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번화가 (6)
연구원 복장을 한 이들을 보고 짐작했듯, 건물의 정체는 생체 실험 연구소였다.
한쪽에서는 잡아 놓은 야생동물들에 약물을 주입해서 근육을 키우고 흉포하게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서로 다른 동물 여럿을 뒤섞어 각 동물의 장점만을 취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가 이전 스테이지를 거치며 상대했던 동물들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참혹한 광경을 보고 두 탐험가가 치를 떨었다.
– 이런 잔인한 짓을……!
그리고 실험에 쓰이는 장치들을 하나씩 파괴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을 그냥 두고 볼 연구원들이 아니었다.
재빨리 도망치나 싶더니, 금세 사람 크기의 로봇 같은 것에 탑승해 반격해 온다.
– 타타타탕!
서예인이 총을 연사했으나 총알들은 단단한 강철 덩어리에 막혀 팅팅 하는 소리만 내고 생채기만 조금 남길 뿐이었다.
“옆구리 노려. 옆구리.”
“응.”
자세히 보면 로봇 옆구리 쪽에 정교한 부품들로 이루어진 기계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그곳을 쏘니 로봇이 파직거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쏴 봐야 하고, 그동안 로봇을 탄 연구원들에게 신나게 얻어맞게 된다.
300포인트 수금을 위한 악랄한 설계였지만, 나처럼 미리 알고 있으면 이전 스테이지와 비교해도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 타타타탕!
우리는 나타나는 로봇이나 변종 야생동물들을 번갈아 쓰러뜨리고, 실험 장치들을 차례차례 파괴해 나갔다.
동시에 케이지에 갇힌 야생동물들을 풀어 주자 연구소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Warning!] [Warning!]화면 곳곳에 빨간 경고등이 번쩍거리고,
– 쿠웅!
연구원들이 타고 나왔던 것보다 더욱 거대하고 육중한 로봇이 장내에 내려앉았다.
그곳에 탑승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최종 스테이지 보스였다.
나는 여태까지 해 왔던 대로, 보스가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서예인에게 언질을 주었다.
“왼쪽 팔 내리찍는다. 사뿐 피해 주시고.”
“사뿐.”
거대 로봇이 내리찍는 왼쪽 팔을 탐험가 남녀가 양옆으로 사뿐 움직여 피했다.
“셋 세면 점프해. 3, 2, 1. 점프.”
“점프.”
거대 로봇이 바닥을 넓게 쓸었으나 탐험가 남녀가 타이밍을 맞춰 펄쩍 뛰어올랐다.
“지금 쏴.”
“응.”
– 타타타탕!
약점에 총탄이 계속해서 꽂히자 거대 로봇의 체력 게이지도 꾸준히 줄어들어 갔다.
그리고 체력이 삼분지 일 아래로 떨어졌을 무렵.
놈의 몸 곳곳에서 붉은빛이 번쩍거렸다.
“레이저빔 온다.”
그것도 엄청 많이.
최종 보스의 발악 패턴인데, 여기서 문제는 저 레이저가 상당히 복잡하게 쏘아져 온다는 점.
일일이 어떻게 피하라고 다 말해 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잘 보고 피해 보세요.”
“네.”
그리고 안 되면 그냥 이어 하기 하세요.
여기까지 왔으면 300포인트 정도는 쓸 수 있는 거잖아?
이내 거대 로봇이 몸을 웅크렸다가 활짝 펼치자, 레이저빔 수십 개가 우리에게 쏘아졌다.
‘왼쪽, 오른쪽, 대각선, 점프, 왼쪽, 앞으로, 한 박자 쉬고, 오른쪽, 뒤로, 두 박자 쉬고, 대각선, 대각선, 점프…….’
나는 현란한 움직임으로 마구 탭댄스를 추며 레이저빔 수십 줄기를 모조리 피해 냈다.
그다음 서예인은 어떻게 됐을까 슬쩍 봤는데,
‘……살았네?’
회색빛 Continue? 가 떠올랐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서예인의 아바타는 멀쩡하게 살아서 총을 연사하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했어요.”
“…….”
서예인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V자를 그렸다.
알아서 되는 데까지만 피해 보라는 의미로 잘 보고 피하라고 한 건데, 정말로 잘 보고 피해 버린 것이다.
가히 악마적인 재능.
이 게임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나와 함께 고여 버린 서예인이었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마무리하자.”
– 타타타탕!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쓰러뜨리고 거대 로봇을 고철덩이로 만든 탐험가 남녀.
그들은 동물들을 데리고 무너져 내리는 연구소를 벗어났다.
그리고 폭삭 주저앉는 연구소를 동물들과 구경한 후, 다 함께 석양을 향해 걸어 나갔다…….
[- The End -]화면 아래쪽에서부터 천천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법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끝내 완주에 성공한 것이다.
“수고했어. 하이파이브.”
내가 손바닥을 들어 보이자 서예인이 자기 손을 가볍게 맞댔다. 소리 없는 하이파이브. 짝.
미니 게임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서예인에게 경품으로 호랑이 인형이 주어졌다.
어지간한 대형견 정도의 크기라 서예인이 두 팔로 끌어안아야 했다.
그 상태에서 호랑이 손을 잡아 나에게 살살 흔든다.
새삼 박나리네 범이가 생각나는군.
나도 ‘토큰 5개 이하 소모,’ ‘엔딩 크레딧 보기’ 조건을 가뿐하게 달성했기에 경품을 얻었다.
[랜덤 랭크업]*3이건 일단 인벤토리에 보관해 두고 나중에 쓰는 걸로.
‘한 게임 더 할래?’ 제안하기 전에, 슬쩍 서예인의 안색을 살폈다.
‘슬슬 졸린가 본데.’
평소에는 낮잠을 자도 한참 전에 잤을 텐데, 오늘은 번화가 돌아다니고 미니 게임 한다고 내내 깨어 있었으니 슬슬 한계가 올 만도 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갈까?”
“응…….”
서예인이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 * *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번화가 초입으로 향하는 길.
슬쩍 옆으로 시선을 주니, 서예인은 여전히 호랑이 인형을 소중히 끌어안은 채 걷는 중이었다.
인벤토리에 넣어 둬도 되는데 계속 들고 있는 걸 보면 이것도 꽤 마음에 드나 보다.
내가 가벼운 어조로 물었다.
“어땠어, 오늘?”
“……재밌었어.”
재밌었으면 다행이지.
여러모로 유익한 하루였다.
다시 앞을 보며 걸음을 옮기려는데 호랑이 앞발이 내 팔을 톡톡 건드렸다.
할 말이 남았나 싶어서 다시 시선을 돌려 보니, 서예인이 내 얼굴을 빤히 마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또 오고 싶어.”
서예인은 대체로 말수가 적고, 말을 하더라도 짧게 줄여서 하기에 생략하는 것들이 많다.
저 ‘또 오고 싶다’는 말에는 아마 ‘같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을 거다.
또한 계속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으로 짐작건대 내 대답을 기대하는 듯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시간 내서 자주 오자.”
“…….”
그러자 아주 잠깐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서예인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 올라갔다.
“웃으니까 좋네. 자주 웃어.”
“……?”
그러나 아직 본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기숙사로 돌아온 서예인을 안정미가 정중히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응.”
“김호 님과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
“응.”
평소처럼 무표정한 상태에서 단답형 대답을 툭툭 던지지만, 베테랑 집사인 안정미는 곧바로 서예인의 주변에 흐르는 기류를 읽어 냈다.
‘기분 좋아 보이시네.’
번화가에서 김호와 충분할 만큼 스트레스를 풀었나 보다.
요구 사항이었던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니, 다음 한 주 멘토링도 어떻게든 끌고 나갈 수 있으리라.
안정미는 자신을 대신해 수고해 준 김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은,
‘김호 님에게 부탁드린 것은 어떻게 됐을지…….’
[귀쟁이 쿠폰]으로 과연 아가씨에게 알맞은, 그리고 애착을 가질 만한 아이템을 골라 주셨을까?베테랑 총사의 예리한 눈이 번뜩 빛났다.
기숙사를 떠나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는지, 찰나에 서예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한다.
그리고 손목에 걸린 하얀 팔찌를 발견했다.
“아가씨, 잠시 팔찌를 살펴봐도 괜찮겠습니까?”
“응.”
서예인이 손을 내밀자 안정미가 아이템 설명을 확인했다.
그리고 예상 밖의 결과에 눈을 조금 치켜떴다.
‘뭉게구름 팔찌…… A랭크?’
놀라운 일이었다.
자신은 분명 B급 쿠폰을 주었는데, A급 아이템이 돼서 돌아왔다.
어떻게 했는지는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김호 님에게 맡기길 잘했어.’
이번에도 자신이 서예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한 김호였다.
이렇게 되면 미래전략실에서 자신의 체면도 서고, 이후에도 더 적극적으로 두 사람을 지원할 수 있으리라.
그때, 서예인이 주섬주섬 인벤토리를 뒤지더니,
“인형도 구했어.”
불쑥 상어와 아나콘다 인형을 꺼냈다.
다음으로 호랑이 얼굴이 보였을 때는 안정미조차 흠칫 놀랐다.
디테일이 심하게 생생해서 순간 실제 호랑이인 줄 착각했던 것이다.
“게임 센터에 가셨었나 봅니다. 아가씨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신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집사 선물도 사 왔어.”
“……예?”
안정미가 두 눈을 깜박거렸다.
방금 뭘 사 오셨다고……?
뒤이어 서예인이 잘 포장된 종이 봉투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번화가 제과점 마크가 붙은 걸로 보아 빵을 포장해 온 듯했다.
사실 제과점 쿠폰은 그녀 자신이 쓰려고 어렵게 구한 것이었지만 김호와 서예인을 위해 선뜻 양보했었다.
다만 그녀 역시 사람이라 내심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었는데, 서예인이 이렇게 자신을 생각해서 빵을 포장해 온 것이다.
안정미가 밀려드는 감동에 몸을 떨었다.
‘아가씨……. 이제 다 크셨군요……!’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만 같았다.
인고의 세월 끝에, 서예인도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어엿한 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이다.
“열어 봐.”
“네, 지금 바로 열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안정미가 포장을 뜯고 봉투를 여는 순간.
심상치 않은 매운 향이 코끝을 강타했다.
‘!?’
안정미가 미소를 지은 채 굳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려 내용물을 자세히 살폈다.
피자빵으로 보이는 그것.
토마토소스 대신 지옥 용암이 부글거리는 것 같았으며, 그 지옥 용암 속에 온갖 매운맛 토핑들이 네 혀를 불태우겠노라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번화가 제과점의 악명 높은 명물, 헬파이어 피자빵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안정미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내가 뭔가 실수한 게 있었나?
아가씨 나름대로의 불만 표출인가?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서예인을 한두 해 모셔 온 게 아니라 불만이 있을 때는 금방금방 눈치채는 편이었고, 지금은 조금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빵 자체는 좋은 의도로 포장해 왔다는 뜻.
하필이면 헬파이어 피자빵이라는 게 문제기는 하지만 말이다.
안정미가 생각했다.
‘아가씨의 첫 선물, 무엇이든 감사히 받는 것이 집사의 의무일 터.’
“…….”
서예인은 계속 안정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하고 묻는 것 같아서, 안정미는 애써 얼굴 한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리고 헬파이어 피자빵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날, 안정미는 지옥을 보았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