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48)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48화(48/119)
가벼운 정적이 지나가고 이내 아라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슬쩍슬쩍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암! 아라는 규성이 딸이지! 그렇고말고! 으하하하!”
“규성아, 아라 시집 보낼 때는 마음 단단히 잡아라. 딸을 보낸다는 건 네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니까. 하하.”
한울 형님과 영성이 형이 나를 놀려 댔다.
그러자 정소연도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저번에 분명 조카라고 저한테 그러지 않으셨어요?”
“그게…….”
본의 아니게 그때는 거짓말을 해 버렸다.
길드 건물 안이었으면 언질을 해 주었을 텐데 하필이면 밖에서 만났던 것이라 아라의 정체를 대놓고 말하지 못했지.
아니, 근데 애초에 아무도 아라의 호랑이 귀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다.
그냥 장식이라고 여기는 건가?!
“규성 님, 이제 숨기지 않으셔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한석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상관없긴 하지. 결국 나는 정소연에게 먼저 사과부터 했다.
“소연 씨, 그때는 제가 거짓말을 해서 미안해요.”
“네? 아니 그러면 정말 딸이라는 건가요? 유부남?!”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어찌 됐든 나는 말을 이어서 했다.
“아라는 제 사역마입니다. 몬스터예요.”
“나는 아라인 것이다!”
아라가 마치 항변하듯 외쳤지만 사람들은 내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아, 정확히는 정체를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몬스터?”
“아니,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몬스터라니?!”
“나는 아라인 것이다!”
아라의 두 귀가 쫑긋거렸다.
그제야 아라의 귀를 제대로 확인한 백태섭이 슬쩍 물었다.
“귀, 귀를 조금 만져 봐도 되겠니, 아라야?”
“되는 것이다!”
이내 보들보들한 귀를 직접 만져 본 백태섭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어, 진짜 귀였구나! 깜빡 속아 넘어갔어!”
속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혼자 속아 넘어간 백태섭을 놔두고 정소연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때는 길드 건물 밖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어요.”
“흐음.”
정소연은 그래도 찝찝함이 풀리지 않았다는 듯 게슴츠레 눈을 뜨며 나를 바라봤다.
“분명 그 뒤로도 만났었는데 지금까지 숨기셨다 이거죠? 게다가 지금 보니까 다른 분들은 다 알고 계셨는데…….”
“죄송합니다.”
정소연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섭섭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던전 용품 매장에서 도움까지 받았었는데 그때 미리 얘기를 해 줄 걸 그랬네.
“너무 하는군!”
그때 무시하고 있었던 백태섭이 외쳤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사역마로 삼다니! 신께서는 너무 불공평해!”
“으하하하! 영감이 다루는 사역마들보다 아라가 훨씬 낫지! 하하하!”
그러고 보니 백태섭은 지원형 각성자인 동시에 사역마도 다뤘었지. 꽤나 무시무시한 녀석들로 알고 있는데 욕심이 과하시다.
“나는 귀엽고 대단한 것이다!”
아라는 백태섭의 품에서 내려오며 가슴을 당당하게 폈다. 얼굴에는 미묘하게 재수 없는 미소가 담겨 있었다.
짝!
“아라는 규성 님의 사역마로 이번 일과 관련이 없으니 이제 슬슬 이야기를 넘어가죠.”
손뼉을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킨 한석준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너무 실례했네.
나 때문에 온 것도 아닐 텐데 내가 너무 이목을 끌었어.
일단은 내가 시간을 잘못 맞춰서 온 것 같으니 철혈 길드와 약속이 있는 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그럼 일단 여기서 물러나 보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대표님.”
“으음. 저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대로 헤어지는 건 조금 아쉬운데 다음에 다시 아라와 함께 봐도 되겠습니까?”
대표님의 눈이 계속해서 아라를 좇고 있는 게 아무래도 푹 빠지신 듯했다.
“헤헤헤.”
이 녀석, 철혈 길드의 대표를 자신의 매력에 빠트리게 만들다니 얼마나 무서운 슬라임인 거냐!
“규성 님?”
“예?”
“규성 님도 자리에 함께 하시죠. 규성 님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
뭔 소리야. 왜 여기서 내가 나와?
영문 모를 소리에 멍하니 서 있자 영성이 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백 대표님은 해독제 때문에 오신 거다. 규성아, 너도 백승현 각성자에 대한 이야기는 알지?”
“해독제? 백승현 각성자? 아!”
아, 이게 이렇게 연결되는 거구나!
나는 그저 아라홍련의 간부들과 친밀한 사이라, 아니면 사업과 연관된 일로 방문한 줄 알았었는데 이제 보니 과채즙 때문에 오신 거였군.
“음? 나는 금시초문이네만. 규성 씨도 이 일에 연관이 있는 건가?”
“백 대표님. 제가 해독제로 이야기를 조금 나눠 보자고 했었지 않습니까?”
“……설마. 그럴 리가…….”
“그 설마가 아마 맞을 겁니다.”
“자네 지금 농담하는 건 아니겠지?”
백태섭의 눈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설마 나처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오신 건가?
“물론 해독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을 뿐 그 이상으로 제가 정보를 전달하지 않기는 했지요.”
“자네, 장난치지 말게. 나는 지금 굉장히 심각하단 말일세.”
“해독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아니라 여기 있는 이규성 각성자의 성과입니다.”
“뭣?!”
백태섭과 그의 비서가 더 이상 크게 뜰 수도 없을 만큼 부릅뜬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결정타를 날리듯 영성이 형이 마침표를 찍었다.
“제 아내, 김시영 각성자는 현재 완치했습니다.”
“커헉!”
백태섭이 핏줄까지 올라온 눈으로 간신히 숨을 내뱉었다. 그에 비해서 한결 냉정한 비서가 물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게 해외 유수의 길드들조차 해결하지 못한 독이 바로 인색의 독입니다. 그런데 그걸 1급 각성자가…….”
경황이 없는지 조금 실례가 될 법한 말을 뱉었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나조차도 고작 1급 각성자가 9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사용한 독을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코웃음 치며 무시할 테니까.
그러나 스피커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가 아라홍련의 전 연구부장이었던 사람이니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었다.
“그러실 줄 알고 미리 자료를 준비해 왔습니다. 회복 경과가 담긴 자료와 해독제의 성분을 분석한 자료, 그 외에 모든 기록들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지, 지금 확인해 봐도 되나?”
백태섭은 양해를 구하면서도 이미 몸은 영성이 형의 노트북으로 향해 있었다. 그 뒤를 따라 그의 비서도 영성이 형이 건네는 자료를 받고 있었다.
“규성 님, 여기 좀 앉아 계시죠.”
“예.”
서 있는 나에게 한석준이 의자를 챙겨 주었다. 아라홍련에 가입하려고 온 건데 일이 참 묘하게 돌아가네.
‘타이밍이 기가 막혔네.’
일부러 일정을 이렇게 잡은 건가? 내가 던전에서 언제 나올 줄 알고?
그냥 때가 겹친 것 같다고 느끼며 잠시 기다리고 있자 영성이 형이 내게 물어 왔다.
“규성아, 과채즙을 철혈 길드 분들께 보여 드려도 될까?”
“예, 물론이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중독된 다른 각성자를 치료해 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자연스레 기회가 생겼으니 팍팍 진행해야지.
‘백승현 각성자는 백태섭 대표의 아들이었지?’
워낙 오래된 일이라 바로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나름 유명한 일이었다. 떠올려 내고자 한다면 생각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과채즙을 확인한 둘은 이내 다시 한번 감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비서의 시선이 잠시 내게 닿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으음, 그래서 아라홍련 길드가 1급 각성자에 불과한 규성 씨를…….”
내 능력이 조금 특별하기는 하지.
비서의 말이 맞았다. 내가 그냥 평범한 1급 무력 각성자였으면 과연 아라홍련에 가입할 수 있었을까?
‘전혀 아니지.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하더라도.’
냉정하게 말해서 아라홍련이 내게 잘해 주는 건 맞지만, 그건 결국 서로에게 윈윈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길드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엮여 있는데 사적인 감정으로 사업을 진행하면 안 되지.
오히려 그렇기에 내가 더 인정받는 기분도 들고 계약도 긍정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흐흐흑…….”
“대, 대표님.”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자 백태섭 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철혈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드를 운영하는 만큼 백태섭 대표의 피도 눈물도 없는 듯한 운영 방식은 이미 꽤나 유명했다.
그러한 인물이 지금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정말로 우리 승현이를 살릴 수 있다는 건가!!”
마치 포효하듯 외친 백태섭의 시선이 영성이 형을 향했다가 내게 닿았다.
“가능하다고 말해 주게!”
“가능합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솔직히 완치된 형수님을 직접 두 눈으로 본 건 아니었지만, 혹 영성이 형의 결과가 거짓이라 하더라도 자신 있었다.
‘내 과채즙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거든.’
그래서 만약 형수님과 달리 현재의 과채즙으로는 백승현 각성자를 치료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낫게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떳떳할 수 있었다.
“제 능력이라면 무조건 가능합니다.”
슬라임의 능력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리고 그런 슬라임의 능력을 토대로 수확하는 작물들도 끊임없이 진화했다.
“아아…….”
비틀비틀 걸어온 백태섭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당황했지만 이내 나도 그런 그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발, 우리 승현이를 살려 주게.”
“예. 가능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우리를 보며 아라가 다가왔다.
그러더니 백태섭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괜찮은 것이냐? 이규성규성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다!”
“흐흑, 고맙구나. 아가야.”
“나는 아가가 아니라 아라인 것이다.”
그사이 냉정하게 자료들을 전부 확인한 비서가 백태섭에게 다가왔다.
“대표님, 아무래도 정말인 것 같습니다.”
“그래. 후우, 제가 추태를 보였군요. 죄송합니다, 규성 씨.”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일어난 백태섭이 호흡을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 그가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준 뒤 영성이 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보았다시피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물론 아직도 믿기지 않으실 수 있지만, 그건 직접 확인해 보면 답이 나올 일이죠.”
“믿네. 충분히 믿어.”
백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눈을 빛냈다.
“그렇지만 그냥 받을 수는 없는 거겠지. 그만한 아이템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니.”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규성 각성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직접 거래를 주선해 주고자 합니다.”
뭔가 일이 알아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나야 좋은 일인 게 나는 각성 이후 삽질만 하느라 사회 경험이 전무했다.
영성이 형이나 아라홍련이 대신 처리해 주면 감사할 따름이지.
“보았다시피 그 아이템은 해독 기능을 제외하고도 여러 기능이 담긴 아이템입니다. 만약 그 아이템의 구입을 원하신다면 이 계약서부터 작성해 주셔야 합니다.”
“줘 보게.”
어느새 계약서까지 준비한 영성이 형을 보며 살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철저히 준비한 듯싶었다.
“흐음, 비밀 보장 계약서라…….”
“이규성 각성자에 대한 신원 보장과 아이템의 정보 통제를 위한 비밀 보장 계약입니다.”
“확실하구만. 오히려 마음에 들어.”
백태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약서를 비서에게 전달했다. 비서도 계약서를 확인하고는 긍정의 시늉을 해 보였다.
“보통의 일이 아닌 만큼 필수겠죠. 이 사실이 혹 해외에라도 퍼져 나갔다가는 꽤 큰일이 될 수 있으니.”
“그렇지.”
“그런데 이 조항이 애매합니다. 비밀이 파기될 시 위약 조항에 금액은 그렇다 쳐도 담보 제출은…….”
담보? 나도 계약서 내용을 모르고 있기에 영성이 형한테 부탁해서 내용을 살펴봤다.
‘미리 담보를 받는다고? 아이템이나 재화 가치가 있는 증서로?’
계약서를 대충 확인하고 고개를 들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해 있었다.
그리고 백태섭이 말했다.
“규성 씨, 원하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원하는 물건이요?”
계약 기간 동안 비밀 엄수 조항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담보로 내건 항목을 내가 영구히 소유하는 건데…….
상대가 뭘 가진 줄 알고 내가 무턱대고 내놓으라 하냐.
물론 상대가 철혈 길드의 대표인 만큼 이건 정말 엄청난 기회였다. 아라홍련만 해도 어마어마한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는데, 국내 1위를 다투는 철혈이라면 더욱 대박이겠지.
‘……혹시 그거 있나?’
잠깐 생각을 정리한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내 봤다.
“혹시 철혈 길드에…… 슬라임과 연관된 아이템 있습니까?”
“슬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