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105)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106화(105/119)
“아라.”
입을 연 류천이 꺼낸 첫마디였다.
뜬금없으면서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말에 나를 비롯한 우리 길드 사람들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 어떻게…….”
길드장님이나 한울 형님이 말해 줬나?
아니면 정소연이?
그러나 다들 당황한 눈치였다.
미리 말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오! 너는 이름이 무엇이냐?”
“류천.”
“류천! 나는 아라인 것이다!”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 나가는 둘을 보다가 문득 중국인인 류천이 어떻게 아라의 말을 알아들었지 싶었다.
“만져 봐도 돼?”
“응!”
한국어였다.
조금은 어색한 발음이었지만 충분히 뜻이 전달되는 류천의 한국어. 이내 류천이 쪼그려 앉아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는 기묘한 광경을 볼 수 있게 됐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규성 씨, 중국에 오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이번이 처음이에요.”
정소연과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마천루 쪽 길드원이 류천을 향해 슬쩍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아라의 머리를 정신없이 쓰다듬던 류천은 이내 고개를 들어 나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 유명한 류천과 한국어로 인사를 나눌 줄이야. 그때 한석준 길드장이 마침 궁금했던 것을 넌지시 물어보았다.
“류천 님이 한국어를 익히신 줄은 몰랐네요. 아라를 아시는 건가요?”
“너튜브.”
아! 어떻게 우리 아라를 알고 있나 했더니 선아가 올린 영상을 봤던 거구나!
이제야 의문이 해소되었다. 워낙 귀여운 외모의 아라여서 귀여워하는 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름을 어떻게 알았나 했더니 그렇게 된 거였군.
“요즘 한국말 배우고 있어요. 아라 때문에.”
“훌륭하군!”
한울 형님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류천 님이 한국말을 배우고 계시는 줄은 몰랐군요. 혹시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알아들을 수 있어요. 대부분.”
류천이 맹하게, 그러나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말투로 답했다. 그러고 보니 최연소 8급 각성자임에 더불어 머리도 굉장히 좋은 걸로 유명했다.
“먹을 것이냐?”
그때 아라가 맛탕을 집어 먹다가 돌연 류천에게 한 조각 건넸다. 무표정하지만 몸만큼은 솔직한 류천이 바들바들거리며 맛탕을 건네받았다.
“아라가 준 맛탕…….”
“맛있는 것이다! 따뜻할 때 먹어야 더 맛있는 것이다!”
“이걸…… 먹어?”
음식인데 당연히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손에 든 맛탕을 꼭 기념품으로라도 삼을 듯한 기색의 류천이었다.
“인사는 일단 자리에서 마저 하죠. 모두 배식부터 받읍시다.”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배식을 못 받은 채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다. 서둘러 배식을 받은 우리는 길드별로 정해진 지정석에 앉았다.
‘조금 노골적이긴 하네.’
지정석인데 마치 잘나가는 길드별로 구획을 나눈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마천루나 이노 준이치의 길드가 있는 구역에 함께 있을 수 있었다.
“냄새만 좋은 게 아니었구나.”
“기가 막히는군! 대체 이건……?”
“일본 쪽에서 요리사들도 함께 왔다고 하던데 그래서인가? 평소 먹던 것과 이렇게 차이가 난다고?”
“……난 인색 토벌이 끝나도 돌아가지 않을 거야.”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는 터라 무슨 말들을 하는지 이해할 순 없었다. 그나마 아라가 옆에서 틈틈이 해설을 하고 있어서 분위기를 알 수는 있었다.
“아라는 대단하네요. 외국어도 전부 알아듣고.”
“우리 아라가 좀 대단하죠.”
무려 몬스터의 말도 알아들으니 인간의 언어쯤이야, 뭐.
지이이—.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의 바로 맞은편에 굳이 자리 잡은 류천이 쉴 새 없이 손과 입을 움직여 음식을 흡입하면서도 아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쯤 되니까 살짝 무섭네. 꼭 선아의 무표정 버전을 보는 것 같았다.
“크흠, 보끔아 너도 밥 먹자.”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보끔이를 꺼내 밥을 먹였다. 과묵한 보끔이는 내가 챙겨 주지 않아도 알아서 저장해 놓은 식량을 꺼내 밥을 먹지만 괜히 딴짓을 하고 싶었다.
“슬라임?”
“흐업.”
어, 어느새 옆에?!
분명 조금 전까지 맞은편에 있던 류천이 보끔이의 옆에 쪼그려 앉아 구경하고 있었다.
거기에 음식을 포기하지 못하고 배식판을 들고 온 모습이 4차원적인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저희 규성 씨 사역마예요. 귀엽죠?”
“네.”
정소연이 밥을 먹다 말고 끼어들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자랑하지 못해 안달 난 모습이었다.
“이 맛있는 식사도 규성 씨 덕분이고, 아라도 규성 씨 사역마고, 하여간 규성 씨는 우리 아라홍련 길드의 복이라니까요.”
“하, 하하. 가, 감사합니다.”
기습 숭배 미쳤다. 하지만 언제나 짜릿해.
그때 고개를 휙 하고 돌린 류천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아라도 이규성 각성자님 사역마? 이 슬라임도? 이 맛있는 음식도?”
“예? 예에. 맞습니다.”
“설마…… 해독제도?”
“아, 맞아요. 사실 그게 여기까지 온 가장 큰 이유죠.”
그나저나 발음이 조금 어색하지만 한국말을 굉장히 잘한다. 조금만 더 있으면 발음도 완벽해지겠는데?
“아!”
갑자기 벌떡 일어난 류천이 이내 다급한 걸음으로 본인의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대체 왜 저러나 하는 사이 누군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동안은 너무 바빠서 지나갔지만 오늘은 이 자리를 빌려 타국에서 지원을 온 각성자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려 합니다.”
중국 측 각성자의 말이었다.
모두가 알아듣게끔 영어로 말해 주는데 다행히 각성자가 되기 위한 조기 교육을 받은 나는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들을 수만 있었다.
“이곳까지 와 주신 13곳의 해외 길드, 총 103명의 각성자님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와아아!”
“고맙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직 이 사태가 끝난 건 아니지만 그때가 되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오신 모든 각성자님들. 반드시 이번 일이 끝나면 사례해 드리겠습니다.”
중국 측 각성자들의 감사 인사를 들으며 우리는 뻘쭘하게 고개만 숙여 응했다.
“커흠! 뭐, 이것도 다 보수를 받고 하는 일인데 그렇게 감사할 필요까진 없다고!”
“입꼬리부터 내리시죠, 2팀장님?”
씰룩이는 표정이 예술인 한울 형님을 향해 정소연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맛있는 걸 먹으니 다들 사기가 오른 모양이군요.”
“맞소! 역시 규성 동생이지!”
“에이, 굳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낯이 달아오르네.
나는 애써 손을 저으며 밥이나 먹었다. 그런데 먹어 보니 진짜 내 덕분인 것 같기도 했다.
‘끝내주게 맛있네.’
아라가 좋아하는 고구마 맛탕, 그리고 감자전, 감자로 속을 채운 파프리카, 알프헤임의 꿀이 들어간 고구마무스 샐러드, 가지튀김, 내가 기른 양파와 마늘이 들어간 소고기까지.
음식이 입으로 들어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게 된다.
재료도 재료지만 아무래도 재성이의 요리 실력 덕분에 훨씬 빛이 나는 듯한 맛.
어느새 사위가 조용해졌다.
오직 배식받고 음식을 먹는 소리만 고요히 울려 퍼질 뿐.
“으음!!”
“허어, 이렇게 맛있을 수가…….”
간간이 감탄이 들려오기도 했다.
참고로 먹을 건 충분하다 못해 넘치게 가져왔다. 그동안 길드에 납품하던 일반 식재료의 공급이 이번 사건으로 잠시 중단되어 쌓였었는데 이번에 전부 풀 생각이었다.
물론 돈은 제대로 받는다. 이미 그와 관련한 납품 계약도 영성이 형이 알아서 끝내 놓은 상태였다.
“으으음!”
아라가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오물거렸다.
반달을 그리는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아라야, 맛있지?”
“응! 역시 이규성규성의 동생 이재성재성인 것이다!”
신이 났는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보육원에서 배운 춤은 아쉽게도 행사가 뒤로 미뤄져 선보일 수 없게 됐는데 여기서라도 보여 주네.
‘근데 배웠던 건 어디 가고 또 예전같이 춤추니?’
어색하게 씰룩씰룩거리는 아라. 그러면서도 쉼 없이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아라가 기분이 좋은가 봐요.”
“으하하! 나도 기분 좋구만! 같이 춤추지!”
아, 아니 형님은 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아라의 옆에서 몸을 흔드는 한울 형님의 모습에 나는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옅게 우우우 하는 비난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으하하하!”
“헤! 헤! 헤!”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열정적인 댄스 배틀을 벌였다. 잘 맞는 둘이었다.
“응?!”
그렇게 한참 먹으면서 춤을 추던 아라가 돌연 귀를 쫑긋하며 뒤를 돌아봤다. 뭐지 싶어서 아라가 보는 방향을 바라봤지만 거기엔 그냥 식당 벽만 존재했다.
“아라야?”
“오오! 마몬!”
“마몬?”
내가 의문을 표하는 사이 아라는 다시 덩실덩실 춤을 재개했다.
방금 뭐였던 거지?
딱히 상관없나.
감사 인사가 끝나고 다시 돌아온 류천이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아라의 춤을 직관하고 있었다. 어느새 보끔이는 그런 그녀의 품에 쿠션처럼 안겨 있었다.
‘……슬라임이라도 한 마리 선물해야 되나.’
다른 누구도 아닌 마천루 길드, 그것도 최연소 8급 각성자로 유명한 각성자였다. 안면을 트고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게다가 우리 아라를 이렇게 좋아해 주니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았고. 실제로 너튜브 팬을 직접 보는 게 처음이기도 했고.
톡.
“음?”
“이규성 각성자님, 맞으실까요?”
건드리는 기척에 옆을 돌아보자 마침 마천루의 길드원이 있었다. 근데 굉장히 유창한 한국어를 사용하시네. 혹시 류천이 이분한테 한국어를 배우나?
“예, 맞습니다.”
“갑작스레 죄송한데 식사 후에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습니까?”
“예, 가능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저희 류천 아가씨의 지병과 관련한 일로 상담을 좀 받고 싶습니다.”
“병?!”
병이라니? 마천루의 금지옥엽이자 최연소 8급이라는 막강한 전력의 류천이?
* * *
흠칫!
수하들이 가져온 금은보화를 히죽대며 살피던 마몬이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폈다.
-이, 이 기운은……?
설마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착각일 리도 없었다.
-겨, 경비병!
-키릭! 부르셨습니까!
-혹시 인간들 쪽에 지원 병력이 왔나?
-마침 보고하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적은 무리의 인간들이 도착한 것 같습니다!
-흐음…….
조금 전 느꼈던 그 감각.
착각이 아니라면 분명 자신과 같은 칠죄종의 기운이었다.
‘어떤 녀석이지? 왜 인간들과 같이 있는 거야?!’
오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식, 나태.
같은 칠죄종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이 가진 힘은 제각각이었다.
특히 몇몇 녀석은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괴물들이었다. 하지만 마몬은 아무리 강한 녀석이 오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단 하나, 자신과 상극인 칠죄종만 제외한다면.
‘……다 괜찮아. 그래! 탐식만 아니라면 상관없어!’
안타깝게도.
마몬의 바람은 아주 정확하게 벗어났다. 그러나 그를 알 리 없는 마몬이 신중한 안색으로 외쳤다.
-오늘 새벽! 상대의 본진을 급습하겠다.
-오, 오늘 새벽!
-짐이 직접 나서겠다.
-지, 직접!
덩치가 큰 호위 고블린이 덩치에 맞지 않게 호들갑을 떨며 반응했다.
-구, 굳이 대왕님께서 나서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키릭!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느니라.
-그렇다면 준비를 더 단단히 하겠습니다!
호위 고블린이 준비를 위해 급하게 방을 빠져나갔다. 마몬은 애써 체통을 유지하려고 힘을 넣고 있다가 이내 추욱 늘어지며 터벅터벅 의자에 앉았다.
-흐음…… 심상치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