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117)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118화(117/119)
보육원 행사는 무사히 끝이 났다.
중간에 소란이 조금 있었지만 테러와 철혈, 그리고 우리 길드의 빠른 대처로 금방 넘길 수 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돌아가지 않고 보육원에 하루를 더 머물렀다. 아라는 오랜만에 머물게 된 보육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과 함께 잤다.
마천루 길드에서 온 류천과 유비홍이 아라와 함께 잔 건 덤이었다. 조심스레 내게 허락을 구하고 막상 아라의 옆에선 잔뜩 긴장하던 게 볼만했지.
다음 날이 되자 여전히 보육원 주변으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을 피해 간신히 길드로 향할 수 있었다.
“마천루 길드에 비하면 조촐하지만 나름 자랑인 건물입니다.”
건물에 들어서며 한석준이 말했다.
사회성 좋은 유비홍인 적절히 호응을 해 주었지만 류천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아라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배고픈 것이냐?”
“아니.”
“그럼 왜 그렇게 보는 것이냐!”
“귀여워.”
아라홍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던 일행들은 이내 최상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나가면서도 류천의 화려한 외모로 길드원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그런 류천을 향해 슬쩍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어제는 조금 정신이 없어서 못 물어봤는데 혹시 몸 상태는 어떠세요?”
“으음, 좋았다가 나빴다가 해요.”
“쌩 파프리카라 그런가. 그래도 걱정 마세요. 과채즙을 미리 준비해 뒀으니까.”
인색 던전 브레이크가 끝난 이후에는 액체 합성에 여유가 생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류천의 치료를 위해 그 이후로도 꾸준히 과채즙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최근에 수확한 백태콩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마력이 깃든 백태 LV.1]희미한 마력이 담겨 있습니다.
섭취 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유의미하게 낮춥니다. 체내에 흡수되지 않은 지방을 분해합니다.
파프리카와 섞으니 맛은 좀…… 독특해졌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쨌든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바로 파프리카 두유. 선아는 이런 걸 만들어 낸 날 보며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힐난했었다.
‘민트초코우유에 이은 희대의 괴작!’
참고로 난 민초파다. 선아는 그런 날 괴물 보듯 쳐다봤고.
최상층 응접실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가볍게 다과를 즐겼다. 아라는 신이 나서 열심히 과자를 집어 먹었는데 그럴 때마다 류천이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몫에 과자를 건넸다.
“류천은 착한 것이다.”
“귀여워.”
마치 AI 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현장을 보며 유비홍이 입을 열었다.
“저희 법무 담당 팀과 거래 담당 직원이 곧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미처 말씀을 못 드렸는데 저희 길드장님께서도 함께 오십니다.”
“…….”
묵묵히 듣고 있던 길드원들이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나 또한 유비홍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가 대뜸 들려온 마지막 말에 잘못 들었나 싶어 머리를 긁적였다.
“길드장님……?”
“길드장님이라면 혹시 마천루 길드장님?”
“마천루 길드 류왕진 길드장?!”
단계를 밟고 커져 가는 반응에 나도 편승했다.
“류천 님의 할아버님?”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조심스레 움직여야 하는 사안이다 보니…….”
정신이 없는 와중에 길드 직원이 들어와 손님이 도착했음을 알려 왔다. 그렇게 별다른 준비도 못 한 채 마천루 길드 사람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단 마중 나가겠습니다.”
“혀, 형님. 같이 가십시오!”
우리도 얼떨떨한 모습으로 같이 일어나자 한석준은 괜찮다며 정소연과 강한울만 데리고 나갔다.
어색한 공기 속에 다시 자리에 앉자 유비홍이 죄송한 얼굴로 말했다.
“실례를 했습니다. 규성 님에게는 그래도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아,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상대는 무려 마천루의 주인.
그 넓은 중국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의 주인이었다. 세계로 따져도 상위 50위 안에 드는 길드가 바로 마천루.
사실 요한 로스차일드의 테러 길드를 제외하면 감당할 만한 곳이 없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었다.
‘……조금 열받긴 하네.’
인접국인 일본이나 중국은 모두 각성자 강국이었다. 우리나라도 강국이라 불리고 있지만 바로 옆 두 나라와 비교되어 항상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각성자는 곧 인적 자원,
인구수에서 밀려 버리니 경쟁이 되지 않았다. 물론 두 나라 모두 우리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고는 있지만 라이벌 의식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셋 중 꼴찌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적어도 중간은 가야하지 않겠나?!
“저어…… 이규성 님?”
“예, 예?”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노여움을 풀어 주시지요.”
“이규성규성 화난 것이다! 으아아!”
내 표정이 굳어 있었나 보다.
나는 황급히 표정 관리를 하며 웃어넘겼다.
“아, 아닙니다. 화난 게 아니라 그냥 각오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각오요?”
“예. 각오라기에는 거창한데, 그냥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우리 아라홍련 길드도 마천루처럼 이름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마천루 소속인 제가 이런 말을 하기도 뭐하지만 분명히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그만큼 규성 님의 능력은 특별해요.”
유비홍이 눈을 빛냈다.
“이번에 저희 길드장님께서 왜 굳이 직접 오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손녀분이신 류천 님께서 이곳에…….”
애써 대답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설마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야, 자의식 과잉이겠지? 설마 나 하나 보겠다고 마천루 길드장이 직접 올 리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전날에 모였던 사람들이 대박이었지.’
백 대표님이야 원래 얼굴을 알던 사이였지만 테러 길드의 요한 길드장이 나를 보려고 보육원 행사에 직접 행차했다는 건 사실 놀라웠다.
요한의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투자 성향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자비롭던 한석준이 유독 요한만은 경계하며 나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려 하게 하지 않을 정도.
덕분에 통성명만 가볍게 나누고 행사 도중에는 멀찍이서 눈인사만 주고받았다.
“반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희 길드장님은 류천 님을 지극히 아끼시죠. 하지만 왜 그렇게 아낀다고 생각하세요?”
“그야 손녀시니까…….”
“강해서.”
류천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강해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길드에 도움이 되니까.”
“…….”
싸늘하리만치 냉정한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길드만을 위해 달려왔던 과거의 백 대표님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중국 10대 길드의 길드장들은, 아니 아마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길드의 길드장들 중에 정상인은 없다고 봐도 무관합니다. 저희 길드장님도 정상은 아니시죠.”
“그, 런 말씀을 하셔도 괜찮은 건가요?”
“여기 안 계시잖아요? 이 정도야 뭐.”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말하는 유비홍을 뒤로한 채 슬쩍 류천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틀린 말이 아니라는 듯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니 할아버지 욕을 하고 있는데 동조하면 어떡해요.
“조심해야 할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 정상이 아니라서 규성 씨가 마음에 들면 이상한 행동을 할지도 몰라요.”
“크흠, 조심해야겠네요.”
되도록이면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있어야겠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슬슬 오는구나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문이 벌컥 열어젖혀지며 자욱한 안개가 들어왔다.
……안개? 웬 안개?
“오오오!”
아라가 뭉글뭉글 퍼지는 안개를 보며 도도도 달려갔다. 그러더니 안개를 잡으려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귀여워.”
자동응답기가 되어 버린 류천의 말이 이어졌고, 이내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劉乾!!”
선명한 중국어.
발음으로 대충 짐작해 보자면 류천을 부르는 듯했다.
이내 자욱한 안개를 뚫으며 등장한 남자의 외모는 많이 특이했다. 마치 구름이 몸을 감싼 듯 보이며 머리에도 구름으로 된 동그란 테가 둘러져 있었다.
‘이 사람이…….’
마천루 길드의 주인이자 8급 각성자.
하늘 위의 하늘, 제천대성 류왕진.
구름을 다룰 수 있는 각성자로 구름을 이용해 자신을 손오공처럼 꾸미고 다니는 특징이 있었다.
“오?!”
“음?”
아라와 맞닥뜨린 류왕진이 가만히 아라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라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안녕인 것이다?”
“…….”
그런 아라를 보며 류왕진이 자신의 손가락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반지 중 하나를 문질렀다. 그러고 목소리를 내자 신기하게도 곧바로 통역이 되었다.
“아아, 들리나?”
“오!”
“만나서 반갑구나. 네가 우리 류천이 좋아한다는 그 아이로군.”
“아라인 것이다!”
“그래, 아라야. 나는 류왕진이다.”
“류왕진!”
아라에게는 굳이 통역할 필요가 없었으나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뒤를 이어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는데 류왕진의 뒤를 쫓느라 급했던 듯 모두 낭패한 기색이었다.
‘표정들이…….’
뭐가 좀 잘 안됐던 걸까?
우리 길드원들을 비롯해 마천루 쪽 사람들의 표정도 곤란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래서 이규성규성이 이만~큼! 만든 것이다!”
“그래? 그래도 눈치는 있는 듯 보이는구나.”
그사이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류왕진이 아라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느새 류천이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아라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규성 님, 잠시만요.”
“예? 예.”
한석준이 조심스레 불렀다.
슬쩍 다가가자 귓속말을 해 왔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돌아가실 때 뒷문으로 조용히 빠져나가세요.”
“예에…….”
“몰래 온다고 해 놓고 아주 대놓고 광고를 해 버렸습니다. 규성 님에게도 불똥이 튈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왜 그러나 했더니 저 양반이 몰래 입국한다고 우리한테 사전에 알리지도 않아 놓고 막상 와서는 저렇게 대놓고 다닌 모양이었다.
확실히 류천과 유비홍의 말대로 정상이 아니었다.
“뭔 이야기를 그렇게들 하지?”
“저희가 오늘 거래할 물건에 대해 말을 좀 나눴습니다.”
“그래. 일단 물건부터 한번 구경해 볼까? 안 그래도 이번 던전 브레이크 때 기가 막힌 해독제를 들고 왔었더만.”
후욱-!
연기와 같은 구름이 숨을 내쉴 때마다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이 묘한 위압감을 주었는데 나는 별다른 내색 없이 보끔이를 꺼냈다.
“슬라임?”
류왕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사이 파프리카 두유를 꺼냈다. 보관에 용이하게 플라스틱 통에 담았는데 색으로만 보면 그냥 두유와 똑같았다.
슬금.
류천이 아라를 여전히 품에 안은 채 다가왔다. 두유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겁니다.”
“저번에 본 거랑 다르네요.”
류천의 중얼거림에 유비홍과 류왕진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두유인 것이다!”
“두유?”
이내 우리 길드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와 플라스틱 병에 담긴 두유를 확인했다. 과채즙과 딸기 포션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액체형 음식.
사실상 앞서 선보인 두 종류의 액체는 음식이라기보다는 그저 즙을 가공한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번에 만든 건 그저 대충 즙을 낸 게 아니라 만드는 법을 참고하고 만든 진짜 두유였다.
‘그래 봤자 불리고 껍질 까고 삶고 파프리카 즙하고 같이 간 게 전부지만.’
그 외에 고소고소도 들어갔다.
자칫 파프리카로 인해 맛이 묘해질 수도 있었는데 고소고소 덕분에 고소함이 극대화되었다.
탁탁탁.
“많은 것이다!”
“하나가 아니야?”
보끔이의 입에서 계속해서 두유를 담은 병이 나왔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하나씩 건네보았다.
“드셔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