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47)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47화(47/119)
“이번이 아마 마지막일 거다. 사실 더 이상 필요 없는데 혹시 몰라서 더 받아 놓는 거거든.”
며칠 만에 만난 영성이 형이 싱글벙글이었다.
듣자 하니 형수님의 치료가 끝나고 현재는 가볍게 재활을 하고 있다 하셨다.
“정말 잘됐어요, 형.”
“다 네 덕분이지. 넌 우리 부부의 평생 은인이다.”
거의 다 나으셨다니까 언제 한번 영성이 형네 집에 방문해 봐야겠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을 텐데 두 분이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설마 내 능력이 이렇게까지 도움이 될 줄이야. 역시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어.’
절로 미소가 나왔다.
나를 따라서 영성이 형이 함박웃음을 짓자 내 품에 안겨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아라가 따라서 히죽거렸다.
“헤헤.”
“……크, 크흠. 귀, 귀엽구나. 잘 있었니, 아라야?”
“헤헤헤.”
어째 영성이 형은 저번 파워 측정 이후로 아라를 무서워하시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 귀여운 아이를 보고 무서워하시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아라홍련 전 연구부장이었다고 하니 이해했다.
‘극T겠지.’
뭔가 실례가 될 법한 생각을 혼자 하며 아라에게 쩔쩔매는 영성이 형을 구경했다. 아라도 은근슬쩍 영성이 형을 건드리는 것에 재미가 들린 모습이었다.
은근히 악동 같은 면모도 있네.
“그나저나 우리 규성이가 설마 나랑 인연이 있는 아라홍련하고 계약을 할 줄이야. 예전에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형 덕분인 것 같아요.”
“뭐? 내가 뭘 했다고?”
“힘들었을 때 가장 힘이 됐던 사람들 중 한 명이 형이었으니까요. 가족들 다음으로 큰 도움을 받았죠.”
“이게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괜히 분위기 이상해지게 그런 소리 하지 마.”
어색해하면서도 씰룩거리는 입꼬리가 인상적이었다. 말과 달리 솔직한 몸이었다.
“네가 나한테 해 준 거에 비하면 그건 정말 사소한 일이지. 그게 감히 비교가 되냐?”
입꼬리부터 진정시키고 말씀하시지요, 형님.
간신히 미소를 참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옆에 있던 아라가 영성이 형의 표정을 어색하게 따라 하는 모습을 보자 결국 터지고 말았다.
“파하하하.”
“헤헤헤. 이규성규성 이상하게 웃는 것이다.”
남 말 하지 마라, 아라야.
너도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만만치 않아.
“아! 규성아. 그러고 보니 널 깜짝 놀래킨다고 말을 못 했었는데 오늘은…….”
똑똑똑!
영성이 형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타이밍에 맞춰 노크 소리가 울렸다.
“최영성 부장님, 철혈 길드의 손님들이 도착하셨습니다.”
“철혈 길드?”
내가 갸웃하며 영성이 형을 바라보자 그는 드디어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이쪽으로 모셔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문밖의 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그사이에 나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형에게 물었다.
“철혈 길드라뇨? 약속 잡아 놓으셨어요?”
“그래. 철혈 길드가 어딘지 너도 알지?”
“당연하죠. 요새 신흥강자로 떠오르는 테러 길드랑 우리나라 1등을 두고 다투는 길드잖아요.”
아라홍련도 충분히 대단했지만 솔직히 상징성이 높은 것이지 최고라는 이미지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도착한 철혈 길드는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길드 중 하나로 꼽혔다.
‘근데 왜 이쪽으로 모셔 달라고 하신 거지?’
일단은 자리를 비켜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아라를 품에 안은 채 일어났다.
“음? 어디 가냐?”
“약속이 있으신 것 같아서 먼저 일어나려고요. 아! 다음에 형네 집에 한번 들러도 되죠?”
“아니, 네가 가면 어떡해?”
“예? 그게 무슨 말씀…….”
그때 다시 한번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자연스레 문이 열렸다. 그러고는 언젠가 TV나 인터넷에서 본 적 있던 철혈 길드의 길드장, 아니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백발의 노인, 백태섭과 그를 보좌하는 인물이 함께 들어섰다.
유명인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는 얼굴. 20년 전까지만 해도 현역으로 직접 뛰었던 각성자로, 지금은 철혈 길드의 창시자로 더욱 유명했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어어, 그래. 영성이 잘 지냈는가?”
일단은 인사부터 해야 하나?
상황이 참 곤란하게 됐다고 생각하며 허리를 숙이려던 찰나.
“하얀 것이다!”
아라가 먼저 반응했다.
“응? 귀여운 꼬마 아가씨구나.”
“헤헤. 나는 귀여운 것이다. 하지만 꼬마가 아니라 아라인 것이다!”
“허허허.”
백태섭이 손주를 보듯 따뜻한 시선으로 아라를 살펴봤다. 당장이라도 다가와 아라를 안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저, 안녕하십니까. 철혈 길드의 대표님, 맞으시죠?”
“예에, 예에. 맞습니다. 백태섭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저는 이규성이라고 합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나는 아라인 것이다!”
아라 덕분에 그래도 자연스레 인사를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는 사이 아라가 바둥거리며 내 품에서 내려와 백태섭에게 다가갔다.
“하얀 것이다.”
“허허, 할아버지 머리가 하얗지? 어디 한번 만져 볼 테냐?”
“응!”
만세를 하며 자신을 들어 달라는 시늉을 해 보이는 아라를 백태섭이 안아 들었다.
그러자 아라는 백태섭의 머리를 이리저리 훑어보고는 마구 헝클었다.
“헤헤.”
“허허허.”
정말 할아버지와 손녀 같은 분위기였다.
백태섭을 보좌하기 위해 함께 온 인물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혹시라도 아라가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나?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아라가 어려 보이고 귀엽지만 나름 생각이 깊은 애니까.
‘……너무 팔불출인가?’
그러는 사이 또 한 명의 인물이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오오! 여기 다 같이 있었군!”
“한울 형님?”
“오, 그래! 규성 동생! 드디어 우리 길드랑 계약할 마음이 생긴 건가! 으하하하! 좋군, 좋아! 아라홍련에 들어오는 걸 환영하네!”
바로 옆에 백태섭이 있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할 말을 내뱉던 한울 형님은 아라와 놀고 있는 백태섭을 보더니 외쳤다.
“영감! 아니, 왔으면 왔다고 인사를 해야지 나를 무시하는 건가!”
“허허, 여전한 싸가지구나, 한울아. 나를 봤으면 네놈이 먼저 대가리를 박아야 하지 않겄냐?”
“흥! 무슨 바람이 들어서 갑자기 찾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지내다 얼른 돌아가소!”
서로를 향한 말투는 꽤 거칠었으나 뉘앙스를 보니 꽤나 격의 없이 지내는 사이 같았다. 하긴 옛날에는 자주 같이 던전 토벌을 다녔다고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오늘 처음 본 이규성 씨는 아라홍련 길드에 가입하러 온 겁니까?”
“예? 예, 그렇습니다.”
갑자기 내게 관심이 쏠린 백태섭이 여전히 품에 아라를 안은 채 내게 물었다.
“흐음, 제가 요즘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규성 씨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혹시 각성자 등급을 물어봐도 실례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 이제 보니 아라홍련에 가입한다니까 갑자기 궁금해진 모양이었다.
충분히 이해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 시영 형수님의 중독 이후 예전만큼의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엄연히 우리나라 5대 길드에 속한 게 아라홍련이었다.
그런 길드에 가입하는 각성자를, 그것도 포식자 강한울이 직접 아는 체를 한다는 게 백태섭에게는 신기하게 보였을 수도 있었다.
“어허! 규성 동생은 우리 거야! 눈독 들이면 안 돼!”
“허허. 그냥 새로 만난 인연이니 궁금해서 물은 것뿐이야. 부담스러우시다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규성 씨.”
그때 품에 안겨 있던 아라가 외쳤다.
“이규성규성은 대단한 것이다! 대군주인 것이다!”
“으잉?”
갑작스런 아라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일전의 질문에 대답부터 했다.
“실망스러우실 수도 있지만 저는 1급 각성자입니다.”
“1급?”
백태섭은 물론이고 그의 비서로 보이는 인물도 신기하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더니 곧 실례했다는 얼굴로 사과를 했다.
“아, 규성 씨를 비하한 건 아닙니다. 그저 아라홍련에 1급 각성자가 가입하는 일 자체가 드물기에 놀랐을 뿐입니다. 오히려 대단하군요.”
철혈 길드의 대표라기에 조금 더 거만한 인물일 줄 알았는데, 1급 각성자인 나를 상대로도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덕분에 나는 기분 좋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라홍련 쪽에서 저를 좋게 봐 주셨을 뿐입니다.”
“흐음, 믿기 힘들군요. 아마 1급이신 것과 별개로 꽤나 특수한 능력을 지니고 계신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순간 백태섭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전까지는 포근한 인상의 동네 할아버지 같았다면 지금은 철혈 길드의 대표라는 자리에 맞는 강렬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거기까지야, 영감. 그만 캐물어.”
한울 형님이 슬쩍 나서며 백태섭의 시야를 차단했다. 그러자 백태섭의 비서로 보이던 인물이 차갑게 앞으로 나섰다.
“강한울 씨, 더 이상 저희 대표님에게 무례한 언사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오호? 참지 않으면 어쩌실 건데? 한 판 뜰까?”
갑자기 분위기가 또 요상하게 돌아간다.
슬쩍 영성이 형을 보았지만 그는 이 다툼에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기고 있었다.
종이? 서류? 어쨌든 잡다한 종이들과 함께 옆에 노트북을 켜 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왜 싸우는 것이냐?”
그때 여전히 백태섭의 품에 있던 아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순식간에 차가웠던 분위기가 녹아내렸다.
“아무것도 아니란다. 장난을 좀 친 것뿐이야.”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아라가 엄근진한 태도로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을 향해 조언했다. 그 모습에 결국 백태섭의 표정이 흐물흐물해졌다.
“하아, 정말 우리 아라 같은 손녀가 있으면 얼마나 좋으려나.”
태섭 씨? ‘우리’ 아라라뇨?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백태섭이 화제를 돌리며 내게 질문했다.
“그런데 규성 각성자께서는 딸을 데려오셨군요. 흔치 않은 일입니다.”
“딸…….”
오해할 만하다.
아라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한울 형님과 영성이 형은 피식 웃었다.
“음? 혹시 딸이 아닙니까?”
내 애매한 반응과 피식하고 웃은 둘의 반응을 본 백태섭이 갸웃하며 물었다.
그러자 아라가 말했다.
“이규성규성은 군주인 것이다! 으으음…… 아빠인 것이다?”
“예. 제가 아빠 맞습니다.”
결혼도 안 했고 여자 친구도 없지만 아라는 내 딸이 맞지, 그럼 그럼.
애초에 아라가 나를 처음 봤을 당시에도 아빠라고 불렀지 않나. 물론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딸이지만.
‘3,500살이라고 했었나…….’
농담이었는지 진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얼핏 중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오호, 젊은 나이에 장가를 가셨군요.”
“예? 예, 그게…….”
덜컥.
갑자기 들린 소음에 시선을 돌려보자 문 쪽에서 한석준 길드장과 정소연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언제부터 와 있던 거지?
“아라가 규성 씨 딸이에요?”
인사부터 하기 전에 놀라움이 가득 담긴 정소연의 말이 응접실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