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66)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67화(66/119)
서울시에 있는 한국대학교.
이선아는 이번에 새로 받은 과제로 인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각성자 인터뷰? 어디에 연락해야 되지?”
그것도 하필이면 조별 과제였다.
이선아와 함께 같은 조가 된 그녀의 친구들도 각자 어느 길드에 연락을 취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선아네 오빠가 각성자라고 하지 않았나?”
“뭐? 진짜?”
친구들의 시선이 전부 선아에게 향했다.
갑작스런 분위기 전환에 선아는 살짝 당황스러워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우리 오빠가 각성자가 맞긴 한데…….”
“와, 대박이네! 그러면 선아네 형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이선아는 곤란한 기색을 띄었다.
평소 각성자를 동경하던 건 맞지만 자신의 오빠인 이규성을 각성자라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다.
‘최근에는 아라홍련이라는 엄청난 길드에 가입했지만 그것도 실감이 안 나고…….’
요즘 들어 집에 가지고 오는 농작물들을 보면 확실히 규성이 각성자는 맞구나 싶었으나, 애초에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각성자의 모습과는 달랐다.
각성자가 농사라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벙쪘다.
특히나 각성자 매니아인 이선아로서는 보통의 각성자와 궤를 달리하는 규성의 행동과 능력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자신의 오빠가 각성자라는 사실도 거의 말한 적이 없었다.
하필이면 유일하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절친이 까발렸지만.
“……일단 오빠한테 부탁은 해 볼게. 그래도 크게 기대하지는 마. 안 될 확률이 높아.”
“좋아! 이야, 덕분에 살았네. 이번 과제는 그냥 꽁으로 먹겠는데?”
선아의 말과 달리 조원들은 이미 인터뷰를 확정받은 기색들이었다. 그 어질어질한 모습들에 이선아는 살짝 휘청거렸지만 이내 애써 좋게 생각했다.
‘그래. 우리 오빠가 뭐 어때서. 조금 특이한 능력과 활용일 뿐이지 각성자는 맞잖아?’
아니, 애초에 규성은 그 유명한 아라홍련의 각성자이지 않은가! 전혀 꿇릴 게 없었다!
……라고 애써 마인드 컨트롤했다.
이선아는 말이 나온 김에 자신의 오빠인 규성에게 곧바로 문자를 남겼다.
-오라버니,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다름이 아니오라 소녀, 부탁이 한 가지 있사옵니다…….
* * *
생각지도 못한 물 세례에 멍하니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강물인가?”
바로 옆에 강이 붙어 있으니 강 쪽의 물이 여기까지 이어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늘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물을 맞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뜨거워?”
아니, 뜨거울 정도는 아니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차가운 강물과 대조적인 온도에 슬쩍 물이 뿜어지고 있는 곳을 보자 어느새 물이 조금 받아져 있었다.
“이규성규성! 이건 대체 무엇이냐! 수영장인 것이냐!”
아라가 잔뜩 흥분한 기색을 띠며 방방 뛰었고, 곰곰이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때문에 머리를 감싼 채 빙글빙글 뛰어다니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봐.”
혹시라도 유해한 성분이 있는 게 아닐까 살짝 걱정되었다. 어느새 쪼개진 바위틈에서 쏟아진 물은 옅은 수증기까지 피우고 있었는데 알 수 없는 향기까지 퍼져 나갔다.
‘향수도 아니고 이건 뭔 냄새야?’
역하거나 기분 나쁜 냄새는 아니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좋은 향기. 굳이 소믈리에에 빙의하여 표현해 보자면 갓 구운 빵과 같은 냄새에 낡은 호두 향기, 옅게 커피를 볶는 향도 조금 나며 싱싱한 나무 향도 있었다.
핥짝!
어느새 곰곰이가 뛰어다니던 걸 멈추고 네 발로 엎드려 논에 채워진 정체불명의 물을 핥고 있었다.
“나도 먹어 보는 것이다!”
“어어…….”
뭐든지 소화시킬 수 있는 아라는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곰곰이는 조금 걸렸다.
나는 곧바로 곰곰이를 두 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크웅?
“아무거나 함부로 주워 먹으면 안 돼.”
내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곰곰이는 아라를 가리키며 왜 나는 안 되냐고 항변하듯 바둥거렸다.
홀짝!
“오! 맛있는 것이다?”
아라가 수그리고 앉아 물에 입을 대고 조금 마셔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맛있다는 건지 아닌 건지 애매한 반응.
아니 그 전에 먹는 물인 건 맞아?
예상치 못한 이벤트로 작업이 잠시 중단되었다. 여전히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정체불명의 액체를 놔두고 밭부터 신경 쓰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지겠지.
그리고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왠지 저 액체가 유해하진 않을 것 같았다.
“일하러 온 거니까 일을 해야지.”
우선 가지고 온 씨앗들 중에서 뭐부터 심을지 고민했다.
“던전 식물이 먼저. 이건 이름을 뭐라고 붙이지?”
아라가 이곳에서 주식으로 삼았었다고 하는 빵의 맛이 나는 열매. 씨앗은 넉넉하게 구해 놓았기에 심는 데 문제는 없었다.
기르는 것도 결국 슬라임들의 몫이라 걱정도 없었다.
“고소고소!”
“……고소고소?”
단어 선택이 참 위험하구나, 아라야.
얼핏 들으면 오해할 만한 작명 센스를 선보인 아라의 의견에 따라 결국 이 빵맛이 나는 식물은 ‘고소고소’가 되었다.
……이게 맞나?
“그럼 고소고소를 한 200평 잡으면 되나?”
수확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겠네.
다다익선이라고 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 만든 1,000평의 밭은 모두 고소고소를 심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면 나머지 씨앗들은?
‘고추, 상추, 양파, 마늘!’
이왕 이렇게 결정한 거 나머지 작물도 각각 통 크게 1,000평씩 만들어야겠다. 사실 진짜 농사일을 하시는 분들과 비교하면 1,000평이 그리 통 큰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분들과의 차이점이라면 난 한 가지 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작물을 조금씩 생산하는 점.
이게 가능한 것도 결국 슬라임이라는 훌륭한 일꾼들 덕분이었다.
“아라야, 밭을 더 만들어야겠다.”
“오오! 갈아 버리는 것이다아아!!”
진지한 얼굴로 다시 한번 전투 함성을 내지른 아라가 괭이를 치켜세웠다.
나는 1,000평짜리 구역을 네 군데 더 만들어 달라고 아라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아라가 밭을 가는 사이 먼저 만들어 놓은 밭에 고소고소 씨앗을 심었다.
“꼼꼼히, 꼼꼼히…….”
-크앙?
곰곰이가 자기를 부른 줄 알고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내가 하는 모습을 보고는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흙을 파내고 거기에 돌멩이를 넣은 뒤 잘 덮는 모습.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곰곰이도 해 볼래?”
-크웅!
씨앗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어설프지만 나름 삐뚤빼뚤 열심히 밭에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저렇게 심으면 나중에 기를 때나 수확할 때 조금 성가시겠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슬라임들이 힘들어지는 거지 내가 힘든 게 아니니까.
“……순간 내가 악덕 지주에 빙의된 느낌이…….”
착각이겠지? 나는 슬라임 복지사라고.
씨앗을 심는 일은 전적으로 나와 곰곰이가 해냈다. 그사이 슬라임들은 뾸뾸거리며 아라를 구경하러 갔다가 다시 나와 곰곰이를 구경하러 오기도 하며 마음껏 놀았다.
“후, 이게 제일 힘드네.”
사실 밭을 가는 것도, 그 이외에 모든 농사일도 다른 애들이 해 주니까 씨를 뿌리는 일이 유난히 힘들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씨앗을 농기계의 도움 없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심는 건 꽤나 고달픈 일이었다.
“이제야 200평 정도 심은 거 같은데.”
나름 곰곰이가 도와준다고 돕고 있었지만 저 어설픈 발놀림으로는 1분에 씨앗 하나를 심는 수준이었다. 결국 대부분의 작업은 나 혼자서 하는 거나 마찬가지.
“우오오! 다 갈아 버린 것이다!”
그사이 벌써 4,000평이나 되는 땅을 갈아엎어 버린 아라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내게 달려왔다.
나는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간식으로 가져온 레일라와 맛탕을 먹으라고 말했다.
“마탕~ 마탕~!”
아라가 배낭을 뒤지러 가자 곰곰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뒤뚱뒤뚱 따라갔다. 그 모습이 마치 어렸을 적에 봤던 동화의 한 장면 같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흐읍! 열심히 해 볼까!”
단순 노동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각성자로서 체력이나 몸은 멀쩡했다.
나는 다시 한번 기합을 넣으며 씨앗을 심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와, 고생했다!”
“맛있는 거 많이 나오는 것이냐?”
“그럼!”
결국 해냈다.
사실 고소고소 씨앗을 제외한 나머지 씨앗들은 전부 200평 정도의 분량만 가져왔기에 총 1,800평의 땅만 심으면 끝이었다.
게다가 나중에는 간식을 먹은 아라가 나를 도왔기에 훨씬 빠르고 수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고추, 상추, 양파, 마늘이 각각 200평씩. 그리고 고소고소가 1,000평. 땅이 넓으니 여기를 관리하려면…….’
탐식의 던전 농장을 관리할 슬라임은 이미 내정해 두었다. 그건 바로!
“마크투! 이제부터 넌 여기 책임자다!”
꿀렁!
이미 여기 오기 전에 언질을 주었기에 녀석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꿀렁거렸다. 그리고 이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신병들아! 너희도 여기서 생활하게 될 거다!”
꾸물!?
신병들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주변을 둘러보더니 마음에 든다는 듯이 꿀렁거렸다.
내가 생각해도 무한 던전보다 여기가 훨씬 좋았다.
‘음, 그래도 너무 허허벌판인데.’
아무리 슬라임이라지만 내 소중한 식구들이었다. 적어도 비바람을 피할 만한 공간은 있어야지.
그리고 이왕 그런 공간을 만들 거면 내가 지낼 거처도 따로 만들고 싶었다.
‘건축! 건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를 알고 있지!
그것도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
“아빠 찬스다!”
지금은 도배나 인테리어를 하고 다니시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는 건축업자셨다. 나름 작은 건축 회사의 사장님이셨는데 내게 투자한다고 돈을 무리하게 운용하시다가 부도가 나셨다.
지금은 간신히 빚을 다 갚으신 상황. 그러니 이제 돈은 내가 벌고 아버지께는 이곳의 건축을 부탁해야겠다.
‘……이거 효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일만 시키는 기분이 드네.’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묘책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냥 아버지께 은근슬쩍 말이나 건네 보자. 던전 구경도 시켜 줄 겸 빠른 시일 내에 데려와서 보여 줘야지.
자, 그러니 우선은 농사에 먼저 집중해 볼까.
“이제 내 턴은 끝났다! 턴을 넘기겠다!”
뭔 헛소리지 하는 모습들로 나를 바라본 슬라임들이 꾸물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마른 밭을 기어 다니며 촉촉이 적셨다.
그래도 그냥 움직일 때보다 훨씬 느릿하게 기어 다니는 걸 보니 뭔가 작업을 하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땅이 넓다 보니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나는 차라리 이 김에 밭을 아예 맡겨 버리고 알프헤임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멜루카 꽃이 잘 자라는지 확인하고 독독이의 독을 줘 봐야지.’
덤으로 곰곰이가 말한 버섯도 채취하고.
아마 곰곰이가 찾아 주겠지.
캠핑 용품을 정리하고 보끔이만 챙겼다.
밭에 남게 된 마크투와 신병 둘은 우리에게 배웅하듯 인사하고는 다시 일에 열중했다.
“저렇게 일이 좋은가?”
“재밌는 것이다!”
아라도 슬라임이니 추측이나 거짓말은 아닐 거다. 애초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인간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재미였다.
일이…… 재밌어?
“출발하자.”
“가는 것이다!”
이번에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일직선으로 세계수를 향해 나아갈 생각이었다.
보끔이를 머리 위에 얹고 곰곰이는 아라의 품에 붙들렸다.
그렇게 한눈팔지 않고 걷자 확실히 금방 숲의 초입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금방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래도 2시간 정도 걸리긴 했다.
‘저번에는 반나절 정도 걸렸으니 장족의 발전이긴 하지.’
아는 길과 모르는 길을 갈 때의 차이가 여기 있었다.
초입에 도착했으니 조금은 쉬어 줄까 하며 아라를 보는데 아라의 시선이 묘했다.
“뭘 보고 있어?”
“저거!”
“응?”
시선을 돌리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들이닥쳤다.
후와아앙—-!!
“우억! 뭐야!”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뜬 나는 눈앞에 등장한 무언가에 놀라 그대로 굳어 버렸다.
후웅-!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거대한 몬스터.
네발 달린 맹수의 외형이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동물과 비슷했다.
“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