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3)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3화(3/119)
오봉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을 타기까지.
나는 포션을 담은 가방이 혹여 충격을 받거나 누가 훔쳐 가지는 않을까 두 눈을 부릅뜬 채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울 용산.
예전에는 전자 상가로 유명했지만 이제는 각성자들의 만물상처럼 변한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던전에서 나온 물건들이 도소매로 팔리고 있었고 각성자들끼리의 직접 거래도 종종 일어났다.
무엇보다 장인의 능력을 각성한 이들이 이곳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하며 용산은 우리나라 각성자들의 메카가 되었다.
‘나도 예전에는 이곳에 가게를 차릴 줄 알았는데…….’
내 능력도 따지고 보면 아이템 제작 쪽이라 생각했었으니 당연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다른 제작자들과 다르게 나는 액체 종류만 합성 가능, 게다가 쿨타임은 양산이 불가능할 만큼 길었다. 가게를 차리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건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딸랑!
“어서 오세요! 오? 규성이 왔냐?”
문을 열자 가게의 주인인 영성이 형이 반갑게 맞이해 줬다.
막 각성자가 되었을 때부터 방문한 단골 가게였는데 조금씩 친해진 후로는 적당한 값으로 내 포션을 매입해 주는 조력자가 되어 주었다.
“형, 잘 지내셨어요?”
“그렇지, 뭐. 근데 이번에는 일주일 만이네?”
“예. 그리고 좀 많아요.”
“음? 갑자기 무슨 일이냐? 돈 쓸 일 생겼어?”
영성이 형은 나랑 15살 정도 나이 차이가 났는데 그래서인지 나를 조카처럼 귀엽게 여겨 주시는 분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가방에 있는 포션들을 모두 꺼내 카운터에 늘어놓았다.
총 18개.
야금야금 모아 온 재고 중 절반이었다.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능력을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한 것치고는 재고가 그리 많이 쌓인 것은 아니나 기본 지출 비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규성아, 형한테 말해 봐. 무슨 일 있어?”
“아니요. 별 건 아니고 그냥 던전이라도 좀 돌아 볼까 해서요.”
“갑자기?”
“퀘스트 때문이죠, 뭐.”
3년째 막힌 3번째 퀘스트.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주변에 말하지 않았다.
좋은 일도 아닌데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괜한 동정이나 혹시 모를 무시도 원치 않았다.
물론 영성이 형이나 가족들이라면 날 무시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상한다고 할까.
‘말해서 퀘스트를 깰 수 있었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당연히 말했겠지. 근데 굳이 그런 게 아니라면 말할 필요가 없다.’
영성이 형은 내 능력이 대충 뭔지는 짐작하고 있어도 설마 아직 3번째 퀘스트에서 막혀 있다는 건 모르고 있을 거다.
뭐, 이제는 그것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재고를 풀러 온 거지만.
“던전에 꽤 오래 있어야 하나 봐?”
“예. 며칠, 어쩌면 개월 단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쯧. 고생이 많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형한테 말해라. 내가 이래 봬도 인맥은 좀 있다.”
비록 조그마하지만 용산에 가게를 차릴 정도면 영성이 형의 말은 허세가 아닐 거다.
당장 도움받을 일은 없지만 마음만은 고마웠기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형. 나중에 진짜 급할 때는 형님 찬스 쓰겠습니다.”
“그래. 부담 가지지 말고 언제든지 말해.”
형은 내 포션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잠깐 기다리자 두꺼운 봉투 하나를 들고나오셨다.
“여기 돈. 일부러 좀 넉넉히 넣었으니까 오해하지 말고 챙겨 둬라.”
“아니, 형. 이러실 필요 없어요.”
“쓰읍, 인마. 우리가 안 지도 3년이나 됐는데 형이 용돈 준다고 생각하고 받아. 네 포션 덕분에 내가 번 걸 생각하면 얼마 안 돼.”
굳이 주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요새 사람들과 잘 만나지 않고 던전에서만 지내 와서 그런가. 아니면 그동안의 고생과 전날의 일 때문일까.
문득 감정이 복받치는 걸 느꼈다.
“……감사합니다.”
“그래. 볼 때마다 야위는 것 같은데 밥 좀 잘 챙겨 먹고. 잘생긴 얼굴이 아깝다, 인마.”
그렇게 감사를 표하고 울컥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게를 나서려는 순간.
“야, 이규성이!”
“예?”
“이것도 가져가라.”
영성이 형이 갑자기 튀어나와 무언가를 내 손에 쥐여 줬다. 시선을 내려 보자 천으로 쌓인 상자였다.
천에는 ‘횡성 한우’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다.
“가서 꾸워 먹어라.”
“아니, 형…….”
“마침 남아 있길래 주는 거야. 너 이대로 다시 집에 돌아갈 건 아니잖아? 오랜만에 나온 김에 가족들 얼굴도 보고 들어가야지. 가져가서 같이 먹어.”
“잘 먹을게요, 형.”
나는 거절하지 않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가게를 나왔다.
돈 봉투가 든 가슴팍의 주머니와 고기를 든 손이 유독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걸로는 부족하겠네.”
나는 영성이 형이 챙겨 준 고기를 보고 쓰게 웃으며 가족들이 있는 양주로 다시 넘어갔다.
* * *
“얼마 만이지.”
내가 지내고 있는 던전과 그리 멀지 않은 곳.
거의 한 달 만에 돌아오는 것 같았다.
가까우니 자주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3년 동안 제자리걸음인 내가 무슨 낯으로 가족들을 보겠나.
잘못한 건 없지만 괜히 꺼려졌었다.
삑! 삐비비빅!
띠리리-
“저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가 소파에서 TV를 보다 일어났다.
“아이고. 왜 연락도 없이 왔어?”
“금방 다시 돌아갈 거예요. 아버지는?”
“곧 오실 때 되셨어. 난 당연히 너희 아빠가 온 줄 알았는데, 아, 참. 밥은 먹었니?”
“안 그래도 고기 좀 사 왔어요. 애들도 밖이에요?”
“재성이는 곧 올 거야. 선아는 어제 대학교 엠티 갔어. 내일이나 오겠지.”
“아, 엠티 갔구나. 대학생 부럽네.”
어머니의 말에 짐을 내려놓은 나는 슬쩍 집안을 둘러보았다.
변한 것 하나 없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집구석이었으나 집안 사정이 썩 좋지 않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 살림에 한몫한 게 나였거든.
“요즘은 좀 어떠니? 잘 지내고 있지?”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요.”
나는 대충 돌려 말하며 품에서 봉투를 꺼냈다.
미리 내 생활비를 따로 빼 두었기에 나는 봉투를 그대로 어머니에게 건넸다.
“엄마, 여기. 생활비 좀 보태 써요.”
“얘는. 갑자기 무슨 돈이니? 됐어. 너 가져다 써.”
내가 각성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부모님의 막대한 지원을 통해 가능했다.
각성자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존재했는데 그중 하나는 자연 각성이고 나머지는 강제 각성이었다.
‘억 단위로 들었지.’
솔직히 말하면 구체적인 금액은 나도 모른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사업을 하신 덕분에 돈을 잘 버셔서 부담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이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잘 굴러가던 아버지의 사업이 갑자기 기울고, 이미 각성자가 되기 위해 돈을 쏟아붓고 있던 걸 포기하기도 애매하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아버지는 결국 나를 선택하셨다.
‘그렇게 각성자가 되었더니 고작 ‘액체 합성’이었지.’
겉으로 티를 내신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아마 내 능력을 듣고 가장 실망하신 분이 아버지이실 거다.
“얼마 안 돼요. 그래도 꼴에 각성자라고 돈 좀 버니까 용돈 드리는 거예요.”
“그 돈으로 네 능력에 투자해서 더 벌면 되지. 됐으니까 넣어 둬.”
“엄마.”
“아이, 됐다니까. 괜찮으니까 너한테 써.”
삐비빅!
띠리리-
때마침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곁에는 동생인 재성이도 보였다.
“어? 형?”
“규성이 왔구나.”
둘째인 재성이는 작년부터 작은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나온 녀석은 남매 사이에 낀 둘째여서 그런지 나나 막내인 선아보다 훨씬 일찍 철이 들었다.
사실 나만 아니었으면 프랑스 같은 곳에 있는 요리 학교에 유학을 가고 지금쯤 잘나가는 요리사가 됐을 수도 있는데 괜히 미안했다.
“오셨어요, 아버지. 재성이도 오랜만이네.”
“뭐 하고 있었어? 그건 뭐고?”
“생활비 좀 드리려고. 아버지가 받으세요.”
내가 봉투를 아버지께 드리려 하자 어머니가 냉큼 가져가셨다.
“아니, 나 준다잖어.”
“원래 저 주기로 했던 거예요.”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을 보다가 재성이한테도 용돈을 좀 주었다. 고작 10만 원밖에 안 되지만 마음의 빚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뭐라도 주고 싶었다.
“뭔 돈이야. 됐어, 형 가져다 써.”
“어떻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엄마랑 똑같이 얘기하냐. 그럼 그냥 선아 줄까?”
“아니, 그럼 그냥 내가 받을게.”
그렇게 한 차례 떠들고 난 뒤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난 대화에 잘 끼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으며 듣기만 했다.
워낙 던전에서만 지내 와서 그런가.
요새 바깥세상에서 유행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최근 핫한 뉴스나 가십거리도 아는 게 없었다.
“언제 돌아갈 거냐.”
아버지의 말에 고기를 굽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밥만 먹고 바로 가야죠.”
“며칠 쉬다 가는 건 어떤데.”
“에이, 제가 쉬어서 뭐 합니까. 쉬더라도 할 게 없어요.”
“너무 무리하지 마라.”
“…….”
아버지는 무덤덤하게 말씀하셨지만 지난 3년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남들이 보면 퀘스트도 못 깨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으니 매일 쉬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하루가 지나감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에조차 내게 쉼이 허락되지 않음을 알아버렸다.
“자, 고기는 엄마가 구울 테니까 요고 쌈 좀 싸 먹어 봐. 아아.”
“아, 음.”
어머니가 싸 주는 쌈을 입에 넣으며 열심히 구강운동을 해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괜히 집에 온 건가 하는 생각과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잘 먹었습니다.”
“우리가 잘 먹었지. 하여튼 집에 자주 좀 와. 아들 얼굴 보기 힘들어서 어째?”
어머니가 밝은 얼굴로 웃어 주었다.
이후 집에서 자고 가라는 가족들을 한사코 거부하며 던전으로 돌아가는 난 기분이 묘해졌다.
“괜히 사람이 감상적이 되네.”
만약 내가 이중 각성을 안 했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배 위에 조난당한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육지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는 때라고 한다.
눈앞에 보이는 희망으로 인해, 그리고 묘하게 가까워 보이는 원근감으로 인해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죽는다고.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것도 같네.’
아직 기뻐하거나 울기에는 일렀다.
감정을 터트릴 때는 정말로 성공했을 때나 해야지 아직 애매한 상황에서 벌써부터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어느새 던전에 도착하자 익숙한 정경이 드러났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마크투와 슬라임1이 나를 반겨 주었다.
꾸물-
꿀렁! 꿀렁!
“오늘 하루 잘 지냈냐? 일은 열심히 했고?”
꾸물!
음? 익숙한 정경이라고 생각했는데 뭔가 파릇파릇한 게 눈에 띄었다. 슬라임 때문에 잘못 보았나 생각했는데 다시 살펴보자 정말 파릇파릇한…….
“새싹?”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곧장 텃밭으로 달려갔다. 그런 내 뒤를 슬라임들이 열심히 쫓아오는 게 느껴졌다.
“잡초는…… 아니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잡초라면 이렇게 쌍떡잎이 자라진 않겠지? 아니, 누가 보아도 이건 잡초가 아니었다.
“미친…….”
슬라임 때문인가?
근데 고작 하루 만에 이렇게 자란다고?
어쩌면 원래 자라려고 했던 건데 타이밍 좋게 슬라임이 있던 게 아니고?
“허어!”
뭐가 어찌 됐든 확실한 건 드디어 싹이 텄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싹을 못 틔웠었는데 처음으로 일구어낸 성과였다.
꿀렁!
그렇게 감격스러워하는 내 옆에서 마크투가 마치 칭찬을 해 달라는 듯 자랑스럽게 꿀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