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88)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89화(88/119)
-헤행.
꾸물이들이 열심히 움직이며 마을을 가꾸고 있었다. 어느새 슬라임을 위한 집뿐만 아니라 수확한 작물들을 개별로 보관 가능한 저장고, 종자들을 보관하는 건물, 알프헤임이 방문했을 때 쉴 수 있는 장소까지 지어져 있었다.
지금은 건물들 사이와 밭까지 향하는 길을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주변 조경도 함께 가꾸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게을러 보이면서도 은근 부지런하단 말이지.”
덕분에 허허벌판과 같았던 평야는 아기자기한 동화 속 마을로 바뀌고 있었다.
규성은 수확한 양파를 아이템인 것과 아닌 것으로 분류하며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 곁으로 슬라임들이 왔다 갔다 하며 일을 도왔다.
“이규성규성! 일하느라 고생이 많은 것이다!”
한참 일을 돕던 아라가 규성이 흘리는 땀을 보곤 어디론가 도도도 달려갔다.
“물을 마시는 것이다!”
아라가 양손에 꿀물 온천을 담아 조심조심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손 틈으로 물이 새어 나가며 규성에게 도착했을 즘에는 촉촉하게 젖은 손밖에 없었다.
“어, 없어진 것이다!”
“그러게? 한 번 더 다녀와야겠는데?”
규성은 그 귀여운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 말리지 않고 다시 물을 떠 오는 아라를 지켜보았다.
이내 두 번째 시도도 실패로 끝난 아라가 볼을 부풀리며 주변을 살폈다.
“오오!”
마침 아라의 눈에 곰곰이와 놀고 있는 보끔이가 보였다. 곧장 보끔이에게 다가간 아라는 보끔이를 훌쩍 들어 올려 다시 온천으로 도도도 뛰어갔다.
보끔?
“물을 마시는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규성은 슬쩍 표정을 굳혔다. 설마 보끔이가 마신 물을 주려는 건 아니겠지?
물론 보끔이에게 항상 식자재를 비롯한 이런저런 물건들을 맡겨 놓고 있지만 마셨던 물을 다시 뱉어 내게 하는 건 약간 다른 문제였다.
“아, 아라야?”
“오! 이규성규성! 내가 가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는 것이다!”
작물을 구분하던 규성의 손이 멈췄다.
곧이어 아라가 온천수를 가득 머금어 통통해진 보끔이를 데리고 왔다.
“이규성규성, 마시면서 하는 것이다!”
“……고마워. 역시 우리 아라밖에 없네.”
아라가 들이밀자 보끔이의 얼굴로 추정되는 부위가 가까이 다가왔다. 규성은 왜 진즉에 말리지 않았을까 후회하며, 그러나 아라의 순수한 호의를 배신하기는 싫어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다렸다.
“이규성규성, 뭐 하는 것이냐? 손으로 빨리 물을 받는 것이다.”
“아?”
이대로 영락없이 입으로 물을 받아먹어야 하는구나 싶던 규성은 눈을 껌뻑이며 이내 어색하게 손을 모아 내밀었다.
쪼르르-
하찮게 새어 나오는 온천수가 왠지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보끔이가 쪼르르 물을 내뱉고, 규성은 나오는 물을 조금 받아 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됐어. 물이 참 시원, 아니 달고 맛있, 아니…… 좋네.”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는 것이다!”
이전에 다솜 보육원을 방문하고 벌써 며칠이나 지났다.
그사이에도 이틀에 한 번씩은 들러 아라의 춤 연습을 구경했던 규성이었다.
여전히 어색한 몸동작이었지만 나름 순서는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오히려 어설픈 모습이라 더 귀엽단 말이지. 흐흐흐.’
또다시 팔불출 끼가 튀어나오는 규성의 곁에서 아라가 잠시 바닥에 놓아둔 상자를 열었다.
“부하! 많이 먹는 것이다.”
파란 슬라임 조각을 꺼낸 아라가 보끔이를 통해 길어 온 온천수를 쏟아부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저러다 익사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바닥에 흥건한 물웅덩이가 만들어지고 아라가 슬라임 조각으로 물속을 휘휘 젓고 있을 때쯤 양파의 분류가 끝났다.
“대충 반반 정도인가?”
미세하게 아이템이 아닌 게 더 많았지만 그래도 타율이 높았다.
그렇게 수확한 양파를 꾸물이가 만든 저장고로 가져간 규성은 어느새 조금 쌓여 있는 잉여 생산물들을 살펴보았다.
“캬아.”
식구가 늘어난 만큼 작물의 소비량도 늘고 길드에 납품을 시작했기에 창고가 가득 차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그래도 성장 가능성이 다분했다.
결국 하루에 2마리씩 슬라임이 늘어나고 탐식의 던전 내부에 밭을 늘리면 여느 기업 못지않은 생산량을 자랑할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일꾼들은 월급도 필요 없이 숙식만 제공해 주면 알아서 모든 일을 처리해 주니 농지를 늘린다고 규성의 업무량이 크게 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농사의 단점은 모두 없애고 꿀만 빨고 있는 상황.
“헤헤헤.”
-헤헹.
바보처럼 실실거리는 규성을 꾸물이 하나가 따라 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양파가 든 바구니를 옆에서 자신을 흉내 내던 꾸물이에게 넘긴 규성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던전을 나왔다.
오늘은 백태섭과 다시 만나기로 한 날.
마지막 과채즙을 직접 넘겨주는 날이었다.
‘이미 완치 판정이 떴다고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 마지막으로 복용해 본다고 하셨지.’
일종의 퍼포먼스였다.
그런 기념비적인 일에 규성을 보고 싶다며 백태섭 대표의 아들인 백승현이 직접 방문하겠다 했으나 규성이 거절했다.
규성에게 백승현은 이제야 막 해독만 마친 환자처럼 느껴졌기에 아직 후유증이 남아 있을 그보다는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게 편했다.
“아라야, 나갈 준비 하자.”
“보육원? 어제 간 것이다?”
“아니. 오늘은 다른 곳.”
손에 든 슬라임 조각을 물웅덩이에 입수시키고 있던 아라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돌연 고개를 휙 저었다.
“다음에 가는 것이다.”
“어?”
규성은 생각지도 못한 아라의 거절에 몸이 굳었다. 그러고는 절망스럽게 주저앉아 버렸다.
‘아라가…… 이제 나랑 안 놀려고 해?!’
철이 든 걸까. 아니면 어디 기분이 안 좋은 걸까. 갖은 생각이 규성의 머리를 휘감고 있을 때 아라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쉬는 것이다.”
“아, 아라야. 가서 피자 만들어 먹을 건데?”
규성의 말에 아라의 호랑이 귀가 쫑긋 섰다.
바르르 떨리는 귀가 애처로웠다.
“그, 그래도 오늘은 쉬는 것이다! 춤 연습하느라 피곤한 것이다!”
“그, 그래……? 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
여전히 미련이 남은 목소리로 규성이 말하자 아라의 뒷모습이 움찔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결국 규성은 보끔이를 챙기며 쓸쓸하게 일어났다.
규성이 그렇게 보끔이를 데리고 사라지자 뒤돌아있던 아라가 슬쩍 주위를 살폈다. 규성이 완전히 갔다는 걸 확인한 아라가 들고 있던 슬라임 조각을 다시 상자에 넣었다.
“음!”
그러더니 기합 소리를 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깜짝 선물인 것이다아아!!”
최근 또래(?) 아이들과의 교류가 잦아지며 여러 정보들을 얻게 된 아라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규성의 소중함이었다.
‘아라는 몇 살이야?’
‘삼천오백 살인 것이다!’
‘어? 그럼 아라는 아라네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거야?’
‘아빠? 이규성규성!’
‘아라는 좋겠다. 항상 저렇게 맛있는 밥도 해 주고 매일 같이 놀아 주는 아빠가 있어서.’
‘좋은 것이다!’
‘항상 감사해야 돼. 안 그러면 우리가 아라네 아빠 뺏을 거니까.’
‘허억! 어떻게 하면 뺏기지 않는 것이냐?!’
‘그건……?’
전날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아라가 이내 상자를 들고 도도도 달렸다. 그리고 친구들이 말해 줬던 감사의 표현인 깜짝 선물이란 것에 대해 고민했다.
‘이규성규성은……!’
아라가 도착한 곳은 잡동사니를 두는 건물이었다. 잡동사니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아라의 물건이었다.
건물 내부 한편에는 아라의 모자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독 머리에 뭔가 쓰는 걸 좋아하는 아라를 위한 전시대였다.
규성에게 처음 받은 밀짚모자, 정소연에게 받은 오토바이 헬멧, 하늘하늘하고 챙이 넓은 모자, 딱 들어맞는 야구모자, 힙한 비니까지.
여러 종류의 모자가 모여 있는 가운데 아라는 가장 첫 번째에 전시된 밀짚모자를 머리에 썼다.
“음!”
여기다가 가방까지.
이걸로 준비는 완료.
이제 외출을 감행할 때였다.
-똑똑똑! 계시나요?
“움? 오! 프레이!”
막 나갈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프레이가 찾아왔다. 프레이는 별빛벌레에 탄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 군주님. 모자가 잘 어울리네요.
“헤헤헤.”
-대군주님께서는……?
“나간 것이다!”
-아, 군주님께서는 따라가지 않으신 건가요?
“나는 지금부터 깜짝 선물을 구할 예정인 것이다!”
-깜짝 선물?
프레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자 아라는 씨익 하고 웃으며 프레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규성규성한테 줄 깜짝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쁘게 만들 것이다.”
-오오오. 역시 군주님. 치밀한 계략이십니다. 대군주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서로 속닥거리는 모양새를 주변에 있던 곰곰이와 슬라임이 갸우뚱하며 지켜보았지만 둘은 그저 좋다고 흐뭇해했다.
“그럼 나는 출발하는 것이다!”
-잘 다녀오세요! 여기는 제게 맡기고요!
“응!”
아라는 잔뜩 상기되어 붉어진 볼따구를 문질렀다. 처음으로 규성이 없이 혼자만 나서게 될 생각에 긴장과 함께 설렘이 가득했다.
“가는 것이다!”
* * *
‘흑흑. 슬라임도 사춘기가 오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직면한 나는 택시를 타고 철혈 길드로 향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고민에 잠겼다.
초창기에 너무 바빴던 나머지 아라를 던전에 놓고 가거나 본가에 잠시 맡겼던 적이 한두 번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같이 가자고 할 때 거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고민을 길게 할 새도 없이 어느새 도착하고 말았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택시에서 내려 철혈 길드 앞에 섰다.
“……대단하네.”
아라에 대한 걱정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철혈 길드의 부지를 보자 할 말을 잃었다.
아라홍련도 높은 빌딩을 자랑하지만 여기는 스케일이 달랐다.
그냥 부지 자체가 말도 안 되게 넓었는데 내가 알기로 기술동, 교육동, 행정동, 연구동, 의료동, 관리동 등등 구역별로 나뉜 것은 물론이고 하나의 자치 구역으로 인정받기까지 한 게 철혈 길드였다.
이런 철혈 길드에서 나를 눈독 들이고 있다는 게 감개무량하다.
‘계약이 풀린 후가 기대되는데!’
막상 눈으로 이 무지막지한 광경을 보게 되니 살짝 기대가 됐다. 심지어 테러 길드의 간부인 최 이사와도 안면을 텄으니 내 주가는 더욱 올라갈 것이었다.
“아! 혹시 이규성 님?”
그때 거대한 정문 앞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다급히 뛰어오며 내게 물었다. 워낙 거대한 기업 같은 길드이니 사람이 많은 거구나 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아, 철혈 길드에 직접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께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맞이한 사람이 정문에 서 있던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곳에 있던 여러 명의 인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엥?”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며 당황할 때 사람들은 이미 내 주변을 둘러쌌다.
알고 보니 이 중 대부분이 경호원이고, 몇몇은 나를 안내하기 위한 길드 직원들이었다.
‘이렇게 많이 붙을 일인가?’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처음에 말을 걸었던 직원이 말했다.
“대표님께 연락해 뒀습니다. 들어가시죠.”
“예, 예에.”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문을 통해 들어가자 대기하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
“탑승하시면 됩니다.”
아니 부지가 넓은 건 알겠는데 차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라니.
일단 차량에 탑승하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리는 게 느껴졌다. 나를 위해 대기하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두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신기하다. 대체 지금 이게 무슨 일이야.
“오늘은 이렇게 방문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소개가 늦었군요. 전 오민주라고 합니다.”
“아! 오민주 각성자님!”
“절 아시나요?”
“당연하죠. 철혈 길드 내에서도 굉장히 유명하신 분인데…….”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 짓는 눈앞의 안내인은 철혈 길드 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각성자였다. 한낱 손님을 안내할 만한 위치가 아닌데 대체 왜?
“도착했습니다.”
차량이 도착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이규성 님! 철혈 길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어어?”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