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39)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39화(39/119)
다시 와도 느끼는 거지만 풍경에 압도당할 것만 같았다.
옅은 노란 빛을 띠는 풀들과 거대한 나무들, 그리고 별이 새겨진 폭포수와 같은 밤하늘과 달 대신 뜬 희미한 태양.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선선한 바람이 다가와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가 볼까.”
“가는 것이다!”
일단은 눈앞에 보이는 반짝반짝 나무로 향했다. 나무 주변으로는 얕은 숲이 존재했는데 일단 오늘의 목표는 그 숲까지였다.
“마크투, 어때? 여기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꿀렁!
긍정의 제스쳐를 해 보이는 마크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이 있다고 했으니 이번 원정은 던전만 스윽 둘러보고 돌아와 빨리 작물을 심어 봐야겠다.
“오! 오랜만인 것이다!”
“그게 뭐야?”
열심히 걷던 도중 아라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내게 보여 주었다.
“먹는 것이다!”
“먹는 거?”
아라가 가져온 걸 확인해 보자 작은 열매 같은 식물이었다. 슬쩍 살펴보자 아라가 가져온 곳에 작은 식물 군집이 있었다.
“여기 살 때는 주로 이것들을 먹은 것이다! 나중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전부 사라졌던 것이다!”
“그래?”
굶어죽을 뻔했다는 게 그거 때문이었나.
종 하나를 멸종시킬 정도로 먹어 치웠다니.
어찌 됐든 나는 아라가 건넨 열매를 받아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아무 냄새도 없네.’
혹시나 싶어서 먹는 방법을 물어보려는데, 어느새 아라는 손에 다발로 들고서 뜯어 먹고 있었다.
“껍질이 있는데 그냥 먹으면 되는 것이다!”
크기는 대략 새끼손톱만 했다.
입에 넣고 씹어보자 껍질이 깨지며 안에 있는 알이 느껴졌다.
‘고소하다.’
마치 구수한 빵을 씹는 느낌이었다.
계속 씹을수록 단맛도 올라오는 게 꼭 쌀 같기도 했다.
“이규성규성! 이것도 키울 수 있는 것이냐?”
“음, 한번 해 볼까?”
아마 가능할 것 같았다.
야생에서도 이렇게 잘 자라고 있는데 제대로 관리를 해서 키우면 밭을 일굴 수 있겠지.
물론 내가 하는 건 아니고 슬라임들이 해 줘야겠지만.
‘이럴 때 보면 농사일은 슬라임이 만능이야.’
처음 보는 식물을 그냥 대충 심어도 키울 수 있다는 게 사기였다. 그 식물의 식생을 파악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으니.
물을 얼마나 줘야 된다거나 일조량은 얼마나 필요한지, 땅은 어떤 땅에, 적정 온도는 몇 도인지 등등.
남들이라면 몇 년이 걸려 연구하고 시도해 봐야 성공하나 마나 할 일이었으나 내게는 필요 없는 일이었다.
“아라야, 그거 먹지 말고 다 모아 봐. 나중에 따로 심어 보게.”
“우으. 알았다는 것이다.”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더 못 먹는 게 서운했는지 울상을 짓는 아라였다. 결국 나는 재성이가 떠나기 전에 챙겨 준 고구마 맛탕을 꺼내 아라를 달래 주었다.
“마탕, 마탕~!”
금세 해맑아진 아라가 양손에 고구마 맛탕을 든 채 앞서 나갔다. 조금 더 나아가자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 보였다.
“신기하네.”
이렇게 환경이 좋은데 정작 살고 있는 생물이 안 보이니 기묘했다. 아니, 아라의 말대로라면 뭔가 살고 있긴 한데 아직 마주치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그럼에도 무척 조용한 분위기였다.
물을 조금 떠서 따로 챙겨 두었다.
마셔도 되는 물인가 의심스러웠지만 아라는 맛탕을 먹고 목이 말랐는지 꿀떡꿀떡 잘도 마셨다.
“키햐아!”
“맥주라도 마신 것 같네.”
아라는 걱정이 없었다.
탐식의 능력으로 인해 모든 걸 먹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만큼 뭘 먹어도 소화시킬 수 있었으니까.
길을 계속 지나가자 이름 모를 식물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소소하게 피어 있었다.
‘식물이, 그것도 꽃이 저렇게 핀다는 건 수분이 된다는 건데…….’
벌이나 나비, 아니면 새나 날곤충 따위가 꽃가루를 옮긴다는 증거였다.
던전의 생태를 흥미롭게 분석하며 아라의 뒤를 따라 이동하자 드디어 움직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푸륵?
“오오! 처음 보는 것이다!”
“뭐? 너도 처음 보는 거라고?”
사슴과 닮은 동물, 아니 몬스터였다.
혹시 몰라서 몬스터의 능력을 볼 수 있게 당근 과채즙을 가져왔는데 써먹을 때가 왔군.
꿀꺽-
아라가 침을 흘리며 내가 마시는 과채즙을 바라봤다. 결국 난 능력의 사용이 가능한 만큼만 마시고 남은 과채즙을 아라에게 양보했다.
아라가 과채즙을 마시는 사이, 나는 활성화된 능력을 통해 사슴의 정보를 확인했다.
[?? LV.2]뿔이 자라는 네발짐승.
주로 ???나무의 잎사귀나 ???의 꽃을 먹는다.
예민하지만 온순한 성격이다.
무리를 지으면 색이 화려해진다. 불에 약하다.
“와, 이렇게 뜨는구나.”
처음 사용해 보는 과채즙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저 몬스터가 위험한 짐승이 아니라는 점.
“맛있는 것이다!”
“아라야, 근데 저 동물을 처음 본다고?”
“그런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새로운 녀석들이 이사 온 모양인 것이다!”
이사를 올 수가 있나?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넘어갔다.
우리는 그렇게 잠깐 동안 사슴과 대치했다.
전체적으로 옅게 발광하는 푸른빛을 띤 사슴은 어려서인지 아니면 다 커도 작은 건지 체구가 왜소했다.
푸륵!
소리를 낸 사슴을 향해 갑자기 아라가 다가갔다. 사슴이 문득 놀라며 뒷걸음질 쳤지만 녀석도 호기심이 일었는지 코를 벌름거리며 가만히 있었다.
“이리로 와 보는 것이다. 옳지 착한 것이다.”
아라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다가갔다. 의외로 사슴은 도망가지 않고 계속 코를 벌름거리다 이내 스스로 다가왔다.
“아이고, 착한 것이다!”
말투가 꼭 우리 어머니 같다?
이상한 걸 배워 온 아라가 가까이 다가온 사슴을 어루만졌다.
“헤헤헤! 부드러운 것이다!”
“왜 도망을 안 가지? 새끼라 호기심이 많은 건가?”
분명 설명에는 예민하다고 되어 있었는데 예민하다는 설명이 내가 생각한 것만큼 예민한 건 아니었나?
아라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만지고 싶어졌다. 아라만큼 귀여운 건 아니지만 사슴도 충분히 귀여운 모습이었다.
푸륵!
그러나 내가 다가가자 사슴은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아니, 아라한테는 그렇게 친근하게 굴어놓고 나는 왜?
살짝 심통이 났으나 이해는 갔다.
아라는 귀엽지만 나는 그냥 성인 남성이었다. 물론 외모로 어디 가서 꿇린다고 느낀 적은 없으나 아라와 비교하면 오징어였다.
“이제는 몬스터도 외모를 보는 시대인가.”
한탄을 했으나 이미 늦었다.
사슴은 내가 다가간 순간 이미 저 멀리 숲을 향해 깡총깡총 뛰어가고 있었다.
“괜찮은 것이다, 이규성규성. 저 숲에 가면 더 있을 것이다.”
“그래. 빨리 가 보자.”
몇 시간을 걷다 보니 어느새 숲이 가까워져 있었다. 가까워진 숲은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훨씬 신비롭게 느껴졌다.
“벌레다!”
숲 근처에서 빛이 날아다녔다.
한눈에 봐도 날벌레들이었다.
역시 이 던전에는 식물 이외에 다른 생물들도 존재했다. 이미 사슴을 본 시점에서 드러난 사실이었지만 저렇게 수많은 불빛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또 다르게 와닿았다.
“저 벌레들도 원래 있던 거야?”
“있었던 것이다! 맛있던 것이다!”
“……먹어 본 거야?”
그 이후의 대답은 기억 속에서 지워 버렸다.
물론 뭐든지 먹을 수 있는 만큼 뭘 먹든 신기할 건 아니었지만 아라가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은 상상이…….
‘되긴 하네.’
걷다가 헤실거리며 꽃을 딴 아라가 냉큼 입으로 가져가는 게 지금도 실시간으로 보였다.
던전이어도 꽃은 꽃인 만큼 꿀이 조금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걸어왔지?”
가져온 시계를 확인하자 어느새 9시간이나 걸어왔다. 어차피 숲에도 거의 다 도착했으니 이 근방에서 텐트를 치고 쉬기로 했다.
“자, 그럼 텐트를 쳐 볼까.”
“텐트! 텐트!”
나는 주머니에 넣어 둔 마석을 꺼냈다.
그리고 마석에 마나를 흘러 넣자 희미한 빛이 새겨졌다.
“이걸 그냥 이렇게 바닥에 두면…….”
빛이 나기 시작하는 마석을 풀밭 위에 두자 마석은 천천히 텐트가 되어 저절로 완성되기 시작했다.
“우와아!”
놀란 아라가 감탄을 하며 입을 다물 줄 몰라 했다. 대충 3분 정도가 지나자 마석은 10인용 텐트로 탈바꿈했다.
“비싼 값을 하네.”
나는 곧바로 보끔이에게 짐을 토해 내라 명령했다. 그렇게 토해 낸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주변에 알람을 설치했다.
“이건 무엇이냐?”
“결계 막대기야. 이걸 텐트 주위로 박아 두면 약한 몬스터는 못 들어와.”
결계 막대기를 땅에 박고 있는 동안 아라에게는 화덕을 준비해 보라고 했다. 매장에서 전시된 것을 보았으니 대충 어떻게 세팅하면 되는지 짐작은 하겠지.
땅! 땅!
망치로 막대기를 두드리며 박았다.
총 16개나 되는 막대기를 텐트 반경 50m로 동그랗게 설치했다.
슬쩍슬쩍 아라가 잘하고 있나 살피자 슬라임들과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게 보였다.
‘치명적인 뒷모습.’
당장 가서 안아 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지만 간신히 견뎌 내고 막대기를 박았다.
16개를 모두 설치하자 결계가 형성되며 희미한 막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끝났다. 아라야, 그쪽은 됐어?”
“완벽한 것이다!”
냄비가 화로에 거꾸로 올라간 모습을 제외하면 아라의 말대로 완벽했다.
나는 잘했다고 칭찬해 주며 텐트 안쪽에 시트를 깔고 이부자리도 미리 정리했다.
“이건 무엇이냐?”
“침낭. 이 안에 들어가서 자는 거야.”
“오오!”
아라가 침낭에 꼼지락거리며 들어갔다.
그러고는 한 마리 애벌레처럼 변한 채 꿀렁거렸다.
“에헤헤. 재밌는 것이다.”
“따뜻하지?”
“응! 따뜻한 것이다!”
텐트 바깥에 앉을 만한 의자도 설치하고 화로에 불을 붙였다. 태양이 있지만 하늘은 밤이라 그런지 화로의 불이 묘하게 어울렸다.
“꼭 캠핑 온 거 같네.”
그것도 극상의 캠핑장이었다.
그 누가 이곳을 위험한 던전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주변을 둘러보자 야트막한 언덕들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흐드러졌다. 바로 근처에는 여전히 반딧불이와 같은 벌레들이 신비로운 분위기의 숲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시냇물도 바로 옆에 있으면 딱이었는데.”
위를 한번 올려다보자 지구와는 다른 형태의 하늘이 아름답게 반겨 주고 있었다. 사실 저 하늘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8할 이상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다.
‘이렇게 별이 많은 밤하늘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타닥- 타닥-
장작 타는 소리가 고요히 울렸다.
그때 아라가 침낭을 입은 채 뒤뚱거리며 나왔다.
“아라야, 배고파?”
“난 항상 배고픈 것이다!”
“그럼 뭐 좀 먹자.”
내 옆에 위치한 의자에 털썩하고 앉은 아라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던전에서 가져온 방울토마토와 당근, 그리고 감자를 이용해 카레를 만들기로 했다.
거기다 허브인 엠버그릴까지!
‘재성이가 한번 해 줬던 적이 있지. 하지만 이번에는 재료가 좀 다르다.’
준비한 생수를 냄비에 붙고 화로 위에 올려놓았다. 물이 끓는 동안 재료를 대충 준비했다. 재료는 이미 출발하기 전에 모두 손질을 해 둔 상태였다.
엠버그릴, 토마토, 감자, 당근을 제외하고는 전부 기성 식품이었다. 나중에는 양파나 마늘도 직접 길러 봐야지.
양파와 토마토를 볶으며 준비해 놓은 고기를 넣었다.
그렇게 함께 볶다가 어느 정도 고기가 익은 것 같자 감자와 당근도 넣었다.
미리 끓여 둔 물을 붓고 카레 가루를 넣자 순식간에 카레의 향이 진동했다. 이제 그 위로 엠버그릴을 살짝만 뿌리면…….
꿀꺽!
아라의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주변을 굴러다니던 슬라임들도 어느새 다가와 요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밥은 햅반.”
햅반도 중탕을 통해 데웠다.
곧이어 커다란 냄비의 카레가 완성되고 각자 그릇을 준비했다.
“자, 배식이다.”
꿀렁꿀렁!
슬라임들과 아라의 먹성이 워낙 좋다 보니 그릇도 어마어마하게 컸다. 슬라임 한 마리당 햅반 10개씩 듬뿍 담고 카레를 퍼 주었다.
아라는 그걸로도 부족해서 햅반 20개를 담고 카레를 퍼 주었다.
“우와아아!”
내가 만든 카레지만 꽤 좋은 냄새가 났다.
대용량으로 만드느라 양 조절을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럭저럭 해낸 모양이었다.
‘작물이 사기지.’
아마 실패한 음식에 넣어도 기사회생을 시킬 수 있는 재료들일 것이다.
그렇게 각자의 몫을 준비한 다음 우리는 다 같이 수저를 떴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는 것이다!”
꾸물! 꿀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