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Round Farmer With Slime Synthesis RAW novel - Chapter (94)
슬라임 합성으로 만능 농사꾼-95화(94/119)
“조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한 것이다!”
본부 직원의 인사를 들으며 나는 아라를 품에 안고 나왔다. 다행히 조사는 간단히 끝이 났다.
‘길드가 좋긴 좋아. 가입하길 잘했어.’
이미 아라홍련 측에서 대부분의 법적인 문제를 해결한 덕에 진술 조사도 형식상의 질의응답으로 끝이 났다.
애초에 아라는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이기도 했고.
‘다들 신기해했지.’
한석준 길드장님이 미리 아라가 내 사역마임을 증명해 주신 덕분에 본부 내부를 지날 때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라는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순수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오지랖이 넓은 몇몇은 과자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아라에 대한 관심이 많은가 싶었으나 뒤늦게 직원이 보여 주는 영상을 확인하며 기겁했다.
아라가 4급 육체 계열 각성자를 던져 버리는 모습. 그건 내가 알던 아라의 능력으로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체 검사를 하고 시간이 꽤 지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벌써 4급 각성자를 가볍게 이길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품에 안은 아라의 상태창을 오랜만에 한번 다시 확인해 보았다.
[아라(탐식)]칠죄종의 하나이자 탐식을 담당하는 악마이다. 미지수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슬라임. 이규성의 사역마이다.
능력 : 탐식, 브레스, 신체 강화, 정신 강화, 마력 증가, 친화력, 천리안, 심안, 금강불괴, 천독불침, 디버프 내성, 마나수복, 자가 치유, 피부미인, 백병불침
“이, 이게 무슨……!”
“음? 왜 그러는 것이냐?”
육체적으로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눈앞을 가득 채우는 능력창에 정신이 어질어질해졌다.
각성자로 치면 이건 대체 몇 중 각성자라고 해야 하지? 그냥 다중 각성자라고 해야 하나?
특히 이름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이는 ‘금강불괴’나 ‘천리안’, ‘심안’ 같은 능력들은 두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탐식이 진짜 사기 능력이긴 하구나.’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사기적인 능력이 탐식이지 않을까? 다른 칠죄종이 와도 아마 아라에겐 한 수 접고 들어갈 것 같았다.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복도 한가운데에 서 있자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하고 치고 지나갔다. 그 힘이 너무 세서 순간 넘어질 뻔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정신없이 아라의 상태창을 확인하고 있었네.
“죄송하면 다야?”
“??”
스스로 자책하고 있을 때 들려온 생각지도 못한 상대방의 답변. 나는 그제야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했다.
‘각성 본부 직원이 아니네?’
나처럼 각성 본부를 방문한 방문객으로 보였는데 각성 본부에 올 만한 사람이라면 아마 각성자인 듯싶었다.
“어이, 죄송하면 다냐고.”
“……제가 잠시 주의를 다른 곳에 두고 있어 본의 아니게 길을 막았네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니까. 죄송하면 끝나?”
“그럼 어떻게 해 드리길 원하시나요?”
잘못 걸렸다. 대충 넘어가 주면 안 되나?
나는 애써 좋게 넘어가고 싶었지만 상대는 아니었는지 비열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말하는 싸가지가 왜 그래? 누가 보면 내가 잘못한 줄 알겠어?”
“일부러 그러시는 것 같은데 더 이상 용무가 없으면 이만 지나가 보겠습니다.”
“뭐? 하! 지가 한 눈 판 탓에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어 놓고 어딜 그냥 가려고?”
품에 있는 아라가 말은 안 하지만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려는 움직임.
“크르르.”
나는 애써 그런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상대를 무시하고 뒤돌았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이 새끼가……!”
아무래도 작정한 듯 상대가 뚜벅뚜벅 다가오는 게 뒤통수로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이규성 씨?”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자 언제 한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아, 오민주 각성자님?!”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여인.
철혈 길드의 간부이자 내가 해독해 준 백승현의 연인인 오민주가 그곳에 있었다.
철혈 길드에서 보았을 때와 달리 냉기를 온몸으로 뿜고 있는 분위기였는데, 그런 그녀가 또각또각 다가왔다.
“오, 오민주?”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당황한 목소리.
그사이 오민주가 내게 다가와 언제 냉기를 뿜었냐는 듯 환한 얼굴로 내 손을 맞잡았다.
“설마 이런 곳에서 규성 씨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까부터 보긴 했는데 규성 씨가 맞나 아닌가 헷갈렸거든요. 근데 지금 무슨 일이죠?”
오민주는 내 뒤에 있는 각성자를 슬쩍 보더니 다시 삭막하게 얼굴을 굳혔다.
“아, 잠깐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말다툼?”
이내 오민주가 잡은 내 손을 놓고 내 뒤에 있는 각성자에게 향했다. 시선을 돌려보자 상대는 언제 시비를 걸었냐는 듯 착해진 얼굴로 우물쭈물 못 하고 있었다.
“소속과 성함이?”
“네? 아, 아니 그게…….”
“각성자는 귀가 밝은 거 아시죠? 대충 들어 보니까 규성 씨가 잠깐 길목에 서 있던 거 같은데 이렇게 넓은 복도에서 일부러 치고 간 건가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저도 걷다가 누가 치니까…….”
“거짓말인 것이다!”
내 품에 있던 아라가 삐약! 하고 소리 질렀다.
“이규성규성은 가만히 서 있었는데 저 녀석이 먼저 치고 간 것이다!”
“흐음? 그렇다는데요?”
“아, 아니…….”
“할 줄 아는 말이 아니밖에 없나요? 왜 말씀을 못 하세요?”
역시 명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오민주는 각성자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인, 아니 민간인들조차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철혈의 간부라는 직위와 7급 각성자라는 타이틀. 덕분에 상대는 쭈글쭈글 구겨진 채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캬, 역시 사람은 잘되고 볼 일이다.
나도 언젠가 유명해져서 무시받을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 좋겠…….
“규성 씨, 이 문제 법적으로 해결하죠.”
“……예?”
“아라홍련 측 법무법인이 굉장히 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규성 씨가 신경 쓸 일도 없이 손도 안 대고 해결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각성자가 함부로 상대방을 향해 신체 접촉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진 못할 겁니다.”
뭔가 일이 커지는 거 같은데……?
“아, 아라홍련?!”
내가 당황해서 잠시 대답을 늦추자 화들짝 놀란 상대가 오히려 사색이 된 얼굴로 굳어 버렸다. 내가 아라홍련 소속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눈치였다.
“아, 그, 저…….”
말조차 제대로 못 하는 모습에 나와 오민주가 빤히 쳐다보자 갑자기 냅다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 제가 좀, 그,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괜히 별거 아닌 일로, 그게…….”
“기분이 안 좋다고 함부로 행동하시는 게 잘한 건 아니죠. 마침 이곳이 각성 본부이기도 하니 곧바로 아라홍련에 연락하시죠, 규성 씨. 각성자끼리의 법적인 문제도 여기서 해결하니까요.”
“아, 아……!”
사색이 되다 못해 창백해진 상대가 아련한 얼굴로 내게 선처를 바랐다. 그때 아라가 갑자기 내 품에서 내려와 고개를 치켜들며 외쳤다.
“죄송한 것이냐!”
“엥? 아, 네에……. 죄송합니다.”
“그러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아라가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다시 외쳤다.
“이규성규성을 때리고 간 것이다! 나도 벌로 때리는 것이다!”
아라의 행동에 상대 각성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오민주는 이 아이는 뭐지? 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난 아라의 강력함을 알기에 애매한 얼굴로 보고 있다가 상대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만히 서 있던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오민주 각성자님 말씀대로 비좁은 길은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먼저 사과를 드렸는데 그쪽은 절 비꼬았죠.”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그냥 이쯤 하죠.”
“아! 가, 감사합니다!”
“대신 아라의 화는 풀리지 않은 것 같으니까 한 대만 맞아 주시죠.”
“아라? 아! 이 아이한테 말입니까? 물론이죠.”
나도 썩 착하기만 한 성격은 아니었다.
아라의 힘을 모르고 그저 내가 선처를 해 준다고 생각했는지 안도하는 상대였다. 그리고 그런 상대를 보며 아라가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겉으로만 보면 그냥 꼬마애가 귀엽게 까부는 모습. 상대는 그런 아라에게 오히려 때리기 좋게끔 몸까지 숙여 줬다.
“엉덩이를 걷어찰 것이다! 엉덩이를 대는 것이다!”
“어, 어? 어, 그래.”
주먹을 붕붕 휘두르기에 주먹으로 때릴 줄 알았더니 갑자기 발로 차겠다는 아라. 이쯤 되자 내가 슬슬 불안해졌다.
“아라야, 너무 세게 때리지는 말고.”
“응!”
맞게 될 상대와 오민주는 그저 태평하게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건 전부 아라에 대해 모르니까 저러는 거지.
아마 아라한테 맞으면…… 며칠 동안 꽤나 고생하지 않을까?
“어, 근데 그 아이 설마……?”
그때 오민주가 아라를 보며 어딘가 낯이 익다는 얼굴로 중얼거렸으나 이미 늦었다.
뻐엉!
“크억!”
상대가 엉덩이를 대자마자 아라가 냅다 걷어찼다.
그리고 방심한 상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힘에 엉덩이를 부여잡으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아마 한동안 편하게 앉지는 못하겠지.
충격이 컸는지 엎어져서 끙끙대는 상대를 놔두고 나는 오민주에게 슬쩍 웃었다.
“그나저나 오민주 각성자님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승현 씨는 잘 지내고 계시죠?”
“아? 네, 네…….”
엎어져 쓰러진 상대를 당황스레 바라보던 오민주는 냉기가 휘날리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그날 이후로 식욕이 돌았는지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어요. 다 규성 씨 덕분이에요.”
화목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라가 쓰러진 상대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괜찮은 것이냐?”
“끄으윽.”
“이규성규성. 이 사람 죽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럼 안 되지. 직원 부를까?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선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윽.”
오민주의 시선이 아라에게 향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아라와 동행하지 않아 처음 보는 사이겠구나.
“제 사역마 아라입니다.”
“설마 용산…….”
“하하, 우리 아라가 유명해졌네요.”
“그, 저번에 듣던 대로 정말 귀여운 아이네요. 힘은 귀엽지 않은 것 같지만…….”
속으로 애써 통쾌함을 감추며 아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라도 속이 시원했는지 사악하게 미소 지으며 엉덩이를 부여잡고 사라지는 상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줬다.
“아, 그러고 보니 오민주 각성자님께서는 어쩐 일로 이곳에……?”
“중요한 소식이 저희 길드에 전해졌거든요. 아마 아라홍련 측에도 소식이 들어갔을 거예요.”
“중요한 소식이요?”
“네. 원래는 길드장님과 승현 씨도 함께 오셨어야 하는 일인데 두 분 다 각자 사정이 있어서 오늘은 저만 따로 왔어요.”
오, 대체 무슨 일일까?
내 표정이 드러났는지 오민주가 금방 입을 열었다.
“중국에서 연락이 왔어요.”
“중국?”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했다.
“인색의 던전이 중국에 있거든요.”
“아! 아?”
인색의 던전이 중국에 있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칠죄종의 던전은 총 3개. 그리고 그 중 인색의 던전이 중국 광저우시 시에 존재한다는 것도.
하필이면 대도시에 생겨나 버린 9급 던전 때문에 한동안 전 세계적으로 난리도 아니었었다.
‘그것도 벌써 거의 10년이나 지났구나.’
근데 그 이야기를 왜 하필 지금 꺼내시는 거지?
“인색의 던전에 균열이 생겼다고 해요.”
“……던전 브레이크!”
“일어날 때도 됐죠. 칠죄종의 던전 중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곳이니까.”
잠시 잊고 있었다.
던전이 방치되면 그 안에 있는 몬스터가 자유롭게 던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건 단순히 철혈 길드에만 국한된 사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가장 위명이 자자한 각성자들을 일거에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던 괴물이 튀어나온다는 소리였으니.
아라홍련에도 소식이 닿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큰일 아닙니까?!”
“네. 큰일이죠. 우리나라도 중국과 가까운 만큼 비상사태예요. 아직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부를 비롯한 상위 길드들은 비상이 걸린 상황입니다.”
띠리리-
마침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한석준 길드장님이셨다.
“아, 길드장님.”
“전화 먼저 받으세요.”
“예. 감사합니다.”
곧바로 전화를 받자 침착하지만 착 가라앉은 길드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규성 님, 갑작스런 연락 죄송합니다. 마침 나와 계셨군요.
“예. 길드장님.”
-혹시 오늘 시간 되시면 길드에 방문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중국……?”
-맞습니다. 들으셨나 보군요. 그와 관련해서 규성 님과 상의할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인색의 던전.
아라와 같은 칠죄종이 보스로 있는 곳.
나는 묘한 인연을 감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