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56)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57화(56/119)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강한울은 어딘가 찜찜한 표정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지긋지긋한 해외 일정이 끝났다며 기뻐해야 하건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오랜만의 한국이군.”
“후우, 굳이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강한울이 슬쩍 자신의 뒤를 따라 걷고 있는 이노 준이치를 보았다. 공사가 다망한 8급 각성자가 설마 따라온다고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던 강한울이었다.
‘괜히 자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들이 최고라고 우기는 놈들에게 그 위가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강한울의 계획은 멋들어지게 성공하여 결국 준이치를 한국에 불러들이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하핫! 왜 그렇게 울상인가, 친구?”
“흥! 친구?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나!”
“에이, 너무 그러지 말게. 내가 한국까지 직접 찾아왔는데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강한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그러나 묘하게 거리를 떨어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하핫! 귀여운 녀석!”
“시끄럽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는 8급 각성자. 게다가 일본에서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내였다.
강한울은 지금까지 미뤄 왔던 연락을 하기 위해 슬쩍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졌다.
“으음…….”
한석준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마 지금쯤이면 중국 출장에서 돌아왔을 터였다.
띠리리리- 딸칵!
-전화 받았습니다, 2팀장님.
“…….”
자신이 전화를 걸어 놓고 찌푸린 이마를 쓰다듬는 강한울이었다. 그런 강한울을 향해 한석준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2팀장님?
“형님. 준이치를 데리고 왔습니다.”
-……?
밑도 끝도 없는 소식에 한석준의 당황한 기색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왔다. 그도 그럴 게 이노 준이치의 위상은 단순한 각성자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2팀장님? 수신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아마 들으신 게 맞을 거요.”
-……어쩌다 준이치 님을 데려오신 겁니까?
“정확히는 데려왔다기보다 지가 따라왔소. 미안합니다, 길드장님.”
재빨리 호칭을 바꾸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강한울이었으나 한석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당장 준이치를 어떻게 신경 써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일단 길드로 데려오세요.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고분고분 말을 들은 강한울이 통화를 끊고 슬쩍 뒤를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맑은 미소를 짓는 준이치가 보였다.
“에휴.”
* * *
“아이고, 우리 강아지 잘 지냈어요?”
아라를 보자마자 화색이 된 어머니가 버선발로 마중을 나왔다. 이제 아들인 나는 안중에도 없는 기색이었다. 조금 섭섭하구만.
“대군주군주! 오랜만인 것이다!”
한쪽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반가움을 표시한 아라의 옆에는 곰 인형 하나가 들려 있었다.
사실 곰 인형을 가장한 별곰, 곰곰이였다.
곰곰이가 아라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자 인형의 행세를 하라고 주문했더니 의외로 기가 막힌 연기 실력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우리 강아지 할미가 한번 안아 보자. 어이구, 그렇지.”
“엄마, 말투가 너무 할머니 같아졌어요.”
“할머니 맞는걸?”
어머니가 꿋꿋하게 아라를 안아 들며 웃었다.
그런 아라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곰곰이가 필사의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어머, 근데 거의 아라만 한 크기의 곰 인형이네? 귀여운 인형이네, 아라야.”
“귀여운 것이다.”
동의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아라가 곰곰이를 끌어 올려 자신의 품에 안았다. 안기면서 축 늘어지는 곰곰이를 보자 저거 진짜 인형이 아닌가 나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형, 왔어?”
“오, 재성아. 있었구나. 다행이네.”
“……다행?”
“어. 요리 좀 해 주라.”
“갑자기 찾아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참.”
쯧쯧 하며 혀를 찬 재성이었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 이내 내가 새로 수확한 고구마를 보끔이를 통해 꺼내자 두 눈이 휘둥그레진 모자였다.
“이건 뭐니?”
“고구마예요.”
“아니, 근데 고구마가 무슨 꼭 호박같이 생겼구나.”
고구마를 한참 살펴보는 둘을 향해 나는 오늘의 일정을 말해 주었다.
“오늘 보육원에 갈 예정이에요.”
“보육원? 웬 보육원?”
“저번에 우연히 인연이 닿아서 한번 방문하기로 했는데 빈손으로 가기 뭣해서 재성이랑 엄마 도움 좀 받으려고요.”
내 말에 어머니는 화색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성이 고우신 어머니는 평소에도 남들을 돕는 걸 좋아했는데, 내 말에 솔깃하셨나 보다.
“아니, 형! 우리 둘이서 보육원 사람들이 전부 먹을 요리를 다 하란 말이야?”
“나도 도와줄게.”
“나도 돕는 것이다!”
나와 아라의 말에 재성이가 멍을 때렸다.
그러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구마를 들고 날랐다.
“몇 명인지는 알아?”
“애들 숫자만 62명. 선생님은 5명.”
“그럼 대충 80명이라고 생각할게. 넉넉하게.”
“어. 고맙다, 재성아.”
그렇게 본격적으로 고구마의 손질부터 요리가 시작되었다. 나도 나름 재성이가 하라는 걸 들으며 보조를 했는데 옆에서 지켜보자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진짜 요리사는 다르네.’
칼질부터 기초적인 재료 손질까지.
진짜 전문가가 무엇인지 보여 주듯 정돈되고 깔끔한 동작들이었다.
어머니도 만만치 않았지만 재성이는 한눈에 봐도 다른 차원의 실력이었다.
“그래, 옳지. 아이고 잘한다.”
어머니는 반쯤 재성이에게 맡긴 채 아라와 소꿉놀이를 하듯 손뼉을 치며 좋아라 했다. 아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구마의 껍질을 까며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또 너무나 귀여웠다.
삑삑삑삐비빅-
“어? 아라야, 고모 왔나 보다.”
“고모?”
아라가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오랜만에 보는 선아가 우리를 보며 놀랐다.
“뭐야, 규성이 오빠 왔네? 어머! 안녀엉 아라야~!”
나를 볼 때는 목석같던 선아가 소녀 같은 모습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아라에게 뛰어왔다.
그런 선아의 모습에 진지한 얼굴로 고구마를 까던 아라가 표정이 환하게 풀리며 손을 흔들었다.
“이선아인 것이다!”
“어이구, 어이구. 우리 아라가 집에 왔어용. 언니가 한번 안아 보자.”
아라를 번쩍 안아 든 선아가 볼을 비벼 댔다.
“야, 볼 닳는다.”
“뭐래. 오빠는 하던 거나 해.”
방해하지 말라는 듯 아라를 들고 저 멀리 가 버리는 선아였다. 그사이 재성이가 고구마 맛탕을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형, 다른 재료도 있지?”
“가져오기는 했어.”
“맛탕만 만들 수는 없으니까 다른 것도 좀 꺼내 봐.”
“오케이.”
아라가 잠시 선아의 손에 맡겨진 사이 어머니도 본격적으로 거들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속도가 붙으며 우리는 이것저것 열심히 만들었다.
“담아 갈 수는 있지?”
“어.”
보끔이는 그사이에 레벨 3으로 만든 상태였다. 레벨 3이 된 보끔이도 외형이 살짝 변했는데 여행 배낭을 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크투는 밀짚모자, 독독이는 보라색으로 변했고 보끔이는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
이제는 레벨 3이 되면 외형이 변하는 게 거의 확실해졌다.
그리고 이제 슬슬 레벨 4도 생각해 볼 시기였다. 탐식의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마크투를 레벨 4로 만들어야지.
“맛탕 일단 완성.”
“캬아, 냄새 죽인다.”
재성이가 엄청난 인내심으로 침을 계속 삼키면서 접시에 맛탕을 플레이팅했다.
어머니는 어느새 맛탕을 하나 집어 입에 가져가고 계셨다.
털썩.
“엄마?”
“엄마?! 왜 그래요?”
갑자기 주저앉아 버린 어머니를 재성이가 다급하게 부축했다. 내가 급하게 달려가자 어머니는 넋이 나간 얼굴로 우리 둘을 번갈아 보았다.
“맛있어.”
“…….”
“아이, 놀랐잖아요.”
진짜로 놀랐다.
설마 맛탕이 잘못돼서 어머니가 큰일 나는 줄 알았네.
“아니야! 맛있다니까?!”
“알겠어요. 알겠어.”
어머니는 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주지 못하냐는 듯 외치셨다. 그 외침에 아라를 방으로 끌고 갔던 선아가 아라를 품에 안은 채 밖으로 나왔다.
“와! 맛있는 냄새! 이거 고구마 맛탕이지? 근데 저번이랑 냄새가 조금 다른데?”
“마탕! 마탕!”
아라가 잔뜩 흥분했다. 아라의 품에 안긴 곰곰이도 코를 벌름거리는 게 보였는데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어서 먹어 봐! 어서!”
“예, 예. 알았어요.”
냄새가 좋긴 좋았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것들은 오히려 조리 후에 향이 옅어졌는데 이번 거는 계속 은은한 꿀향을 내뿜고 있었다.
“일단 우리부터 먹어 보자.”
“마탕!”
아라가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듯 온몸을 비틀며 선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여전히 곰곰이는 안고 있는 상태였는데 도도도 달려와 맛탕이 담긴 접시에 도착했다.
“자, 먹어 볼까?”
“마타아아앙!!”
아라가 먼저 맛탕을 시식했다.
그러더니 곧 헤벌쭉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맛을 음미했다.
“흐흐흐, 흐흐.”
웃음소리가 조금 이상해진 걸 빼고는 괜찮은 모습이었다.
“우리도 먹어 볼까.”
막 조리되어 뜨거운 맛탕을 조심스레 입김을 불어 한 입 먹어 보았다.
퍼엉!
어? 이게 뭐지?
갑자기 폭죽이 터졌다. 눈앞이 번쩍번쩍하였는데 잠시 시간이 지나자 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맛이 터지는 거였어?!’
고구마의 풍미가 터져 나갔다.
그러면서도 은은한 꿀? 꽃? 아무튼 향이 놓치지 않고 내부를 휘몰아쳤다.
달콤함과 고소함, 그리고 말로 표현 못 할 녹진한 고구마의 맛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사르르 녹아내렸다.
“아?”
어느새 큼지막한 맛탕 하나가 입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치 솜사탕을 먹은 것처럼 녹아 버렸는데 크리미한 여운이 여전히 입속에 남아 있었다.
“대박! 대박!”
“……이건 내 요리 실력이 아니야. 이건…….”
탄성을 터트리는 선아와 혼란스러워하는 재성이를 보며 하나 더 집어먹었다.
퍼엉!
두 번째는 그래도 감동이 좀 덜하겠지 싶었으나 내 착각이었다. 왜 어머니가 주저앉았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꿀꺽!
“아니?”
또 사라져 버리는 맛탕의 식감을 느끼며 자꾸만 손이 뻗어졌다. 그리고 다시 느껴지는 맛의 폭죽!
우리 가족들은 정신없이 맛탕을 흡입했다.
심지어 곰곰이가 은근슬쩍 맛탕을 먹고 있는데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철그럭-
“어? 다 먹었어?”
어느새 빈 그릇이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당황한 우리는 서로 시선을 맞춰 보다가 이내 급히 움직였다.
더 많은 맛탕! 우리는 더 많은 맛탕을 원한다!
“마타아아앙!!”
아라가 포효를 내지르며 광란의 열기로 한 차례 휩쓸었다.
* * *
띠리리리- 딸칵!
-여보세요? 규성 씨?
“예, 소연 씨.”
-아, 혹시 지금 출발하셨을까요?
“슬슬 가 보려고 합니다.”
-아, 죄송해요. 다름이 아니라 갑자기 길드에 중요한 손님이 오셔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먼저 가셔도 되는데 혼자 가시는 게 부담되시면 이따가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 확인했습니다. 저도 마침 시간 때울 일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이따가 뵐게요.
통화를 끝내고 시선을 들자 바닥에 쓰러져 있는 가족들이 보였다. 모두 볼록한 배를 자랑하고 있는 와중에 눈치 보느라 마음껏 먹지 못한 곰곰이만 맛탕 하나를 손에 쥔 채 핥아먹고 있었다.
“……가져가도 되는 걸까.”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는 맛탕의 파괴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