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34)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34화(34/119)
평화로운 오후.
오랜만에 길게 자고 일어난 나는 옆에서 자고 있는 아라의 얼굴을 조용히 구경했다.
전날 탐식의 던전에서 돌아오자마자 꿈뻑꿈뻑 졸더니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아라였다.
“……마…….”
잠꼬대를 하고 있네.
무슨 소리를 하나 싶어 귀를 기울여 보자,
“마……탕…….”
쩝쩝 입맛을 다시며 고구마 맛탕을 찾는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그나저나 진짜 넓었지. 결국에는 나무 근처에서 돌아와야 했어.’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일명 반짝반짝 나무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일단은 되돌아가 다시 준비를 해 오기로 했다. 이왕이면 다른 슬라임들도 같이.
‘마크투를 데려가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 등 의견을 어느 정도 구할 수 있겠지.’
슬라임 대군주의 능력으로 날이 갈수록 슬라임의 의사 표현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국어도 처음에는 이해를 못 하지만 계속 경험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면 나중에는 귀가 트이는 것처럼.
“으음?! 마탕!”
갑자기 벌떡 상체를 일으킨 아라가 비몽사몽한 얼굴로 헤롱헤롱댔다. 입가에 침이 길게 늘어진 것을 보니 꿈속에서도 열심히 먹은 모양이었다.
“밥부터 먹자.”
나는 그런 아라를 안아 들고 아래층에 내려갔다. 그러고 보면 다른 슬라임들은 잠이 없는 듯한데 아라는 사람처럼 잠을 잤다.
여전히 잠이 덜 깬 모양인지 내가 안고 가도 가만히 있던 아라는 이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크투!”
아라의 부름에 저 멀리 있던 마크투가 꾸물거리며 기어 왔다.
마치 잠은 잘 잤냐는 듯 꿀렁거린 마크투가 이내 저장고를 향해 우리를 안내했다. 자는 동안 수확을 해 놓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뭘 수확한 것이냐? 맛있던 것이냐? 마크투도 같이 먹는 것이냐?”
잠이 어느 정도 깼는지 입에 모터를 단 아라가 마크투에게 질문 세례를 던졌다. 질문을 받은 마크투는 나름 대답을 한다고 열심히 몸을 좌우로 꿀렁거렸다.
꿀렁! 꿀렁!
“레일라?”
“오, 새로 심은 레일라를 수확한 모양이네.”
아라는 레일라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이전에 수확했던 것들은 이미 전부 먹거나 과채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새로 심은 것들만 있었다.
‘마력 레일라!’
그리고 이번에 심은 건 마력이 깃든 레일라가 아닌 신품종이었다. 이왕이면 수확의 순간을 함께 했으면 싶었지만 그렇다고 수확 시기를 놓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마크투가 먼저 수확해 버렸나 보다.
“겉모습은 똑같네?”
저장고에 도착하자 옹기종기 모아 둔 레일라가 보였다. 다른 작물과 달리 크게 변한 모습은 아니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확인했다.
-빠바밤!
[새로운 작물을 발견했습니다.]이름을 지어 주세요.
언제나와 같은 알림이 울려 퍼지고, 이름을 짓기 전에 설명부터 살폈다.
[?? LV.1]마력이 담겨 있는 작물.
섭취 시, 몬스터 친화력이 3분간 대폭 상승합니다. 영구적으로 몬스터 친화력이 유의미하게 상승합니다. 영구 효과는 총 5번 쌓일 수 있습니다.
역시나 업그레이드된 능력이었다.
그리고 다른 작물과 달리 5번이라는 한계를 지닌 영구적 효과가 보였다.
‘먹으면 몬스터 친화력이 꽤 많이 오르는 모양이지?’
아라와 마크투는 어느새 레일라 하나를 이리저리 굴려 보고 있었다. 콩콩 두드려 보기도 하고, 귀를 대기도 하고, 혀로 핥아 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작명은 미루고 일단 바로 먹어 보자. 마크투, 애들 다 불러와.”
수확을 했으면 시식 타임이 있어야지.
마크투가 다른 슬라임들을 불러오는 사이 나는 레일라의 껍질을 쪼개려 했다.
“응?”
전과 같이 껍질을 쪼개려 했는데 예상외로 단단했다. 아무래도 품종이 개량되며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곡괭이로 찍어야겠는데?”
그때 아라가 달콤한 과일향에 침을 흘리며 참다가 도저히 답답했는지 직접 나섰다.
“내가 해 보는 것이다!”
마치 발표를 준비한 아이마냥 한쪽 손을 번쩍 들며 외치더니 이내 내가 쪼개려던 레일라의 앞에 자리 잡았다.
그러고는 어디서 보고 따라 하는 건지 격파 자세를 취했다.
“이야!”
빠각!
그렇게 용을 써도 멀쩡하던 레일라가 아라의 주먹 한 방에 쪼개졌다. 이미 아라의 신체 능력을 알고 있던 나조차 손뼉을 치며 아라의 묘기를 칭찬했다.
“와, 대단한데?”
“흐흠!”
가슴을 펴고 콧대를 한껏 치켜세운 아라였지만, 이내 껍질이 깨지고 더욱 진한 향을 내뿜기 시작한 레일라에 정신이 팔렸다.
“마, 맛있겠는 것이다!”
“애들 다 왔나?”
다행히 슬라임들도 레일라를 먹는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기어오고 있었다. 이때만큼 빠른 순간이 없을 정도였다.
“아라야, 나머지도 깨 줄 수 있어? 20개 정도만 더.”
“응!”
전에는 30개의 레일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150개가량이나 되었다. 워낙 과육이 크기에 나는 하나도 다 먹지 못하지만 아라나 슬라임들의 먹성을 생각하면 20개는 되어야 적당할 것 같았다.
빠각! 빠각!
마크투가 슬라임들을 끌고 오는 동안 아라의 격파쇼가 이어서 진행되었다. 격파가 10개 정도 되자 그 뒤로는 귀찮았는지 대충 깨부수었다.
“스물인 것이다! 다 한 것이다!”
“오오! 잘했어, 잘했어.”
손뼉을 쳐 주며 레일라를 살폈다.
껍질이 단단해진 것과 달리 과육은 전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향은 더 옅어진 느낌이었다.
‘더 강해진 게 아니라 좀 희한하네.’
그렇다면 맛은 과연 어떨까?
어느새 도착한 슬라임들을 보며 나는 먹어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라와 슬라임들이 마치 경쟁하듯 달려들었다.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한동안 녀석들이 먹는 모습을 구경한 나도 레일라 하나를 잡아 과육을 뜯었다. 그러자 확 풍겨 오는 달콤한 향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입에 넣었다.
“으음!”
역시 레일라였다.
향은 조금 줄었다고 생각했지만 맛은 여전했다. 약간 달라지긴 했는데 이전처럼 자극적으로 과즙이 터지는 단맛이 아니라 은은한 단맛으로 변했다.
‘질리지 않고 먹겠는데?’
이미 한번 먹어 본 맛이었기에 처음 먹었을 때와 같은 감동은 없었지만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아라는 어떤지 살펴보자…….
와구와구!
마치 먹다가 죽은 귀신이 떠오를 정도로 레일라를 정신없이 흡입하는 모습이었다. 레일라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든 모양인지 자기 몸통만 한 과일을 먹으며 아예 껍질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벌써 4개째였네.”
그 옆에는 장렬히 산화한 레일라의 빈껍데기와 씨앗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레일라 파티가 벌어지고 슬라임과 아라는 끝내 20개를 전부 먹어 치웠다.
“끅!”
짧게 트림을 한 아라가 볼록해진 배를 만족스럽게 만졌다.
“맛있었어?”
“레일라, 최고인 것이다! 더 먹고 싶은 것이다!”
아니 그렇게 먹었으면서 또 먹는다고?
정말 대단하구나 싶으면서도 하나만 더 허락했다.
“한 번에 다 먹어 버리면 내일은 못 먹으니까 하나만 더 먹어.”
“아!”
내 말을 듣고서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 된 아라가 남은 레일라를 보았다. 20개를 먹고 130개가 남은 레일라였지만 여전히 많아 보였다.
“하, 하나만 더 먹는 것이다!”
“그래, 그래.”
아라가 레일라를 하나 더 까먹기 시작할 때 나는 슬슬 작명을 하기로 했다.
물론 특별히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기에 그냥 마력 레일라로 정해 버렸다.
[ 퀘스트 : 신종 작물을 개발하라]새로운 작물을 발견하거나 개발하세요.
새로운 작물 : 2/3
퀘스트 클리어까지 이제 하나 남았다.
과연 보상으로 뭐가 주어질지 궁금했다.
“그럼 배도 채웠겠다, 슬슬 나가 볼까?”
“우와아! 또 나가는 것이냐?”
“응. 아라가 살았던 던전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아무래도 준비가 필요할 것 같아서.”
탐식의 던전이 생각보다 훨씬 넓었던 탓에 준비를 확실히 하기로 했다.
탐색을 하는 동안 아예 며칠 머무를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캠핑 용품들을 구입하러 갈 생각이었다.
“텐트 용품점에도 들러야 하고 밥도 던전에서 해 먹어야 하니까 가스버너도 하나 새로 사고…….”
슬라임들과 함께 탐색하는 걸 생각하면 준비해야 할 식량도 상당했다.
저번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여러모로 공간 확장 배낭이 필요한데…….
“돈 쓸 일은 많은데 돈은 부족하네.”
1달 사이에 억 소리가 나는 돈을 번 주제에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부족한 건 부족한 거지.
나가는 김에 용산을 들러 공간 확장 아이템의 시세도 확인하고 오자는 계획을 세우며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이걸 입을 것이다!”
“또 작업복이네. 그렇게 그 옷이 좋아?”
“좋은 것이다! 헤헤.”
많고 많은 귀여운 옷들 사이에서 굳이 저런 디자인의 옷을 고르는 게 엉뚱했다. 일부러 다양한 옷들을 사 주었는데 던전 밖으로 나갈 때만큼은 저것만 입으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이번에 옷도 좀 더 사자. 그거랑 비슷한 옷이 더 있을 거야.”
“와아! 좋은 것이다!”
좋아한다는데 더 사 줘야지.
싱글벙글 미소가 가시질 않는 아라가 옷을 갈아입는 나를 따라 하며 준비를 마쳤다.
우리는 던전에 남아 있을 슬라임들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섰다.
“금방 다녀올게.”
“다녀오는 것이다!”
* * *
밖으로 나와 곧바로 택시를 불렀다.
지금까지 대중교통만 이용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굳이 지하철만 탈 필요는 없어 보였다.
“우와! 택시인 것이냐? 택시인 것이다!”
자동차를 처음 타 보는 아라가 택시 창문에 얼굴을 붙이며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이내 문을 열고 자리에 앉더니 두 눈을 반짝였다.
“택시인 것이다!”
“허허. 따님이 참 사랑스럽네요.”
“감사합니다.”
택시 아저씨가 그런 아라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목적지는 용산.
캠핑용품을 구매한다고 했지만 던전 용품이나 캠핑용품이나 비슷비슷했다. 던전 용품이 더 비싸긴 하지만 성능이나 질적인 면에서 훨씬 좋았고.
“음? 문자가 와 있네.”
영성이 형이었다.
또 과채즙을 원하시는 건가 하고 읽어 봤더니 다른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여러 시험을 거치고 건강 상태의 경과를 지켜보니 시영이가 완치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한번 정말 고맙다, 규성아.
“다행이다.”
아라 홍련 길드의 연구부장이었던 영성이 형의 말인 만큼 형수님은 이제 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시영이처럼 중독이 된 각성자들이 아직 있는데,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구나. 네가 원한다면 나랑 시영이가 직접 거래를 주선해 줄 수도 있어.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니야.
‘맞아, 다른 각성자가 있었지.’
언젠가 나도 생각했던 문제였다.
당시에는 형수님의 치료를 우선하기로 했기에 넘어갔지만 건강의 차도를 보이는 지금은 슬슬 다른 이들도 생각해 볼 문제였다.
“안 될 건 없지. 오히려 서로 좋은 거네.”
아마 치료를 원하는 상대도 공짜로 치료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었다. 과채즙을 거래하는 건 내게도 여러모로 좋은 일이지.
그렇게 됐으니 굳이 다른 환자를 거절할 필요도 없었기에 나는 곧장 영성이 형에게 다른 이들의 치료도 가능하다는 문자를 적었다.
“음? 어어?”
문자를 적던 와중에 기사 아저씨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앞을 보자 정체가 심하게 이뤄지고 있는 구간이 보였다.
“차가 많이 밀리네요.”
“아니, 저…….”
반응이 이상한데?
아저씨가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앞을 가리켰다. 그의 손짓을 따라 집중해서 살피자 앞쪽에서 무슨 일이 생긴 듯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도망치고 있었다.
“아!”
아무리 봐도 평범한 상황은 아니었다.
저런 모습을 보일 만한 일은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하나만 떠올랐다.
“던전 브레이크?”
“허억! 손님, 빨리 내리셔야 합니다!”
클리어를 못 한 던전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그 안에 있던 몬스터가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최악의 상황.
이내 그 짐작이 맞았다는 듯 거대한 소들이 튀어나와 멈춰 있는 차들을 뒤집어 버렸다.
“뿔소!”
“손님! 빨리 따님을 데리고 도망……!”
도망은 불가능했다.
지금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도 결국은 뿔소들에게 따라잡힐 게 뻔했다.
평소에는 온순하지만 흥분한 상태의 뿔소들은 전차와 같은 돌파력과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니까.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몬스터를 만나 보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전투 능력계 각성자가 아니라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우와! 소인 것이다! 소!”
아라가 창문을 통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 아라를 보며 나는 아라가 보여 주었던 브레스가 떠올랐다.
어쩌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다 박살 내는 것이다! 소가 날뛰는 것이다!”
“아라야! 저거 아라가 막을 수 있을까?”
“음?”
내 물음에 아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한 것이다! 저 소들을 막아야 하는 것이냐?”
“맞아.”
그런 우리의 대화를 보고 있던 택시 아저씨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젊은 청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안 되겠네. 당장 차에서 나오게!”
“내가 막는 것이다!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아라가 먼저 차에서 폴짝 내렸다.
내가 뒤를 따라 급히 내리자 어느새 뿔소들은 선명하게 보일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차들을 모두 박살 내며 돌진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인명 피해가 없어 보였다.
“빨리 도망쳐야지! 어이!”
“저희 각성자입니다!”
“으잉?!”
택시 아저씨는 나름 의리가 있었다.
끝까지 우리를 떠나지 못하고 나를 잡아끌고 가려 했으나 각성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아직인 것이다!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아라는 엉금엉금 택시 위로 올라가더니 택시의 지붕 위에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전부 우리보다 뒤로 대피했다고 판단하자…….
“이규성규성! 브레스 쏴도 되는 것이냐!”
“조절할 수 있지?”
“노력해 보는 것이다!”
스으읍-
아라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곧이어 주변의 공기가 진동하는 듯하더니 이전에 보았던 파멸적인 광선이 다시 등장했다.
파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