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2
12화 배치 고사 (2)
파이어 필라(Fire Pillar).
지정한 범위에 불기둥을 피워 올리는 마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적에게 타격을 입히기보다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연이어 시전할 화염 마법을 보조하는 용도로 쓰인다.
단, 상대가 멍청하게 마법진 위에 멀뚱멀뚱 서 있는 경우는 예외다.
바로 지금처럼.
– 콰아아아아!
강화한 파이어 필라의 위력은 홍연화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화염이 솟구치는 기세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마법을 시전한 그녀 본인조차 몰아치는 열풍을 감당하지 못하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열풍은 또한 자욱한 흙먼지를 피워 올리며 투기장 내부의 시야를 차단했다.
따라서 한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파이어 필라의 지속 시간이 끝나 서서히 사그라들고 자욱하던 흙먼지도 조금씩 걷혀 갔다.
홍연화는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제일 먼저 스코어보드부터 확인했다.
[김 호 100% vs 홍연화 99%] [남은 시간 1:01]“아니……!”
이래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정말로 강화한 파이어 필라마저 빈틈없이 방어했다고?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전의를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홍연화는 ‘누구’가 아니었다.
‘나는……. 나는 차기 루비 마탑주야.’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학기 중반쯤에나 강자들을 상대로 꺼내 들기 위해 숨겨 두었던 비장의 카드들.
그것들을 꺼내 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기고 말 것이다.
홍연화가 마나를 끌어모아 다시 주문을 시전하려 할 때였다.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은 흙먼지 속에서 반짝 작은 무언가가 빛났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뇌전으로 이루어진 벌새였다.
– 치지지직—
‘허밍버드!?’
황급히 대응 주문을 외워서 허밍버드를 후려치려 했으나, 벌새는 휙휙 불규칙하게 움직이다가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벌새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두리번거리던 홍연화의 어깨에서 짜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 파지직!
“윽!”
[‘마비’ 상태이상이 적용됩니다.]뻣뻣해져서 쓰러지려는 몸을 이를 악물며 겨우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녀도 직감하고 있었다.
마비에 걸린 시점에서 승산이 지극히 낮아졌다는 사실을.
김호가 흙먼지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와 자기 앞에 서더니, 길쭉한 스태프를 어깨 위에 턱 올렸다.
“여기까지 하지.”
“……!”
마주 보는 그의 시선은 한없이 무감정하기만 했다.
그리고 무감정한 시선만큼이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다 보여 주는 것보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패를 아끼는 게 더 나을걸. 나머지 경기를 생각한다면.”
“……!”
그제야 홍연화는 깨달았다.
경기 내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읽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은 완전히 이 남자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여기에서 남은 마법을 다 쏟아부어도 통하리란 보장이 없다.
반면 자신의 숨겨 둔 패를 공개하는 것은 다음 경기, 나아가서는 학기 내내 대인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은 일단 물러나는 게 나은 선택이리라.
게다가 홍연화에게 별다른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상대의 무기가 어깨 위에 걸려 있지 않은가.
저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 어떤 마법이 날아올지는 몰라도, 지근거리에서 맞는 만큼 치명적일 것이다.
홍연화의 머릿속에 꼴사납게 나동그라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저 남자는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백기를 들도록, 나름대로 체면을 세워 주려 하는 것이다.
‘알아, 아는데……!’
이것들을 모두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직전까지 투지를 불태우던 홍연화에게 패배를 인정한다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한참이나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던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떨구었다.
“져, 졌습니다…….”
[김 호 Win vs 홍연화 Lose]시작 전까지만 해도 루비 마탑의 승리를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상대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무명이었기에 더욱.
따라서 홍연화가 반쯤 혼이 빠진 채로 터덜터덜 무대를 나서자 관중들은 저마다 바쁘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와, 루비 마탑이 졌어? 쟤 뭔데? 무슨 마법 썼는지 봤어?
– 아니. 내가 봤을 땐 저거 마법 아니야. 술식이 아예 안 보였거든.
– 무슨 소리야. 마법으로 뭘 했으니까 피가 안 깎였지.
– 아, 그러니까 마법 아니래도?
– 근데 어떻게 100%에서 아예 안 떨어질 수가 있냐.
– 저게 돼?
대부분은 내가 어떻게 쏟아지는 화염 마법을 완벽하게 방어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맞상대한 홍연화 본인에게도 꽤 오랫동안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진실을 알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엄청 허탈해하지 않을까?
‘그걸 다 속아 줄 줄은 몰랐지.’
방어 아티팩트를 쓴 척.
디스펠을 하는 척.
방어 마법을 쓰는 척.
그럴싸하게 연기만 했을 뿐이지만 홍연화는 그대로 도발에 걸려들어서 정면승부에 응했다.
화력하면 루비 마탑이니 정면 승부는 무조건 이긴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겠지.
다만,
‘원소 저항은 계산 밖이었고.’
S급 [원소 저항]을 가진 상대에게 원소 마법으로 아주 작은 생채기라도 내려면 최소 B랭크 마법은 써야 한다.
혹은 적의 저항력을 낮추는 디버프를 곁들이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백날 마법을 퍼부어 봤자 내 체력은 100%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홍연화가 조금 더 마음에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관찰했다면, [원소 저항]의 존재를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족한 실전 경험과 겨우 5분에 불과한 제한 시간이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초조함은 결국 패배로 이어지고 말았다.
투기장 이곳저곳에 저절로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불타고 부서진 부분들을 말끔히 수복했다.
동시에 빛무리가 모여들며 나를 무대 밖으로 이동시켰다.
바로 관중석으로 돌아가려는데, 이수독의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김호. 송천혜.”
곧바로 다음 배치 고사가 잡힌 것이다.
관중석이 또 한 차례 술렁거렸다.
– 송천혜?
– 진짜 송천혜야?
– 올해 입학했다고 듣기는 했는데, 3반인가 보네.
– 쟤 선도부도 들어갔대.
– 역시, 이름값은 하는구나.
이름만으로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유명인사.
하지만 정작 본인은 쏟아지는 관심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다.
송천혜가 나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더니 시선을 맞췄다.
“운이 좋네요. 마침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확인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니 나와 홍연화의 경기를 관전한 듯하다.
뇌 속성 마법사라면 내가 마지막에 날린 허밍버드에 관심이 안 생길 수가 없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투지를 불태우는 송천혜였으나, 사실 운이 좋다는 말은 틀렸다.
“미안하게 됐다. 그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는데.”
“그게 무슨……?”
이 승부는 처음부터 성사될 수가 없었으니까.
나는 이수독을 바라보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저 기권할게요.”
“……네?”
어안이 벙벙해진 송천혜.
이수독 역시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보는지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곤 물었다.
“왜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요. 대인전을 더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경기도 기권 처리해 주세요.”
“당장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한 번 승리를 더 따 두는 게 따로 300점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쉬울 거다. 그래도 기권하겠나?”
“예. 그거야 어쩔 수 없죠.”
“……좋다. 패배로 처리해 주지.”
이수독은 지나치게 승패에 달관한 내 태도가 미심쩍은 기색이었으나,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고 내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그로 인해 훨씬 낮은 랭킹부터 시작하고, 원하는 순위를 달성하려면 더 많은 대인전을 치러야 하겠지만, 어차피 손해는 내가 보는 거니까.
발걸음을 돌리는데,
“잠깐만요.”
송천혜가 나를 불러 세웠다.
“왜?”
“정말 그런 이유로 포기하는 건가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응. 그러면 안 돼?”
송천혜는 아주 잠깐 눈을 감고 치밀어오는 화를 삼키는 듯했다.
그리고 훈계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승부에는 항상 만전을 기하라. 최적의 상태가 아니라도 최선을 다해 임하라. 불리한 상황에서도 끝내 승리를 쟁취해 내는 자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방금 막 지어낸 말 같지는 않고, 어느 고인(高人)께서 하신 말씀이야?”
“저희 조부님이요.”
그러고 보니까 얘네 할아버지가 우레군주랬지.
자기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영웅인 만큼, 우레군주가 했다는 말은 영웅 지망생이라면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었다.
……그 조언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별개의 문제고.
이미 세워 둔 계획을 수정할 생각은 없다.
해서 나는 말싸움 최고의 회피기술인 ‘네 말이 다 맞단다’를 시전했다.
“그래, 아무래도 나는 안 될 놈인가 봐. 네가 이긴 걸로 치자.”
“……실망스럽네요.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기대를 한 제가 바보 같아요.”
송천혜의 눈빛은 이제 실망을 넘어 미약한 경멸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호감도가 표시되었다면 아마 한없이 0에 가깝지 않을까?
다 시간 낭비였다며 떠나는 송천혜를 이번에는 내가 불러 세웠다.
“아, 맞다.”
“……왜요.”
“디저트 쿠폰. 보내 준다며.”
“이 상황에 디저트 생각이 나요?”
“솔직히 말하면 단 게 땡기기는 해.”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까먹기 있냐? 디저트 쿠폰.”
“…….”
송천혜는 나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붙어 보고 싶기는 했는데, 상황이 별로 안 좋다.
‘벌써 너무 눈에 띄었거든.’
첫 경기에서 홍연화에게 항복을 받아 내는 바람에 나에게는 ‘루비 마탑을 꺾은 정체불명의 실력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적잖이 귀찮아질 텐데, 거기에 우레군주의 손녀딸까지 이긴다?
학기 초부터 일약 슈퍼스타 탄생이다.
명성은 양날의 검이다.
그리고 대개 부정적인 쪽이 더 예리하고 날카롭다.
이름이 알려질수록 주시하며 분석하는 시선도 늘어나게 마련이니까.
S급 [원소 저항]은 용살학원의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마저도 쉽게 못 뚫는 어마어마한 특성이다.
다만 지금 나는 원소 저항‘만’ S랭크고, 다른 건 아직 별 볼 일 없다.
그 정보가 새어 나가면 앞으로 대인전이 아주 귀찮아질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 송천혜와 붙는 건 하책 중의 하책.
앞서 홍연화와의 경기를 지켜본 사람 몇몇은 벌써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을 테고, 같은 방법을 두세 번 쓰다 보면 의구심이 확신으로 굳어질 터.
정보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다른 수단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최대한 내가 가진 패를 감춰야 한다.
– 엥? 쟤네 왜 하려다 말아?
– 기권이라는데?
– 기권? 배치 고사에서 기권을 하는 놈이 있어?
– 상대가 송천혜라니까 쫄았나 보지.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해 보지도 않고 그냥 튀냐. 김빠지네.
– 겁쟁이야, 슈퍼 겁쟁이.
당연히 관중들이 그 속뜻을 헤아릴 리가 없었다.
‘쟤 누구야?’라는 호기심이 담겼던 시선이 순식간에 ‘그럼 그렇지’ 하는 비웃음과 조롱이 섞인 시선으로 바뀌었다.
별 볼 일 없지만 운 좋게 루비 마탑을 이긴 놈.
그러다가 막상 토파즈 마탑과 붙게 되자 곧바로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겁쟁이.
‘아주 좋아. 아주 적절해.’
그야말로 정확히 내가 의도한 평가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야유 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관중석으로 돌아왔다.
배치 고사 중반쯤이라 그런지 오히려 관중석에서 대기하는 학생이 드물었다.
어차피 다음 경기가 금세 잡힐 테니 아예 무대 근처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신병철은 관중석에 자리를 잡은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였다.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메모장에 열심히 무언가를 휘갈기고 있다.
정보를 사고파는 녀석이라 그런지 이럴 때는 열심이다.
자리에 앉는 나에게 신병철이 물었다.
“다 끝났나 보네? 몇 승 했냐?
“1승 2패. 너는?”
“동지.”
신병철과 나 사이에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우리는 손을 굳게 맞잡았다.
송천혜의 다음 상대로는 창을 든 남학생이 나왔다.
시작 전에 호기롭게 뭐라고 선언을 하는 것 같은데, 송천혜는 그저 싸늘한 눈빛만 되돌려 줄 뿐이다.
신병철이 두 사람의 대치를 지켜보며 물었다.
“난 너랑 쟤랑 붙는 거 좀 기대했거든. 왜 기권했냐?”
“그냥, 못 이길 것 같더라.”
“그래, 송천혜면 어쩔 수 없지.”
신병철은 전격 마법의 피해자로서 내 결정에 깊이 공감하는 듯했다.
어차피 질 싸움, 온몸이 마비된 채 바닥에서 추하게 꿈틀거리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기권해 버리는 게 미관상 아름답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내 원래 의도와는 굉장히 동떨어진 해석이지만 이렇게 생각해 주면 나로서는 차라리 고맙다.
[3] [2] [1] [Start!]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달려들던 창잡이 남학생이 갑자기 속도를 잃고 비틀거렸다.
부주의하게도 곧바로 허밍버드에 격중당한 것이다.
창잡이는 바닥에 꿇리려는 무릎을 붙들고 안간힘을 써 가며 겨우 자세를 회복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향해 사람 몸뚱이만 한 벼락을 내리꽂는 송천혜의 모습이었다.
– 쿠르르릉!! 쾅!!
귀청이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가 아레나를 뒤흔들었다.
“……쟤 화났나 본데?”
“그런가 봐.”
씩씩거리던 송천혜의 시선이 관중석을 뒤지다가 나를 찾아냈다.
째릿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더니 순간이동 마법진을 타고 투기장 밖으로 나가 버린다.
그리고 창잡이 남학생은 들것에 실려 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신병철이 혀를 끌끌 찼다.
“아유, 쟤는 아직 3경기도 안 했던데, 해보지도 못하고 부전패네. 불쌍하게 됐구만. 불쌍하게 됐어.”
“쟤만 불쌍한 게 아니지. 송천혜도 3경기는 안 했잖아.”
“어, 그렇네? 다음은 누구래?”
송천혜의 배치 고사. 그 마지막 희생양은 누구인가?
신병철의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이수독이 이름 둘을 입에 담았다.
“송천혜.”
그리고,
“서예인.”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