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81)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82화(81/119)
-헤헹.
꾸물이들이 탐식의 던전에 이사 온 지 이틀.
녀석들은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게 멍하니 있거나 영문 모를 행동을 하며 싸돌아다녔는데 한 가지 잘하는 게 있었다.
꿀렁!
슬라임 한 마리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작은 건축 구조물을 보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 구조물을 만든 꾸물이 하나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헤헹.
녀석들은 건축에 재능이 있었다. 구조적으로 효율이 좋은 건 아니지만 뚝딱뚝딱 뭐든 곧잘 만들어 내곤 했다.
“……의외의 곳에서 건축이 해결되네.”
물론 건축 자제의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꾸물이들과 아버지가 합작하면 집은 물론이고 이런저런 건물들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헤헹.
“그래, 그래. 잘했다. 마음껏 먹어.”
주변에 있는 재료가 나무와 자갈, 진흙 따위뿐이라 조금 애매했지만 그래도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슬라임들의 거처를 만들 수 있었다.
꾸물이들의 인테리어는 꽤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서 슬라임들을 위한 집을 10채 정도 짓자 마치 동화 속 귀여운 마을과 같은 풍경이 완성되었다.
‘근데 언제 일하고, 언제 쉬는지가 구별이 안 가는 녀석들이네.’
집을 짓다 말고 지붕 위에서 잠이 들어 버리거나, 집을 짓기 위한 재료를 들고 나르다가 갑자기 다른 걸 하러 가 버린다든가.
하여간 종잡을 수 없는 친구들이었다.
-크웅.
“응? 네 것도 만들어 달라고?”
곰곰이가 방금 막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슬라임의 거처를 보더니 부럽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아라 또한 거처에 쏙 들어가 보더니 헤실거렸다.
“헤헤! 잘 지은 것이다!”
“우리 것도 만들어 달라고 할까.”
“오오! 좋은 것이다!”
방방 뛰다가 머리가 천장에 닿았으나 꽤 견고하게 지어진 슬라임의 거처는 멀쩡히 버텨 냈다.
마침 오늘 할 일도 다 마쳤으니 아버지께 한번 연락이나 드려 봐야겠다. 재료는 아버지와 함께 던전을 좀 탐색하며 찾아봐야지.
-헤헹.
“이제 우린 이만 가 볼게.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 한다.”
마크투를 비롯한 슬라임들과 꾸물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슬라임 던전의 입구로 향했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언제 따라왔는지 꾸물이 하나가 내 어깨에 매달려 있던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헤헹.
“……같이 갈래?”
-헤헹.
통역을 바라며 아라를 쳐다보자 아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소리만 내고 있는 것이다. 아무 뜻이 없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꾸물이 하나를 매단 채 슬라임 던전으로 복귀했다. 당근즙으로 정보를 확인하려 해 놓고 까먹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뭔 생물인지 볼까.
꿀렁!
“잘 있었어?”
독독이가 반갑다는 듯 몸을 흔들었다.
그리고 슬라임 하나가 느리게 기어오더니 머리를 툭하고 내게 박았다.
너 설마 박치기 슬라임이니?
슬라임 던전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는지 쭉 둘러보고 저장고에 향했다. 어느새 수북이 쌓인 작물들을 보며 마음이 풍족해짐을 느꼈다.
“궤도에 올랐군.”
그동안 슬라임들을 먹일 농작물로도 빠듯했는데 어느 정도 요령이 쌓이자 점차 수확물이 쌓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길드에 납품을 하는데도 작물이 남아 가족들이나 일본에 있을 재성이, 그리고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길드원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그것도 꾸물이들이 대거 이주해 오는 바람에 살짝 빠듯해졌지만.’
아무래도 밭을 늘려야 할 것 같았다.
이곳은 이제 꽉 찼으니 결국 늘려야 할 밭은 탐식의 던전이었다.
“일단 당근즙부터.”
나는 곧장 당근즙을 마시고 여전히 어깨에 매달린 꾸물이를 확인했다.
[꾸물이(정령)]순수한 정령이다. 내구성이 대단하다.
정령?
꾸물이가 정령이었다니,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아는 정령이란 존재는 각성자들이 종종 길들이는 사역마 중 하나로 원소의 능력을 사용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꾸물이도 정령이라니…….
애초에 무슨 정령이지? 건축의 정령인가?
“흐음.”
“이규성규성! 나도 주는 것이다!”
“엉? 어어.”
남은 당근즙 일부를 아라에게 주고 이내 생각하기를 멈췄다. 정령이면 어떤가. 위험하지만 않으면 됐지.
애초에 위험성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는 생물이었지만. 아, 생물이긴 한 건가?
나는 아라와 곰곰이, 그리고 꾸물이 하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맡는 바깥 공기가 싸늘했다.
“벌써 겨울이 오고 있네.”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근데 시간이 빠르게 흐른 듯하나 의외로 많이 흐르진 않았다.
워낙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와서 그런 걸까.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마침 아버지는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계셨다. 얼마 전부터 납품을 통해 거액의 돈이 입금되면서 본가의 생활비는 내가 충당하고 있었다.
남는 돈은 그저 모으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재성이를 위한 식당이나 선아를 위한 자금, 아니면 슬라임 던전이 있는 이 야산을 통째로 살까도 생각 중이었다.
띠리리리-
-여보세요?
“예, 아버지. 바빠요?”
-음, 아니? 왜. 무슨 일인데.
“예전에 아버지 놀러 오셨을 때 집 지으면 좋겠다고 하셨잖아요. 그거 어떻게 됐어요?”
-뭘 어떻게 돼. 그냥 그러고 말았지.
내가 통화를 하고 있자 옆에 있던 아라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흔들었다.
“대군주군주 보러 가는 것이냐?”
-오, 우리 아라 목소리구나. 아라야? 할아버지다?
“대군주군주!”
그래. 이렇게 된 거 전화 말고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게 좋겠다. 근데 꾸물이를 이 상태로 데려가도 되나?
-헤헹.
소리를 내도 그저 인형처럼 보이는 꾸물이였다. 어깨에 착 달라붙은 채 미동도 없는 녀석.
“아버지. 지금 제가 아라랑 애들 데리고 그쪽으로 갈게요.”
-그래? 오는 김에 감자랑 고구마 좀 더 챙겨 와라.
“예.”
통화를 마치고 다시 던전에 들어가 감자와 고구마를 챙겼다. 이내 보끔이를 가방에 넣고 그 위에 꾸물이를 얹었다.
-헤헹.
묘하게 중독성 있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아라와 곰곰이를 데리고 본가로 향했다.
“저 왔어요.”
집에 도착하자 얼굴 보기 힘든 선아가 먼저 반겨 주었다.
“아라야! 곰곰아!”
“오! 잘 있었던 것이냐, 이선아선아!”
아라가 도도도 달려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선아에게 안겼다. 그 뒤를 곰곰이가 뒤뚱뒤뚱 따라가 같이 포옥 안겼다.
“이 귀여운 녀석들! 언니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우. 우리 아라는 어쩜 이리 예쁜 말만 할까!”
때마침 어머니가 주방 쪽에서 나오며 환하게 웃으셨다.
“왔니?”
“예. 애들도 데리고 왔어요.”
“당연히 데리고 와야지.”
이제 나보다 애들이 더 중요해 보이는 우리 가족들이었다.
남몰래 슬쩍 눈물을 닦으며 어머니께 물었다.
“아버지는?”
“방에 있어. 여보! 아라랑 애들 왔어!”
말을 하기 무섭게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셨다.
그러더니 선아에게 안겨 부비부비를 당하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냉큼 걸어갔다.
“우리 아라 왔어?”
“오! 대군주군주!”
어머니랑 아버지, 두 분 모두한테 대군주군주라고 부르니 조금 헷갈렸다.
그렇게 회포를 풀고 있을 때 나는 가방을 슬쩍 꺼냈다.
“뭐야, 그 인형은? 아라 거야?”
역시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선아가 먼저 관심을 보여 왔다.
-헤헹.
“소리도 나네?”
나는 그런 선아를 향해 꾸물이를 잡고 던졌다.
그러자 꾸물이는 나풀나풀 선아를 향해 떨어졌다.
“어, 어? 이거 뭔데?”
“꾸물이인 것이다!”
아라가 만세를 하며 외쳤다.
그러자 곰곰이도 그 모습을 따라 하며 크웅! 하고 외쳤다.
-헤헹.
“설마 이것도 살아 있는 거야?”
“꾸물이라고 해. 아라가 이름 지어 줬어.”
“아니, 왜 오빠는 귀여운 걸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이런 애들이랑 엮이는 거야? 이건 불공평해.”
“…….”
선아의 궤변을 들으며 아버지께 용건을 말했다.
“아버지.”
“으음?”
“저 꾸물이가 집을 지어 줄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냐?”
“이번에 새로 온 애들인데 집을 잘 지어요. 아버지가 시공 계획을 세우고 재료만 어떻게 충당하면 얘네들이 지어 줄 거예요.”
“이런 쬐깐한 애들이 어떻게 집을 지어?”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로 꾸물이를 툭 건드려 보셨다. 그러자 꾸물이는 불렀냐는 듯 고개를 돌리며 소리 냈다.
-헤헹?
“귀엽긴 하구나.”
“거짓말 같겠지만 얘네가 또 기똥차게 잘 지어요. 그리고 하나가 아니거든요.”
“하나가 아니야?”
“예. 저도 다 세어 본 건 아닌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애들까지 합하면 대충 50마리는 되는 거 같아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작은 애들이…….”
말을 하면서도 보끔이에게서 감자와 고구마를 차곡차곡 꺼냈다.
어머니는 아라와 곰곰이, 그리고 새로운 식구가 된 꾸물이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으셔 결국 내가 냉장고에 넣었다.
“오늘 일정 비세요? 지금 저희 집으로 가 보는 건 어때요?”
“흐음, 좋지. 잠깐 준비 좀 하고.”
“준비요?”
“낚시 용품 챙겨야지.”
아니, 아버지.
낚시를 하러 가는 게 아니라 건축 시공 견적 내러 가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화벨이 익숙지 않아 내 게 아닌 줄 알았으나 이내 가족들의 눈짓에 나임을 알았다.
발신인은 무려 한석준 길드장님이셨다.
“예! 길드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어쩐 일이세요?”
-규성 님, 오랜만입니다. 연락이 될까 싶었는데 운이 좋았네요.
“예. 지금 잠깐 본가에 와있어서요.”
-아, 본가……. 혹시 많이 바쁘신가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무슨 일 있는 건가요?”
-다름이 아니라 테러 길드 측에서 규성 님을 좀 뵐 수 있냐는 연락이 와서요. 규성 님만 가능하시면 일정을 잡아서 아라홍련 건물 내에서 미팅을 하고자 하는데 어떠십니까?
“테러 길드요?”
자타공인 명실상부 대한민국 1위 길드.
비록 그 역사는 길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1위로 치고 올라온 괴물 같은 길드였다.
그런 길드에서 대체 왜 나를 찾는 거지?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아무래도 규성 님의 아이템에 대한 소재를 파악한 모양인데, 그와 관련해서 규성 님과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 모양입니다.
“어, 어. 전 아라홍련 소속인데 테러 길드랑 대화를 하거나 해도 되나요?”
-안 될 것 없지요. 전혀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승낙도, 거절도 부담 없이 선택하시면 돼요.
“으음. 길드장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시나요?”
-개인적으로 테러 길드와 대화 정도 나누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좋죠.
“그럼 알겠습니다. 날짜랑 시간은 그럼……?”
-규성 님이 편하실 때로 정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이번 주 금요일 점심쯤으로 생각해 두겠습니다.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그리 전달해 놓겠습니다. 오랜만에 규성 님의 얼굴을 볼 수 있겠군요.
“하하. 앞으로 가끔씩 찾아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선아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보였다.
“테러 길드? 테러 길드가 왜?”
“뭐.”
“방금 오빠가 통화로 그랬잖아. 테러 길드라고!”
“좀 보자고 하네. 얘기 좀 나누자고.”
“대박!”
선아가 손뼉을 치며 꺅꺅댔다. 아니 그렇게 환호할 일이야?
어찌 됐든 약속을 잡았으니 테러 길드와 만나게 되겠군. 근데 테러 길드에서 누가 오는 걸까.
“준비 끝났다.”
“어, 아버지.”
어느새 방에서 낚시 복장과 도구들을 전부 챙긴 아버지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뭣들 해? 빨리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