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뜨거운 심장의 두꺼비
김갑두는 내기를 걸 때는 구차하기 짝이 없었으나, 결과에는 군말 없이 깔끔하게 승복했다.
“우리가 졌다.”
이윽고 그가 인벤토리를 열어 영약들을 잔뜩 꺼냈다.
3학년에 멘토를 맡을 정도의 실력자인데다, 무투가 동아리쯤 되는 중견급 동아리의 부장이다 보니 밑천이 어마어마하다.
그래도 하나하나가 귀한 것들이라 내놓기 아까울 법도 한데, 약속은 약속이다 싶었는지 미련없이 그것들을 분배했다.
[태청단(B)] [삼백년 산삼(B-)]‘당분간은 마나연공실에서 등교하겠군.’
태청단은 환단 계열에서 한 손에 꼽히는 명성도를 지녔고, 삼백 년 산삼도 오랜 세월 기운이 쌓인 만큼 제법 급이 높다.
그 막대한 기운을 다 녹여 내서 [코어]의 양분으로 삼으려면, 얼마간은 매일 마나연공실에 들락거리며 밤을 새워야 할 거다.
나 혼자 받은 것만 이렇고, 우리 조원은 네 명이었다.
이만큼이나 영약을 잔뜩 풀었으면 출혈이 상당할 텐데, 김갑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기 멘티들에게도 영약을 나누어 주었다.
“너희들도 고생 많았다.”
“가,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그러고도 아직 인벤토리가 바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투가 동아리 부장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어서 김갑두가 당규영에게 말했다.
“약속한 이권들 역시 바로 양도하도록 하지.”
“아니, 서두를 거 없어.”
그러나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당규영.
어차피 이쪽으로 넘어올 이권이라면 한 번에 모조리 가져올 필요는 없다.
지금 다 받으면 당장은 풍족하겠지만 무투가 동아리에서 김갑두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테고, 2학기에는 동아리장이 교체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교체된 동아리장이 당규영 및 도둑 동아리에 우호적이리라는 보장도 전혀 없었다.
반면 천천히 하나씩 넘겨받으면 김갑두가 동아리 내의 여론을 제어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할 테니, 졸업할 때까지는 자리가 보전될 거다.
동아리 하나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쪽이 훨씬 이득이다.
‘나도 급하지는 않고.’
내가 실력의 일부를 보이는 대가로 약속된 지분은 2학기 특수연공실 시즌 패스와 제작 VIP 티켓.
이제 겨우 1학기 중반부인 지금부터 2학기 시즌 패스를 받아 봤자 쓸데도 없고, 제작 VIP 티켓은 재료부터 다 모은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김갑두 역시 위와 같은 의도들을 이해했는지 감사를 표했다.
“고맙군. 덕분에 목은 붙어 있겠어.”
그러더니 잠시 입을 다물고 당규영을 응시하다가, 쓸쓸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나로는 안 되는 것이냐.”
“응, 짱싫음.”
당규영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두꺼비의 가슴에 대못을 푹 박았다.
김갑두의 얼굴이 급격히 처량해지며 왈칵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까지 갔으나, 겨우겨우 눌러 참은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규영이 한층 진지해진 태도로 다시 답했다.
“미안하다. 마음이 안 생겨.”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알겠다. 백년해로해라 당규영.”
“백년—”
오해 사기 딱 좋은 단어를 던져 놓고, 김갑두가 푹 한숨을 내쉬더니 이번에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호라고 했나?”
“예, 선배님.”
“잠깐 얘기 좀 했으면 좋겠군. 괜찮은가?”
“예, 괜찮습니다.”
김갑두를 따라 아레나 한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도중, 등 뒤로 당규영이 열심히 해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그런 사이 아니다. 그런 사이 비슷한 것도 아니야. 오해하지 마.”
“…….”
곽지철과 송천혜 등의 눈초리가 묘한 것으로 보아 그 해명이 통했는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뒷일은 당규영이 어련히 잘 처리하겠지 싶어서 맡겨 두고, 나는 김갑두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정도 걷다가, 근처에 듣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김갑두가 말문을 열었다.
“보통 실력이 아니더군. 조벽의 절초를 그리도 쉽게 해소할 줄은 몰랐다.”
“얕은 잔재주입니다. 안 맞으려고 열심히 도망 다니는 게 고작이죠.”
“그게 바로 실력이다. 얼마나 더 감추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보인 것만으로도 너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김갑두는 3학년 부장급답게 전투의 전말을 전부 꿰뚫어 본 듯했다.
해서 나는 그만 겸손을 떨기로 하고 담담히 칭찬을 받았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실력이라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지. 허나 앞일은 예측할 수 없는 법. 언제나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회복 포션은 구비해 두었나?”
“부끄럽습니다만 구비하지 않았습니다.”
맞고 회복하기보다 애초에 안 맞으면 그만이라는, 지극히 고인물다운 마인드.
또 회복 포션은 생각보다 가치가 높은 아이템이라, 그걸 얻는데 들어갈 자원을 스펙업에 투자하는 게 낫다.
그러나 김갑두는 내 마음가짐을 이해하기에는 덜 고인물이었기에 미간이 좁아졌다.
“이런 면에서는 아직 안일하구나. 받아라.”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건넸다.
받고 나서 확인해 보니 그것은 농축된 액체가 담긴 자그마한 유리병 세 개였다.
[보급형 엘릭서(B)]*3엘릭서는 여벌의 목숨이라 불릴 만큼 강력한 회복력을 가진 포션.
물론 이건 보급형이라 진품에 비해서는 효능이 상당히 떨어지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상처는 단숨에 치료가 가능하다.
신병철이 흑사방에서 고현우의 내상을 치료하는데 썼던 하이포션보다도 윗급이다.
그것이 무려 세 개.
“이런 귀한 물건을 주시는 저의를 모르겠군요.”
“네가 예뻐서 주는 게 아니야. 괜히 다쳐서 걱정 끼치지 말고, 항상 곁에 있다가 혹시 당규영이 위험에 빠지면 쓰라고 주는 거다.”
그러니 잠시 맡아 두었다 생각하고 허투루 낭비하지 말라며 툴툴거리는 두꺼비 선배였다.
나는 김갑두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더 상향 조정했다.
나와 당규영의 사이를 엄청나게 오해하고 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짝사랑을 홀랑 채간 상대까지 걱정하여 귀한 아이템을 내놓을 사람은 극히 드물다.
특히 엘릭서 같은 강력한 포션은 직접 쓰기에도 부족한데, 선뜻 내놓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규영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하더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김갑두는 매우 뜨거운 심장을 가진 두꺼비였던 것이다.
“요긴하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당규영한테는 비밀로 해라. 이만 가겠다.”
김갑두는 내 감사 인사를 제대로 받지도 않고, 등을 돌려 빠르게 멀어져 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언젠가 좋은 인연이 함께하기를.’
* * *
멘토링 시간대가 지나기도 했고, 김갑두 팀과의 4대 4 대인전으로 피로가 꽤 쌓이기도 했기에 다들 휴식을 취하러 뿔뿔이 흩어졌다.
당규영과 나만 남아 아레나 관중석에 나란히 앉았다.
“김갑두가 뭐래?”
“별 건 없었고, 대인전 얘기 잠깐 했습니다.”
“뭐 쓸데없는 소리는 안 하디?”
“그냥 좋은 말 많이 해 주셨어요.”
좋은 엘릭서도 세 개나 주셨고.
다만 이건 김갑두의 요청에 따라 일단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냐. 착한 놈이기는 하지.”
당규영은 대강 납득하고 넘어가는 기색이었다.
김갑두와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도, 평소 인식은 그냥저냥 괜찮았던 모양이다.
“…….”
“…….”
한동안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당규영은 평소보다 복잡한 표정으로 경기장 쪽을 응시하다가, 이따금씩 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나를 보곤 했다.
“무슨 생각 하십니까.”
“그냥,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네.”
이 선배님도 사람이라, 김갑두에게 관심이 없더라도 오늘 일을 곧바로 없었던 것처럼 잊어버리지는 못할 거다.
“그럴 때 아주 효과적인 해결책이 있는데요.”
“……뭔데?”
솔깃하여 되묻는 당규영에게, 나는 사뭇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
“대련이죠. 격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모든 잡념이 날아가게 마련입니다.”
“…….”
당규영이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천천히 두 손을 내 얼굴에 가져다 대더니 양 볼을 주욱 잡아당겼다.
“아주 머릿속에 대련밖에 없지, 요 녀석아.”
“으그 즌쯔 틍흐그든요(이거 진짜 통하거든요).”
당규영은 얄미워 죽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볼따구를 죽죽 잡아당겼다.
말랑말랑해서 땡기기 좋다더니 요새는 완전 버릇이 됐다.
그러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래, 가서 몸이나 풀자.”
순간이동 마법진을 타고 경기장에 들어가 마주 선 우리들.
곧 당규영이 자기 상반신만 한 그림자 망치를 움켜쥔 채,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왔다.
내가 도둑걸음을 시전하며 뒷걸음질 치자 간발의 차이로 바닥을 쿵쿵 찍어 댄다.
“오늘따라 많이 저돌적이시네요.”
“이왕 몸 풀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근데 이거 진짜로 효과가 있네.”
“그렇다니까요.”
벌써부터 한결 마음이 편해 보이는 당규영이었다.
내가 계속 물러나자 당규영이 바닥을 쿵쿵 찍던 망치를 힘껏 집어 던졌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오던 그림자 망치가 잘게 쪼개지면서 갖가지 다양한 그림자 암기로 변해 쏟아졌다.
그에 대응해 내가 뿌리로 전방을 가리키자, 바람이 모여들더니 강렬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바깥으로 퍼져 나갔다.
– 휘잉—!
그 탓에 쏟아지던 그림자 암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려다가, 형태가 또다시 변해 십수 마리의 그림자 나비가 되어 팔랑거리며 날아왔다.
나는 계속 뒷걸음질 치며 뿌리를 뻗었고, 또다시 전방에 회오리가 일며 그림자 나비들을 중심으로 확 끌어모았다.
– 휘잉—!
하나로 뭉쳐진 그림자 덩어리가 이번에는 길쭉하게 늘어나고, 당규영은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자 장검을 마구 그어 댔다.
동작이 망치를 휘두를 때와 비슷하게 역동적이지만, 어조는 평소처럼 일상적이다.
“그러고 보니까, 주말에 같이 나가는 건 안 까먹었지?”
“얘기한 지 며칠 됐다고 까먹겠습니까. 동아리 일이라면서요.”
“응, 나만 따라다녀도 재미있을걸. 기대해도 좋다.”
당규영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번 견학으로 내 흥미를 유발해서 도둑 동아리에 입부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
다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런 일에 흥미를 느끼기에는 너무 닳고 닳은 고인물이었다.
저들이 준비하는 이벤트가 블랙 마켓이라는 사실도 진작에 알아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당규영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말이다.
‘거기 가면 주워 먹을 게 많거든.’
그것도 임시 보관소보다 더.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