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23)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23화(23/119)
여러 물건이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는 방의 한가운데. 한 사내가 어떤 작업을 하다가 잠이 든 듯 엎어져 있었다.
“흐압?!”
그러다 문득 눈을 뜨더니 입에 묻은 침을 닦아 냈다.
“내가 언제 잠이 들었지. 끄응.”
최영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켰다. 그러고는 전날 하고 있던 작업을 다시 확인했다.
“으음…….”
규성에게 구입한 과채즙은 총 4개.
그중 2개는 연구를 위한 목적으로 소모했고 나머지 2개는 아내인 김시영에게 복용시킨 후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렴풋이 이 과채즙이라면 해독에 성공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해독 물질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불가능한 물질.’
1세대 각성자의 시대를 함께해 오며 연구란 연구는 모조리 했다. 그러면서 던전이나 각성 능력에 대한 미지를 대부분 파헤쳤다고 자신했던 그였다.
그러나 아내인 김시영이 중독된 이후 그러한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었다.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도 나아지지 않는 병세에 최영성 본인도 점차 시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고칠 수 있어.”
그런데 사그라들던 불꽃에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규성의 능력 덕분에 희망의 빛이 거세게 타오르며 최근의 최영성은 자신이 젊었을 적보다 더욱 왕성하게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그렇게 연구를 대충 정리하고 잠깐 아내인 시영의 상태를 확인해 보러 연구실을 나선 순간.
“어, 여보? 일 끝났어?”
“……아?”
순간 최영성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김시영이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기를 몇 년.
그녀가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본 게 대체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에는 힘겹지만 벽에 기대어 천천히 걷고 있는 시영이 있었다.
“여보, 이거 봐 봐요. 나 일어났어. 놀랐지?”
“아, 아니 이게 대체…….”
믿지 못할 광경에 말을 더듬던 최영성은 이내 휘청거리는 김시영을 향해 달려가 부축했다. 깡마른 몸이 느껴졌으나 예전과 달리 힘이 있었다.
“아아…….”
“당신 왜 울고 그래. 내가 일어났으면 더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기쁘니까! 기쁘니까 울지!”
여전히 수척한 안색이었으나 장난스레 말을 거는 김시영을 향해 최영성이 눈물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그러고는 정신을 차려 김시영을 부축한 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움직이는 건 무리일 수도 있는데 왜 갑자기 그런 거야.”
“당신 기쁘게 해 주려고 그랬지. 성공했잖아?”
최영성은 곧바로 김시영의 몸 상태를 기계로 확인했다. 마나석으로 가동되는 기계가 순식간에 시영의 몸 상태를 확인하여 결과를 도출해 냈다.
“아!”
결과는 이전보다 현저히 좋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 분포되어 있던 독들이 상당수 약화된 것도 확실히 보였다.
‘고작 과채즙 두 개만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동시에 막연한 희망이 아닌 정말로 완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때요? 나 많이 나았어?”
“으, 응. 그렇지만 무리하면 안 돼. 그동안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근육이나 몸이 상당히 약해진 상태야.”
“알았어요. 오늘은 나도 그냥 여보를 놀래주고 싶어서 그런 거였어요. 이제 웬만하면 무리 안 할게.”
시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며칠 전보다 훨씬 밝아진 그녀의 모습에 최영성은 다시 울컥하려는 걸 참아 내며 같이 미소 지어 주었다.
“나을 수 있어. 완치 가능해.”
“꿈만 같네. 예전이면 믿지 않았을 텐데 내가 직접 겪으니까 정말로 나을 수 있을 것 같아.”
“반드시 낫게 해 줄게.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어!”
“응!”
김시영과 최영성은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완치되면 가장 먼저 뭐부터 하고 싶어?”
“음…… 완치되면 가장 먼저 나를 치료하게 도와준 은인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어.”
“규성이? 그렇지. 안 그래도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는 문득 이 소중하고 기쁜 사실을 이규성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던전 안에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을 터였으나 일단 메시지부터 남기고 보았다.
-규성아! 과채즙 추가!
너무 급했던 나머지 감사 인사는 미처 전달하지 못한 최영성이었다.
* * *
하루 정도 던전 생활을 경험한 재성이는 작황이나 던전 내부를 살피더니 이내 뭔가를 좀 더 준비할 게 있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흐음, 아직도 합성 중이네.”
그렇게 하루가 지났음에도 뿌우는 여전히 합성이 진행 중이었다. 이쯤 되면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영성이 형이 보내 준 자료에도 딱히 정보가 많지 않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따로 없나.”
슬라임에 대한 정보도 그리 많진 않았다.
괜히 어려운 말만 가져다 붙인 그저 형식적인 논문들만 존재했는데 차라리 나 스스로 알아낸 정보가 더 많을 정도였다.
이해는 했다.
다른 몬스터야 잡고 나면 부산물이 생긴다. 그 부산물의 가치는 다 제각각이었는데 슬라임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꾸물! 꾸물!
마침 일을 끝낸 독독이가 바닥에 주저앉은 내 무릎 위로 올라와 항변하듯 몸을 흔들어 댔다.
“쓸모가 없진 않지. 이렇게 귀여운데!”
물론 슬라임 군주를 가진 나에게는 존재 자체만으로 힐링이 되는 녀석들이었지만 공격성이 없고 약하기까지 하니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영성이 형한테도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확인해 볼까?
‘아직 오늘치 능력을 사용하기 전이니까 연락을 먼저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과채즙이 아직 더 필요할 듯싶지만 그게 아니라면 슬라임들을 합성하는 것도 좋으니까.
슬슬 다른 것들도 수확할 시기가 다가오니 냉큼 밖으로 나가 영성이 형에게 연락 한번 하기로 했다.
나는 슬라임들에게 뿌우를 건드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다음에 던전을 나왔다.
“오?”
영성이 형한테 과채즙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
치료는 잘돼 가고 있는지 궁금한데.
‘한울 님은 바쁘신 모양이네.’
웬일로 연락이 없으셨다.
평소에 항상 대량의 메시지를 남기셨던 분이 조용하자 왠지 모를 서운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굳이 연락해 보는 대신 영성이 형에게 통화를 걸어 보았다.
띠리리리-
뚝!
“어, 영성이 형! 안녕하세요.”
-아! 규성아! 고맙다! 정말 고마워!
다짜고짜 감사의 인사를 형의 말에 나는 결과가 나쁘지 않았음을 짐작했다.
“혹시 결과가 나왔나 궁금해서 연락드려 봤어요. 목소리 들어 보니까 괜찮았나 봐요?”
-……규성아, 놀라지 마라. 아무래도 네가 만든 아이템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아니, 효과가 있는 것뿐만 아니라 완치 가능성이 보여!
오오! 듣던 중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영성이 형의 기뻐하는 목소리도 이해가 되었다.
“과채즙 좀 더 달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더 필요하실까요?”
-일단은 최대한 많이!
“알겠어요. 바로 만들어 드릴게요.”
-어디로 가면 될까? 전에 만났던 카페?
그때 수화기 너머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규성 씨 좀 보고 싶은데.
“어? 형수님이세요?”
목소리가 활발한 게 정말로 몸 상태가 좋게 느껴졌다. 실제로 봐야 알겠지만 과채즙 덕분에 많이 나으신 거라면 정말 뿌듯할 것 같았다.
“그럼 제가 갈게요, 형.”
-아, 아니야. 굳이 무리할 필요 없어. 내가 갈게.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어차피 일도 전부 다 끝내 놨어요.”
사실 나도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만든 아이템이 누군가를 살린다는 게 굉장히 뜻깊게 다가왔기에.
‘그동안 거의 쓸모없던 내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다니…….’
그것도 오직 나만의 능력이었다.
농작물이야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 쳐도 이를 과채즙으로 가공하는 건 액체 합성을 지닌 나만 가능한 거니 오롯이 내 공이었다.
-너무 미안한데…….
“괜찮아요. 매번 형이 와 주셨는데 제가 한번 갈 수도 있는 거죠. 그리고 제가 형수님 한번 뵙고 싶기도 하고요. 주소 찍어 주세요.”
-고맙다.
통화를 끊고 주소를 확인해 보니 용산이었다.
아마 가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집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일단은 던전으로 다시 돌아가 액체 합성의 쿨타임이 되자마자 곧바로 과채즙을 두 개 더 만들었다.
이번에는 마력 꼬마 당근도 함께였다.
[마력 과채즙 LV.1]재료 : 마력 방울토마토, 마력 꼬마 당근, 레일라
섭취 시, 20초간 보유한 마나량에 따라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섭취 시, 조금 더 강한 해독 작용이 일어납니다.
섭취 시, 1분간 던전 보스를 제외한 몬스터들의 적대 반응이 사라집니다.
“오오.”
당근만 바뀌었을 뿐인데 전체적인 효과가 향상되었다. 아마 재료로 사용된 것들이 마력 세트로 묶여서 그런 듯했다.
‘해독 효과도 강화됐다. 이거 진짜로 형수님 낫게 해 드릴 수 있겠는데?’
그렇게 과채즙을 완성한 나는 한껏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영성이 형네 집으로 향했다.
“왔어?”
“굳이 나오실 필요까진 없으셨는데.”
집 앞까지 나온 영성이 형이 나를 반겨 주었다.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셨어?”
“응. 왔어.”
저 목소리가 바로 아라홍련 길드의 부길드장이었던 전설적인 각성자인 김시영.
나는 영성이 형의 뒤를 따라 그녀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이규성이라고 합니다.”
“어머. 훤칠한 총각이셨네. 전 김시영이라고 해요. 덕분에 목숨을 연명하고 있죠.”
장난스레 말하는 김시영을 보며 영성이 형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둘을 보니 나도 모르게 더욱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반드시 낫게 해 드린다.’
둘의 이야기가 슬프게 끝맺기를 원치 않았다.
행복한 둘의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형, 일단 여기 과채즙이요.”
“아, 고맙다.”
“규성 씨는 특이한 능력을 각성하셨나 봐요?”
“예. 액체 합성이라는 능력입니다.”
예전에는 부끄러워서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지금은 당당하게 능력명을 말할 수 있었다.
액체 합성이 절대 모자란 능력이 아님을 몸소 느끼고 있는 요즘이었으니까.
“아, 그 능력으로 그런 신비한 물건을 만들어 내는 거군요.”
“안 그래도 이 녀석 때문에 아라홍련에서 몇 번이나 연락이 왔었는지 몰라.”
어? 아라홍련에서 나 때문에 연락이 왔었다고?
“그건 금시초문인데요?”
“아라홍련에 초대돼서 갔었잖냐.”
“예, 저번에 형이랑 만난 날이었죠.”
“그때 네가 돌아가고 난 후에 강한울 그놈은 물론이고 길드장님까지 내게 직접 연락을 주셨다니까.”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냥 너에 대해 궁금해하더라고. 혹시 좋아하는 게 있는지, 취미는 뭔지 등등.”
하긴 내 작물이 워낙 임팩트가 크긴 했다.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맛이지.
그렇게 잠깐 잡담을 떨다가 드디어 영성이 형이 과채즙을 확인했다. 그런 그를 향해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업그레이드됐습니다, 그거.”
“응? 뭐라고?”
“더 좋아졌다고요. 아! 형수님은 각성자이시니까 효과를 읽으실 수 있으시겠네요.”
“어디 봐 봐.”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영성이 형은 이내 형수님에게 과채즙을 넘겼다. 그리고 형수님은 아이템의 효과를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섭취 시, 20초간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 가능……. 섭취 시, 조금 더 강한 해독 작용……. 1분간 적대 반응 제거?”
“뭐야?! 문구가 달라졌잖아?”
“후후. 제 과채즙은 계속해서 개량됩니다. 앞으로 더 좋아질 수도 있어요.”
“아니 그런…….”
내심 격한 반응을 기대했었지만 기겁하는 영성이 형을 보니 그 정도인가 싶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나는 빨리 형수님이 과채즙을 드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설마 다시 연구해 볼 생각이세요?”
“음, 하나만 일단 복용해 보고 경과를 한번 지켜보는 방향으로…….”
그때 형수님이 들고 있던 과채즙을 그대로 마셨다. 원샷으로 다 마셔 버린 그녀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몸에도 좋은데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규성 씨, 고마워요. 내가 요즘 이거 마시는 낙에 살아.”
“그거 하나에 천만 원이야, 여보!”
으음…….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천만 원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썩 편치는 않았다.
나는 웃으며 영성이 형의 말을 무시하는 형수님을 보며 다시 가방을 뒤적거렸다.
“뭘 또 그렇게 찾아?”
“제가 선물을 좀 가져왔거든요.”
이번에 수확한 당근이 좀 많이 남았다.
물론 여느 때처럼 내다 팔 정도의 양은 아니었고, 소소하게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정도의 양이었다.
“그게 뭐예요?”
“당근입니다.”
“당근?”
외형은 당근이긴 했지만 워낙 크기가 작았기에 특이할 법도 했다. 나는 마치 딸기를 들 듯 당근을 집어 영성이 형과 형수님에게 나눠 줬다.
“드셔 보세요.”
“과채즙까지 받았는데 참…….”
“이건 서비스입니다.”
영성이 형은 뭔가 미안한 마음이 좀 있었는지 조금 망설……이 아니라 또 연구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도졌나 보다.
그사이에 형수님께서 먼저 당근을 씹었다.
오독!
곧이어 내 기대 어린 표정을 만족시켜 주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거 뭐야! 너무 맛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