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116)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117화(116/119)
행사의 진행 순서는 보육원 일동의 감사 인사 및 새해 인사부터 시작해서 후원자 대표의 축하사, 아이들의 합창, 장기자랑, 작년 한 해 동안 보육원 아이들이 만든 미술품 전시 및 소개순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라의 공연은 그 중간쯤에 있었다.
“늦으시네요.”
행사를 관람하던 정소연이 슬쩍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한석준 길드장님과 한울 형님이 꽤 오래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다른 길드장님들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아마 같이 있는 거 아닐까요? 사업 관련한 이야기를 한다든지…….”
“음, 그럴 수도 있지만 저희 길드장님은 이런 곳에서 사업 이야기를 하실 분이 아니시라…….”
슬슬 아라의 순서가 다가오는 가운데 마침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길드장님과 한울 형님이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 곁에는 익숙한 철혈의 백 대표님과 실물로는 처음 보는 테러의 요한 로스차일드가 있었다.
‘와아, 이렇게 보는데도 실감이 안 나네.’
우리나라의 정재계를 움직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들이었다. 물론 실제로 움직인다기보다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덕분에 회장에 모여 있던 언론사 측 사람들의 후레쉬 세례가 쏟아져 나왔다. 쟁쟁한 인물들이 한데 겹쳐 있는 구도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한참 진행 중이던 행사도 약간의 소강 상태를 맞이한 가운데 한울 형님이 내 옆에 앉으셨다.
“곤란하군, 곤란해.”
“무슨 일 있으셨어요?”
“류천이 왔다.”
“……예?”
순간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정소연도 형님이 농담을 하는 줄 알고 고개를 저었다.
“농담도 참.”
“농담 아니야. 그냥 너희만 알고 있어라.”
“진짜예요?”
저렇게까지 말하자 정소연도 혹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한울 형님은 슬쩍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 약속 날짜는 내일인데 왜…….”
말을 하던 정소연이 갑자기 멈칫하며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도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선아를 보았다.
선아는 열심히 유명 각성자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선아야.”
“어? 응?”
“혹시 어디다 아라가 공연한다는 거 알린 적 있냐?”
“어. 너튜브에 공지했는데?”
“아아.”
아무래도 형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류천은 아라를 보러 왔을 확률이 높았다.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아라를 좋아하는 열렬한 팬이었으니까.
어차피 한국에 올 예정이었으니 하루 이틀 빨리 온다고 문제가 되진 않겠지.
……문제가 되지 않겠, 지?
털썩.
“응?”
누군가 의자를 들고 와 대뜸 내 곁에 착석했다. 갑작스런 행동에 누구지 싶어 얼굴을 확인해 보자…….
“기, 김태양!”
“안녕하세요, 규성 씨. 만나서 반가워요?”
“아, 시, 실례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김태양이 왜 여기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사람들도 다들 놀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허업.”
선아는 아예 숨조차 멈춘 채 굳어 버렸다.
그때 한울 형님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 소리 했다.
“허어, 이거 후배님이 좀 건방지군?”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귀여운 후배가 왔는데 반겨 주지는 못할망정.”
“귀여운 후배? 어딜 봐서 네가 귀엽다는 거냐.”
“얼굴?”
험상궂은 한울 형님에게 미소 지으며 뻔뻔하게 말하는 걸 보면 기가 무척 세 보였다. 실제로 귀염상의 외모와 달리 블러드본, 피에서 태어난다는 이명이 붙을 만큼 포악한 성정의 각성자가 바로 그였다.
“김태양 각성자?”
“어이쿠, 대표님.”
어느새 다가온 백태섭이 경고하듯 두 눈을 빛냈다. 아무리 천방지축 날뛰는 김태양이어도 백 대표님을 무시할 순 없었는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례했습니다, 규성 님.”
“아닙니다.”
“우리 김태양 각성자께서 언제고 한번 규성 님을 뵙고 싶다 했었는데 너무 급했는지 부담을 주고 말았군요.”
백태섭이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김태양은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흠, 마천루에서까지 눈여겨 보는 인재라! 저보다 인기가 많은 것 같아서 조금 질투 나네요. 하하.”
“…….”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안 보였던 이유가 류천을 만나고 오느라 그랬나 보다. 근데 뭔가 단단히 착각한 눈치인데.
‘분명 내가 아니라 아라를 보러 온 거일 텐데.’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와중에 지체되었던 행사가 재개되었다. 이제 슬슬 우리 아라가 나올 차례였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들이 여기 몰려 있다고 해도 솔직히 크게 관심은 없었다. 난 아라의 춤을 봐야 한다고!
-자, 이번 순서는! 우리 아기 천사들이 오랜 기간 갈고닦은 춤 실력을 선보일 시간입니다!
“오오! 아라 차례다!”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자 이목이 살짝 집중되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의 의미로 슬쩍슬쩍 고개를 숙였다.
“아라?”
그때 내 외침에 반응한 또 다른 인물이 있었다. 묘하게 익숙한 목소리.
시선을 돌려보자 무대 가까이 자리 잡은 어느 여인이 보였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까지 썼는데 누가 봐도 류천이었다.
“…….”
설마 저거 변장이라고 한 거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천하의 마천루 길드에서 저렇게 허술하게 보냈을 리 없어.
바로 그 순간 무대 위로 아이들이 총총총 뛰어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어색하게 표정이 굳은 아라가 섞여 있었다.
“나, 나, 나 잠깐 갔다 올게.”
선아가 급한 목소리로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가 곧바로 류천의 바로 옆에 자리했다. 류천도 아라가 나온 순간부터 정체가 들키는 건 신경도 안 쓰는지 선글라스를 벗은 상태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유명 각성자들조차 등한시한 채 아라를 찍으러 간 걸 보면 정말 찐사랑이었다. 무려 각성자 매니아였던 동생의 취향까지 바꿔 버리다니 슬슬 무서워지는 아라의 귀여움이었다.
짝! 짝! 짝! 짝!
박자에 맞춘 박수 소리와 함께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대 위에 선 아이들은 노래에 맞춰 춤, 아니 율동을 추기 시작했다.
“어머, 귀여워라.”
“저 애, 용산 사고 때 활약했던 그 아이 아닌가?”
“설마. 아니, 맞나?”
아라의 춤을 보자 뭔가 미묘하게 엇박자를 타고 있는 게 보였다. 웃긴 건 본인도 그걸 아는지 어떻게든 계속 따라가려 애쓰는 게 보였다.
“아라야!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지금도 충분히 귀여워!”
노래 소리를 뚫고 선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류천과 선아의 옆에 합류했다.
“우리 아라 잘한다!”
그때까지 다른 아이들을 보며 춤을 따라가기 바쁘던 아라가 뒤늦게 나와 선아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어 보였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듯 입을 우물거리는데 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빠듯한지 결국 내뱉지 못했다.
여전히 어색한 춤사위. 그러나 오히려 그게 귀엽게만 느껴졌다. 내 아이라서 그런가?
근데 아무리 봐도 아라가 제일 귀여웠다.
팔불출이라고 해도 소용없었다. 진짜로 제일 귀여운 걸 어떡해?!
다행히 동선이 꼬이지도 않고 반박자 느리더라도 잘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노래가 멎으며 율동이 끝났다.
짝짝짝짝.
“와아아.”
“잘했어요, 모두!”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아이들이 허리를 숙였다. 아라는 끝난 지도 모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춤동작을 선보이다 얼떨결에 인사했다.
“너무 귀여워…….”
류천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애써 손을 흔들며 아라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 아가씨. 모자가…….”
“사인받아야 돼.”
“아니, 그게 아니라 모자가 벗겨질 것 같다고요, 아가씨!”
류천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유비홍의 말대로 모자가 떨어지며 이내 새하얀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어?”
“와, 뭐야? 연예인이야?”
“……저거 설마?”
정말 찰나의 정적.
그리고 여기 모인 언론사 기자들은 대부분 각성자들 전문으로 취재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대번에 류천이 누군지 알아봤다.
“마, 마천루?!!”
“류천이잖아!!”
허허.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리는 보육원이었다.
* * *
[특보! 마천루 길드가 한국에?!] [전 세계 최연소 8급 각성자 류천, ‘한국에 동경하는 인물이 있어…….’ 깜짝 방한!]“허, 참.”
뉴스를 확인하던 백태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옆에 있던 김태양에게 물었다.
“어땠습니까.”
“어느 쪽이요?”
“둘 다.”
백태섭의 말에 김태양은 술잔을 휘휘 돌리다 이내 한 번에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나직하게 크으하고 탄성을 터트리며 말했다.
“이거 아라홍련에서 받아 오셨다고 했죠? 설마 이것도 이규성의 솜씨입니까?”
“그렇겠죠.”
“캬아, 무시할 게 아니네. 역시 우리 승현이도 고친 유례없는 각성자여.”
애주가인 김태양은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술을 마셔 봤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며 강한울을 통해 받아 온 술은 색다른 경험을 그에게 선사했다.
“술 한 병만 준다면 던전 지원 용병으로도 뛰어 줄 수 있겠는데요.”
“그게 바로 규성 님의 무서운 점입니다. 남들에겐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죠. 그리고 앞으로도 규성 님의 능력은 더욱 발전할 것이고, 이런 식으로 점점 더 영역을 넓혀 갈 것입니다.”
백태섭이 말을 하며 어느 서류를 확인했다.
그곳에는 마천루가 왜 한국까지 왔나에 대한 보고서가 적혀 있었다.
“류천 각성자가 아픈 건 알고 계셨겠죠?”
“예.”
“그걸 규성 님이 치료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왔어요.”
“오, 뭐 그 정도 일이 아니면 본인이 직접 오지도 않았겠죠. 공사다망하고 몸도 안 좋은 우리 공주님께서.”
“그래서 나머지 한 분은 어땠습니까?”
“이길 수 있겠던데요?”
김태양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잘 어울렸다.
“8급이라고 다 같은 8급이 아니죠.”
“음? 8급이라뇨?”
“……류천에 대한 감상을 물어본 거 아니었어요?”
뭔가 말이 엇갈린 둘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결국 김태양이 먼저 움직이며 술을 한 잔 더 따랐다.
“아껴 마셔요. 귀한 거야.”
“아니, 대표님. 저 블러드본입니다. 확 다른 곳으로 이적해 버려요?”
“계약 기간이 아직 8년 남았군요.”
“응, 돈 내고 나가면 그만이야.”
그렇게 잠시 술을 반쯤 따르느니 마니 실랑이를 벌이고는 이내 화제로 돌아왔다.
“그래서 대표님, 류천이 아니면 누구에 대한 감상을 물어본 겁니까?”
“당연히 아라 양이죠.”
“……아라 양? 누굽니까 그게.”
“율동 못 보셨습니까? 덕분에 류천 각성자가 정체를 들켰잖습니까.”
“대표님, 지금 진지하게 물어보는 겁니까?”
“그럼요.”
김태양이 할 말을 잃고 잠시 잔을 돌렸다.
은은하게 퍼지는 향을 만끽하며 생각을 정리한 그는 사뭇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손주가 보고 싶으신 나이라는 건 압니다만, 그런 건 승현이한테 부탁해야죠. 우리 대표님이 어쩌다 이리 되셨을까.”
“허허, 저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닙니다.”
“아니, 어떠냐고 물어봐도 제가 뭐 확인할 수가 있었어야죠. 미리 언질을 해 주시든가.”
아라? 동물 귀를 달고 있던 아이였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 용산에서 일어난 사고를 해결한 아이로도 알고 있었다.
‘이규성의 사역마로 알고 있는데…….’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몸치였다는 점? 그런 몸치로 어떻게 육체 계열 각성자를 쓰러트린 건지는 모르겠다만.
“정말 제가 왜 물어봤는지 짐작이 안 가십니까?”
“대체 뭔데요? 진짜 모르겠는데.”
“김태양 각성자, 이제 다음 달이면 스틸블러드 엔터테인먼트의 이사직을 달게 될 사람이 정말 아무것도 짐작이 안 된다는 겁니까?”
“에엥?”
김태양이 보기 드물게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니 그거 그냥 자리만 만들어 주는 거 아니었어요? 제가 진짜 경영에 참가하고 관리도 해요?”
“그럼?”
“아, 아니…….”
아니 잠시만.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근데 거기서 이규성의 사역마가 대체 왜 나와?
“김태양 이사님?”
“저 아직 이사 아닙니다.”
“최근에는 각성자가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인 시대입니다. 그건 인기도 많고 촬영도 많이 해 본 이사님이라면 더 잘 아시겠지요.”
“그건 그렇죠.”
“그렇다면 말입니다. 각성자도 되는 판국에 사역마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어?”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지금껏 각성자가 TV에 나오거나 여러 매체에 나오기는 했어도 사역마가 나온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이거 보십시오.”
백태섭이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보여 주었다. 김태양이 슬쩍 살펴보자 그곳에는 저번에 보았던 아라라는 아이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너튜브?”
“무려 70만 구독자입니다. 물론 김태양 각성자의 SNS 팔로워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너튜브 생성일을 보면 놀라울 정도의 성장세이지요.”
“흐음.”
영상을 확인해 보니 아라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귀여운 곰돌이와 평화로운 감성의 슬라임들이 자주 등장했다.
저런 귀여운 사역마들이라면 확실히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각성자는 그 힘에 인기가 비례하죠. 하지만 사역마들을 보세요. 힘이 약해도 귀여우면 먹힙니다. 마치 귀여운 반려동물과 같이요.”
“진짜 무서운 양반이시네. 언제부터 그런 계획을 짠 거예요?”
“아라를 알게 된 이후부터죠. 절대 제 사역마들이 무섭게 생겨서 부러웠던 게 아닙니다.”
“부러우셨구나.”
말은 농담 식으로 했지만 확실히 사업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 첫발을 내디딜 기반도 현재 보이는 상황.
“너튜브 주인은 이규성입니까?”
“여동생분이 주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연락을 해 봐야겠네요. 계약하는 방향으로.”
“오오, 할 마음이 생기신 겁니까?”
“그래야 술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열심히 해야죠.”
김태양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백태섭의 탁자에 놓인 술병을 노려봤다.
“하지만 일단, 다음 달부터. 저 아직 이사직 안 달았습니다.”
“아니 기정사실이고만.”
“몰라요. 좀 더 쉴래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술잔에 술을 잽싸게 따르고 도망쳤다.
“허, 그거 귀한 거라니까!”
농담이 아니라.
백태섭도 진심으로 규성의 술을 아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