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21)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21화(21/119)
너무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나는 잠도 자지 않고 농사일에 열중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지금이라도 무를까.”
복사기를 한 손에 쥔 나는 눈앞에서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뿌우를 보았다.
뿌우에게 이상이 생기진 않겠지. 고작 복사가 되는 것뿐이니까.
“하아…….”
복사기 하나에 1년의 값어치가 담겨 있었다.
물론 제자리걸음을 했던 지난 3년을 생각하면 고작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그때와 지금은 밀도가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하루가 그때의 한 달과, 아니 어쩌면 1년과 같은 값어치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하루만 더 미룰까.
어차피 오늘 사용하지 않아도 어떻게 되는 건 아닌데.
잠시 회피하려는 경향이 나타났지만 나는 정신을 차렸다.
짜악!
뿌우?!
“어차피 1년이나 기다릴 리가 없어. 지금 사용한다.”
선택지가 애초에 없었다.
아깝다고 미뤄 봤자 소중한 시간만 낭비하는 셈이었다.
마크투의 레벨 10을 기다린다고?
차라리 그사이에 뿌우를 11레벨로 만들어서 스노우볼을 굴리는 게 훨씬 이득이지.
혼자 중얼거리고 있자 마침 시간이 되었다.
“간다! 뿌우!”
뿌우?
나는 주저 없이 슬라임 복사기를 사용했다.
[슬라임 복사기를 사용합니다.] [대상 확인]손에 쥐고 있던 복사기가 녹아내리더니 꾸물거리며 뿌우에게 향했다. 곧이어 순식간에 부피를 늘리며 뿌우를 감싸고, 이내 빛나기 시작했다.
“주사위를 던져 버렸구만.”
나는 조금 허탈한 심정으로 천천히 기다렸다.
빛이 점차 사그라졌다. 감싸고 있던 복사기가 떨어져 나가며 이내 뿌우와 똑같은 외형의 슬라임이 생겨났다.
[?? 슬라임 LV.10]평범하지 않은 슬라임이다.
봉인된 상태.
‘액체 합성 가능’
능력 : ??
완전 똑같이 나왔다.
설마 물음표까지 그대로 나올 줄은 몰랐다.
“뿌우야, 이제 합체할 시간이다.”
뿌우?
뿌우?
반응까지 똑같으니 진짜 뿌우랑 복사된 뿌우가 헷갈렸다.
어찌 됐든 레벨 11 슬라임, 출격이다.
[??슬라임 LV.10과 ??슬라임 LV.10이 합성합니다.] [합쳐지는 슬라임들이 모든 기억과 경험을 공유합니다.]이전과 뭔가 달랐다.
그냥 슈르륵하고 합쳐지며 곧바로 결과가 나왔던 전과 달리 한참 동안 꿀렁대며 합성이 늦어졌다.
“뭐가 잘못된 건가?”
초조한 마음으로 잠시 지켜봤다.
그러나 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몰라 가까이 다가가 상태창이라도 확인해 보려 하자 다행히 표시가 뜨긴 했다.
[합성 중…….]“이런 적은 처음인데.”
잘못된 건 아니지만 이렇게 표시가 뜨는 걸 보니 보통 일도 아닌 듯 보였다.
역시 레벨 10인가.
아니면 애초에 뿌우가 특이한 슬라임이어서 그런 건가.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꾸물?
마침 마크투가 밀짚모자를 삐딱하게 눌러 쓴 채 다가와 갸웃거렸다. 합성이 되고 있는 뿌우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꿀렁?
“합성 중이야. 혹시 모르니까 건들지 마.”
꾸물!
녀석은 몸을 끄덕이더니 이내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 몸을 흔들어 댔다.
“드디어 수확할 때가 온 건가.”
나는 다시 한번 합성되고 있는 뿌우를 돌아봤다. 여전히 섞인 채 꾸물대는 노란 슬라임을 보며 천천히 기다려 보기로 했다.
“다른 애들한테도 혹시 모르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전해 둬.”
꾸물!
혹시 모르니 뿌우를 건드리지 않고 조심스레 지나쳐 갔다.
그렇게 마크투가 안내하는 곳으로 가자 이미 슬라임 여럿이 한군데에 모여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었다.
“엠버그릴?”
레일라의 수확 시기를 생각해 보면 굉장히 빠른 성장 속도였다.
던전 작물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 건 아니지만 선입견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근데 진짜 많이 자라긴 했네.”
작은 나무 형태의 식물이었다.
그러나 가지의 형태가 구불구불한 것이 마치 덩굴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었다.
수확하는 방법을 몰랐기에 우선은 슬라임들이 하는 모양새를 잠시 지켜보았다. 그러자 슬라임들이 서로의 몸을 마치 사다리처럼 이용하며 올라가 엠버그릴의 높이에 맞추었다.
꾸릉! 꾸릉!
그럼에도 닿지 않는지 낑낑대고 있었는데 나는 곧바로 다가가 맨 위에 있는 신병 녀석을 손으로 들어 올려 주었다.
꾸물!
마치 고맙다는 듯 꿈틀거린 녀석은 이내 엠버그릴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마치 녹차잎을 따듯 가장 어린 새순을 뜯었다.
“와아, 이거 난 못 알아보겠는데?”
내 눈에는 다 같은 새순으로 보였는데 어떤 건 수확을 하고 어떤 건 지나쳤다. 만약 내가 했다면 무분별하게 다 수확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슬라임들을 도와주며 엠버그릴을 심은 구역을 전부 돌자 상당량의 새순을 수확할 수 있었다.
전부 딴 것도 아니고 슬라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수확했음에도 꽤 많았다.
꿀렁! 꿀러엉—!!
“음?”
나는 그대로 저장고에 모아 놓으려 했으나 갑자기 마크투가 격렬히 반응을 해 왔다.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수확한 엠버그릴을 내려놓고 마크투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녀석은 엠버그릴을 한 움큼 집어 들더니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은 근처 공터에 정성스레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아! 말리려는 건가?”
찻잎을 말리듯이 건조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근데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들은 엠버그릴들은 전부 건조가 되지 않은 생잎이었다.
‘마크투가 그래도 더 잘 알겠지?’
나는 농사 능력을 지닌 마크투를 믿어 보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확한 엠버그릴에 아이템 표시가 뜨지 않아 의아했는데, 어쩌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템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슬라임들이 모두 모여 수확한 엠버그릴의 새순을 널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널어놓은 새순에 체액을 묻혔다.
“거 참 희한하네.”
저번에 이미 체액을 연구소로 보내 분석을 해 보았지만 딱히 특이점은 없다고 결과가 나왔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녀석들의 행동을 보면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벽 곳곳에 설치된 빛나는 돌들이 태양을 대신하며 빛을 내리쬈다. 그렇게 엠버그릴이 마르는 걸 기다리며 다시 한번 슬쩍 뿌우를 살펴보자 여전히 꿀렁대며 합성이 진행 중이었다.
아까랑 다르게 조금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꿀렁!
“왜 또?”
엠버그릴의 작업을 완료한 마크투가 다시 나를 끌었다. 또 수확할 게 있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데려가는 방향을 보니 드디어 고대하던 당근의 차례였다.
그저 평범한 당근이 아니었다.
마력이 깃든 씨앗을 이용해 재배를 시작한 당근이었다.
“근데 어째 크기가 더 작아진 것 같다?”
예전에 수확했던 마력이 깃든 당근은 보통의 당근보다 그 크기가 월등히 컸는데, 이번 건 오히려 보통의 것보다 작아 보였다.
“요상하네.”
그래도 맛만 있으면 오케이다.
게다가 이전과 외형이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새로운 당근이라는 게 증명되는 셈이라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자, 자. 다들 충분히 쉬었으면 다시 일하러 가 보자.”
꾸, 꾸물?
이제야 엠버그릴의 작업이 끝난 슬라임들이 그게 무슨 망언이냐는 듯 꾸물댔다.
난 그런 제스쳐를 가뿐히 패스해 주며 내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였다.
“응?”
흙을 살살 털며 당근의 몸체를 확인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겉으로 드러난 잎사귀 부분이 예전보다 작고, 또 땅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크기가 작다고 생각했는데…….
뾱!
“이게 뭐냐?”
조금 큰 딸기 크기만 한 당근이 튀어나왔다.
내 예상보다 훨씬 작은 크기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빠바밤!
[새로운 작물을 발견했습니다.]이름을 지어 주세요.
이전과 같은 문구가 내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일단은 수확한 작물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 LV.1]마력이 담겨 있는 작물.
인체에 무해합니다.
섭취 시, 15초간 ‘천리안’을 얻습니다.
섭취 시, 3초간 소량의 마력이 증가합니다.
“오?”
소량의 마력이 증가한다는 건 방울토마토와 같았다. 그러나 그 위에 존재하는 천리안 능력은 새로웠다.
“시력과 관련된 효과가 더 강화된 느낌이네.”
솔직히 뭐가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는데 느낌적인 느낌으로는 이게 더 좋아 보였다.
정 궁금하면 한번 직접 먹어서 경험해 보면 되지.
“이름은 먹고 나서 정해야겠다. 잘 먹겠습니다.”
어느새 모여든 슬라임들의 눈총을 받으며 곧바로 당근을 한 입에 씹었다. 마치 딸기를 먹는 느낌이었다.
“으음?!”
그러나 그 맛은 분명 당근의 그것이었다.
[천리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표시와 함께 농축된 당근 향이 순식간에 코를 통해 뇌를 찌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맛있다아!!”
당연히 맛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이건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들조차 게걸스레 탐할 맛이었다.
근데 웃긴 건 분명 당근의 그 맛과 향이 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크기가 작은 게 좀 아깝지마아아안……?!”
당근을 음미하던 나는 어느새 꿈틀대며 무언가를 하고 있는 슬라임들의 행동을 지켜보다 놀라고 말았다.
내가 당근을 꺼냈던 자리의 흙을 더 뒤지더니 이내 그곳에서 작은 당근들을 연이어 뽑아냈다. 마치 고구마나 감자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딸기 크기의 당근들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괜히 작은 게 아니었네. 설마 이렇게 변했을 줄이야.”
토마토는 그냥 색깔만 형형색색으로 변하기만 하고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기에 당근도 그 정도의 변화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이런 식으로 변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력 꼬마 당근으로 하자.”
곧바로 등록하겠냐는 메시지가 뜨며 이 당근의 이름은 마력 꼬마 당근이 되었다.
그나저나 이 수확량을 보면 마력이 깃든 당근과 비교해도 그리 꿇리지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먹을 때는 이게 간편하게 먹기에 훨씬 더 좋았다.
“이것도 방울토마토처럼 중독성이 있는데.”
어느새 3개째를 먹으며 나는 당근의 무시무시함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혼자 먹기는 미안해서 슬라임들에게 조금씩 먹으면서 작업해도 된다고 하자 수확량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꽤 많네.”
아직 무게를 재 보지는 않았으나 저번보다 많은 양이었다. 그것도 모종용으로 사용할 걸 따로 빼 둔 양이었다.
수확한 당근은 곧바로 저장고에 옮겨 슬라임의 체액으로 밀봉해 두었다. 왠지 슬라임의 체액이 만능처럼 느껴지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신비함만 쌓여 갔다.
꾸물!
꿀렁!
작업이 끝나자 다시 한산해졌다.
여전히 뿌우는 합성이 완료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슬라임들이 각자의 몫으로 배분된 당근을 내게 가져오며 꾸물댔다.
“뭐야, 또 요리해 달라는 거야?”
꿀렁!
꾸물- 꾸물-!
이 녀석들.
맛있는 건 알아 가지고.
솔직히 그냥 먹어도 맛있다고 느껴지는데 이게 요리까지 되면 얼마나 더 맛있어질까 궁금해지기는 한다.
“……재성이를 아예 이쪽으로 부를까.”
어차피 일을 그만뒀다고 하는 데다 기다리고 있는 것도 내 작물들이니 차라리 이곳에서 직접 생활하며 내 재료들로 요리 연습을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겸사겸사 슬라임 전용 요리사를 시키며 월급도 주고……. 아마 본인은 기겁하겠지만.
“그렇다면 연락부터 해 봐야지. 잠깐만 먹지 말고 기다려라, 얘들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곧장 불러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