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106)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107화(106/119)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끝나고 아라와 함께 마천루 길드원을 따라갔다. 참고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던 이 각성자의 이름은 유비홍이었다.
“유비홍은 한국식 발음이고 류페이훙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유비홍이라고 부르셔요.”
“예, 배려 감사합니다.”
근데…….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는 몇몇 이들이 신경 쓰였다.
강한울, 김시영, 정소연, 이해솔.
그리고 류천까지.
‘애초에 류천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러 가고 있는데 왜 뒤에서 쫓아오는 거야.’
마치 관계자가 아닌 사람이 몰래 쫓아오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유비홍도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챘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가씨는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부끄럼이 많은 성격이라…….”
“그, 그렇군요.”
그런 것치고는 아라한테 엄청 들이 대던데.
지금도 품에 안긴 아라가 내 어깨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헤실헤실 웃어 주고 있었다.
“헤헤.”
“……귀여워.”
이제 보니 몰래 쫓아오는 게 아니라 아라와 눈을 마주치고 싶어서 뒤에서 오는 모양이었다.
“다른 분들도 따라오고 있는 것 같은데 문제없을까요?”
“조금 꺼려지지만 어쩔 수 없겠죠. 이규성 각성자님은 아라홍련 소속이니 저희가 부탁하는 입장에선…….”
지병과 관련한 일로 부탁이라…….
아직 정확한 병세를 물어보진 않았다.
류천처럼 유명한 각성자가 지병이 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나름 숨기고 있다는 뜻이니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물어보긴 조금 그랬다.
그런데 마천루 길드면 아라홍련보다 더 거대한 다국적 길드로 알고 있는데 그런 곳에서조차 해결 못 한 병이라니.
‘나는 해독제밖에 없는데?’
병을 치료할 만한 식재료를 아직까진 재배하지 못했다. 물론 계속 농사를 이것저것 짓다 보면 언젠간 발견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당장은 아니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건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냥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본 건가?
우리는 어느새 마천루 길드에게 할당된 건물로 들어왔다. 거기까지 쫄래쫄래 쫓아온 우리 길드 간부들이 멍하니 멈춰 섰다.
“규, 규성 동생! 우리 버리고 마천루 길드로 이적하는 건 아니지?!”
“가끔씩 던전에 놀러 가도 되죠? 그럼 보내 드릴게요.”
“규성 씨! 가더라도 아라는 놓고 가요!”
“이규성 각성자님, 이적하시더라도 식재료의 납품은 꾸준히 부탁드립니다.”
되지도 않는 농담을 건네는 사람들을 보며 아라가 손을 흔들어 줬다.
“안녕~인 것이다!”
“아라야!”
정소연의 애절한(?) 외침을 들으며 이내 건물로 들어갔다.
“아라홍련에서는 이규성 각성자님을 정말 소중하게 여겨 주시는군요.”
“과분한 사랑입니다.”
“보기 좋네요.”
이내 사람이 아무도 없는 회의실 같은 장소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끝끝내 따라온 류천은 어느새 아라의 옆자리에 앉아서 지그시 아라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여워.”
아까부터 저 한마디만 반복하고 있는 게 조금 무섭게도 느껴졌다.
“부담스러우셨을 텐데 이렇게 자리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조금 듣고 싶습니다.”
“아가씨.”
유비홍이 부르자 아라에게 집중하던 류천이 내게 시선을 돌렸다.
“우선, 해독제를 줘서 감사해요.”
“저도 대가를 받고 하는 일인 걸요.”
“덕분에 저도, 그리고 제 길드원들도 해독이 가능했습니다.”
또렷해진 눈으로 또박또박 건네는 한국어가 조금 전까지 아라를 보며 멍 때리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들으셨겠지만 이규성 각성자님을 이 자리에 부른 이유는 제 병 때문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병이에요.”
“류천 님께서 병을 앓고 있다는 건 처음 듣습니다. 혹시 병세가 어떤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마나 냉기예요.”
“마나 냉기?”
처음 들어 보는 단어의 조합이었다. 그런 병이 있었다고?
“태어났을 때부터 강한 마력을 지닌 탓에 몸이 받쳐 주질 못했어요. 몸의 기혈이 전부 엉망이 됐습니다.”
“아아…….”
그런 부작용이 있었을 줄이야.
나는 그저 류천이 어마무시한 재능의 젊은 각성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음은 전혀 짐작도 못 했다.
“기혈, 즉 혈관 쪽 문제입니다. 규성 각성자님도 아시겠지만 마나는 피와 같이 혈관을 타고 흐르다 보니 우리 아가씨께서는 혈관에 큰 충격과 상처를 항상 입고 계세요.”
“괜찮은 겁니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듣자마자 위험하게 들렸다. 그리고 유비홍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마천루의 재력과 힘이 없었다면 아가씨께서는 이미 10살이 되기도 전에 요절하셨을 겁니다. 사실 지금도 최대한 마나를 억제하고 있는데 이번 마몬 토벌로 인해 무리하셨지요.”
“허어.”
“아가씨는 평상시에도 고통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나 역류 현상과 비슷하다면 이해하기 쉬우실까요? 덕분에 언제나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시죠.”
새삼 류천의 무표정이 대단하게 보였다.
그러니까 병원 신세를 진 채 누워만 지내야 하는 환자가 지금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고 있는 건가?
내색도 없어 보이는데 내가 직접 겪어 보지는 못해도 그녀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대강은 알 수 있었다.
마나 역류 현상은 각성자라면 익히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나 역류 현상으로 숨지는 각성자들도 꽤 많지.’
설명을 들어 보니 류천은 이 마나 역류 현상과 비슷한 고통을 항시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류천 님의 상태는 알겠습니다. 혹시 제게 바라시는 게 있으실까요?”
“얼마 전에 마몬 토벌을 위한 공격조를 잠시 운영했었습니다. 그때 류천 아가씨께서는 중독이 된 상태에다 평소보다 많은 마력을 사용하고 마셨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비홍이 하는 말을 들었다.
“급하게 복귀한 이후 규성 각성자님의 해독제를 투여했습니다. 심각한 상태였기에 사실 살아만 있어 줘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었어요.”
“정말 고생이 많으셨군요. 마침 저도 우리 길드장님께서 신세 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아라가 눈치를 보다가 따라서 류천에게 숙였다.
“아니에요.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어요. 강한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니까요.”
류천은 여전히 무표정인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나 은근히 높아진 목소리가 기분이 나쁘지 않음을 시사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난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을 텐데.’
생명이 위험했다는 것치고는 류천의 모습은 굉장히 멀쩡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내 의문에 답하듯 유비홍이 말했다.
“규성 각성자님의 해독제를 투여받으시고 아가씨께서 곧바로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저희도 깜짝 놀랐지요. 놀라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설마…….”
굳이 마나 냉기라는 지병을 먼저 이야기하고 말을 꺼낸 거면 답이 나왔다. 아마 내 해독제가 독만 치료한 게 아니라 류천의 마나 냉기에도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거겠지. 그러니까 나를 굳이 따로 부른 거고.
“아마 짐작하시는 바가 맞을 거예요. 규성 각성자님의 해독제를 투여받고 난 이후 아가씨께서 태어나 처음으로 몸이 가볍다는 걸 느끼셨다고 합니다.”
“몸이 가볍다는 걸로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이번 인색의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정밀 검사를 못 받아 봤습니다. 다만 류천 아가씨께서 단순히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다고 저희에게 이리 말씀하시지는 않았을 거라고 봐요.”
유비홍의 말에 얌전히 듣고 있던 류천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류천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아라가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며 까르륵 웃었다.
“대충 짐작이 가긴 하네요. 마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효과도 있으니…….”
“맞습니다. 저희 측도 그 효과로 인해 아가씨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확한 치료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파프리카를 잔뜩 먹이면 되겠다. 어차피 마나의 흐름과 연관이 있는 건 해독제가 아니라 마력 파프리카의 문제였으니까.
“다만 지금은 마몬으로 인해 해독제가 귀하다 보니 규성 각성자님께 따로 해독제를 달라고 하기에는 염치가 없습니다. 나중에 이 일이 끝난 이후에 따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길드 차원에서 보상을 약속하겠습니다.”
“아,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네?”
의아해하는 유비홍과 류천을 보며 나는 보끔이를 배낭에서 꺼내 말했다.
“파프리카 하나만 꺼내 줘.”
퉷-.
곧바로 파프리카가 튀어나왔다.
[마력 파프리카 LV.1]마력이 담겨 있는 작물.
인체에 무해합니다.
섭취 시, 0.2초간 마력을 미약하게 증폭시킵니다.
꾸준히 섭취 시, 마나의 순환을 더욱 원활하게 만듭니다.
역시 이 파프리카 덕분에 류천의 병세가 호전된 것 같았다. 게다가 일시적인 효과가 아닌 꾸준히 섭취 시 마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드는 영구 효과까지.
“그건……?”
“아마 이거 때문에 류천 님께서 병세가 살짝 호전되신 것 같습니다. 확인해 보실래요?”
“파프리카인 것이다!”
이내 류천과 유비홍이 다가와 파프리카를 살폈다. 이내 아이템의 효과를 읽었는지 두 눈이 동그래진 둘이었다.
“해, 해독제의 효과가 아니었던 겁니까?!”
“정확히는 이 작물들의 효과를 섞은 게 해독제가 된 거죠.”
자랑스레 말하자 이내 류천이 묵묵히 파프리카를 손에 쥔 채 입을 열었다.
“저…… 나을 수 있을까요.”
간절한 한마디.
떨리는 목소리와 무표정한 얼굴이 오히려 간극을 만들어 더욱 슬퍼 보였다.
잠시 말을 잃은 나와 유비홍은 이내 조심스레 입을 뗐다.
“저희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가씨. 반드시 나으실 수 있을 거예요.”
“확답은 드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도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공격조로 나섰던 우리 길드원들이 류천의 활약으로 모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이미 은혜를 한번 입었는데 나도 반드시 갚아 줘야지.
“참고로 보시면 알겠지만 이건 레벨 1짜리 파프리카입니다. 하지만 전 작물의 레벨을 조금씩 성장시킬 수 있어요.”
“헉! 정말입니까?”
“예. 아마 지금 당장은 류천 님의 병을 완치할 수 없어도 언젠가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레벨 1짜리 파프리카만 꾸준히 복용해도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지레짐작으로 확답할 수는 없었다.
아마 평생을 병으로 고통받았을 텐데 어설프게 당장 완치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부탁드립니다, 규성 님!”
“저도 부탁드려요. 그리고 감사해요.”
둘의 바람을 들으며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시영 형수님이나 백승현을 치료한 전적이 있는 나였다.
물론 둘과는 다른 종류의 병이었지만 내 능력이라면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만약 파프리카로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언젠가는 다른 작물이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도와줄 거야.’
물론 파프리카 하나만으로도 류천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류천! 아프면 안 되는 것이다! 이규성규성이 치료해 줄 것이다!”
“응. 고마워.”
자연스레 아라를 붙잡고 볼을 비비는 류천을 보며 나는 새로운 목표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