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33)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33화(33/119)
오랜만에 보는 퀘스트창이었다.
한때는 퀘스트에 목숨을 걸고 살아왔던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이 변했음을 실감했다.
“던전의 이름은 역시 탐식인가.”
나는 퀘스트의 내용보다 이 장소의 이름에 주목했다. 예상은 했지만 시스템 공인의 탐식의 던전이었다.
근데 다시 한번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해 보자 의외로 난이도가 높아 보이진 않았다.
아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게 뭔 해괴망측한 퀘스트야 라고 기겁을 했겠지만 내게는 보너스나 마찬가지인 퀘스트였다.
“어차피 여기서도 농사를 지어 보려 했는데 짓는 김에 퀘스트도 깨겠구만.”
생각해 보면 퀘스트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는 오랜만에 확인이나 해 보자는 마음으로 퀘스트 목록을 살펴봤다.
[각성 퀘스트 : 몬스터를 사냥해라]슬라임을 이용해 몬스터를 사냥하십시오.
고블린 : 0/10
[각성 퀘스트 : 공물을 바쳐라]제시되는 아이템을 모아 제출하십시오.
직접 수확한 던전 과일 : 10/10
직접 수확한 마력이 깃든 농작물 LV.2 : 0/50
[ 퀘스트 : 신종 작물을 개발하라]새로운 작물을 발견하거나 개발하세요.
새로운 작물 : 1/3
남들은 하나만 깨는 퀘스트가 무려 3개, 아니 방금 전에 하나 더 받았으니 무려 4개나 쌓여 있는 모습.
그래도 퀘스트를 받았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3년 동안 퀘스트 하나를 못 깨서 헤맨 적도 있었으니.’
이제는 삶의 가치가 퀘스트에 있는 것이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깨서 나쁠 건 없었다.
그래도 우선은 이 주변부터 파악해 볼까.
마침 함께 왔던 슬라임들이 처음 보는 환경에 놀라워하며 주변을 뽈뽈거리고 있었다.
“한번 쭉 돌아다녀 볼까.”
“돌아다녀 보는 것이다!”
마침 저 앞에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나무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워낙 크기가 거대해서 거리가 애매했다.
겉보기에는 조금만 걸으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훨씬 멀 수도 있었다.
“저 나무까지 가 볼까?”
“반짝반짝 나무! 가 보는 것이다!”
“저 나무 이름이 반짝반짝 나무야?”
“내가 지어 준 것이다!”
나무가 특별히 빛나는 느낌은 없었는데 왜 반짝반짝 나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현실성 없게 거대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는 초록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였다.
“왜 반짝반짝 나무야?”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다! 빛나면 예뻐지는 것이다!”
“오오? 빛도 나는 모양이지?”
“맞는 것이다!”
그거참 볼만하겠는데?
저렇게 거대한 나무가 빛이 나다니 뭔가 특별한 건 아닐까?
“애들아, 빨리 가 보자.”
“출발하는 것이다!”
나는 한참 뽈뽈거리는 슬라임들을 불러 모으고 반짝반짝 나무로 향했다.
* * *
“돼, 됐어!”
컴퓨터를 확인하던 최영성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소음에 건너편 방에 있던 김시영이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여보? 무슨 일이야?”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도 괜찮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그녀가 호기심이 가득 담긴 얼굴로 자신의 남편을 불렀다.
“아! 드디어 확실한 데이터가 나왔어!”
“데이터? 내 독?”
“맞아! 시뮬레이션 결과 99.99%로 완치야!”
“난 또 뭐라고. 이미 이렇게 멀쩡해지고 있는데 당연한 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몇날 며칠 데이터를 도출했지. 당장은 호전되고 있어도 완치가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최영성은 활짝 핀 얼굴로 다가온 김시영에게 컴퓨터 화면을 보여 주었다.
“봐 봐. 이거 보이지? 완치 확률이야. 그냥 확정이라고 보면 돼. 이제 해독은 끝이야!”
“정말 당신도 참. 이렇게 내 몸으로 결과가 증명되고 있는데 컴퓨터 화면을 보고 더 기뻐하는 게 웃겨요.”
김시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입가의 미소는 숨기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최영성의 어깨를 흔들었다.
“여보.”
“으음?”
“나 말고도 중독된 사람이 있잖아. 이미 대부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지만…….”
“아!”
김시영만 신경 쓰느라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최영성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 애도 치료할 수 있을까?”
“당연히 되지! 과채즙만 있다면…….”
말을 하던 최영성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중독을 해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최영성의 것은 아니었다.
오직 이규성,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함부로 부탁하기가 좀 그러네. 규성이가 그렇게 매몰찬 녀석은 아니지만 우리가 끼어드는 건…….”
“부탁이 아니지. 서로한테 좋은 거래로 만들면 돼요.”
최영성의 어두운 얼굴을 본 김시영이 씨익 웃었다. 그 미소는 한참 던전을 박살 내고 다니며 ‘뇌전의 여제’라 불렸던 시절의 그것과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 내가 은인한테 실례가 되는 생각을 하겠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독으로 고생하는 각성자는 저 빼고 한 명밖에 안 남았잖아요. 누군지 당신도 알죠?”
“물론이지.”
“규성 씨에게 은혜도 갚을 겸 옛 동료들한테 연락이나 해 볼까요. 일단 규성 씨 의사부터 확인하고.”
당시에 그녀와 함께 중독되었던 각성자들은 한때 이름을 날렸던 쟁쟁한 인물들.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영향력이 그 시절에 미치지는 못할지라도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규성의 과채즙으로 독이 치료되면 원래의 자리를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마침 데이터도 나왔으니 그 자료만 보내면 의심도 안 할 거예요. 필요하면 내가 직접 갈 수도 있고요.”
“여보,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
“그 아이는 아직도 희망 없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거예요.”
김시영의 눈이 살짝 먼 곳을 응시했다.
한때 그들과 같은 절망을 느꼈던 그녀의 눈이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희망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요.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래. 그러면 우선 규성이한테 연락해 볼게. 백승현 각성자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알아보고.”
7급 각성자 백승현.
대한민국 제일의 서포터라 불린 각성자였다. 비록 김시영보다 한 단계 낮은 7급에 불과한 각성자였으나 가진 능력이 대단했기에 인색의 던전 토벌에도 참가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가 속한 길드도 대한민국의 수위를 다투는 ‘철혈 길드’였기에 중독되어 돌아온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백승현을 살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백승현 각성자는 철혈 길드 길드장의 아들이지. 절대 아들의 목숨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 아마 무슨 수를 써서든 백승현을 살리려 들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 중독된 사람들은 해외에도 많잖아. 토벌팀이 다국적 길드 연합이었으니까.”
“그렇죠.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9급 던전인 만큼 당시에 이름을 날리는 전 세계 모든 각성자들이 관심을 가졌었으니까요.”
“이거 잘만 하면…….”
최영성은 사색에 잠겼다.
아마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적을 테지만, 분명한 건 지금이라도 독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독된 해외 유수의 각성자들이 규성의 능력으로 치료가 된다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이것도 규성이한테 얘기해 봐야겠군.’
최영성과 김시영은 각자 어떻게 하면 규성에게 도움이 되는 동시에 일이 잘 풀릴지 고민했다.
* * *
그 무렵 국내 길드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소문으로 인해 분위기가 들끓고 있었다.
“뭐? 음식이 아이템이라고?”
“포션을 말하는 건가? 뭐, 포션이야 이것저것 많잖아. 물론 던전에서 상자 파밍을 좀 해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그냥 일반 음식이 아이템인 데다가 능력까지 딸려 있다고?”
그리고 소문을 접한 대부분의 각성자가 입을 모아 외쳤다.
“말도 안 돼!!”
하지만 소문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결국 몇몇 이들은 소문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최초로 이에 대한 정보를 꺼냈던 맨주먹 길드에 방문했다.
그리고 나름 몰래 알아본다고 조심했던 맨주먹 길드의 김길동은 그런 적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수상한데?”
그러나 그런 행동이 오히려 의심을 부추겼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김길동이 직접 정보를 수소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점차 소문을 진지하게 믿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음, 역시 안 되겠어.”
여느 때와 같이 미식회에 참석한 강한울이 식탁에 양손을 깍지 끼고 고민에 잠긴 듯 이마를 기댔다.
“난 이제…… 그 녀석의 음식이 아니면 안 되는 몸이 돼 버렸어. 이건 저주군.”
“하, 한울 형님?”
강한울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김길동이 불안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그러나 강한울은 김길동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고 혼잣말을 이어 갔다.
“아이템이라서 더 맛있는 건가?”
“헉!”
김길동이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켰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굳혔다.
사실 대부분의 미식회 참석자들은 괴짜인 강한울의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 했으나 최근 눈여겨보던 김길동의 특이한 반응에 두 눈을 반짝였다.
“정말 사실이었던 건가?”
“진짜 음식이 아이템이라고?”
“맛까지 있는 모양인데? 저번 모임 때도 한울 님의 반응이 이상했잖아.”
김길동이 울상이 되었다.
최대한 정보를 숨겨 자신이 선점하려던 음식을 들켜 버린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양이 많지 않아 그 강한울조차 얼마 얻어 내지 못하는 귀한 것을 경쟁자마저 늘린 모양새였다.
“흠,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식당도 차릴 생각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강한울의 혼잣말이 계속되었다.
이전까지는 그의 혼잣말을 신경 쓰지 않았던 참석자들은 이제 개미 기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히 한 채 그의 입에 집중했다.
그건 김길동도 마찬가지였는데 갑자기 나온 식당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식당을 차린다고! 대, 대박이다!’
그러나 실제로 음식을 먹어 본 김길동과 달리 다른 미식회 참석자들은 아이템의 효과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만약 강한울의 말대로 식당이 생기고, 그게 정말로 소문대로 각종 능력치가 붙은 아이템이라면 앞으로 던전에 입장하기 전에 방문해야 할 필수 코스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이규성의 작물을 맛보지 못한 이들의 이성적이기만 한 판단이었다.
“저…… 형님. 식당을 차린다는 게 정말입니까?”
김길동은 결국 숨기지 않고 그냥 대놓고 물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드러날 대로 드러난 이상 정보가 사실인지 묻는 게 급선무였다.
그만큼 그날의 고구마 맛탕은 김길동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느낄 만한 감동을 주었었다.
‘잠시만! 식당을 차린다는 건 음식의 종류가 고구마 맛탕뿐만이 아니라는 소리잖아!’
계속 고구마 맛탕에만 신경이 쏠려 있던 탓에 시야가 좁아져 있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니 식당이라는 게 메뉴 하나로만…….
‘……메뉴 하나로도 대박 낼 것 같은데?’
그렇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김길동을 향해 강한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다. 으하하하!”
“…….”
“네 녀석이 여기저기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기에 장난 좀 쳐 봤다. 으하하!”
김길동은 강한울의 말에 찔리는 게 있어서 차마 놀린 것을 따지지도 못하고 합죽이가 되었다.
그러나 강한울도 미처 알지 못했다.
이규성이 실제로 식당을 차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동생인 이재성이 규성의 농작물로 요리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나저나 소문은 사실인 모양이던데 저희도 좀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저도 그 소문의 음식을 먹어 보고 싶네요.”
미식회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어 호기심을 표현했다. 그러자 강한울은 팔짱을 끼더니 고민에 빠졌다.
“으음, 한번 물어는 보겠다.”
갑자기 일이 너무 커지는 건 아닌가?
살짝 규성을 걱정한 강한울은 이내 태평하게 생각했다.
이번 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앞장서서 그를 지켜 주고 해결해 주겠노라고.
아니 이참에 그냥 자신이 후원자가 되면 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과연 그 누가 강한울이 후원하는 사람을 건드릴 수 있겠나!
“으하하하하!”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강한울의 웃음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 * *
“귀가 간지럽네. 누가 내 얘기를 하나?”
탐식의 던전을 살피던 이규성이 귀를 팠다.
고작 1급 각성자에 불과한 이규성.
그는 어느새 사방에 영향력을 뿌리는 신비로운 인물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