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113)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114화(113/119)
평소 카레를 끓이는 용도로 사용하던 거대한 국통 안이 달그락거렸다. 이내 뚜껑을 열자 수증기가 자욱하게 퍼지며 통 안에 가득 담긴 흰콩이 보였다.
“고소고소!”
아라가 구수한 냄새를 맡고 귀를 쫑긋거렸다. 고소고소와는 전혀 다른 향이었지만 비슷한 뉘앙스가 느껴졌나 보다.
우리끼리 먹기에는 꽤 많은 양이었는데 슬라임들과 꾸물이들, 그리고 곰곰이, 멍멍이, 골골이까지 생각해 보면 오히려 부족할 것 같았다.
‘조금 더 큰 대용량 조리 기구도 사야겠네.’
아니면 이것과 비슷한 크기의 통을 여러 개 사서 한 번에 조리하는 방법도 있었고.
삶은 콩을 체에 걸러 한번 씻어 냈다.
바로 옆에 강도 있고 꿀맛 온천도 있었기에 씻는 건 별 문제없었다.
어느새 주변에 모인 슬라임들과 꾸물이들이 도란도란 소리를 내며 얌전히 기다렸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힐링도 돼서 괜히 미소가 그려졌다.
“어디에 담지?”
“그냥 소풍용 바닥깔개에 쏟아붓죠.”
잘 씻은 콩을 깔개에 부었다. 좌르륵 쏟아지는 하얀 보석들이 별빛에 비춰져 반짝거렸다.
삶은 뒤 씻으니 음식이 아니라 꼭 장식품 같았다.
푸르르.
평소에도 내 작물들을 맛있게 먹던 골골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
생긴 것과 다르게 기가 막힌 냄새가 풍기니 절로 침이 넘어갔다. 얌전히 기다리던 녀석들도 와글와글 몰려들어 쏟아진 콩을 구경했다.
“먹어도 되죠?”
“그럼!”
어머니의 말씀에 선아가 콩을 주워 아버지와 어머니께 먹여 주었다. 나는 어느새 침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라에게 먹였다.
“아아아.”
“아아!”
나를 따라 입을 벌린 아라가 이내 내가 건네는 콩을 손가락 채로 입에 물었다. 이내 콩만 호로록 빨아들이더니 오물오물 씹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얼굴을 감쌌다.
“맛있는 것이다!”
“하하.”
“이규성규성도 아아아.”
아라가 냉큼 콩을 집어 들고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삶아서 부드러워진 콩이 입에 들어오자마자 가볍게 뭉개졌다.
부드러운 식감, 그리고 콩 특유의 담백한 맛.
마치 무스처럼 사르르 녹아드는 게 매력적이었다.
‘생각보다…….’
그리고 작아 보였던 콩은 입 안에 들어가자 생각보다 더 큰 만족감을 주었다. 마치 겉은 얇지만 속이 많이 든 단팥빵을 먹는 느낌.
끝에는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옅은 단맛이 은은하게 남았다. 생으로 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식감과 풍미였다.
어느새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옹기종기 모여 콩을 집어 먹고 있었다. 꾸물이들의 멍한 얼굴 위로 오랜만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까르륵.
웃음소리만큼은 우렁차군.
모두들 사이좋게 콩을 나눠먹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께서도 콩이 마음에 드셨는지 아이들 곁에 섞여 앉아 열심히 드시고 계셨다.
“넌 안 먹냐?”
“조금만 더 찍고.”
어느새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는 선아 녀석을 향해 아라가 콩을 집어 들고 도도도 달려갔다.
“이선아선아, 아아앙!”
“좋아! 바로 그거야, 컷!”
마치 카메라 감독처럼 액션을 취하는 선아의 모습이 웃겼다. 그러더니 결국 아라가 건네는 콩을 냉큼 입에 넣고 카메라를 접었다.
“으음! 대박인데?”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나쁘지 않다고? 고작 그 정도야? 오빠, 아무래도 눈이 너무 높아진 것 같은데?”
“그런가?”
맛없다고는 안했는데?
어찌 됐든 이번에도 성공적인 작물 재배였다. 이제 이걸로 만들게 될 메주가 기대되는군. 사실 메주가 본 목적이니 말이다.
“고추는 아직이구나.”
된장하면 고추장이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고추의 경우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했었다. 바빠서 넘어갔었지만 사실 인색의 던전 브레이크를 대비하는 동안 고추 농사가 망했었다.
처음으로 겪는 실패였다. 하지만 별로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마크투를 성장시키면 되지.’
이제 곧 레벨을 높여 줄 마크투. 아마 농사 레벨이 오르면 고추 농사를 성공하지 않을까?
물론 그 이외에도 실패의 요인을 분석해 보려 했다. 분석이라고 해 봤자 별거 없고 마크투에게 왜 실패했는지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마크투에게 들어 보니 햇빛이 부족한 게 원인이었다. 아무래도 이곳, 탐식의 던전은 태양이 있긴 하지만 빛이 약한 편이었다. 밤하늘처럼 몽환적인 저 짙푸른 하늘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빛을 쬐는 기계를 들여와야겠어.’
물론 전기 공급의 문제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배터리, 아니면 뭐 마석으로도 대체할 수 있으니까.
첫 과정부터 쉽지 않다 보니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문이 생길 법도 하건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무려 고추장과 된장이다.
무려 한국인의 밥상이다.
이걸 어떻게 포기하나?
“메주는 언제 쑬 생각이니?”
한참 콩을 맛있게 드시던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나는 머릿속에 세운 계획을 대충 떠올려 보다 이내 곧 있을 하나의 일정이 떠올랐다.
“아라가 어느 행사에서 춤을 춰야 해서 아마 그 일정이 끝나고 할 것 같아요.”
“행사? 춤?”
“예, 우연히 알게 된 보육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라가 친구들도 사귀고, 겸사겸사 연말 행사에 춤추는 역할을 맡게 됐는데 행사가 미뤄져서 이번에 열리기로 했거든요.”
부모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라를 쳐다봤다. 물론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익히 짐작은 된다. 아라의 춤이 귀여운 건 맞지만 그렇다고 잘 춘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
“그냥 재롱잔치 같은 거예요. 막 큰 행사는 아니고.”
“그래? 우리도 가서 구경해도 되나?”
“그럼요.”
“나도 간다. 말리지 마.”
선아는 아라가 무대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벌써부터 상상하고 있는지 켜지도 않은 카메라를 들고 부들부들거렸다.
사실 행사 다음 날에도 일정이 하나 있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중국의 마천루 길드. 그곳에서 한국에 방문하기로 한 날이 바로 아라가 춤추는 다음 날이었다.
어차피 아라홍련 길드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겸사겸사 길드 납품 관련 일도 처리하고 마천루 길드도 잘 해결해야지.
“아라야, 우리 파프리카 많이 남았나?”
“먹지 말고 모아 두라고 말해 놓은 것이다!”
파프리카의 밭도 이곳에 조금 늘렸기에 부족하더라도 걱정은 없었다.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지금도 액체 합성으로 꾸준히 파프리카 과채즙을 만들고 있는 중이니.
아, 이렇게 생각하니 너무 일이 많네.
‘고블린 마을도 만들어 줘야지, 근처에 밭도 새로 만들어야 하지, 메주도 만들고 마크투랑 다른 슬라임들도 합성시켜야 하지, 그런데 파프리카 과채즙도 필요하지.’
대형 조리 기구와 고추를 위한 빛을 쐬는 기계도 사야 했다. 뭐, 사는 거야 길드에 말해 놓으면 사다가 직접 배달을 해 줄 테니 금방이었다.
이래서 길드가 좋다는 거 아니겠어.
“이규성규성은 더 안 먹는 것이냐?”
“어? 어. 먹어야지.”
워커홀릭인가. 이렇게 맛있는 걸 눈앞에 두고 일 생각만 하고 있었네.
“어? 뭐야, 다 먹었잖아!”
“누가 그러니까 멍하니 있으래?”
“아니!”
나는 텅 빈 바닥 깔개 위를 허망하게 바라보다 이내 슬라임들에게 손짓했다.
“일할 시간이다! 몽땅 수확하자!”
* * *
“준비는 잘되고 있지?”
“물론이죠. 안 그래도 일정이 밀려서 준비는 완벽하다 못해 넘쳐요.”
갑작스런 재해(인색의 던전)로 인해 미뤄졌던 보육원 행사는 차질 없이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챙길 게 없을 정도.
다솜 보육원의 위지혜 원장은 마지막으로 방문 예정자 명단을 확인했다. 매년 열리는 행사였으나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대단한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라홍련은 매번 와 주셨고, 이번에는 철혈 길드랑 테러 길드도 온다니…….’
그 이외에도 앞서 말한 길드들과 연관된 여러 기업들과 회사들까지 따지면 오히려 행사의 규모가 너무 조촐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실제로 조촐한 게 맞았다. 대단한 사람들이 오는 것과 별개로 보육원 행사에서 돈 지랄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그 돈으로 애들을 챙겨 주면 챙겨 줬지.
물론 그렇다고 성의 없이 준비한 건 아니기에 위지혜는 나름 자신 있었다.
“여기서 더 온다면 조금 버겁겠지만 아직까지는…….”
이 정도만 해도 언론에 알려질 정도로 대단한 인맥이긴 했다. 아라홍련만 왔을 때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무려 대한민국의 1, 2위 길드들이 모두 오는 상황이니까.
그 어떤 보육원이 행사를 한다고 대한민국 최대의 기업이나 마찬가지인 길드들이 후원자로 참석하겠는가. 물론 길드장이 직접 오지는 않겠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보육원의 재량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위지혜는 이내 다시 한번 점검을 시작했다.
준비는 아무리 철저해도 부족하니까!
* * *
“아가씨? 아직 약속 날짜까지 사흘이 더 남았는데요?”
짐을 싸고 있는 류천을 향해 유비홍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든 말든 류천의 손은 멈추지 않고 옷을 챙기고 있었다.
“아가씨……?”
“아라 보러 갈 거야.”
“하, 하하. 아라는 사흘 뒤에 봐도 되지 않을까요?”
“너튜브 공지를 봤어.”
류천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아라가 춤을 출 거래. 직접 볼 거야.”
“그…….”
유비홍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이전에 한번 류천을 통해 전해 들었던 말이었다. 그렇기에 길드의 정보 부서를 움직여 어느 보육원의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 또한 알아낼 수 있었다.
‘류천 님의 외모는 너무 개성적이셔서 신분을 숨길 수가 없는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육원 행사 참여자 명단에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길드들이 많았기에.
처음에는 믿지 못해 다시 확인해 본 정보였다. 그러나 재차 확인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고작 일개 보육원의 행사에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길드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규성 님 때문이겠지.’
아라가 행사에 참여한다는 건 곧 이규성 또한 참여한다는 의미. 재작년까지만 해도 관련이 없던 길드들이 줄줄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인은 이규성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류천이 행사에 놀러 가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최근 들어 류천은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규성이 주고 간 파프리카는 류천의 고질적인 고통을 완화시켜 줬기에 하루가 다르게 밝아지는 류천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언제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모습과 세상일에 무관심했던 류천의 이런 긍정적인 변화는 마천루 길드장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기까지 했다.
‘대외비지만 이번 한국행에는 무려 우리 길드장님께서도 함께 하신다.’
조용히 갔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만큼이나 류천의 변화가 마천루 길드 내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류천 님, 그냥 저희 사흘 뒤에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안 돼.”
류천의 돌발 행동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평소 눈에 띄는 행동을 최대한 자제했던 류천이 약속 날짜보다 일찍, 그것도 혼자만 한국에 먼저 가 있겠다는 폭탄 발언을 남긴 것이다.
물론 다들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였으나, 류천을 곁에서 가장 오래 봐 온 유비홍은 류천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단숨에 눈치챘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적중하여 지금 이러한 상황에까지 다다랐다.
“류천 님! 이러시면 규성 님께서도 곤란해지실 거예요!”
“정체를 숨기고 조용히 있다 올 거야.”
“류천 님이 숨긴다고 숨겨져요?!”
“그럼 같이 가.”
“네?”
“내 보호자가 돼 줘. 그럼 할아버지도 허락해 주지 않을까.”
류천이 교묘하게 협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비홍은 그런 얄팍한 류천의 수에 그대로 넘어갔다.
“알겠습니다! 제가 일단 길드장니께 여쭤볼 테니 절대 혼자선 행동하시면 안 됩니다!”
“응.”
그렇게.
다솜 보육원 행사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