교관의 대표정도면 확실한 증거 없이 공격할 수도 없어.”
“거기에 헤이스팅스는 각 나라에 친한 귀족들이 많아. 그리고 스칼렛 왕국의 펠레 백작가나 왕족 중에도 친분이 있는자가 있다더라고.”
그렇기에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헤이스팅스라는 괴물이 가진 거대함에 짓눌릴 뿐이다.
“그러니 너희들에게도 권할게.”
이번 일은 그냥 묻어 둬라.
만약 그가 직접 움직인다면 너희들도 다친다.
헬리드는 무척이나 진지하게 말했다.
“흠…… 그래. 알겠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그를 쳐 내긴 힘들겠군.”
오랫동안 아카데미의 상급 교관 대표였던 헤이스팅스다.
이 일이 알려진다 한들 도망칠 굴 정도는 많이 만들어 놨을 것이다.
그 역시 오랜 시간 아카데미를 쥐고 있던 자다.
확실히 꽤 하는 자라는 것은 인정하도록 하자.
“잘 생각했어. 휘는 법을 알아야 부러지지 않는 거야.”
그가 힘없이 말했지만 이안의 반응은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최대한 추락시켜서 비참하게 발버둥치게 만들고 짓밟는 것이 내 취향이지만. 그럴 여건이 아닌 듯싶고. 뭐 다른 방식으로도 추하게 만들 수는 있으니…… 죽이도록 하자.”
그 당당함에 하륜은 감탄했다.
“역시 너답다.”
“그게 제일 쉽고 간단하잖아. 그리고 난 날 건드린 놈 잡을때 증거같은 거 신경 안써.”
이안이 웃으며 말하자 그래진은 고개를 저었다.
“헤이스팅스는 어디든지 다섯 이상의 상급 교관들을 대동하고 다녀.”
“이런 말 모르냐? 다 죽이면 암살이라고.”
다른 세상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안의 넘치는 자신감에 결국 그래진도 감탄하며 박수쳤다.
하지만 다 죽이는 것도 문제다.
“헤이스팅스 교관, 그리고 같이 다니는 상급 교관들이 다 죽으면 영웅제는 중지야.”
“아. 그건 곤란하지.”
“그리고 그는 어지간해선 아카데미 밖으로도 잘 안 나와. 바깥에서 암습하기도 힘들어.”
아카데미 내부에서 상급 교관이 죽는다?
그럼 모든 행사가 중지되고 조사단이 움직일 거다.
그렇게 되면 용사의 검을 확인하는 일은 다음 학기, 최악의 경우 무기한 미뤄질 것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암습을 한 후 시체도 처리하면 됩니다.>
거기에 아무리 여럿을 데리고 다닌다고 아예 혼자 있는 시간이 없는 건 아니다.
키르케가 분석하고 방법을 제시했지만 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수고스럽게 아카데미 내부에서 죽일 필요는 없었다.
“헬리드. 이번 일과 관련된 교관들에 대해 알고 있나?”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헬리드는 입을 열었다.
헤이스팅스.
로멘틀.
빌라디.
모두 잘 싸운다고 소문난 상급 교관이었다.
“그 외에는?”
“아이작. 하급생도들 중에 물건을 사는 자들이 있으니까. 그들의 소란을 잠재우는 역할을 맡았어. 그리고 올해 아이작이 죽고…… 아직 그 자리의 대체자는 없는 것 같아.”
“음. 알았어. 하륜. 생존 시험 때 헤이스팅스가 추적자로 참가하나?”
“아니. 그는 추적자로 나서는 일이 없어. 자기한텐 격이 떨어진다나 뭐라나.”
“그럼 일단 바깥으로 끌어내는 것부터 해야겠군.”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헬리드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너희 어쩌려는 건데? 레일라의 복수라도 하려고?”
“복수는 무슨. 난 걔 얼굴도 몰라.”
이안에게 중요한 것은 헤이스팅스가 자신을 건드렸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이 당연했다.
“솔직히 사기 문제는 내 알 바가 아니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거 아냐?”
그래진의 질문에 이안이 고개를 젓자 헬리드도 동의했다.
“레일라도 비슷하게 얘기했었는데…… 사기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뭔 중요한 일?”
“거기까지는 나도 몰라.”
하륜과 그래진은 이안을 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별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이안은 헬리드에게 물었다.
“너도 참가할 거냐?”
“……뭘?”
“헤이스팅스 잡는 일.”
“내가 뭘 해야 하지?”
“별거 없어. 레일라의 일과 이번 사기 사건. 내가 조사하고 있다고 퍼트려. 발 넓다며? 이 정도는 가능하지 않아?”
“그를 도발하겠다는 거야? 헤이스팅스가 널 치게 만들려고?”
“어차피 아카데미 내부에선 그도 날 못 치니까. 마침 치기 딱 좋은 장소가 있지.”
바로 미얄 산맥.
생존 시험 때 헤이스팅스가 나서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를 이길 수 있다고?”
그 하나 잡는 게 뭐 어렵겠나.
거기에 죽여 달라고 와 준다면 더 쉽다.
“이제 곧 방학이잖냐.”
이안은 헬리드의 수첩을 펼쳤다.
방학 일정표에는 매번 레일라를 만나러 갔다 온 기록이 있었다.
“올해도 갈 거지? 그럼 선물로 좋은 소식 하나는 챙겨 가야 하지 않겠냐.”
이안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하고 싶으면 하고 말려면 말아.”
가볍게 말한 이안이 둘을 데리고 나가자 홀로 방에 남은 헬리드는 주먹을 꽉 쥐었다.
헤이스팅스.
지금까지 차마 건드릴 수 없었던 거대한 벽이고, 위협이었다.
그것을 향해 이제 막 중급에 올라온 생도가 도전하려 한다.
“……레일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안경을 벗고 잘생긴 얼굴을 천천히 쓸어 만졌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좋아.”
헬리드는 바깥으로 나갔다.
“난 콜롬브도, 에리디도 못 되지만…….”
그래도 헬리드는 될 수 있다.
발 넓고 여기저기 쏘다니는.
그러며 정보를 수집하고 퍼트릴 수 있는.
헬리드로서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카데미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 * *
길었던 영웅제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 퍼진 소문에 헤이스팅스는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마을에서 벌어진 사기 사건과 2년 전 레일라라는 중급생도가 생존 훈련에서 큰 부상을 당한 일.
그것이 교관 중 누군가와 관련된 것이라고 아카데미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뭔 소리야!!”
그리고 그 범인이 헤이스팅스 교관이라고.
그것을 이안이 조사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었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카데미 내부 뿐만 아니라 바깥 마을에도 은근히 퍼지고 있단다.
그러며 영웅제를 보러 온 귀족들에게도 그 소문이 퍼지고 있단다.
로멘틀이 조심스럽게 보고하자 헤이스팅스는 이를 갈았다.
사기 사건까지는 괜찮다.
이 정도는 매년은 아니더라도 눈치챈 자들이 있었고 항의하는 자도 있었다.
그래도 그건 충분히 덮을 수 있는 일이니 괜찮았다.
하지만 레일라의 일은 달랐다.
그녀는 일단 스칼렛 왕국 백작가의 자제이고 아카데미의 생도였다.
교관이 생도를 습격해 큰 부상을 입혔다?
이건 불명예 퇴출로 끝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 내일이면 끝날 일이니 다들 입단속 잘 시키도록. 내가 직접 나설 테니.”
“알겠습니다.”
로멘틀이 나가자 헤이스팅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내일이다.’
그때 교관실의 문이 열렸다.
“이야~ 이번에 중급 B반이 영웅제 우승하겠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몬스터 헌팅 1위, 필기 1위, 거기에 이번에 협력 전투까지 1위라니…….”
“내일 생존 시험이 기대되는구만. 하. 이안 그 녀석에게 걸길 잘했지.”
“그나저나 그 녀석 잡겠다고 여럿이 난리 치겠네. 괜찮으려나……?”
삼삼오오 모여 떠들기 시작한 교관들을 힐끔 본 헤이스팅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안을 긍정적으로 말하는 소리가 꽤나 거슬린다.
하지만 괜찮다.
이번 영웅제가 끝나고 다음 학기 쯤 된다면.
늘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이 조용해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