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번화가 장터 (2)
섬광탄처럼 사방을 가득 메우던 광채가 사그라들자, 정신을 차린 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 뭐야, 뭐야?
– 방금 무슨 이펙트였어?
– 1학년이 랜덤 스킬북 쓰는 거 같던데.
– 랜덤 스킬북 이펙트가 그렇게 나온다고?
그러나 이 난리를 일으킨 서예인은 진작에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정확히는 트러블을 예상한 내가 얼른 데리고 나왔다.
나는 서예인에게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스킬북을 거기서 쓰면 어떡해. 저기 아직도 난리 났네.”
“쓰고 싶었어.”
“왜?”
“그냥.”
그냥 쓰고 싶어서, 직감이 시키는 대로 썼다니 할 말이 없어졌다.
결과까지 좋아서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뭐 나왔는데.”
“본인도 무척이나 궁금하구려.”
고현우와 내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자, 서예인은 스킬북을 사용했을 때 출력되었던 알림 메시지를 띄워서 보여 주었다.
[‘랜덤 스킬북 – 원거리’를 사용합니다.] [‘불릿 타임(F)’을 습득합니다.]“어이가 없네.”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렇지, 이건 사기인데.
반면 스킬에 대한 지식이 적은 고현우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스킬이기에 김 형이 그렇게나 놀라는 거요?”
“인식가속 스킬 중에 제일 좋은 거야.”
“인식가속이라 하면?”
“느려져. 네가 보는 모든 게.”
“……!”
불릿 타임.
지속시간 동안 시전자의 인식을 급격히 가속하여, 모든 것을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볼 수 있다.
날아오는 총알이 회전하는 모습마저 보이는 정도.
F랭크 기준 지속 시간 1초,
재사용 대기 시간 5분.
쿨타임이 아주 길지는 않지만 남발할 수 없는 수준이고, 지속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니 매우 신중히 사용해야 하는 스킬이다.
그러나 불릿 타임이 발동되는 찰나만큼은 전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가령 같은 원거리 클래스와 포격전이 벌어졌을 때, 상대방의 공격을 모조리 피하면서 사격을 꽂아 넣는 것도 가능하고,
근접해 온 암살자 계열 등의 일격에 대응하고 반격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고현우가 감탄사를 흘렸다.
“허어, 그런 스킬이라면 본인이 써도 무척 유용하겠소. 8천 포인트가 아깝지 않구려.”
“누가 쓰든 엄청 좋지. 익힐 수만 있으면 8천이 아니라 8만도 안 아까워.”
불릿 타임은 그 엄청난 성능만큼이나 습득 난이도가 악랄하기 짝이 없다.
안정미는 당연히 못 익혔을 테고, S급으로 육성했던 총사들 중에서도 보유한 녀석이 한 손에 꼽혔었지.
그런 악랄한 스킬을 서예인은 궁수 판매구역에 발을 들이자마자 한번 슥 둘러보고, 랜덤 스킬북을 집더니 그대로 익혀 버린 것이다.
세상은 불합리함으로 가득 찬 곳임이 틀림없다.
서예인이 우리 둘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운이 좋군?”
“…….”
“…….”
저건 또 어디서 배워 왔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듯 갑작스럽고 어이가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서예인의 전력이 대폭 증가했다는 것은 달가운 일이다.
“집사님 가시고 뭐 배워 볼까 했는데, 이거 익히면 되겠네.”
“응.”
불릿 타임을 실전에 써먹으려면 매우 높은 숙련도가 요구된다.
스킬 효과는 어디까지나 시전자의 인식을 가속하는 것일 뿐, 실질적인 속도에는 변화가 없다.
느리게 보이는 만큼 본인의 움직임도 똑같이 느려지기에 거기에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최적의 타이밍을 잡아내는 연습까지 해야 하니, 익히기만 한 지금으로서는 갈 길이 한참 먼 셈이다.
“랭크작도 해야 되고.”
“그러고 보니 지금은 F급이군. 랭크가 더 오르면 어떻게 되는 거요?”
“지속 시간이 늘어나지. 쿨은 줄고.”
“허어, 여기서 더 강해진다니.”
고현우는 부러운 기색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나는 다시 서예인을 쳐다보았다.
“연습은 아무래도 상대가 있는 게 좋기는 할 거야.”
“같이 해.”
“같이 해야지. 근데 금방 중간고사니까, 그거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동 겁시다.”
“응.”
서예인이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가벼운 약속을 잡아 놓고,
다음으로 돌아볼 판매 구획은 근거리, 전사 클래스.
“본인 차례로군.”
고현우가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면서 슬쩍 나에게 물었으나,
“본인도 랜덤 스킬북을 구한다면……. 혹여 서 소저처럼 강력한 스킬을 익힐 수 있는 거요?”
“깃털뱀 부족의 나무잔.”
“안 되겠군.”
현실을 자각하고 빠르게 미련을 내려놓았다.
“크흠, 하면 장비 위주로 돌아보려 하오.”
“슬슬 구할 때도 됐지, 장비.”
서예인의 경우 장비를 새로 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미 대부분의 장비 수준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1학년이 쓰기에는 과하게 좋고, 뭉게구름 팔찌 등 몇몇 장비는 졸업을 한 뒤에도 통용된다.
해서 스킬북 위주로 살펴본 거고,
고현우는 그 정반대.
‘스킬은 놔둬도 알아서 잘하지.’
사문에서 가르친 독문 무공을 사용하고, 하나둘 초식을 다듬어 나가는 중이다.
[불릿 타임]같이 사기적인 성능이라면 몰라도, 구태여 다른 스킬을 배우고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반면 장비는 이제 겨우겨우 무기가 파괴되는 것만 막은 상태.
슬슬 다른 옵션으로 눈을 돌릴 때도 됐다.
궁수 코너와 마찬가지로, 전사 코너에 들어서니 선배 몇 명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다만 이들은 한눈에 누가 근접 클래스고, 누가 아닌지 알아본 듯했다.
나와 서예인에게는 별반 관심이 없는 걸 보면 말이다.
3학년 선배가 고현우 앞에 척 멈춰 서더니 위아래로 슥 훑어보았다.
허리춤의 [깃털뱀 주술검], 셔츠 앞주머니에 꽂아 둔 [튼튼이 볼펜].
“장비는 검과 볼펜이라, 무인으로 보이는데, 맞나?”
“그렇습니다.”
“방어구는?”
“이 교복이 다입니다.”
선배가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는 듯 인상을 썼다.
“부실하군, 부실해. 아무리 무인이라도 그렇지,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어서야.”
“저 역시 부족함을 느끼던 참입니다.”
“그렇겠지. 따라오게.”
그는 고현우를 한쪽으로 안내해서 앉혀 둔 뒤, 다른 선배들과 무언가 상의하는 듯했다.
이윽고 방어구 셋을 가져와 고현우 앞에 내려놓는다.
“무인임을 감안해서 가볍고 활동성이 편한 것 위주로 가져왔네. 마음에 드는 걸 골라 보게.”
첫 번째는 옅은 광택을 머금은 새하얀 티셔츠 한 벌.
[성전사의 셔츠(C)]▷지속적으로 ‘힐(E)’발동.
▷물리 방어(E)
약간의 방어력을 지니고 있는데다 가만히 있어도 회복 마법이 발동된다.
착용만 해도 유지력이 올라간다.
두 번째는 앙상한 갈비뼈 모형.
약간의 흑마술이 가미되었는지 검은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갈비뼈 튜닉(C)]▷1일 1회 ‘본 아머(D)’ 시전 가능.
▷흑마법 저항(E)
▷저주 저항(E)
옵션만 봐도 마법 방어에 치중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직 고현우는 마법사한테 대차게 얻어맞아 본 적이 없지만, 미리 대비해 둬서 나쁠 건 없다.
하루 한 번이라도 [본 아머]를 시전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세 번째는 기하학적인 마법 문양이 각인된 가죽 갑옷.
[창술사의 관통 가죽 갑옷(C)]▷일정 확률로 ‘방어 관통(D)’발동
▷관통 저항(E)
[방어 관통]은 살가죽이 두꺼운, 오우거 같은 적의 방어를 뚫을 때 유용한 스킬이다.중갑옷 전사를 상대로도 예상외의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관통 저항]은 쉽게 말하면 찌르기 계열 공격을 덜 아프게 맞는 특성이다.총탄이나 화살 등 대부분의 원거리 공격이 찌르기 판정으로 들어오니 원거리 저항이라 봐도 무방하다.
“으음…….”
고현우는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고르든 유용하리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회복을 통한 유지력 증가냐, 마법 방어를 보강하느냐, 방어 관통 옵션을 챙기고 원거리 방어를 보강하느냐.
“김 형의 생각은 어떻소?”
“이건 순전히 취향이야. 분야가 다 다르잖아.”
“고민이 되는구려. 본인 눈에는 다 쓸만해 보이니…….”
시선이 세 방어구를 오가며 쉽사리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고현우.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서예인에게 묻는다.
“서 소저의 생각은 어떻소?”
이른바 복덩이 찬스.
운에 맡기기로 한 모양이다.
“…….”
서예인은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방어구 셋 중 하나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을.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저기는 뭐가 있습니까?”
“글쎄, 잠깐 기다려 보게나.”
선배가 서예인이 지목한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매대를 뒤지더니, 갑옷 한 벌을 들고 돌아왔다.
청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갑각류 껍데기 같은 형태를 띤 갑옷이다.
[청동 갑각(D)]▷물리 방어(E)
▷업그레이드 가능
“이걸 찾은 건가?”
3학년 선배가 물었다.
고현우도 일단 서예인에게 판단을 맡기기는 했지만, 이게 맞나 싶은지 미심쩍은 눈치다.
앞선 세 방어구에 비해 그다지 좋은 점이 보이지 않는다.
업그레이드 슬롯이 남아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말이다.
혹시 서예인의 오늘치 운이 다한 건 아닐까?
그래서 아무 데나 손가락질을 한 건 아닐까?
그때, 내가 고현우를 툭 건드리며 한마디 던졌다.
“사.”
“……!”
고현우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여태까지 취향 차이라고 한발 뒤로 물러나 있던 내가 이 볼품없어 보이는 갑옷은 바로 사라고 하니,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리고 고현우는 내 조언은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곤 했다.
“이걸로 구매하겠습니다.”
“확실한가? 무인이 쓰기엔 무거울 텐데.”
“적응해 보겠습니다.”
3학년 선배도 마찬가지로 영 미심쩍은 기색이었으나, 고현우가 고집을 부리자 그러려니 했다.
그 입장에서는 이러나저러나 팔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자네 선택을 존중하지. 4천 포인트만 내게.”
고현우가 곧바로 학생증을 꺼내 계산을 마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마법사 판매 구역으로 이동했다.
청동 갑각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으며 고현우가 말문을 열었다.
“김 형을 믿기에 망설임 없이 구매하기는 했소만, 본인은 아직도 잘 모르겠소.”
“잘 산 거 맞아.”
서예인의 행운이 조금 남아 있던 덕분에 고현우 역시 진흙 속에서 진주를 건져 낼 수 있었다.
“그거, 사실 업그레이드 슬롯 두 개다.”
“하면 ‘청동’ 수식어가 업그레이드로 붙은 거란 말이오?”
“그렇지.”
매우 희귀한 갑각류 몬스터를 잡아서 제작하는 방어구.
제작 직후의 명칭은 [투명 갑각]이다.
투명 갑각의 특징은 업그레이드에 들어가는 재료의 성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점.
금속을 쓰든, 몬스터의 일부분을 쓰든 말이다.
“어쩌다가 청동을 업그레이드 재료로 썼는지는 몰라도, 그건 빼 버리면 돼.”
“그다음에는…….”
“다른 걸로 바꿔 넣어야지.”
최고의 재료 두 가지를 구해서.
서포터가 다 해먹음